소설리스트

러스트-112화 (112/280)

러스트 [RUST]-112

점점 붉은 선이 그어지는 기순의 볼

“야- 그만 긁어.”

“응? 뭘?”

긁적긁적.

붉은 선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한 피가 볼에 매달렸다.

“야! 김기순! 손 그만해. 그만 긁어!”

“응? 뭐가?”

북-북-

주르륵- 핏방울이 볼을 타고 떨어졌다. 찢어진 볼 사이로 오돌토돌한 뭔가가 실시간으로 돋아오르는 모습.

그걸 본 김 양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총을 뽑았다.

철컥-.

간호사가 ‘에에엣?’하는 소리와 함께 김 양의 다리를 붙잡았다.

“미쳤나?”

급한 상황에서 다리를 잡다니. 다리를 잡힌 김 양이 인상을 쓰고 다리를 털었다.

툭-

바지에 붙은 오물 털 듯이 털린 간호사가 저쪽으로 튕겼다가, 엉금엉금 김 양의 다리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 왔다.

총구를 기순에게 향한 채, 김 양은 재빨리 마루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간호사는 김 양의 다리만 보고 기어 오고 있었다.

“총 내려!”

마루의 말에 김 양이 억지로 총을 내렸다. 언제든지 다시 올릴 기세.

“김기순!”

“어?”

좋아.

아직 정신은 있어.

얼굴에 저건 뭐지?

다른 곳은 멀쩡한데 얼굴 그것도 양쪽 볼만 그랬다. 볼 전체도 아니고 손가락 하나 정도 되는 부위만. 스쿠버다이빙 장비로 가려지지 않은 곳이라. 가만히 기순을 바라보던 마루가 낮게 말했다.

“눈 감아!!!”

“왜?”

“손 내려! 움직이지 마!!!”

기순이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마루가 회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작은 소리, 살이 썰리는 소리와 함께 양쪽 볼살이 뭉클 떨어져 나갔다.

으어어억!

영문도 모르고 볼이 썰린 기순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에 손을 대려 하자, 마루가 그대로 기순의 다리를 걷어찼다. 공중에 붕 떠올라 거꾸로 떨어진 기순이 개구리처럼 쭉 뻗었다.

콱!

팔을 발로 밟은 마루가 기순의 손가락을 편 뒤, 손톱과 손가락 끝을 도려냈다. 손가락 10개를 순식간에 도려낸 뒤, 급속치료제로 상처를 치료했다. 그 무식한 모습을 본 간호사가 엉금엉금 기는 자세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둘 다 내려가. 다른 곳 만지지 말고. 팔이든 다리든 가려운 곳이 있으면 바로 말해.”

“······.”

“······.”

말하면? 도려내려고? 간호사가 김 양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김 양이 대답했다. 그러지 않겠니? 저거 보면 몰라?

“긁지 말고. 뭔가 오돌토돌하게 돋은 곳이 보여도 손대지 말고 말해. 알았지?”

살기 등등한 마루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 바로 꼼꼼하게 샤워하고.”

김 양과 간호사가 내려간 뒤. 마루는 잘라낸 볼살과 손끝을 양동이에 담았다. 볼에 붙어 있던 것이 그새 조금 더 자란 모습. 잘린 손톱 끄트머리에서도 조그맣게 뭔가 돋아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미친···.”

마루는 기순이 입고 있던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챙겨 밀봉한 뒤, 갑판을 닦기 시작했다. 세제를 뿌리고 닦고, 뿌리고 닦고를 반복할 때쯤. 기순이 정신을 차렸다.

“으- 씨- 머리야···.”

“괜찮냐?”

“어우- 물-”

생수를 건네주자 그냥 목구멍에 쏟아붓기 시작하는 기순이었다. 정신이 들었는지 화들짝 자기 볼을 어루만지는 기순.

“와. 씨발- 실화냐? 내 볼 썰어버린 거 실화냐?”

“닥치고. 어디 이상한 곳 없냐? 가렵거나 그런 데 있어?”

마루의 말에 기순이 파랗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 전혀. 가려운 곳 없어. 이상한 곳 없다.”

“진짜?”

“진짜라고. 괜찮다니까. 정말이야.”

볼을 어루만지던 기순이 자기 손가락을 쭉 펴, 손끝을 살피며 대답했다. 마루는 그런 기순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봤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말해. 알지? 괜히 숨기다가 좆되는 거. 미리미리 말하면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재수 없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최악은 무슨···. 이상하면 말할 테니까 그만해.”

손가락이 제대로 달렸는지 확인한 기순이 툴툴 말했다.

“말해봐 따개비가 어떻다고?”

“에이 존나. 지금 정신없는 사람한테 할 말이냐?”

마루가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혹시 뇌가 따개비에게 먹힌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내비치자 기순이 펄쩍 뛰었다.

“그런 거 아니니까 스톱. 그거 손잡이 놓고. 스톱! 아니라고!”

“뭐가 아닌데?”

“멀쩡하다니까!”

“증명해봐.”

마루의 말에 기순이 자기 가슴을 토닥토닥 쳤다.

“아오. 썅- 울면 되냐? 응? 울어서 증명하면 되는 거냐?”

“지랄하는 거 보니까 아직 뇌는 멀쩡한 거 같군.”

“아직은 무슨··· 재수 없게 자꾸 그러지 마라. 진짜 멀쩡하다니까.”

“그래? 정신 멀쩡하면 말해봐라. 그거 따개비 뭐냐?”

마루가 양동이를 보라고 눈짓했다. 기순이 양동이 안을 보고는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으미- 씨발! 이게 뭐야?”

“뭐긴 네 볼살이랑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돋아난 따개비지.”

담담한 마루의 말에 기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새끼 이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썰어낸 게 분명했다.

“오버하지 말고 따개비가 그런 거 맞냐?”

“뭐가 맞아? 아오. 내 볼 써니까 좋디?”

“장난하지 말고. 너 기절해 있는 동안 갑판 박박 닦고 생난리도 아니었으니까. 놓친 거 있으면 빨리 말해.”

“···내가 입었던 스쿠버다이빙 장비류는 전부 폐기해야 할 것 같다.”

따개비는 선박에도 달라붙어 자라는 놈이었다. 아마도 유생이 장비에 달라붙었다면 언제 돋아날지 몰랐다.

“그건 비닐에 밀봉해놨어.”

“갑판도 닦았다고 했지? 잘했다. 일단 나는 아래 내려가지 말고 여기에 있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 그리고?”

“손가락 끝을 자른 것도 잘했다. 오염된 볼을 긁어댔으니, 볼에 붙어 있던 게 손톱 밑에 옮아서 다른 쪽으로 계속 옮길 수도 있었으니까.”

기순의 이야기에 마루가 피식- 웃었다.

“뇌가 먹힌 건 아니네.”

“아이 씨- 아니라니까!”

찝찝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기순이, 한숨을 푹 쉬더니 양동이를 보며 말했다.

“양동이 이건 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해? 양동이째로 확 태워 버리지 뭘.”

일단 걸쩍지근하면 태워 버리면 된다. 마루는 간단했다.

“태우기는 뭘 때워, 그냥 여차하면 태우는 게 능사냐?”

“그럼 어쩌자고?”

“일단 가져가서 대책 연구하라고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일본 후쿠시마 인근 바다에서 붙은 거잖아 근데 따개비가 거기에만 있겠냐? 여기저기 퍼질 거 같은데.”

“··· 그걸 가져가서 넘겨주자고?”

마루가 기순을 미묘하게 쳐다봤다. 기순은 또 왜 뭐가 문젠데? 하는 눈빛으로 마주 노려봤다. 이러는 걸 보면 뇌가 먹힌 건 아닌데.

“왜? 뭐가 문제인데? 이거 피해자들 생기면 순식간에 퍼지지 않겠냐? 몰랐으면 모를까 알았으니 대비하도록 알려야지.”

기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쿄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영 꺼림칙한 게 사실이었다.

바퀴벌레라든지 쥐를 생각하면 더 그랬다. 그게 자연적으로 그렇게 변했을까? 사람 손을 탔든, 관리에 실패했든 그랬으니까 그 지랄이 난 게 아니었던가.

“볼살에 돋아난 따개비를 가져가면? 따개비가 사람 살에 붙어서 자란다는 표본이잖아.”

“······.”

조용히 마루가 하는 말을 듣는 기순.

“사람 손에 난 상처에 따개비가 파고 들어가 자란 사례가 있었다면서? 그나마 그건 며칠에 걸쳐서 벌어진 일이고. 네 얼굴 조진 건 고작 몇 시간 만에 생긴 일이잖아. 차원이 다르지.”

“······.”

“제약회사 비밀 실험실 들어가 보니까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더라. 근데 미국에 이걸 넘겨주자고?”

“······.”

대응책부터 생각할까? 아니면 생물무기로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할까? 마루는 샘플이랍시고 남겨두는 걸 반대했다.

“마루,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이 표본은 넘기는 게 맞다.”

“아니? 왜? 영화 같은 거 보면 샘플 남겼다가 좆 되잖아.”

“그건 영화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설령 무기화하는 새끼들이 생겨도 넘겨주는 게 맞아.”

“알아듣게 설명해봐. 아니면 태운다.”

마루는 강경했다. 제대로 태웠으면 바퀴벌레고, 검은 괴물이고 문제가 없었을 거다. 월드 그룹에서 소각하던 걸 끄고 지랄해서 검은 괴물과 바퀴가 딸려 오지 않았던가? 깨끗하게 태워 버렸으면 귀찮은 일 없었다. 근데 이 미친 따개비를 샘플로 주자고?

“독가스를 무기화하려면 뭐가 필요하냐? 해독제가 필요하겠지? 전염병을 무기화하려면 백신이든 치료제든 뭔가 있어야 무기화를 하는 거다. 그러니까 따개비를 무기로 쓰려면 따개비를 조질 뭔가를 만든 뒤에 쓰겠지. 다시 말해 무기화를 하든 말든 조질 대비책을 만든다는 소리야.”

“······”

“그리고 우리가 넘겨주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누가 넘겨주든 미국에서 가져가든 할 거다. 그렇게 될 바에야 우리가 주는 게 낫지.”

“······”

오히려 무기화하겠다고 빠른 연구가 진행되면 더 좋지 않냐? 그러니까 기순은 샘플을 캐나다와 미국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이런 걸 가져왔다고 하면서 일본에서 새로 판 신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거다.”

“그러니까 새로 판 신분을 사용해 이걸 넘겨주면서, 공식적으로 신분을 인정받고 영주권이든 시민권이든 달라고 하자는 거냐?”

“그래. 캐나다든 미국이든 얼씨구나 줄 거다.”

미친 따개비를 넘겨주면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요구한다? 그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영 찝찝하긴 했지만, 넘겨주면 일단 책임은 없는 거잖아.

“그렇다면야. 뭐.”

“그럼 너도 동의했다? 동의한 거다?”

“그래. 신분 인정받고 시민권까지 갈 수 있다면.”

“쌉가능하지.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샘플 담게 보관함이랑 유리병 좀 챙겨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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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아아악

카타마란이 파도를 타고 넘었다. 30m가 넘는 선체가 공중으로 살짝 떠올랐다. 바람에 팽팽하게 당겨진 돛이 위태롭게 보였다. 워터 제트 엔진까지 돌려가며 최고속도 이상으로 내달리는 카타마란.

철퍽!!!

“기순아! 잠깐, 이거 이렇게 달려도 괜찮은 거냐?”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은 마루였지만, 1시간 넘게 최고속도 따윈 집어치운 듯이 날아다니는 배 위에서 버티기란 좀 괴로웠다.

“그럼. 이 정도로는 까딱없다. 이렇게 달려서 물의 저항 왕창 받고, 파도에 때려 박고 해야 바닥에 남아있을지 모를 따개비 유생 같은 게 떨어져 나가.”

“······.”

“아니, 진짜라니까. 돌고래고 고래고 왜 점프해서 바다에 처박고 그러는데? 걔들 그러는 게 등이고 배고 달라붙은 따개비 떼어내려고 그러는 거다.”

“후- 언제까지 이럴 건데? 나는 그렇다 치고 김 양이랑 간호사가 죽겠다.”

멀미를 견디다 못한 김 양과 간호사가 물먹은 빨래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안 죽어, 안 죽는다니까. 이왕 달린 김에 좀 더 달려야지. 어설프게 그러는 것보다 한 번에 확실히 털어 버리는 게 좋지 않겠냐?”

기순이 넉살 좋게 말했다. 뭔가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표정이었다.

“이대로 곧장 캐나다 벤쿠버에 들렸다가, 바로 아래로 내려가서 시에틀로 간다.”

“알았어. 적당히 했으면 속도 좀 줄여라. 김 양이 너 노려본다니까.”

기순이 슬쩍 뒤를 보자, 파김치 김 양이 ‘종간나 새끼. 나 죽어. 나 죽는다고!’하는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눈에 힘 들어간 것 보소.

“한 시간만 더 달리자. 크-”

어딜 째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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