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14화 (114/280)

러스트 [RUST]-114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해양생물학 연구실

마이클 힉스 교수가 현미경에서 눈을 뗐다. 현미경으로 촬영한 영상을 확대해 확인한 교수의 표정이 심각했다.

화면 속에 확대된 생명체의 외형은 따개비 유생과 매우 흡사했지만, 자세히 보면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다. 따개비 발판 부분에 미세하게 자라있는 뿌리 같은 조직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것은 샘플 따개비 유생이 단순히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일반적인 따개비 유생은 단백질에 인산이 공유결합을 한 복합단백질인 인단백질 성분의 접착 물질을 사용해 표면에 달라붙는다.

그저 단순하게 달라붙는 것이 아니라, 접착력을 높이기 위한 행동을 했다. 부착할 표면의 물을 제거하는 기름방울을 생성해 붙을 곳 표면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 따개비는 다양한 연구주제로 활용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활용된 곳은 생체접착제 분야였다. 따개비의 인단백질 성분을 모방한 생체접착제로 만든 지혈제가 그것이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걸 누가 가져왔다고?”

“해안 경비대에서 보내왔습니다.”

“샘플이 이것뿐인가?”

“그렇습니다.”

“샘플이 너무 부족해. 살아있는 샘플이 있다면. 아니 양이라도 넉넉하게 있다면. DNA를 추출해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해안 경비대에 협조를 요청할까요?”

마이클 힉스 교수가 가만히 계산했다. 단순히 교수 개인 명의로 도와달라고 하면 가능할까? 어려웠다. 그렇다고 이런 샘플을 공개하는 건 꺼려졌다. 제대로 연구해 발표하면 학계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의 생명체였다.

일단 이 샘플을 보낸 자와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테니, 이곳으로 이렇게 약간의 샘플만 보냈을 것이다. 돈을 요구할까? 얼마를 줘야 하지? 일단 5만 불 정도면 되려나? 최대 10만 불까지는 생각해야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샘플을 덩어리로 보냈을 것이다. 분명히 이 변종 따개비의 가치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사람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이곳저곳 더 보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시간 싸움이었다. 먼저 잡는 게 임자인 상황.

다행인 것은 해안 경비대가 가져왔다는 것. 밴쿠버 인근에 있다는 소리였다.

“이 샘플을 준 사람과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 봐.”

“알겠습니다. 시간은 언제로 할까요?”

“최대한 빨리. 샘플이 추가로 더 있는지 확인하고.”

“예. 바로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해양생물학과 마이클 힉스 교수님. 미국 국토안보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 국토안보국? 거기서 왜?”

[안보와 관련된 일이라 직접 통화하겠다고 하는데요?]

“그래? 지금 휴대폰 받을 테니까. 그쪽으로 연락해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미국 국토안보부라니.’

마이클 교수가 휴대폰을 켜자마자 전화가 들어왔다.

“해양생물학과 마이클 힉스 교수입니다.”

[미국 국토안보부 제레미 로이언 과장입니다. 안보와 관련된 상황이니, 양해 바랍니다. 해안 경비대에서 받으신 샘플은 미국과 캐나다 안보 협약에 따라, 미국 국토안보부에 인계 대상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국토안보국 직원에게 샘플을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요?”

마이클 힉스 교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샘플을 통째로 넘기라고? 안보와 관계있다고? 샘플을 보낸 사람이 미국에도 샘플을 넘겼었구나. 미국놈들은 이걸 보자마자, 야전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지혈제를 만들 수 있다고 봤고.

[안보 협약에 따라, 해당 샘플은 미국과 캐나다의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전량 회수 대상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양해? 빌어먹을 미국 놈들. 돈이 된다 싶으니까 이렇게 채가나?

마이클 힉스 교수의 연구팀은 현재 임플란트 수술에 사용할 수 있는 생체접착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샘플이 가진 특이성이 떠올랐다.

뿌리처럼 돋아난 것이 접착력뿐 아니라 지지력까지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걸 분석하고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임플란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 분명했다.

임플란트 시장이 바뀌는 것이었다. 치아를 뽑은 자리에 변종 따개비 유생에서 얻은 생체접착제를 부리고 의치를 붙인다. 이후 접착제에서 뿌리처럼 돋아나 의치를 단단하게 고정한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 것인가? 이걸 날로 먹겠다고?

“양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안보라니요. 연구가 필요하지만, 의약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주제가 될 연구 샘플을 안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져간다니, 이건 폭거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만,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라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해당 샘플은 생물학 테러 위험 등급을 받았으니, 현명한 선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뭐요? 생물학 테러? 지금 죽은 따개비 유생 샘플이 생물학 테러 위험 등급이라고 말한 거요? 여긴 캐나다요. 미국이 아니라! 미국과 아무리 안보 협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이 용납받을 수 있을 것 같소.”

마이클 박사와 제레미 과장이 논쟁을 벌이는 동안, 박사의 연구실에는 국토안보국 요원들이 들이닥쳐 샘플을 회수했다.

“빌어먹을 놈들 안보? 개나 먹으라고 해!”

마이클 박사는 자동차를 타고 해안 경비대가 있는 벤쿠버 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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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전량 회수했습니다.]

“수고했네. 스탠포드 해양생물학 연구소는 어떻게 됐나?”

[그쪽은 샘플을 회수하는 중입니다. 샘플 가운데 일부가 제약회사와 벤처 기업으로 흘러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샘플을 받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그렇게 퍼졌다고? 샘플의 양이 그렇게 많았나?”

[샘플의 양은 적었지만, 연구소에서 연구비를 확충하기 위해 일부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런 쪽으로는 정말 빠르군. 일단 샘플 쪽은 정리됐으니, 버지니아에 연락해서 손 떼라고 하게. 그쪽에서 들쑤시면 되는 일도 안 되니까 말이야.”

[요즘 버지니아도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하호호 분위기가 좋은가?”

[······.]

“이번에도 중국으로 정보 넘어가는 일이 생기면, 관련자들 전부 갈린다고 생각하고 보안 제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빨리 마무리하고 와. 잽이 원하는 건 들어주되, 캐나다 시민권을 줄 수 없다고 해, 미국 시민권과 안전 가옥 그리고 돈이야 줄 수 있지만, 캐나다 시민권은 절차가 복잡해져.”

[그렇게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레미 로이언 과장은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었다. 손끝에 만져지는 서류의 감촉. 매끈한 종이 위에 뿌려진 검은 잉크가 그린 사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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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카타마란이 벤쿠버 항에 정박해 있었다. 다른 호화 요트들과 함께 있음에도 전혀 꿇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거친 상처 자국이 흐릿하게 보였다.

“빌어먹을 국토안보부. 어째서 그놈들이 알아챈 거지?”

“잽이 그쪽에 직접 찔렀을 가능성이 큽니다.”

“젠장. 눈치는 빨라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애들 뒤로 물려. 이 건은 우리가 가져가야 한다. 국토안보부 애들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챙긴다.”

“잽이 요구한 거 준비합니까?”

“일본이 초토화됐으니, 여기서 살고 싶겠지. 근데 캐나다 시민권은 왜 요구한 걸까?”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국토안보부 애들보다야 우리 쪽이 캐나다 시민권 만들어 주기는 유리하니까.”

해외 공작에 필요한 시민권 따위야 금방 만들 수 있는 버지니아였다. 특히 캐나다 멕시코 같은 인접 국가는 미리 파놓은 신분이 있어 훨씬 쉬웠다.

“쯧- 좋게. 싸게 넘어가나 했더니, 엄한 놈이 포크를 들이밀 줄이야.”

“그럼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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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기를 든 기순이 주먹을 쥐곤 허공에 어퍼컷을 했다.

“예스. 이-예에스!!! 이게 야스지!”

소리친 기순이 통신기를 팽개치곤 춤을 췄다. 대학교, 버지니아, 국토안보부 사이에서 했던 줄다리기가 좋은 결과를 냈다.

당장 캐나다 해안 경비대에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해양생물학 교수가 만나자고 했고, 미국 국토안보부에서는 조건부 제안으로 협상이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까다로운 버지니아가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하면서 결정됐다. 신분 관련된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라는 연락을 받고 기순이 벌떡 일어난 것이다.

“됐어! 존나 씨발! 됐스!”

“잘됐냐? 성공했어?”

“그럼 이보다 더 좋게 될 수 없다. 이제 숨 좀 돌렸다.”

“확실한 거냐? 버지니아는 좀 그렇잖아. 샘플 넘긴 뒤, 마티즈 각은 아닌 거지?”

마루의 불길한 말에 기순이 ‘왜 그렇게 부정 타는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김 양이랑 간호사 서류도 만들어야 하니까 둘 다 오라고 해. 네 거랑 내건 내가 알아서 한다?”

“그래. 진짜 괜찮은 거지?”

“아오. 제발 좀. 국토안보부까지 엮었으니까 우리 뒈지면 국토안보부에서 그거 트집 잡아서 냉큼 하려고 할걸. 그리고 우리가 그냥 뒈지겠냐? 캐나다 벤쿠버 항에서 깽판 치면 버지니아도 좆되거든. 그 정도도 모를 버지니아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셔. 김 양이랑 간호사나 서류 챙겨 보내라고 해. 이왕 끝내는 거 오늘 바로 끝내 버리게.”

“어야. 수고.”

카타마란 3층 구석에 은신한 김 양이 주변을 살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멀찍이서 알짱대는 모습이 적외선 스코프에 비쳤다. 이걸 어떻게 하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올지 다른 곳으로 갈지 확실하지 않았다.

‘올 거면 빨리 오라.’

그렇게 방아쇠에 살며시 손가락을 얹고 집중하고 있는데 마루가 위로 쑥 올라왔다. 깜짝 놀라 방아쇠를 당길뻔한 김 양이 마루에게 항의했다.

“깜짝야. 기척 좀 내라규. 구.”

“규? 그건 또 무슨 말투냐?”

“말꼬리 잡기 아님. 제발 자제 좀. 불쑥 튀어나오고 그러지 않으면 좋겠음.”

“말투야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은데 그거 컨셉이냐?”

마루가 실실 웃자, 광학 은신 로브 속 김 양이 부르르 떨었다.

“조용히 하삼. 저쪽에 검은 옷 입은 애들이 있음.”

“뭐? 확실해? 적이냐?”

“아직 모르겠음. 아- 뒤로 빠진다?”

김 양이 스코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 있던 애들 전부 사라졌음.”

“와 진짜 여차하면 피바다 각이었네.”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말투로 말하는 마루였다. 김 양이 속으로 코웃음 쳤다. 네놈이 칼질하면 당연히 피바다 각이겠지.

“잠깐. 4시 방향 차량 접근 중.”

“······.”

“캐나다 해안 경비대 차량과 일반 세단 한 대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음.”

“해안 경비대 차량이? 여길 왜?”

“해안 경비대 차량이 확실함.”

“일단 내가 볼 테니까, 내려가 봐. 너랑 간호사랑 서류 작성해서 기순이 이메일로 보내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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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경비대원 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저 배에 불법 밀수 생물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다른 대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배면 박사님 연구실로 샘플 보낸 배 아닙니까? 근데 무슨 불법 밀수 생물이란 말입니까?”

“크- 크흠. 그 샘플이 희귀종의 샘플이었다는 말이네. 그렇다면 그게 불법 아닌가?”

미국 국토안보부가 손을 뻗기 전, 일단 압수하게 해야 했다. 공식적으로 압수한 물품을 인계받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이야기가 오가야 했고. 그렇게 되면 연구 목적으로 샘플을 챙길 수 있을 확률이 올라갔다.

‘그냥 뺏기지 않겠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루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며 활짝 웃었다. 해안 경비대가 왔다는 말에 기순이 조종실에서 나와 마루를 보곤 고개를 저었다. 기순의 신호를 본 마루가 허리춤에서 손을 뗐다.

“여기 불법 밀수 생물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불법 밀수 생물이요?”

마루의 질문을 중간에 자르고 기순이 말했다.

“이 배에 있는 모든 것은 미국 정부 기관 산하의 물품입니다. 그건 알고 오셨나요?”

“예? 미국 정부 기관요?”

갑자기 버지니아가 언급되자 해안 경비대원들이 마이클 박사를 바라봤다.

“밀수꾼들이 미국 정보 기관 핑계를 대는 거잖소. 일단 압수하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것 아니오. 일단 압수합시다.”

마이클 박사가 앞장서 배에 올랐다. 마루가 막으려고 하는 것을 기순이 말렸다. 괜히 폭력 사태로 시끄러워지면 그게 더 골지 아팠다.

“거기. 경비대원 분. 이쪽으로 와서 전화 좀 받아 봐요.”

기순은 재빨리 버지니아 담당자에게 연락해 전화를 연결했다. 그런 와중에 조종실로 밀고 들어온 박사의 눈에 들어온 금속 보관함 여러 개. 바로 알 수 있었다. 실험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보관함이었으니까.

박사의 손이 보관함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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