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17
보관함의 숫자는 총 6개, 버니지아와 국토안보부가 각각 3개씩 나눠 가졌고 각 연구소로 분배됐다. 그 가운데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의 대응은 신속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가동됐고 즉시 각 분야 전문가와 장관들이 모여 비상대책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험한 자료들과 CCTV 영상이 회의에서 공개됐다.
[전염력과 성장 속도를 볼 때, 1급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변 지역을 전부 폐쇄해야 합니다.]
[1급 비상사태요? 지나치게 과대 해석하지 말고 사실만 살펴봅시다. 저게 바이러스입니까? 세균이에요? 그저 따개비 유생입니다.]
[감염자에게 발생한 제일 큰 증상이 뭡니까? 고작 가려움증입니다. 피나도록 긁는 게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큰 증세란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끔찍할지 모르겠지만, 본질은 따개비일 뿐입니다. 바다거북, 고래, 배에 붙은 따개비요. 그럼 고래가 따개비 때문에 죽습니까? 바다거북이 죽나요? 징그럽고 전염이 잘 될 뿐이지 본질은 변한 게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변종 따개비는 단순한 그런 따개비가 아닙니다. 감염된 사람이 긁을 때 표정을 보셨습니까? 피가 나도록 긁고 자기 손가락을 자르면서도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요. 그게 정상이라고 보십니까?]
[맞습니다. 단순한 따개비 사태로 보면 안 됩니다. 숙주의 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감염병 관계자들은 아웃브레이크 사태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건을 보는 관점도, 대응방법도 달랐다.
[일본 후쿠시마 연안에 저런 것이 번식하고 있다면 시간문제일 뿐, 결국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동의합니다. 현재 실험실이 오염된 것은 전염 기작을 몰랐기 때문이지, 전염 방식을 파악한 이상 통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 오염 지역과 오염 예상 지역을 소거하고, 일본 동부 후쿠시마 연안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절대적인 위협은 아니라는 것. 수인성 전염병처럼 물을 통해 전파되거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접촉하는 방식으로 전염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
변종 따개비 유생을 죽이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했다. 일반적인 따개비에 비해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험 결과 화학제재로 죽이는 게 가능했다. 살충제라던가, 염소계 살균제라든가, 1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몇 초만 가열해도 따개비 유생은 금방 죽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라 성체가 된 것은 조금 더 견뎠지만, 그래도 열에 약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니 호들갑 떨 필요 없다. 전문가들과 장관들이 참여한 긴급회의의 결론은 그렇게 났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호수 주변은 네이팜으로 불태우고, 호수를 염소로 소독하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오염된 연구소는 소각시켜 버리고 오염 가능성이 큰 지역은 일단 통제구역으로 설정한 뒤, 생화학 대응 부대를 통해 정리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네.]
변종 따개비 유출과 동시에 다른 실험실에서도 보안 등급이 최고등급으로 올라갔고, 모든 실험에 앞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전환, 순식간에 따개비 유생을 죽이는 다양한 방법이 고안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염성 바이러스나 항생제 내성 세균보다 간단하게 죽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왔다. 겉껍질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따개비 유생은 생각보다 유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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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기순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김 양과 간호사가 보이지 않았다.
“또 우리 둘만 먹는다고 삐지는 거 아니야?”
기순이 달걀노른자를 토스트에 바르며 말했다.
“간호사랑 맛집에 간다고 하더라.”
“맛집? 야. 미국에 와서도 맛집 찾아다니고 그러는 거야? 대단하다.”
“몰랐냐? 걔 원래 먹는 거에 진심인 애다.”
“간호사는 덤인가?”
“뭐 간호사가 달라붙긴 했지.”
껌처럼 달라붙은 간호사 때문에 김 양은 지친 표정이었다. 정말 싫었다면 때려서라도 떼었을 텐데, 귀찮아하면서도 챙기는 걸 보면 마냥 싫기만 한 건 아니었지 싶었다.
“그러고 보니 간호학과 4년제로 뽑던가? 미국에서도 일본 간호사 학위 인정해주고?”
기순의 입이 풀렸는지 슬슬 투머치가 발동될 조짐이 보였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일본어로 대화하는 마루와 기순이었다.
“야 저거. 그거지?”
기순이 TV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뉴스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지역에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마을 2곳을 덮쳐 마을 주민들이 대피하고··· 주 방위군이 출동해 치안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새로운 진화제에 대한 사용 허가가 떨어진 가운데··· 환경단체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화학약품으로 진화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새로운 진화제가 인체에 영향이 있다지요?]
[그렇습니다. 아주 미약한 양이라도 직접 닿으면 가려움증이 생긴다고 합니다.]
[분말 형태의 진화제지만, 수용성이기 때문에 물에 닿으면 녹아 버립니다. 진화제가 녹은 물이나 미세한 분말에 닿으면 간지럼을 타고 손으로 긁으면 긁은 부위에 감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려움증이 생기면 손을 대지 마시고··· 인근 지역 주민들 가운데 가려움증이 생긴 사람은 지체하지 말고 911에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강한 바람에 미세한 분말 형태의 진화제가 날릴 수 있어, 화재 인근 지역 주민들은 외출할 때 장갑을 끼고 겉에는 비옷을 입는 것이 좋습니다.]
[···주 정부는 산불로 피해 본 주민들을 돕기 위해 긴급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진화제로 인해 가려움증을 얻은 주민이··· 확인 뒤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뉴스를 보던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미국. 자본주의적으로 해결 보네.”
“뭔 소리?”
“진화제라고 하지만 진짜 진화제를 뿌렸겠냐? 혹시라도 감염된 사람이 나오면 자발적으로 스스로 신고하게 판을 짠 거잖아. 진화제 부작용으로 가려움증 생기면 말하라고 돈 준다고.”
변종 따개비 유생에 옮으면 가려웠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가려움증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보조금에 혹해 자발적으로 신고하게 한 것.
“돈 준다면 못 참지.”
“근데 하는 짓은 꼭 너 같다. 일단 태우고 보는 거.”
“안 그래도 찝찝했다니까. 샘플이고 뭐고 그냥 다 태워 버렸어야 하는데.”
마루의 말에 기순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항변했다.
“아니. 그때 태웠어도 금방 지랄 났다니까. 우리가 샘플이라도 가져다줘서 연구하고 대비하고 지금처럼 방법 찾고 그런 거지. 그냥 넋 놓고 있다가 사방에서 따개비 사태 터졌어 봐. LA 항구에 변종 따개비 넘치고, 순식간에 미국 서해안에 퍼졌다고 생각해 보라고. 지금 미리 예방주사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그래. 그래. 지나가는 곳마다 폐허를 만드는 남자.”
“내가 뭘 또 어쨌다고. 솔직히 지나가는 곳마다 폐허 만들고 불바다 만든 사람은 너 아니냐? 너.”
마루와 기순이 서로서로 파괴왕이라며 디스했다. 시시덕거리며 뉴스 속보를 품평하던 둘이 입맛을 다셨다.
“일본도 미국처럼 초기에 제대로 진화했으면 그 꼴이 나지는 않았을 텐데.”
마루와 기순이 일본을 떠올렸다.
“대지진에 쓰나미까지 연달아 처맞고 화산까지 터졌으니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최소한 연구실은 처리했어야지. 바퀴랑 쥐를 생각해 봐라, 그 검은 괴물은 또 뭐고. 미친 거야. 그걸 그냥 둘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용서가 안 돼.”
마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왕에 망한 거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 자료 넘기고 한몫 잡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게 일본 부흥의 발판이 되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그거 바퀴가 한국이나 중국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해 봐라. 쥐도 그렇고. 진짜 핵이라도 떨구든지 네이팜으로 통째로 태워버려야 해.”
마루의 말에 기순이 검지를 세워 입술에 댔다. 쉿-하는 모양. ‘금방 흥분해서는.’ 기순이 마루를 보며 눈짓했다. [여기까지만] 이라고 적은 넵킨을 본 마루가 한 소리 했다.
“에이- 싹 태워야 한다니까.”
쩝- 입맛을 다시고는 맥주를 들이켜는 마루. 꿀꺽꿀꺽 시원하게 넘기자 갑갑한 속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뉴스를 보니까 변종 따개비는 처리될 것 같은데, 그래도 동부로 가려고?”
“어. 찝찝한 건 싫다. 처리했든 어쨌든 그냥 동부로 가서 짐 풀고 근처에서 좀 쉬었다가 캐나다 여행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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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찝찝한데?]
[이번에 유출된 거 처리했다고 하지만 유출 사고가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그리고 바퀴도 그렇고 쥐도 그렇고 변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변했던 걸 보면, 따개비도 변하지 않겠냐? 애초에 생식기가 촉수처럼 움직이는 것부터 찝찝했어.]
기순과 마루의 대화가 스피커 폰으로 흘러나왔다. 동시통역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바로 해석해 화면에 올렸다.
“역시 일본에 문제가 터졌군요.”
“변종 따개비뿐만 아니라 변이된 바퀴벌레와 변이된 쥐가 있다는 사실을 왜 숨겼을까요?”
“숨겼다기보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겠죠. 감춘 정보를 카드로 쓰는 건 당연하지요.”
“흥. 당연하긴 뭐가 당연합니까? 미국 시민이 됐으면서 일본 현지 정보를 숨겼다는 건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어쨌든, 버나드 그린이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 그의 판단이 국익에 부합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말대로 변종 따개비를 전부 불태웠다고 가정해 보죠. 아무런 정보 없는 상황에서 변종 따개비가 서부 해안을 오염시켰다면 지금처럼 작은 손실로 처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버나드 그린과 그 일행들 모두 집중 감시 대상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그들이 타고 온 카타마란에서 하역한 물품을 보면 다양한 총화기에 폭발물까지, 전쟁이라도 할 법한 무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확실히 위험인물로 보고 감시하는 것이 맞습니다.”
“반대합니다. 버나드 그린이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이상. 그 일행들을 집중 감시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은 자원 낭비입니다.”
“저도 집중 감시는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는 현실을 걸 고려하면 중무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무정부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약탈, 살인, 강도가 횡횡했을 수 있었다. 거기에 바퀴벌레에 거대 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까지 출몰한 상황이라면 확실히 중무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 안전한 미국 시민이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싣고 온 무기를 인정해 준 건 명백히 버지니아에서 잘못 판단한 겁니다.”
“그들이 싣고 온 짐을 인정하겠다고 했으니까 서로 편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변종 따개비에 대한 정보를 줬고, 감염된 교수에 대해 미리 경고했었던 일을 생각해 보세요.”
“······.”
“버지니아가 잘못 판단했다고요? 그들의 짐을 전부 하역하도록 해줬지만, 그건 암묵적인 허가였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허가가 아닌, 암묵적인 허가였다. FBI나 인근 경찰에 찌르면 언제든 엮을 수 있다는 소리. 그렇게 약점을 잡아두는 방식도 버지니아가 자주 애용하는 방식이었다.
“버나드 그린과 일행을 집중 감시 대상에 올리는 건 일단 보류합니다. 당장 인적자원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관리는 버지니아에서 하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변종 따개비 처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초기 대응을 신속하게 해서 큰 피해 없이 정리되고 있습니다.”
“호수를 완전히 폐쇄했고 고농도 염소를 풀어 살균 처리했습니다. 호수 주변과 인근 마을 2곳도 태워 버렸습니다.”
“연구소와 숙소를 비롯해 오염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을 산불로 위장해 태워 버렸기 때문에 추가 오염 상황은 없습니다.”
“가려움증으로 신고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전부 격리 조치하고 집과 움직인 동선을 파악해서 오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이제까지 신고된 것은 전부 보상금을 노린 허위 신고였습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들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렇다면 중성자탄 발사 대기는 해제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변종 따개비가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경우, 중성자탄으로 해당 지역을 날려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초기에 진압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방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