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20
트레일러트럭 운전석에 앉은 직원이 핸즈프리에 대고 외쳤다.
“미친놈입니다. 아니. 미친놈 년들입니다.”
[······.]
전과가 좀 있는 트레일러트럭 운전사를 섭외했다. 마루 일행이 어떤 성향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자기가 지켜보고 있었고, 주변에도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기에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말릴 생각이었다.
트럭 운전사에게 사고를 쳐도 적당히만 하면 뒤를 봐준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마음껏 욕망을 분출하려고 했다. 근데 하필 그가 찍은 여자가 권총에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좀 어딘가 나사 하나 빠져 보이는 표정으로 권총을 쓰다듬는 모습. 정상인가?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트레일러트럭에 싣고 있는 화물중 최소한 절반이 무기라고 했으니까.
근데 그놈은 뭔가? 사람 손목을 과자처럼 바스러뜨리는 건.
‘이거 정당방위죠?’
‘······.’
‘근데 시끄럽네. 좀 조용히 시키겠습니다?’
순간 당황한 직원이 대답하지 못하자, 시끄러워 조용히 시킨다며 트럭 운전사의 아래턱을 뽑아버렸다.
우어우어아어
비명을 지르다 못해, 똥오줌을 지리며 자지러지는 트럭 운전사를 흐릿한 눈으로 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직원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총격전을 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 들진 않았다. 이건 뭐 그냥. 이질적이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맨손으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런 걸 집중 감시 대상에서 제외했다고요? 무조건 감시해야 합니다. 아니, 당장 어디에 처넣어서라도 격리해야 합니다.”
직원이 핏대를 세우며 외쳤지만, 공허한 반응이 돌아왔다.
[먼저 위협을 가했다고 하지 않았나? 영상을 보면 먼저 위협을 가한 건 트럭 운전사야.]
“그런 연놈이었다면 미리 이야기를 해주셨어야지요. 대체 뭡니까? 그것들.”
[알고 있잖나. 일본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이라는 거.]
“제가 점쟁이입니까? 관상쟁이였나요? 일본에서 탈출했다는 거 하나로 그런 폭탄인 줄 누가 알겠습니까?”
[자네 그거 진심인가? 대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로 일본은 사실상 아포칼립스 상태인 걸 몰랐나? 그런 곳에서 상처 하나 없이 탈출한 자들인데 평범한 일반인으로 봤단 말인가?]
“평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으니 어떤 성향인지 확인하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뭐가 그렇게 문제인가?]
직원은 진정했다. 마루의 그 비상식적인 대응 때문에 너무 흥분했었다. 팔을 바스러뜨리고 비명이 시끄럽다고 턱을 뽑아버리는 손속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총을 꺼내 쐈으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협하는 트럭 운전사를 쏴버렸으면. ‘저 새끼 끓는 점 낮은 병신이네.’ 하고 그걸 약점 삼아 쥐고 흔들었을 것이다.
근데 이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트럭 운전사가 여자 일행을 겁박하는 것으로 보였고. 누가 봐도 덩치가 큰 트럭 운전사가 마루를 먼저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정당방위가 성립했고 국토안보부에서도 뒤를 봐주고 있었다.
‘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텅 빈 눈동자로 자신을 보며 이야기하는 마루의 얼굴이 떠올랐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지겹도록 많이 봤었다. 약과 알코올에 찌들어 흰자가 노랗고 파랗고 실핏줄 터져서 빨갛고 별의별 색으로 개지랄 떠는 눈알도 봤었다.
놈의 눈동자는 달랐다. 뭔가 흐릿한 느낌. 그 눈과 마주치자 뱀 앞에 놓인 쥐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하겠지. 누구는 위험하지 않던가? 그래도 성향은 알지 않았나? 그들은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자네 말대로라면 충분히 맨손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데도 죽이지 않았다는 거야. 자제력이 있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응한다는 거지.]
‘이성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시끄럽다고 턱뼈를 뽑는 겁니까?’ 순간 울컥해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꿀꺽 삼킨 직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감시 등급을 높이는 건 어려워. 인력이 부족해. 일본과 한국, 중국으로 파견 나가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사실상 약쟁이들에게 붙여둔 인력이 40%는 날아갈 판이야.]
“······.”
[거기에 국토안보부와 끈이 닿아있으니 어지간한 작업으로는 엮기 힘들어, 중요한 것은 그들이 스파이가 아닌가 하는 부분인데···. 하는 짓으로 보면 그럴 리는 없겠군.]
“그렇습니다.”
스파이가 그렇게 대놓고 미친 짓을 할 리 없었다. 오히려 여자들을 겁박하고 물리력을 행사할 때,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다거나 도망쳤으면 더 의심스러웠다. 지옥으로 변한 일본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탈출해 놓고 처맞고 도망치기만 한다?
[위치추적과 전화, 문자, 메일 정도만 확인하도록 하게.]
“예.”
[···좋아. 그럼 수고하게.]
직원은 어둑해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시간이 좀 이르지만, 쉬고 싶었다.
“다음 휴게소에서 하루 묵겠습니다.”
[칙- 알겠음.]
여자의 목소리가 짧게 끊겼다.
======
======
간호사는 바싹 졸아 있었다.
처음 자기를 구해줬을 때가 떠올랐다. 빠바박 하더니 두 사람을 순식간에 실신시켜 버렸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트럭 운전사의 턱뼈를 생으로 뽑는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 무서운 사람이었다.
김 양도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총 들고 다니면서 뭔가 쏠 게 없나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면 약간 그러기는 했다.
술도 좀 먹었겠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다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술주정 부렸다. 그럼 적당히 술주정도 받아주고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도 하고 그런 게 다 사람들 친해지고 그런 과정 아닌가? 그런데 김 양은 이상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따귀를 때렸다.
‘에? 나니?’
‘일단 맞음.’
‘왜 때문에요?’
‘맞음.’
‘아앗- 왜?’
‘맞으면 앎.’
‘······.’
‘모름? 왜 맞는지?’
‘계속 처맞다 보면 앎.’
손바닥으로 따귀를 맞다가 주먹으로 두들겨 맞았다. 복날에 개 패듯 맞아서 경찰이 출동했을 정도였다. 많이 맞은 것치고는 뼈가 상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어쩌면 뼈가 상하지 않게 때린 것일 수도. 그렇게 이유도 모르게 맞았다. 때린 김 양을 보면 막 화가 나고 싫어야 하는데 또 그렇지 않았다.
마루를 보면 무서운데 묘하게 안정감이 생겼고, 다짜고짜 폭력 김 양을 봐도 싫지 않았다.
때리지는 않았지만, 태우기, 정신적으로 괴롭힘당했던 것보다 훨씬 편했다. 뭔가 바다가 미쳐 날뛰고, 뭔가가 바닷속에서 배회하고 야쿠자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그랬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왜 우리랑 같이 다니려고 하는데?’
얼떨결에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됐다. 그 사람 말대로 월급 3~4개월 치 달라고 해서 혼자 살면 됐다. 영어를 못하기는 하지만, 대학교 어학코스에 등록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보면 됐다. 근데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자 불안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같이 가겠다는 사람 굳이 쫓아내지 않을 거고, 나가서 따로 가겠다는 사람 잡지 않을 테니까.’
왜지? 폭력적이고 거친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게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던가? 간호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뭔가 중년 아재가 운전하는 것처럼 설렁설렁 운전하고 있는 김 양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 위에 턱뼈가 뽑힌 트럭 운전사가 911에 실려 가는 모습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근접 촬영하던 김 양의 모습이 겹쳐졌다. 근데도 그런 모습이 싫지 않았다.
‘내가 미쳤나?’
간호사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치이익- 다음 휴게소에서 하루 묵겠습니다.]
“알겠음.”
김 양이 대답하며 옆을 슬쩍 봤다. 자길 보며 한숨을 폭 내쉬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날 보고 한숨?”
“에?”
김 양이 조그만 주먹을 꼭 쥐어 들었다.
“그만해라. 때리는데 맛 들였냐?”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마루의 목소리. 급 착해진 김 양이 언제 주먹을 쥐었냐는 듯 얌전히 변속기에 손을 올렸다.
“근데 지금 이딴 데서 하루 자고 간다고?”
마루의 말에 두 여자가 밖을 살폈다. 확실히 그랬다.
======
======
B급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곳이 나온다. 허허벌판 황무지에 딸랑 하나 있는 휴게소.
여관과 식당과 잡화점을 한곳에 때려 넣은 낡은 휴게소. 모래 섞인 바람이 불면 공처럼 둥글게 뭉쳐 굴러가는 무엇이 지나가고 흑브라더라든지 피스패닉이라든지 앞뒤 없는 백형이라는지 또는 그 셋이 한 번에 등장한다든지 하는 그런 외딴 휴게소 말이다.
트레일러트럭에서 내린 직원이 말했다.
“여길 그냥 지나가면 200마일은 더 가야 휴게소가 나오는데, 큼- 제가 좀 많이 피곤해서요.”
마루가 그래서? 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시다시피 여기가 좀 외딴곳이기도 하고 3~4시간 거리에 유흥도시가 있어서 약간 거친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곳입니다.”
“······.”
어쩌라고? 직원을 쳐다보자 직원이 부연 설명했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식사하시고 난 후, 되도록 객실에서 머무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뭐. 마루는 느긋했다.
“각 방?”
김 양이 냉큼 질문했다.
“아직 방을 잡지 않았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여자분들은 함께 방을 쓰셨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김 양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전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그렇게 김 양과 간호사가 방을 함께 쓰고 마루와 직원은 각기 잡기로 하고 휴게소 식당으로 향했다.
끼이익
기름칠한 지 오래된 경첩이 낡은 신음을 흘렸다.
양쪽으로 나뉘어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출입구로 모였다. 한쪽 끝에는 흑브라더스들이, 다른 한쪽에는 피스패닉으로 보이는 자들이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직원이 들어가다 말고 멈췄다.
“젠장.”
하필 이런 때, 이런 곳이라니···.
드물지만 그런 경우가 있었다. 갱단이나 카르텔이 중립지역에서 회담하는 경우. 특히 경찰이 출동한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외딴 지역에서 회합을 가질 경우엔, 회담 결과에 따라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연히 증인이나 증거는 드넓은 황야 속으로 사라졌고.
들어가다 말고 우두커니 서 있는 직원을 무시하고 들어가는 마루였다.
“어. 배고프네.”
흑브라더들과 피스패닉들이 째려봤지만, 마루는 한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손을 들었다.
“여기요. 주문요.”
우두커니 서 있던 직원 뒤에서 김 양과 간호사가 쪼르르 나왔다. 아담하고 이쁘장한 여자 둘이 도로록 마루가 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분위기 따위를 무시하는 건 김 양도 마찬가지였다. ‘백정이 있는데 뭔 걱정?’ 메뉴판을 순식간에 훑은 김 양도 손을 번쩍 들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웨이트리스가 가슴 윗부분이 드러난 미묘한 복장을 하곤 테이블로 왔다. 가늘게 떨리는 손. 수전증인가? 음식 엎지 않고 서빙만 똑바로 하면 됐지. 그러고 보니 맞은 편에 앉은 직원도 식은땀을 흘리고 손을 살짝 떨고 있었다.
‘과로들 했나?’
마루는 신경 쓰지 않고 주문했다.
“토스트에 베이컨, 달걀, 감자 추가, 소고기 파이, 사과 파이, 피칸 파이 하나씩, 음료는 레모네이드.”
김 양이 냉큼 받았다.
“똑같이. 음료만 체리 콕으로.”
“전. 사과 파이랑 밀크셰이크요.”
“베이컨 감자 수프에 클럽 샌드위치, 맥주. 밀러로.”
웨이트리스가 주문서를 작성해갔다. 걷다가 살짝 휘청거리자 양쪽에서 낄낄거리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김 양과 간호사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눈빛들. 김 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멍때렸고 간호사는 움츠러들었다.
“잠은 다른 곳에서 자기로 하고, 식사 끝나면 바로 출발하는 거로 하죠.”
직원의 말에 간호사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 양은 멍하니 음식을 기다렸고, 마루는 옆에 놓인 신문을 펼쳤다. ‘미국도 식당에 신문을 두네. 누가 보다가 둔 건가?’
“죄송합니다. 이게 하필 이런 때.”
직원이 뜻 모를 소리를 해댔지만, 마루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