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21
직원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들린 휴게소. 황야지대에 있는 휴게소라 트럭 운전자들이 주로 쉬는 곳이었다.
이렇게 외딴 곳은 갱단이나 카르텔 애들이 접선 장소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설마 이곳이 그런 곳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베이컨 감자수프를 먹으며 눈동자를 굴렸다. 흑브라더 쪽도 그렇고 피스패닉 쪽도 그렇게 분위기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약일까? 아마도 약이나 밀입국 관련 가능성이 컸다.
근처에 있는 대도시는 LA와 라스베이거스 두 도시 모두 최근 약과 밀입국자가 폭증하는 추세였다.
FBI에 찔러봐야 하세월이고 DEA는 증거부터 요구할 거다. 버지니아 직원이 다른 기관에 신고해? 웃프지도 않는 상황.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그냥 지역 경찰에게 신고할까? 만에 하나 근처의 경찰과 연계된 조직이라면? 경위서 쓸 각오 하고 회사에 연락해야 하나? 당장 인력 없어서 난리인데?
인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중국은 대만을 먹겠다고 발광하고 있지, 러시아는 가만히 있는 우크라이나를 조지더니 발트 3국까지 찔러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 북한은 관심 좀 가져 달라며 미사일로 퐁당퐁당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칠 지경인데 일본에 대재난이 겹쳐 일본이 터져버렸다. 일본의 움직임이 이상해서 동양계 직원들을 대거 파견했는데 그 인적자원이 전부 한 번에 갈려버린 것이다.
인력이 갈려 나가고 새로운 인력을 충원한다 싶으면 중국이든 러시아든 어디 하나는 처먹은 연놈들이 들어와 그거 거르기도 허덕일 지경. 기존 직원들을 감시, 감찰할 직원을 뽑아야 할 판이니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세상에 버지니아 직원이 갱단과 카르텔 보고 이런 고민을 할 날이 올 줄이야.
‘FUCK!’
우걱우걱
후루루룩
잠시 생각에 잠긴 직원의 정신을 현실로 돌려놓은 것은 먹방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소리였다.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더니 두툼한 베이컨과 써니사이드업 달걀프라이를 얹어 우걱 씹는 마루의 모습.
이에 질세라 고기파이에 베이컨을 얹어 먹는 김 양. 간호사는 오물오물 체하지 않고 먹으려고 필사적으로 오물거리고 있었다.
직원은 갑자기 두통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냥 눈에 띄지 않게 빨리 먹고 일어나고 싶었는데, 그냥 주변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드릴 기세를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 슬쩍 고개를 들자, 흑브라더도 피스패닉도 뜬금없이 터진 먹방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호리호리한 동양인 남자가 자기 팔뚝 길이의 베이컨을 3~4개 먹는 것도 모자라 달걀만 10개를 한 번에 털어먹고 있는 모습도 기이한데, 고기파이만 3판 넘게 조지고 있는 아담한 동양 여자는 괴이하기까지 했다. 3조각이 아니라 3판.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 베이컨도 두툼하고.”
끄덕끄덕
“고기파이 괜찮냐?”
끄덕끄덕
마루의 말에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 고기파이 맛집이었다.
흑브라더 쪽 몇 명이 휴대폰으로 먹방을 찍기 시작하자, 피스 패닉 쪽 애들도 휴대폰을 들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렇게 대놓고 휴대폰으로 찍는 분위기가 되자 간호사는 밀크셰이크로 목 막힘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켈륵켈륵
사레들려 나온 기침 소리에 온 시선이 쏠렸다.
아-
간호사는 더 움츠러들었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귀엽다는 듯 흑형들이 낄낄 웃었다. 웃음이 전염되듯 히스패닉들도 웃기 시작했다. 뭔가 훈훈한 분위기.
‘그래. 그냥 이렇게만 끝나라.’
직원은 하늘에 계신 분에게 정말 오랜만에 기도드렸다. 눈먼 총알에 맞고 뒈지는 일은 없기를. 저 새끼들이 약 먹고 지랄하지 않기를. 부디 오늘도 무사히.
순식간에 고기파이를 끝낸 김 양이 사과파이는 별로였는지 깨작거리다가 피칸 파이로 손이 넘어갔다. 하지만 역시 사과파이와 피칸 파이는 고기파이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 고기파이 하나 더? 3판이나 먹었는데? 다른 거 뭐 맛있는 거 없을까?
김 양이 메뉴판을 뽑아 들었다.
-휘이이익
-GO! GO! GO! GO!
그러자 휘파람을 불며 응원하는 흑형과 히스패닉의 모습에 백인 요리사 아저씨와 웨이트리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직원의 딱딱하게 굳었던 표정도 풀렸다.
“여기 햄버거가 끝내준다고.”
“그래 칠리소스 햄버거도 괜찮더라. 한 번 먹어봐.”
츄라이-
츄라이-
흑형과 히스패닉의 응원을 가만히 듣던 김 양이 호쾌하게 2개를 주문했다. 흑형의 오리지널, 히스패닉의 칠리소스.
“저기 계산은 내가 하지.”
흑형 한 명이 지갑을 열어 100불짜리 지폐 10장을 꺼내 웨이트리스에게 주며 말했다.
“여기 맛있는 메뉴 있잖아. 그거 전부 저쪽에 돌려. 술도.”
“술은 우리가 내지.”
문신으로 한쪽 얼굴을 덮은 히스패닉이 지갑에서 100불짜리 지폐 10장을 꺼내 얹었다.
“테킬라로.”
테낄라
테킬라
낄낄낄
웃고 떠드는 양쪽이었다.
마루가 슬슬 긴장을 풀고 있는 직원의 정강이를 툭 찼다.
“자꾸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했었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무슨 말? 직원이 잠깐 멍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 오햅니다. 아무 상관 없습니다.”
“······.”
“정말입니다. 우리 회사와도 전혀 상관없는 상황입니다.”
“······.”
마루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직원이 마루의 눈동자가 따라가는 곳을 보자, 한 흑형이 낄낄대며 조리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이 일어나 허리를 흔들며 춤추고 그것을 보며 손뼉을 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놈이 조리실로 들어가지?
흑형 하나가 조리실로 들어가자, 히스패닉 한 명도 벌떡 일어나 조리실로 향했다. 조리실 앞에서 뭔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는 모습. 아주 얼핏 보였지만 비닐봉지에 든 하얀···.
“FUCK!”
마루는 그 모습을 보고도 태연했다.
“···지금부터는 정당방위죠?”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빨리 빠져나갈 생각을 해야지. 흑인 갱들이 8명, 히스패닉 쪽도 8명. 아니, 9명. 무장한 놈들이 17명인데 정당방위 드립이라니. 정신 나간 거 아니야?
저 새끼들이 방아쇠를 한 번씩만 당겨도 17발이었다. 이쪽이 네 사람이니 한 명당 몸뚱이에 구멍 4개가 생기게 생겼는데. 정당방위 드립?
“일어납시다.”
직원이 손을 번쩍 들어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여기 얼마죠?”
“저기. 저분이 계산하셨습니다.”
흑형 하나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속으로 욕한 직원이 고개를 살짝 인사하자, 인사를 받은 게 좋았는지 낄낄대며 웃는 흑브라더들이었다.
“어서 일어나죠. 지금 바로 나갑시다.”
“햄버건?”
김 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처먹고 씨발- 지금 햄버거가 문젠가?
직원은 숨이 턱하고 막혔다. 굳건한 김 양의 표정. 그래. 먹어라. 먹어.
“포장합시다. 포장. 포장해달라고 해요.”
직원이 엉거주춤 일행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조리실에 들어갔던 흑인이 햄버거를 가져왔다.
“어딜 가시나? 먹고 가야지.”
턱-하고 햄버거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허리춤을 치켜올렸다. 지퍼가 채워지지 않은 채 올려진 벨트. 벨트에 꽂힌 권총이 도드라졌다.
“흑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뭐야? 흑인이 사준 건 먹지 못하겠어?”
우- 우- 우-
야유하는 흑브라더.
“거기. 여자. 잘 먹던데 먹어봐. 맛이 끝내준다고.”
갱이 김 양 앞에 커다란 햄버거를 밀었다.
“목이 막혀서 그런가 보지. 이거 죽여주는 거니까 쭉 들이키고 먹으라고.”
테킬라!
테킬라!
원 샷!
원 샷!
피스패닉 쪽에서 소리쳤다.
우!
우!
우!
우!
흑인과 히스패닉이 인종과 조직을 넘어 한목소리로 ‘마셔.’ ‘마셔.’ ‘먹어.’ ‘먹어.’ 외치며 발을 굴렀다.
직원의 얼굴에서 식은 땀방울이 턱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간호사는 숫제 파랗게 질려 숨을 꼴딱거렸다.
쿵.
쿵.
쿵.
쿵.
발소리가 식당을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버터나이프로 버터를 떠 토스트에 바르는 마루. 햄버거에도 테킬라에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갱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식당 안이 고요해졌다.
“샹년들이 흑인이라고 무시하는 거냐? 무시하는 거냐고?”
앞니가 금으로 반짝이는 흑인이 마루와 김 양을 번갈아 노려봤다.
아삭-
바삭하게 구워진 토스트가 씹히는 소리. 우걱우걱 태연하게 먹는 모습.
“옐로 몽키 년이!”
갱이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간호사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누르며 외쳤다.
“처먹으라면 처먹으라고!”
토스트를 하나 다 먹은 마루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음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자,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뽑아 들고 간호사의 머리통에 총구를 겨눈 갱이 흐흐 웃었다.
“햄버거 대신 총알을 처먹겠다는 거지? 그렇지?”
푹!
어?
쥐고 있던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왜?’ 밀려오는 통증에 고개 숙인 갱의 눈이 크게 떠졌다. 버터나이프가 심장에 박혀 있었다.
‘버···버터칼?’
테킬라를 가져온 카르텔 조직원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마체테도 아니고 식칼도 아니고 버터나이프로? 고개를 돌려 버터나이프가 날아온 방향을 봤다.
포크를 들고 일어서는 마루.
어우어우
심장에 버터나이프가 꽂힌 갱이 이상한 신음을 흘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너··· 너 뭐야. 뭐 하는 놈이야.”
테킬라를 가져온 남자가 총을 뽑아 들려는 순간. 포크가 목에 박혔다.
컥! 컥!
고기파이를 자르던 빵칼을 든 마루가 목에 박힌 포크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컥- 컥- 거리는 남자의 목을 발로 찼다. 빠각- 목뼈를 부수고 목 뒤로 튀어나온 포크.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심장에 버터나이프가 박힌 갱이 뒤로 넘어갔고, 이어서 목에 포크가 박힌 카르텔 남자가 꼬꾸라졌다.
“······.”
“What The···.”
“HOLLY Sh···.”
“······.”
“······.”
“Mother Fuc···.”
우당탕 소리를 내며 일어선 갱과 카르텔 들이 권총을 뽑으려고 하는 찰나, 마루가 외쳤다.
“섬!”
번쩍-파아아아앙
섬광과 굉음에 총을 뽑은 놈들이 귀를 막았다.
퉁... 퉁.퉁.퉁..퉁...
미간에 구멍이 뚫리며 쓰러지는 자들.
끼기깅- 빠직-
마루가 힘을 쓰자, 콘크리트 바닥에 고정된 인조대리석 테이블이 뽑혀 쓰러졌다. 햄버거와 토스트 수프 남은 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에 17발을 쏟아부은 김 양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간호사의 뒷다리를 잡아끌어 테이블 뒤쪽으로 엄폐시켰다.
탄창을 간 뒤 총 끝으로 톡톡 인조대리석을 때려 소리를 들은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백정이었다. 9mm나 45구경 탄까지는 충분히 막을 법한 테이블이라는 걸 알아채고 엄폐부터 시키다니.
한 손에 빵칼, 다른 손에 포크를 든 마루가 흑인들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 양은 바로 히스패닉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총구를 돌렸다. 직원도 납작 웅크리며 테이블 뒤로 몸을 숨겼다.
직원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이것들.’ 서로 신호를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탕! 탕!
타다다다닥!
우워어어어!
“뒈져!”
“죽어!”
졸지에 절반이 사살당한 카르텔 쪽에서 먼저 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돌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인조대리석 테이블이 팍팍 튀었다.
2명이 뒤에서 엄호사격을 하고 3명이 마체테와 총을 들고 테이블 쪽으로 내달렸다. 힐끗 테이블 끄트머리로 살짝 총구를 내민 김 양이 달려오는 놈들의 종아리와 발목 허벅지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끄악.’하고 쓰러지는 놈의 면상에 두 발, 엎어진 놈의 머리통에 한 발. 발목에 총을 맞아 무릎 꿇은 놈의 센터와 명치에 한 발씩.
다섯 걸음을 떼기도 전에 3명이 시체가 되자, 뒤에서 총을 쏴대던 두 사람이 주사기를 꺼내 들고 몸을 숨겼다.
철컥-
잔탄이 남았음에도 새로 탄창을 간 김 양이 직원에게 말했다.
“뭐 함?”
“구경함?”
아니. 그게. 뭘 하고 자시고 할 그게 있었나? 순식간에 다 죽여 놓고 그렇게 말하면 어쩌라고.
총격전을 한다든지 뭔가 그래야 돕든 말든 할 거 아닌가? 순식간에 섬광탄 터트리고 조졌으면서···. 직원은 좀 억울했다.
뿌각- 뭔가 부러지는 소리.
둔탁하게 뼈 부러지는 소리에 김 양과 직원이 옆을 봤다. 마루가 터벅터벅 태연하게 걸어간 곳에서 난 소리였다.
목이 180도 돌아간 흑인이 혀를 길게 빼물고 옆으로 쓰러졌다.
우득- 팔이 ㄴ자로 꺾여 비명을 지르려는 자의 관자놀이에 포크가 손잡이까지 틀어박혔다.
서컥- 빵칼로 목이 따여 피가 뿌직 솟아올랐다.
으와아아아악
“죽어!!!”
공포를 쫓아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총을 쐈다. 슬쩍 가볍게 피하는 마루. 뒤의 동료가 맞았다. 동료가 맞거나 말거나 공포에 질린 갱단들이 마구 총을 쏴댔다. 순식간에 사방이 피바다가 됐다.
팅- 티딩-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떨어졌다. 사방에 탄피가 굴러다니는데도 몇 발자국 앞에 있는 마루를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쓰러지는 것은 동료들뿐이었다.
휘청이는 총구. 떨리는 손. 흔들리는 눈동자.
틱-틱-틱-
“제길!”
탄창을 갈아야 하는데, 덜덜 손만 떨고 있는 모습. 탄창을 갈겠다고 부들대는 남자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사람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마루.
마루가 지나가자 헉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사내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살았다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뭐지?’, ‘왜?’ 의문을 품는 순간, 목덜미에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
사내는 손을 목에 댔다. 뜨거운 피가 경동맥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뿜어나오는 피를 막으려고 했지만, 손가락 사이사이로 생명이 흘러내렸다.
컥- 컥-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무릎에 힘이 빠졌다. 풀썩 쓰러진 사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시체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