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24
두 대의 헬기가 넓은 공터에 착륙했다.
12~14인승은 될 법한 헬기 2대에서 내린 직원은 고작 8명이었다. 이들은 뒤처리 전문팀답게 2인 1조를 짜더니 순식간에 현장 정리에 들어갔다.
가지런히 놓인 시체를 정리하던 뒤처리 팀장이 직원에게 물었다.
“이상하군요. 갱이나 카르텔 놈들이라면 금으로 장식한 총이라든지 금팔찌 같은 것이 있을 법도 한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식은땀을 삐질 흘리는 직원을 빤히 바라보는 팀장이었다. 좌불안석 직원을 구해준 건 주차된 자동차를 뒤지고 온 팀이었다.
“인신매매와 마약 거래하는 놈들인지, 트렁크에 마약과 여자들이 있습니다.”
“골치 아프게 됐네. 의식은 있고?”
직원은 두통이 심해졌다. 총잡이 년이 자동차를 뒤지지 않았나? 그럼 차 트렁크에 여자가 있다는 걸 봤다는 건데, 말 한마디 없었다.
“약인지, 마취제인지 모르겠지만, 의식이 없습니다.”
“몇 명이나 되나?”
“5명입니다.”
“일단 헬기에 데려다 놓도록.”
이러면 뒤처리가 애매했다. 덮기로 했는데 관련자가 나와버렸으니, 직원은 정말 팔딱 뛸 지경이었다. 인신매매 피해자가 한 명도 아니고 다섯이나 있었다는 소린데···.
아니,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뒤처리 팀이 자길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관련자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지도 않은 병신으로 볼 거 아닌가?
“가게에도 생존자가 있습니다.”
“거긴 또 몇 명이야?”
“요리사와 웨이트리스 그리고 카르텔 조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 이렇게 3명입니다.”
“상태는 괜찮고?”
“요리사와 웨이트리스는 응급처치가 잘 됐기 때문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카르텔 조직원은 사지 관절의 뼈가 완전히 뭉개져, 장애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까지는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고.”
뒤처리 팀장이 직원을 보며 말했다.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도록 하죠.”
“···예.”
“현장 사진은 꼼꼼하게 남기도록 해. 특히 교전이 벌어진 부분은 다양한 각도로 찍도록 하고. 전체 동영상 촬영도 빼놓지 말고.”
“알겠습니다.”
현장 촬영이 끝나자마자, 휴게소는 실시간으로 보수됐다. 피로 얼룩진 바닥은 세제로 닦였고, 총알구멍은 메워지고 페인트로 칠해졌다. 8명의 보수팀은 말 그대로 전문 보수 팀다웠다. 고작 3~4시간 만에 난장판이었던 현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변했다.
“다량의 마약을 찾았습니다. 코카인이 대부분이지만, 헤로인과 크리스털까지 있습니다.”
“금이나 현찰은?”
“금은 없고, 현찰도 푼 돈입니다.”
“이상하군. 갱이든 카르텔이든 이런 새끼들은 자기 과시 때문에라도 금붙이나 현찰 들고 다니는 놈들인데 말이지···.”
직원은 정말 억울했다. 그 억울함이 도드라졌기 때문인지 뒤처리 팀장이 직원을 바라보던 시선을 옮겼다.
“CCTV 기록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컴퓨터가 통째로 날아갔더군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직접 보세요.”
뒤처리 팀장이 박스를 열어젖히자, 매캐한 탄 냄새가 올라왔다. 전선과 플라스틱 타는 냄새 뒤로 엉망이 된 CCTV 영상 저장용 컴퓨터가 뭉개져 있었다.
직원은 진짜 미치고 팔딱 뛸 것 같았다. 같이 가기로 했던 거 아닌가? 일을 치려면 미리 말을 해주고 치든지···.
“언제···.”
“언제?”
“아닙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흠- 일단, 이건 위에 보고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없게 됐으니, 증언밖에 남지 않는데···.”
뒤처리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CCTV 녹화본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사실 믿기 힘든 이야기 아닙니까? 버터나이프로 사람을 죽이고, 빵칼과 포크라니···.”
“······.”
피식 웃으며 말하는 뒤처리 팀장에게 ‘시체를 보라고 시체를!’ 이렇게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직원이었다.
“팀장님. 여기 시체가 이상합니다.”
“뭔데 그런가?”
팀장과 직원이 시체가 놓인 곳으로 가자, 팀원 하나가 시신의 상의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 심장에 틀어박힌 이것 말입니다. 이 부분 보이십니까? 이거 버터나이프 손잡이 같습니다.”
“······.”
“이쪽은 포크가 목뼈를 뚫고 나왔습니다. 저기에 있는 시신은 관자놀이에 포크가 박혀 있고요. 여기 시신들 뭔가 이상합니다.”
“······.”
팀장이 눈빛으로 말했다. ‘씨발 진짜 사실이었냐?’
직원도 눈빛으로 대답했다. ‘존나 사실이라고 했잖아!’
뒤처리 팀장은 시신에 남은 흔적을 촬영한 뒤, 피해자들과 부상자들을 헬기에 태우고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은 과장의 전화를 받았다.
“예? 저들이랑 같이 다니라고요?”
[그래. 시신에 난 흔적과 교전한 흔적이 범상하지 않아. 거기에 자네의 증언까지 고려해 보니, 당분간 저들과 함께 있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네.]
“차라리 스카우트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직은 아니야. 버나드 그린(기순)이 자기 일행들을 회사로 끌어들이려 하지 말라고 하더군, 그렇게 하려는 시도 자체가 폭탄에 불을 붙이는 것과 똑같다고 경고했다네.]
“이유가 뭡니까? 회사의 비호를 받는 게 나쁜 일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차차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일본 내각정보부에서 일하다 버림받은 자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네.]
그렇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아직 확실한 건 없어. 그러니 당분간 저들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도록 해봐. 자극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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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간판에 불이 꺼졌다.
뒤처리 팀원 2명이 남아 마무리를 짓는 동안, 여러모로 초췌한 직원이 숙소 열쇠를 들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마루 일행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 바닥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든 간호사가 보였다. 벌 받는 모습. 그렁그렁 울먹이는 간호사의 눈망울.
‘이건 또 왜···.’
“이게 뭔 일입니까?”
직원이 마루를 쳐다봤다. 마루는 대답 대신 턱으로 김 양을 가리켰다. 굉장히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김 양이 있었다, 간호사를 찌를 것 같은 김 양의 눈빛에 직원이 끼어들었다.
“무슨 일인데 이럽니까? 다 큰 어른이.”
“햄버거.”
조그맣게 으르릉거리는 김 양.
“이제 그만해라. 한참 저랬잖냐? 그만하고 햄버거 먹어야지.”
마루의 말에 김 양이 발끝으로 간호사를 콕 찔렀다. 움찔한 간호사 슬그머니 일어섰다. 어서 가서 일 보라고 마루가 고갯짓하자 비척비척 조리실로 들어가는 간호사였다.
“햄버거라니 무슨 소립니까?”
“아. 별건 아니고요. 햄버거 만들어 주기로 하고서 딴짓하고 있었더라고.”
“딴짓이요?”
“웨이트리스랑 요리사 응급처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간호한다고 곁에 붙어서, 햄버거 노쇼를 해버렸더라고요.”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노쇼면 빡치지.’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양 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길게 빠졌는가?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쳤는데 결국 노쇼라니.
직원은 이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일단 상황을 설명하는 게 우선이었다.
“뒤처리 직원들이 야간 경계 서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밤은 걱정하지 말고 편히 푹 쉬면 됩니다.”
턱-하고 방 열쇠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직원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에 말했던 대로, 남자들은 각방을 쓰고 여자들은 방 하나를 같이 쓰도록 방을 배정했는데···. 불편하면 여자들도 각방을 쓰도록 할까요?”
조금 전까지 무릎 꿇고 벌 받은 간호사를 생각해 보니, 둘을 한 방에 뒀다가 밤새 ‘버닝’이나 ‘프라이’ 당할지도 몰랐다.
마루가 ‘어떡할래?’ 하는 표정으로 김 양을 보자, 김 양이 단호한 얼굴을 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버리갔어.’하는 눈빛이었다.
“한방 쓰겠다네요?”
“······.”
아니, 진짜. 좀. 직원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차 트렁크에 여자들이 있었으면 귀띔이라도 해주든지요. 이게 뭡니까? 감찰받게 생겼습니다. 저.”
옆에서 뭐라고 하든, 다이아몬드 커스텀 그립이 달린 글록-17을 분해하기 시작하는 김 양이었다.
“그리고 CCTV는 언제 그런 겁니까? 그런 건 좀 미리 알려주면 안 됩니까? CCTV 보내기로 한 전 뭐가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분해되는 권총이 다시 순식간에 조립되기 시작했다. 15초나 걸렸을까?
촤르륵
철컥
틱-
철컥
틱-
방아쇠를 당겨, 방아쇠 압력을 몇 번 확인한 김 양이, 커스텀 글록을 들고 요래조래 감각을 잡기 시작했다. 확실히 커스텀을 하면서 무게가 80~85g 정도 더 나가는 것 같았다.
쯧-
김 양은 혀를 찼다. 아까워라. 쓰는 김에 좀 더 쓰지. 김 양은 이번에 장만한 애들을 분해하고 다시 재조립했다. 그 옆에서 직원이 맺힌 한을 풀 기세로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하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분해 조립하던 김 양이 킥- 탄창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시끄러움.”
“······.”
철컥- 장전하는 소리에 직원이 입을 다물었다.
“시끄럽다고.”
“······.”
그래서 바로 조용히 했잖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김 양은 흐릿해진 눈으로 직원을 쳐다봤다.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 뭔가 팍하고 터지려는 찰나, 나른한 마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햄버거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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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거대하고 푸짐했다.
두께가 1인치는 될 법한 패티가 두 장에, 두툼한 베이컨과 넘치다 못해 흘러내린 치즈. 높은 탑처럼 켜켜이 쌓인 햄버거가 김 양의 눈앞에 놓이는 순간, 모든 짜증과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뜨거운 육즙이 츄륵 흘러내렸다. 육즙과 치즈, 소스가 어우러져 폭발하는 맛. 감칠맛과 짭짤 고소함,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불맛! 토치로 불향을 입힌 건가? 일식집에서 쓰는 그런 방법?
자비로운 김 양의 얼굴엔 모든 분노가 사라져 있었다.
총잡이 년은 좋다고 먹고 있지만, 직원은 그랬다. 햄버거를 보고 든 생각. 아무리 여기가 혈관 폭탄의 근본 미국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싶었다. 간호사가 이렇게 요리했다는 건 먹고 뒈지라고 한 걸까?
‘쩝. 맛은 있네.’
본래 먹거리란 몸에 위험할수록 맛있지 않은가? 18만 달러도 맛은 있었다. 장이 터져 뒈지지 않으려면 어떡하든 부지런히 똥을 싸야 할 판이라는 게 문제지.
이러나저러나 햄버거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직원은 우울해졌다.
이런 연놈들과 계속 같이 있으라는 건가? 감시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말을 바꾸는 회사라니,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과장쯤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현장 감각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돌더니 사실인 거 같았다.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요?”
“그게 위에서 그러라고 합니다.”
직원은 대놓고 말했다. 어차피 돌려 말하고 그럼 먹힐 사람들이 아니었다.
“위? 버지니아? 거기 회사에서 직접 그러라고 했다고요?”
“예···.”
뻔한 걸 감췄다가 18되느니 직구로 승부였다.
“왜요? 뭐 다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각자 쪼개질 수도 있는데···.”
“예? 같이 다니는 것 아니었습니까?”
마루가 들고 있던 햄버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어쩔지 안 정했네요.”
“······.”
“둘 다 들었죠? 아까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었던 거, 생각해 봤습니까?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지금 정합시다. 같이 다닐지, 아니면 각자 따로 갈지. 김 양은 어떻게 할래?”
우물우물 꿀꺽한 김 양이 다시 한 입 베어먹기 전에 대답했다.
“같이 감.”
“···저도요.”
햄버거를 빵칼로 썰던 간호사가 칼질을 멈추고 말했다.
“좋아 그럼 둘 다 같이 가는 거로 압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 여자. 그 모습을 본 직원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근데 우리 곁에 붙겠다는 건, 우릴 감시하겠다는 건데. 이거 좀 그렇네요.”
기분 좋게 햄버거를 베어 물고 오물오물 맛을 음미하던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감시?’ 밥맛 떨어진다는 표정이었다. 노골적으로 직원을 노려보는 김 양. ‘역시 순직했어야 했어.’ ‘안타깝지만 기회는 많으니까.’ 이런 눈빛이었다.
직원은 ‘18만 불. 떠올려봐 18만 불을. 우리 같이 나눠 먹고 그런 사이잖아.’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씹혔다.
마루는 둘을 지켜보며, 햄버거를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대놓고 감시하시겠다?’
힘을 뺀다고 뺐는데도 위험하다고 평가된 것 같았다. 위험해 보이지 않겠다고 총 맞고 그러는 건 아니지 않은가? 괜히 어설프게 쇼하다가 좋지 못한 곳에 맞기라도 하면 급속치료제를 쓰게 될 거고, 급속치료제가 오픈되는 순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게 뻔했다.
기순이도 감출 수 있는 데까지 감추자고 했었다. 마루도 동의했다. 감시가 있으리라 생각해 조심해 오지 않았던가? 그래도 생각해 보니 최악의 상황은 잘 피한 것 같았다. 정말 최악이었다면 실험실행이라든지, 강제 차출당했을 것이다.
감시도 그랬다. 다른 놈이 붙는 것보다, 어차피 붙어야 할 감시라면 나눠 먹은 직원이 붙는 게 유리했다. 여차하는 순간이 온다거나, 꼬리를 떼어야 할 상황이 온다면, 편안하게 순직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고.
“뭐···. 대놓고 감시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
콰직콰직, 우걱우걱 씹어 삼킨 마루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네요.”
“?”
“?”
감시자가 붙었는데 마음이 편해? 김 양과 직원이 의아했다.
“정당방위를 인정해 줄 사람이 붙었다고 생각하면 말이죠?”
마루의 평안한 미소에 직원은 울고 싶어졌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