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28
김 양이 액셀을 깊게 밟자, SUV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몇 대나 쫓아오는데?”
마루가 사이드미러를 보며 김 양에게 물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거라 몇 대가 따라오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3대. 토요타 신형 밴.”
토요타? 갱이나 카르텔은 포드나 닷지 그런 거 타지 않나? 가정용 느낌인 차로 미행한다고? 마루가 직원에게 무전을 넣어 확인했다.
“이쪽이 미행당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쪽인가요?”
[-치-직- 미행당하고 있다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트레일러트럭이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확실히 뒤따르는 차들이 보였다. 붉은색 계열 벤 3대가 트레일러트럭을 추월해 마루 일행이 탄 SUV의 꽁무니를 쫓았다.
[···미행이 맞네요. -삐- 회사나 정부 기관은 아닙니다.]
회사는 아니었고 국토안보부도 아니었다. FBI(연방수사국)나 DEA(마약단속국)에도 정보를 넘기지 않았으니 그쪽도 아니었다.
“그래요?”
마루가 45구경 철갑탄을 채워 넣은 글록-19를 꺼내 들었다.
철컥-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지 직원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혹시··· 먼저 쏘려는 건 아니죠? 먼저 공격하면 정당방위 아닙니다.]
정당방위 하겠다면서? 그래 놓고 갑자기 선제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사고 터지면 뒤처리를 해야 할 판이라 불안한 직원이었다.
마루는 가볍게 고개를 좌우로 꺾곤 양손에 글록-19를 쥐었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뭐라고 했었더라? 선제전쟁(Preemptive War)이라고 했었나?
그러니까 지금은 위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선제적 정당방위쯤 되겠지. 선빵 때릴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겠냐?
마루의 눈빛을 읽은 김 양이 양쪽 창문을 열며, 뒷자리에 탄 간호사에게 말했다.
“숙이셈.”
끼이이이이익!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속도를 죽인 SUV. 신나게 따라오던 밴들이 급격히 속도가 줄어든 SUV와 충돌을 피하려 양쪽으로 갈라졌다.
오른쪽으로 꺾은 밴이 조수석 창문을 지나는 순간, 마루의 쌍권총이 불을 뿜었다. 왼쪽 앞바퀴를 시작으로 대각선 위로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45구경 철갑탄의 흔적이 운전석을 지나 뒷좌석까지 나란히 이어졌다.
거의 동시에 왼쪽으로 회피한 밴이 스쳐 지나가려고 하자, 김 양이 액셀을 밟는 것과 동시에 살짝 핸들을 꺾었다.
추월하려는 밴의 후방 범퍼 부근을 툭- 밀어 치자, 급하게 방향을 전환했던 밴이 중심을 잃고 굴렀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몇 바퀴를 구른 자동차가 도로 밖으로 튕겨 먼지를 피워 올렸다.
[Holly S···]
정당방위 아니라고 했잖아! 속으로 절규하면서 직원은 액셀을 밟았다. 이렇게 된 거 방법이 없었다. 브레이크를 밟아 멈춰선 마지막 밴을 트레일러트럭이 뒤에서 밀어버렸다.
■■■■!
굉음과 알루미늄 캔처럼 구겨진 자동차가 도로와 마찰을 일으켜 불꽃이 튀었다. 크가가가각- 길게 이어지던 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정당방위만 한다면서요. 지금은 정당방위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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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으로 변한 도로엔 처참한 흔적이 가득했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를 타고 있었기에 연쇄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할까.
트레일러트럭에서 직원이 뛰어내리며 소리치다 말았다.
“미쳤습······.”
김 양이 소음기를 끼운 커스텀 글록을 들고 트레일러트럭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직원도 조심스럽게 손을 아래로 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김 양은 직원을 한 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없이, 구겨진 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형 트레일러트럭이 밀어버려 고철이 된 차량 속에는 피떡이 가득했다.
‘흑인은 아니고.’
짙은 갈색의 피부, 남미계열로 보였다. 카르텔인가? 카르텔 애들이 어떻게 따라왔지?
김 양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직원을 봤다. 미국의 마약 시장은 제대로 집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잡고 잡다 못해, 이제는 대마초에 한해 허용하는 주가 생길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그만큼 약쟁이들 돈을 먹은 사람도 늘어났다는 것. 제조, 공급, 유통만 아니라면 현장에서 잡혀도 경범죄 정도의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늘고 있을 정도였다.
대놓고 노래 제목을 마약이라고 적고 뮤직비디오에 마약 빠는 모습을 담는 것도 있을 판국이니 말해 뭐할까?
김 양이 보기에 이 직원은 초짜였다. 초짜 하나 구슬려서 정보를 빼내는 건 카르텔 입장에서는 식은 죽 먹기 아닐까? 만약 이 초짜가 그랬다면? 김 양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왜 그렇게 봅니까?”
직원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루도 미쳤지만, 총잡이 년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래도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직원은 마루가 더 나았다. 이런 쪽 여자와 엮여서 좋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동 루트 누가 앎?”
“··· 지금 회사를 의심하는 겁니까?”
그럼 누굴 의심하니? 직원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김 양.
“저놈들이 이동 루트를 알았다면 매복하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따라왔겠습니까?”
“······.”
“어디선가 정보가 샜다면, 이렇게 어설프게 접근하진 않았을 겁니다.”
“······.”
하긴, 휴게소에서 17명을 순식간에 정리했다는 정보가 샜다면 달랑 몇 명 태워서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도 지켜보겠다는 눈빛으로 다시 한번 직원을 바라보는 김 양이었다.
“······.”
“······.”
이어서 구겨진 차의 안쪽에 손을 넣어 뒤적이기 시작하는 김 양. 직원은 그 모습에 학을 뗐다. 지금 뒤지는 거지? 시체 있는데 뒤지는 거 맞지? 지금 이 상황에서 뒤지냐?
탕-!
탕!!!
갑작스러운 총성이 연달아 터졌다.
직원은 바로 몸을 웅크리고 총을 뽑았지만, 김 양은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백정이 간 쪽이니 금방 조용해 지리라.
‘적당히 밀지. 이렇게 곤죽을 만들어 놓고는. 귀찮게.’
잔해 사이로 뭔가 잡히는 게 있었다.
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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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탄창이 빈 글록을 내려놓고 칼을 잡았다.
‘역시···.’
총을 잡으면 뭐랄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예민했던 감각이 둔탁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버터나이프나 빵칼만 잡아도 날카롭게 날이 섰었는데, 총을 잡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했다.
딱히 총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밋밋하긴 확실히 밋밋했다. 미래를 생각하면 총과 친해지긴 친해져야 할 텐데.
쯥-
전복된 차를 향해 다가간 마루였다. 히스패닉 계열의 남자 2명이 뒤엉켜 있었다. 안전띠를 차지 않고 여러 차례 굴렀기 때문인지 얼굴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카르텔 조직원은 목과 팔이 꺾여 있었다.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전복되는 순간 핸들을 붙잡고 버텼는지 그나마 꺾인 부분은 없어 보였다.
끄으으
한쪽 눈을 반쯤 감은 조직원이 신음을 흘리며 마루를 노려봤다. 머리에서부터 눈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리는 찐득한 핏방울. 피가 끈적하고 탁한 색이었다.
“왜 우릴 미행했지?”
“%^&···.”
뭉개진 발음으로 뭔가 말을 하기는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스페인어에 발음마저 엉망이었다.
마루가 번역 앱을 켜기 위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찰나, 놈이 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가볍게 점프해 찌그러진 자동차 지붕 위로 올라간 마루가 그대로 칼을 박아 넣었다. 지붕을 꿰뚫고 들어간 칼날을 비틀자, 금속 지붕이 찢기며 아래 총을 든 팔도 같이 찢겼다.
툭 하고 권총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끄윽 끄윽 거리는 힘없는 소리가 구겨진 지붕을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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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차들이 도로 건너편으로 밀려 나갔다.
싱글벙글 김 양은 신났다.
어쩐지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였다. 트레일러트럭에 떡이 된 밴만 아니었으면 깔끔하게 끝났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다른 2대는 파밍하기 편했다.
몇 바퀴 구른 여파로 문짝이 꽉 찌그러져 망가졌어도 걱정 없었다. 최신형 차량이라 사고 났을 때 문이 떨어지도록 설계됐는지, 마루가 힘 좀 쓰자 뚝 떨어지는 문짝이었다.
그렇게 물 만난 물고기처럼 차들을 훑은 김 양의 손에는 두툼한 현찰 뭉치가 생겼다.
오- 예스-
약쟁이들은 돈이 많았다. 뭣 때문에 이렇게 현찰을 들고 다니는지, 금붙이를 몸에 두르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금이랑 현찰을 합하면 얼추 10만 달러는 넘지 않을까 싶었다.
어제 공돈이 들어오더니 오늘도 그랬다. 역시 백정이랑 같이 다니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
김 양이 희희낙락 현찰과 금붙이를 챙기는 동안, 마루는 직원과 함께 살아남은 카르텔 조직원을 심문하고 있었다. 버지니아 정규직답게 스페인어에 능통한 직원이었기에 심문할 수 있었다.
“뭐라고 하는 겁니까?”
직원이 찝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희들은 다 죽었다고 하는데요.”
“그 소릴 이렇게 길게 합니까?”
이걸 말해야 하나 마나 머뭇거리던 직원이 통역을 다 해 버렸다.
“···배를 갈라 창자로 목을 매달아 주마··· 건드리고 살 수 있을 거 같냐··· 너희 집 개까지 죽은 목숨이다···.”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 기운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놈이 속한 조직 이름이 뭔가요?”
“인근 지역에서 피스패닉이라고 불리는 놈들입니다.”
“이름 참 이상한 놈들이네. 얘네들 유명한 놈들입니까?”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에서 요사이 악명을 떨치고 있는 카르텔입니다. 멕시코에 있는 대형 카르텔 직계라는 소문도 있고요.”
마루가 조직원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얘네들 휴게소에서 조졌던 애들 같은데 맞죠?”
“예? 아- 그렇습니다.”
“뒤처리를 깨끗하게 했는데 얘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을까요? 그것 좀 알아봐 주시죠.”
“···그러죠.”
마루는 직원이 심문하는 것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뒤처리 팀까지 와서 정리했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을까? 누군가 정보를 흘렸을까? 무엇 때문에?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 보기엔 너무 엉성한데? 월드 그룹과 엮였던 걸 떠올려 보면 더욱 그랬다.
여러 차례 윽박지르고 달래보던 직원이 점점 폭력적으로 심문하기 시작했다. 구타와 상처를 헤집는 고문이 계속됐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크크크크
입에서 피를 흘리며 비웃은 카르텔 조직원. 열받은 직원이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지만, 웃음소리가 가시지 않았다.
두 손에 가득 현찰을 들고 총총 달려온 김 양이 얼굴이 피떡이 된 카르텔 조직원을 보곤 눈을 껌벅거렸다.
기분이 좋아 순둥순둥 껌벅이는 김 양을 본 카르텔 직원이 길게 혀를 내밀어 후루룹 소리를 내며 입술을 핥았다.
후루룩 쩝- 후루룩-쩝
푸씨--
그 모습을 본 김 양이 고개를 갸웃하며 마루에게 물었다.
“고문?”
“그래. 약 기운이 빠지지 않아서 그런지. 고문이 안 통한다고 그러네.”
“······.”
“어떻게 우릴 따라왔는지, 정보가 샜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직원이 심문도 해보고 고문도 해봤는데 저 모양이야.”
마루의 설명에 김 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직원을 봤다.
“역시 초짜임.”
“아니. 진짜 초짜 아니라니까요.”
김 양이 초짜는 비키라는 듯 말하자, 직원이 바르르 부정했다.
“구우면 됨.”
“뭐?”
“예?”
김 양의 말에 마루와 직원이 뭔 소린가 되물었다.
김 양이 두 손에 가득 들고 있던 현찰 뭉치와 금붙이를 마루에게 넘기며 느릿하게 말했다.
“약한 불로 천천히···.”
“······.”
“······.”
“구우면 됨.”
그 굽는다는 게 설마? 진짜 그건 아니겠지?
잠시 뒤.
고기 굽는 냄새와 함께 황무지가 찢어지는 것 같은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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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조직원이 쏟아낸 똥오줌 냄새가 지독하건만, 김 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발가락 끝과 손가락 끝이 까맣게 탄 카르텔 조직원이 김 양의 눈을 필사적으로 피했다.
“위치추적기?”
“그렇다고 합니다.”
직원이 바로바로 통역에 들어갔다.
“어디?”
“무슨 금이랑 총 이야기를 하는데요?”
김 양이 갸웃했다. 마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생기더니, 잠시 뒤 느낌표로 변하는 것 같았다.
“?”
“!”
김 양은 바로 SUV로 달려가 금장식 AK 계열 소총을 꺼내왔다. 근본 없는 AK 비슷한 금덩어리 총을 분해했는데 별거 없었다.
우직- 나무에 금으로 상감한 개머리판을 부수다시피 뜯어내자, 안쪽에서 위치추적 칩셋으로 보이는 게 나왔다.
콰직-
바로 칩셋을 박살 내는 김 양이었다. 추격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그 모습을 본 카르텔 조직원이 어깨를 들썩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뭐라고 함?”
김 양이 묻자, 직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늦었다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