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35
버지니아에서 국토안보부로 환승을 결정한 뒤, 마루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제일 처음 해결해야 할 건, 버지니아에서 제공하기로 한 안가를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국토안보부와 손잡기로 했으니까 버지니아 쪽에서 받은 집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해?”
버지니아라면 집에도 도청 장치라든지 감시장비를 붙여놨을 게 분명했다. 국토안보부라고 마냥 믿을 만한 건 아니었지만, 버지니아는 뒤끝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처분하는 게 맞음.”
“······.”
김 양은 바로 동의했다. 한국에서 회사랑 척지고 얼마나 고생했던가? 버지니아 하면 미국 회사지 않은가? 지지는 빨리 처분하는 게 맞았다.
간호사는 침묵함으로 암묵적 동의를 표했다. 팔기 싫다면 두 사람에게 돈을 주고 집을 사야 하는데 당장 뭔 돈이 있겠는가?
“그럼 처분하는 거로 하고, 우리 짐들도 처분할 건 처분하자.”
“골드는?”
마루의 침묵에 김 양의 눈빛이 흔들렸다.
“황금 총도?”
풀이 죽은 김 양을 마루가 다독였다.
“버지니아에서 FBI 쪽에 찌르면 어쩔 거야? 일단 처분할 수 있는 건 처분하고, 처분한 거 확인해서 증빙자료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저렇게 계속 꼬투리를 잡아 찔러대면 뒤를 봐주기로 한 국토안보부도 피곤해지기 마련이었다. 견디다 못한 국토안보부가 마루 일행을 손절하는 순간, 도주 생활이 시작되는 건 뻔했다.
‘킹치만 죄 없는 골드인데?’
골드는 순결했다. 그렇기에 골드였다. 근데 그런 골드도 처분? 그렁그렁 김 양의 눈빛을 냉정하게 외면하는 마루였다.
“지금이야 괜찮겠지만, 나중에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정리할 수 있을 때 정리하는 게 맞아.”
김 양이 소리 없는 흩날림으로 항거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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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부 직원이 모는 트레일러트럭이 가볍게 디트로이트로 향했다. 그 뒤를 따르는 SUV 운전석에는 김 양이 앉아있었다.
“카르텔 영상. 위험하지 않겠음?”
초짜가 보냈다는 영상에 칼질하는 모습이 담겼다고 했으니, 버지니아가 그냥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국토안보부랑 손잡아서 괜찮아.”
국토안보부에서는 산하기관 프리랜서 정도로 서류를 박아줬다. 금이고 무기고 대충 걸릴만한 건 국토안보부에서 처리하고 달러로 통장에 꽂아줬으니, 조금이나마 안전해졌다고 할까?
“영상 넘어가면?”
“그럴 리가. 요즘 사이가 더 안 좋아졌다고 하더라.”
국토안보부와 버지니아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어지간하면 서로 정보 교환할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정보를 넘겨받았다고 해도 국토안보부에서 뭘 어떻게 할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 미국은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국제적으로도 개판이었지만, 국내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걸 살리겠다고 달러를 풀었더니, 인플레가 시작됐다. 인플레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자, 연쇄적으로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런데 유통, 서비스 업종 직원들은 이왕 쉬는 거 지원금 타 먹고 푹 쉬겠다고 일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면 좋겠지만, 그 지원금을 털어먹기 위해 범죄 조직들이 대량으로 약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마피아, 갱단, 카르텔도 답답한데, 중국의 조직폭력배까지 젓가락 들고 달려는 판국인지라 DEA는 기저귀 갈 틈도 없이 뺑이치고 있었다.
치솟는 강력범죄 때문에 FBI도 허덕였고, 버지니아는 해외에서 연속해서 터지는 사건으로 인력이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근데 저걸 전부 한 입씩 베어 물고 있는 국토안보부는 어떻겠는가? 이쪽도 상태가 엉망인 건 마찬가지였다. 제일 큰 문제는 난민과 이민 문제였다.
이민국이 산하기관이라 빼도 박도 못하고 관리해야 했는데, 시리아, 아프간 난민이 터졌다. 거기에 남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밀입국자들. 더해서 중국 애들도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리아나 아프간에서 들어온 애들 가운데 누군가 알라후 아르바크 해버리면 어쩔 건가? 그러니 감시 인력이 갈려 나갔다. 남미는 대놓고 카르텔 애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중국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간 중국인이 사라지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여기에 일본인도 쏟아져 들어올 예정이었다. 지금이야 화산폭발로 인해 비행편이 중단됐고, 해저 화산 폭발로 인해 발생한 부유석 때문에 선박 운항도 멈춰서 그렇지, 화산 분화가 멈추고 화산재와 연기가 가라앉으면 일본인들이 미국으로 몰릴 게 분명했다.
그럼, 거기에 야쿠자는 없을까? 야쿠자만 있으면 다행이었다. 군국주의자들은? 2차대전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애들이 넘어와서 알라후 아르바크랑 손을 잡으면?
그래서 국토안보부는 마루 일행에게 편의를 잘 봐줬다. 다른 건 몰라도 능력은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 서류상으로 고용한 프리랜서라지만, 진짜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 온다면 서로 윈-윈 할 수 있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이겠지.”
마루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괜찮겠음?”
“······.”
김 양의 말에, 마루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누가 알았겠는가? 월드 그룹과 엮이고, 샬롯 그룹과 설키고, 버지니아도 모자라 갱단과 카르텔, 마지막에는 국토안보부까지···.
“괜찮아야지···.”
마루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야 했다.
“······.”
“······.”
김 양은 운전하면서 조수석에 앉은 마루를 힐끔 훔쳐봤다.
같은 사람이다 싶었다가도, 한 번씩 이게 사람 새낀가 싶을 때가 있었다. 초짜 직원을 알링턴 카운티로 보내는 걸 보면 그랬다.
백정이 살기를 담아 직원을 쳐다봤을 뿐이었다. 조금 떨어져 있었음에도 서늘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거 있지 않은가? 짙은 살기에 닿으면 오싹오싹해진다거나, 범이 ‘어흥’ 하면 작은 동물들은 심장마비로 죽어버리는 거.
근데 마루가 살기를 담아 노려보자, 초짜 직원이 가슴을 부여잡고 뒈져 버렸다. 처음엔 실화인가 싶었다. 노려봤다고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다니.
우연일까? 심장이 본래 약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 감염 부작용으로 돌연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백정이 살기를 담아 노려봤고 초짜가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
백정이 사실은 이백정이나 오백정이나 그런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백정이긴 했는데 이백정이나 오백정으로 진화? 발전? 그런 걸 한 걸까?
어쨌든 같은 편이면 정말 든든한 느낌이 드는 마루였다.
흥. 흥. 흥.
골드. 골드. 골드.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던 김 양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내 골드···.
몇 개는 남겨주지.
역시 백정은 미웠다.
김 양이 행복했던 골드와의 추억을 슬픔으로 되새김질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노- 그- 디트로이트로 간다고 하셨죠?”
“?”
“네.”
“그 디트로이트 파산해서 위험한 도시가 됐다고 하던데 괜찮을까요?”
간호사의 말에 김 양이 까륵 웃었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는 마루보다 위험할까.
“오히려 그래서 거기로 가는 겁니다.”
“위험해서요?”
디트로이트는 파산에서 회복해, 조금씩 도시를 재건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도시 외곽지역 주택가는 아직도 사람이 떠난 폐허로 방치된 상태였고, 디트로이트를 떠난 백인 중산층과 상류층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난민들, 이민자들, 불법체류자들 그리고 갱단이었다. 치솟았던 범죄율과 실업률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이미 자리 잡은 범죄 조직들이 다른 곳으로 갈 리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밝아지려는 도시의 밤은 그만큼 짙은 어둠을 품고 말았다.
“아니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죠.”
“여차하면 정당방위임.”
마루의 말에 호응하는 김 양이었다. 간호사는 눈을 굴렸다. 그러니까, 범죄의 도시로 가는 이유가 정당방위를 쉽게 할 수 있어서 간다는 건가? 나는? 난 어쩌라고?
“최근엔 치안이 많이 좋아졌다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예-”
“그리고 어떻게 할 겁니까?”
“예? 뭐- 뭘요?”
“요새 코로나 때문에 간호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그러던데 어떻게 일자리 알아봐 드려요?”
“에또-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요.”
“약품이랑 비품, 재고 관리 같은 분야도 있고. 영어를 꼭 잘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업무가 있지 않을까요? 원하시면 알아보죠.”
“폐가 되지 않을지···.”
김 양이 잡고 있던 핸들을 놓고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괜찮음. 사람은 일을 해야 함.”
초짜를 보셈. 매번 뭉그적거리며 날로 먹으려고 하다가 골로 가지 않았음? 김 양이 백미러로 간호사에게 눈빛을 보냈다. 신호를 받은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하잇-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암. 그래야지. 김 양은 흡족했다.
“넌 어떻게 할 건데?”
훅 들어온 마루의 질문에 김 양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어? 나? 난 총기도 관리해야 하고, 감각도 언제나 최상으로 유지해야 하고··· 간호사도 유지 보수해야 하고···
저 멀리 강철의 도시이자,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가 조금씩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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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회의실
쾅!
주먹이 테이블을 두들겼다. 둔탁한 소음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빌어먹을 잽스들이 이렇게 통수를 쳐?”
신분 만들어 주고 집까지 해줬다. 거기에 들고 온 금이니 총화기에 폭발물까지 눈 감아 줬더니, 냉큼 국토안보부에 가버려?
“대체 이 새끼들이 왜 이러는 거야?”
“붙여준 직원이 자기들을 감시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게 씨발 말이 돼? 갱단이랑 카르텔 새끼들이랑 지랄 한 거 뒤까지 봐줬잖아? 우리 애가 옆에 있었으니 넘어갔지, 갱단이고 카르텔이고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사람을 그렇게 죽여 놓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어? 우리 애들이 뒤처리까지 다 해 줬더니, 이렇게 갚아?”
“······.”
이 새끼들 지옥 같은 일본에서 아무런 피해 없이 탈출했다고 했을 때부터 낌새가 느껴졌었다. 변종 따개비로 거래를 걸었을 때도 그랬다. 국토안보부랑 엮어 자기들 잇속을 차리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 그때 그냥 처넣고 봤어야 했는데···.
“그 새끼들 금괴 밀수랑 불법 총기 밀수로 찌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국토안보부에서 이미 다 처분했다고 합니다.”
“개 썅!”
쾅! 쾅! 쾅!
설마 국토안보부가 대놓고 작업 친 건가? 좋다. 새끼들이 손에 손잡고 통수친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멀쩡했던 우리 애가 죽은 건 어떻게 할 건가?
띠- 띠- 띠-
인터폰이 울렸다.
“뭐야?”
[검시 결과 나왔습니다.]
“바로 올려.”
[올렸습니다.]
모니터 화면에 검시 결과가 떴다. 사인은 심장마비.
“심장마비? 허- 심장마비라고?”
초년생도 아니고 3년 차, 건장한 직원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특이사항에 눈이 갔다. 뇌경색 증후 있음.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옴. 전반적으로 혈관과 근육이 심각하게 수축한 상태라는 소견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액이 뭉쳐 혈전이 생기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알아.”
대체 뭔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이렇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정직원이 심장마비를 일으킬 정도의 스트레스가 뭐가 있을까?”
“다른 흔적은 없었습니다.”
검시 결과에도 고문이나 학대 같은 흔적은 전혀 없었다.
“살해 위협?”
“아닐 겁니다.”
정직원이 고작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죽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이 새끼들 뭔가 있기는 있는데. 그게 뭔지 잡히지 않았다. 눈물 문신 카르텔 놈과 칼 들고 설친 영상을 보면 일반인은 아니었다.
“잡아 오는 건 어렵겠지?”
“··· 현장 직원이 너무 부족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보로 보면, 정예 요원들을 대거 투입한다고 해도 우리 측 희생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분명히 놈들에게 뭔가 있어.”
영상에서 봤던 반응 속도. 초점이 맞지 않고 나중에는 먼지 때문에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영상이었지만 확실한 건 일반인이 반응할 수 있는 반사신경이나 속도는 아니었다.
약일까? 카르텔 놈들은 약이 분명했다. 그럼 잽스는? 현장에 있던 직원이 순직하지 않았다면 그놈들이 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DEA 쪽에 찔러보면 어떨까?”
“국토안보부에서 걔들 자기네 프리랜서라고 박았습니다.”
삐-삐-삐-삐-
붉은색 빛을 깜박이며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LA에 폭동 징후가 있다고 긴급 통신이 왔습니다. 무장한 갱단과 카르텔의 움직임도 이상하다는 연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