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36
LA에서 폭동 조짐이라는 소리에 버지니아가 발칵 뒤집혔다. 예전과는 달리 LA 지역엔 많은 벤처 기업들이 있었다. 기업들이 몰린 곳에 불똥이라도 튄다면 정말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데 폭동 조짐이야?”
대체 이유가 뭔데? 이번에도 흑인이야? 아니면 라틴계? 대체 뭐가 문제야? 요즘 히어로 영화에서도 백인은 들러리로 등장한다고!
“과잉 진압 논란이 또 터진 건가?”
“아닙니다. 마지막 보고로는 갱단과 카르텔을 중심으로 피의 복수를 운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복수? 씨발 범죄자 새끼들이 복수는 무슨 복수? DEA 쪽에서 뭐 했었나?”
“최근 LA 쪽에 워낙 사건이 많아서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FBI 쪽 사건도 6건이나 됐고 DEA도 9건, 국토안보부 쪽도 3건, 저희 쪽도 7건이나 있었습니다.”
“폭동이 터진 건 아니지?”
“아직 터진 건 아닙니다.”
“협상팀 보내서 폭동 터지기 전에 일단 막아. 힘들면 시간이라도 끌고.”
“국토안보부에서 사건 넘기라고 협조 요청해 왔었습니다.”
“지랄하지 말라고 해. 일을 똑바로 했으면 폭동 일어나기 전에 막았어야지. 우리가 정리한다.”
“잽스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래서. 그 새끼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데?”
“러스트 벨트 방향입니다.”
“러스트 벨트 어디?”
“도로를 보면 디트로이트가 유력합니다.”
“디트로이트?”
“예.”
“병신 같은 잽스군. 가도 하필 디트로이트라니.”
옛날 디트로이트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었나 본데, 잽스들이 자기 발로 기어들어 가면 좋은 일이었다.
디트로이트 파산 이후, 백인들은 전부 떠나고 남은 건 흑인들이었다. 인종 비율로 따지면 흑인 비율이 82%가 넘는 도시. 도시의 어둠을 흑인 갱단이 꽉 틀어잡고 있는 브라더의 도시.
거기로 동양인이 들어간다고? 눈에 확 띄겠네.
백인이 인종차별 어쩌고 한다지만, 흑인은 인종차별 하지 않을 것 같나? 잘된 일이었다. 여차하면 갱단에 펌프질 좀 해서 정리할 수도 있겠고.
“당분간 그냥 둬도 되겠군. 잽스들은 위치 관리나 하고. LA에 집중하자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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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담장. 벽 한쪽이 뜯겨 나간 집.
“어- 저기- 여기 정말 괜찮은가요?”
간호사가 불안한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시를 순환하는 외곽도로 주택가는 완전히 폐허였다.
신문이나 뉴스에는 ‘재건하는 도시, 부활을 꿈꾸는 디트로이트.’ 이딴 소리만 있었지 아직도 이렇게 심각한 상황일지 몰랐다.
선행하는 트레일러트럭에서 국토안보부 직원이 무선을 넣었다.
[이제 바로 시내로 들어갈까요?]
“아뇨 조금 더 돌아봤으면 합니다.”
[예. 그럼 호수 인근부터 강변을 타고 올라가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유네스코 어쩌고 문화예술이니, 저쩌고 디자인 도시니 레트로 감성이니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직접 본 디트로이트 바깥쪽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간호사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라 잃은 표정으로 변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초토화된 일본과 비슷한 풍경에 PTSD가 돋는 것 같았다.
“괜찮음?”
백미러로 간호사를 봤는지, 멘탈 관리에 들어가는 김 양이었다.
“아- 예-”
“이쪽만 이러니까 괜찮음.”
김 양의 말대로 호수 인근 조망 좋은 곳으로 가자, 점점 멀쩡한 거리로 변했다. 걸어서 5분 10분 안쪽에 폐허가 있고, 바로 붙어 멀쩡한 거리가 이어지는 풍경.
강과 호수 건너편은 윈저 국제공항이 있는 캐나다였다. 명품 아웃렛은 캐나다 쪽에 있어 주말이면 사람들이 그쪽으로 쇼핑하러 가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부터 쭉 위로 올라간 뒤, 돌아서 시내로 진입하겠습니다.]
“예, 되도록 주요 도로를 타고 들어갔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선행하는 트레일러트럭을 따라 강변도로를 타고 도시 중심가 외곽을 반 정도 돌은 뒤, 국토안보부에서 매입한 건물을 확인했다. 고를 수 있는 건물은 총 3개.
첫 번째는 디트로이트 시내 건물들이 밀집한 곳에 있는 지하 3층 지상 25층짜리 빌딩이었다. 이곳을 고른다면, 간호사가 다닐 만한 병원이 가까웠다. 도보로도 다닐 수 있을 정도?
캐나다로 가는 것도 수월했다. 윈저 터널이 코 앞이었으니까. 단점은 방치된 기간이 조금 길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어떻습니까?]
“다른 곳도 봐야겠네요.”
두 번째는 강에 딱 붙은 오래된 건물이었다. 앰버서더 브릿지가 가까웠고 공원이나 선착장이 가까웠지만, 처음 봤던 건물보다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이라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지만, 그걸로 끝.
그리고 마지막 건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8마일 북동쪽에 있는 건물이었다. 3층 건물로 옆으로 넓은 형태의 건물. 예전에 일종의 카센터와 자동차 개조, 중고 차량 판매를 동시에 했던 건물이었다. 그래서 고작 3층 건물인데도 건물 높이는 10m가 훌쩍 넘었다.
[디트로이트가 치안이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어지간하시면 8마일 북쪽이 생활하시기 편할 겁니다.]
국토부 직원이 은근히 마지막 건물을 권했다.
“건물이 왜 다 이따위?”
김 양은 불만을 토로했다. 애지중지 아끼고 아꼈던 골드 들이 녹아서 겨우 이딴 건물들?
“당장 급하게 구하니까 그렇지. 일단 최악을 거르자.”
“강변. 옛날 구린 거.”
두 번째 건물이 탈락했다. 교통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입지라고 해봐야 선착장 가까운 건데, 선착장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지나다니는 차들만 많았지, 영양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옛날 건물이라서 주차장 공간도 그렇고, 쉘터로 쓰기엔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았다.
김 양은 간호사를 힐끔 보더니 조심스럽게 처음 본 건물을 골랐다. 간호사를 출근(?)시키려면 병원 가까운 건물이 좋았다. 건물도 제법 컸고. 주변에 빌딩가였기 때문에 폭격 엔딩이라든지 미사일 엔딩, 자주포나 박격포 엔딩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건물. 간호사도 출근하기 좋고, 방어와 탈출에 좋음.”
25층 정도면 저격 포인트로 나쁘지 않았다. 옥상에 헬기 착륙장도 있었고. 여차하면 옆 건물에 로프 박아서 탈출하기도 좋았다.
마루는 마지막에 본 게 마음에 들었다. 일단, 바닥 면적이 제일 넓었다. 벽처럼 창고를 옆에 짓는다거나, 컨테이너를 벽처럼 쌓기도 좋아 보였다. 기초도 탄탄해 보였고, 여러모로 공터가 넓어 마음대로 고치고 올리고 물자 비축하기에 좋아 보였다.
“여기는 어때? 그냥 땅이 넓으니까 컨테이너로 벽 쌓고 안에 이것저것 하기 편할 것 같은데.”
“저도···.”
간호사도 그나마 깨끗한 거리라 그런지 이쪽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안 됨.”
김 양은 단호했다. 골드바의 복수···는 아니었다.
“주변 건물들과 너무 떨어져 있음.”
“저쪽에 건물을 더 올리면?”
“그래도 안 됨. 공격, 방어, 탈출 전부 애매함.”
김 양의 칼 같은 절단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건물은 공중에서 핀포인트 폭격 같은 것에 취약하긴 했다. 방어하기도 빌딩에 비해 까다롭기도 했고.
그렇게 25층짜리 빌딩이 쉘터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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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공사가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다. 하지만 속은 아니었다. 전선 피복이 너무 낡아 전기공사를 해야 했고, 환기장치도 다시 갈아야 했다. 20년 가까이 방치된 엘리베이터도 고쳐서 쓰는 것보다 새로 다는 게 나았다. 하나를 고쳤더니 수리할 게 둘이 되는 기적의 현장.
김 양은 망연자실했다. 통장에서 달러가 실시간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25층 빌딩을 고치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든 단 말인가? 그래, 멀쩡한 건물이었다. 근데 이건 뭔가? 달러 먹는 하마가 아닌가?
김 양은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몇 년을 아등바등해서 2억 언저리 간신히 모았는데, 공사 며칠 하니까 2억은 고사하고 20억은 날아갈 판이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마루를 붙잡는 김 양이었다. 안 돼. 이러지 마. 이제 충분히 했잖아. 쉘터라며. 언제 개판 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돈을 쓸 필요 있음? 김 양의 눈빛은 애절했다.
“왜?”
“아직도 멀었음?”
“지하에 유류 저장고 만들어야 하고, 물탱크도 만들어야 하고, 발전 시스템도 다시 넣어야 하고, 태양광 필름도 붙이고, 태양열 시스템도 지금 알아보고 있어. 단열도 보강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마루의 말에 김 양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 3번째 건물 갔으면 그냥 컨테이너로 벽 쌓고 넓은 공간에 유조차 기름탱크 쌓아 놓고 그걸로 끝이었을 거 아닌가?
3층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어쩌고 할 것도 아니었고 엘리베이터가 저쩌고 한다고 하더라도 화물 엘리베이터 하나면 끝이었을 것이다.
그래 공중에서 폭격? 폭탄 투하하면 잘 보고 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폭탄 칼로 썰라고 했으면 될 일이었다.
그렁그렁 김 양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금이 변해서 달러가 되더니, 그 달러가 허우대만 멀쩡한 빌딩 꾸미는데 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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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팀장 하나가 자료를 올렸다.
“지금 보고 계신 자료가 LA로 간 협상단이 올린 자료입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서류를 넘겼다.
“허-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건지.”
“갱단? 카르텔? 범죄자들이 지금 LA를 인질로 잡고 협박하고 있는 겁니까?”
도시 하나를 잡고 인질극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이건 테러였다. 테러 협박이었다.
“합중국은 테러리스트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놈들의 아지트는 찾았습니까?”
“폭동을 조장하는 놈들입니다. 강력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국제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일이 커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끝내야 합니다.”
웅성웅성 회의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놈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음 사건의 책임자 신변입니다.”
화면에 휴게소와 외딴 도로가 보였다.
“M 블랙 브라더스 갱단과 피스 패닉 카르텔이 회합을 한 곳이 지금 보고 계신 휴게소입니다.”
사진이 넘어갔다. 여기저기 총알 자국과 핏자국이 남은 흔적이 떠오르고 이어서 일렬로 죽 늘어선 시신들이 찍힌 영상이 떠올랐다.
“M 블랙 브라더스 쪽에서는 갱단 중간 간부가 살해됐고, 피스 패닉에서는 카르텔 두목의 사촌 동생이 죽었습니다.”
“자기들끼리 죽은 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일으킨 자들은 휴게소에서 두 조직을 한꺼번에 정리한 뒤, 외곽도로를 타고 가다, 추격하는 두 조직과 마주쳤습니다.”
화면에는 폐차된 자동차들, 길바닥에 흥건한 핏자국만 가득했다. 이어진 슬라이드 쇼엔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이 올라왔다.
“추격한 두 조직의 조직원들 전부 전멸했습니다.”
“누굽니까?”
현장 사진을 보면 40~50명을 싸그리 죽였다는 소리였다. 착- 소리와 함께 영상이 변했다. 흐릿한 눈동자를 한 여리여리하게 생긴 동양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본 대재난에서 탈출, 변종 따개비에 대한 정보 제공을 공로로 미국 시민권을 얻은 자입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입니다.”
착착. 김 양과 간호사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가, 세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한 화면에 나왔다.
“두 조직은 이들의 신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넘겨받으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흐음- 일단, 놈들을 선제 타격했으면 끝났을 일 아닌가?”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지만 카르텔을 진압하려고 했던 마약단속국 특수진압팀이 실패했고, 갱단을 체포하려던 연방수사국 SWAT팀도 전멸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영상입니다.”
DEA에서 진입했다가 손도끼와 마체테를 든 카르텔 조직원에게 썰리는 영상이었다. 다음엔 SWAT 팀이 총에 맞아도 달려드는 갱단들에게 맨손으로 두들겨 맞는 장면이 나왔다.
“방금 그 장면, 갱이 총에 맞고서도 달려든 건가?”
“모잠비크, 모가디슈, 이라크에선 흔한 일이었는데 뭘 놀랍니까?”
“그걸 누가 모른답니까? 기관단총으로 4~5발을 맞고도 달려드니까 그렇죠.”
“크리스털인가?”
“휴게소 현장에서 소량의 크리스털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럴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난감하군. 크리스털이라고 가정하고 저들을 제압하는 건 어려운가?”
“저들을 제압하려면 군의 도움을 받거나, 정예 요원을 대거 투입해야 할 상황입니다.”
“아까 그자들을 투입하는 건?”
일을 처리하면 좋고 아니어도 좋았다.
“국토안전부 산하로 들어가 협조를 받기 전에는 어렵습니다.”
인력난인지라 정예 요원 대거 투입은 불가능, 그렇다면···.
“일단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불의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이번 일은 군에 넘기는 쪽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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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터로 리모델링하는 현장은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웅- 웅-
[블라디마루 칼린 씨.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입니다. 지금 통화할 수 있겠습니까?]
“아. 브라운 과장님. 잠시만요.”
마루가 소음이 적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번 갱단·카르텔 사건 관련해서, 버지니아에서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