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37
버지니아에서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받았다는 이야기에 마루는 입을 다물었다.
먼저 든 생각. 버지니아에서 다른 기관에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사이가 좋지 않은 국토안보국에?
그러니까 똥? 뭔가 거대한 똥을 싸질렀기 때문에 같이 똥통에 빠지자고 ‘물귀신’ 각이 아닐까?
“그런데요?”
일단 마루는 모르쇠로 나갔다. 버지니아가 국토안보국에 요청한 것을 왜 나에게 묻냐는 듯한, 태연함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
[그쪽에서 LA를 근거지로 한 갱단과 카르텔 진압 작전에 협조하길 요청했습니다.]
“그래서요?”
[미스터 칼린과 미스 킴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
마루는 위화감을 느꼈다. 합중국에는 정말 많은 정보기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정보기관만큼 무력 단체가 있었다. FBI에는 SWAT가 있듯, 각 기관에는 자체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무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투입하지 않고 김 양이랑 자신을 부른다고?
‘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초짜가 넘겼다는 영상 때문일까? 눈물 문신한 카르텔 새끼와 교전하는 장면이 일부분만 녹화됐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써먹고 싶어질 테니까.
근데 그런 이유 고작 하나만으로 사이좋지 않은 국토안보부에 손을 내밀었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러니까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것.
‘버지니아가 뒤끝이 길다고 하더니.’
꼬장일지도 몰랐다. 작심하고 꼽 주는 데 가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나? 뻗대는 게 맞았다.
“국토안보부 밑으로 갔다고 심술부리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굳이 저나 김 양이 갈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루의 대답에 이번에는 과장의 침묵이 길어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과장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닙니다. 일단 영상을 보내드릴 테니 일단 보시고,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고 과장이 보낸 동영상을 재생했다. 액션 카메라에 언뜻언뜻 비치는 군복으로 짐작해 보면 군대가 투입된 것 같았다.
군인들은 어둠을 틈타 신속하게 이동했다. 상당히 잘 훈련된 것 같았다. 수신호를 통해 방향을 전환하고, 저소음 드론을 날려 정찰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나오고 있었다.
군인들은 경계를 서고 있는 카르텔 조직원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목표를 향하고 있었다. 어두워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수로를 향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커다란 하수 터널을 지나친 군인들이 하수 터널로 진입했다. 터널은 제법 컸지만,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긴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터널과 터널이 연결된 조금 넓은 공간이 나왔다.
군인들이 다시 방향을 잡고 진입하려는 찰나, 사방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연결된 여러 터널에서 카르텔 조직원들과 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섞여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우어어어어···]
[탕타다다당]
기괴한 소리와 총소리가 터널을 울려댔다. 팔다리를 맞아도 개의치 않고 달려드는 자들. 처음에는 사지에 총을 쏘던 군인들이 머리와 가슴 같은 급소에 총을 쏴댔다.
그렇게 몇 명을 쓰러뜨리는가 싶었지만, 결국 인간의 파도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뭐 함?”
김 양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국토안보부 과장이 연락해서.”
“그건 뭐임?”
“과장이 보내준 영상.”
마루는 보고 있던 폰을 건네줬다. 영상을 본 김 양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이런 놈들 싫었다. 질기고 질척질척하고. 총잡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 약쟁이.
“어때?”
“싫음.”
“그거 말고. 국토안보국 과장이 버지니아가 우리 불렀다고 가겠냐고”
“싫음.”
돈 냄새가 나지 않았다. 휴게소랑 도로에서 만났던 애들은 그래도 누런 걸 차고, 끼고, 달고 있었는데 애들은 뭔가? 좀 없어 보이는 걸 넘어서 빈티가 났다.
그나마도 카르텔 조직원은 몇 없고 대부분 노숙자 같은 애들이었다. 이빨 누런 노숙자랑 주름살 자글자글한 빈민들이 눈 돌아가서 달려드는 영상. 저거 총알값이나 나올까?
웅- 웅-
“뭐 왔음.”
영상을 보는 도중 휴대폰이 울렸다. 과장이 또 다른 영상을 보내왔다.
“열어봐.”
이번에는 밀집된 주택가였다. 빈민들이 모여 살 법한 거리. 길바닥, 담벼락 낙서가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영상 속 그래피티(graffiti)는 예술이 아니었다. 없던 범죄도 일으킬 것 같은 배설의 현장.
김 양은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영상은 노골적인 슬랭들로 점철된 골목을 지나 한 건물을 주시했다. 이어서 검은색 위장복을 입은 타격대가 건물을 포위하고선 진입을 시작했다.
문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타격대가 안으로 들어갔다.
[꼼짝 마!]
[손들어!]
[엎드려!]
곧바로 총격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머리와 가슴을 쏴대는 타격대. 자비도 없었고 거침도 없었다.
[클리어!]
[클리어!]
순식간에 거실 공간을 피바다로 만든 타격대가 삼삼오오 인원을 나눠 위층과 지하, 각기 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클리어!]
[클리어!]
별문제 없이 수색이 진행되나 싶더니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방을 수색하러 들어간 타격대 3명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비명을 질러댔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타격대원들의 시선이 몰린 순간.
등 뒤와 바깥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방탄복 위에 맞았지만, 소총탄을 맞았기 때문인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타격대원들. 밖에서 집을 포위하고 있던 타격대원들은 어떻게 됐는지 오히려 갱단이 역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쾅!
다시 폭음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갔던 타격대원들이 침묵했다. 잠시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상이 일그러지며 꺼졌다.
“어때?”
“함정임.”
김 양의 평가에 마루도 동의했다. 타격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타격대가 오는지 몰랐다면 오든 오지 않든 폭파 준비를 미리미리 하는 놈들이라는 소린데. 그게 더 지랄 같았다.
상황을 보니, 좀 빡세 보이긴 해도 다른 기관에 손을 벌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 손실이 흔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우릴 물고 늘어지려고 하지? 델타포스나 그린베레 그런 애들 쑤셔 넣어도 될 각인데?
웅- 웅-
“네.”
[영상 확인하셨습니까?]
“예.”
[보셨다시피.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래서 버지니아에서 두 분을 요청한 겁니다.]
“이해하기 힘드네요. 미군 특수부대 있을 텐데요? 범죄자들이라면 FBI에 요청해서 SWAT팀과 협동해도 될 것 같고요. 마약 사건이니까 DEA랑 같이 가면 사람도 충분할 것 같은데 굳이 엮으려는 것 같아서 꺼려집니다.”
[··· 버지니아가 껄끄럽게 느껴지는 건 저도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단순한 상황이 아닙니다. 놈들이 LA에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럼 군대가 투입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미국은 좀 다른가? 주 방위군 그런 부대가 있지 않습니까? 폭동이 일어나면 LA 정리하는 건 금방 아닙니까?”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최대한 피해야 할 선택지입니다. 당장 LA에 폭동이 터지면 그렇지 않아도 정체가 심한 유통이 끊겨 버립니다. 거기에 예전과는 달리 여러 기업이 LA와 인근에 있습니다. 거기서 무장 폭동이 터지면 경제적 손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가 될 겁니다.]
정치적인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폭동이 터져서 주 방위군이 진압하면 중국이나 다른 인권 탄압으로 규제받는 나라들이 뭐라고 할까?
‘거봐라 미국이 주둥이로만 인권 찾더니, 일 터지니까 군대 풀어서 천안문 하는 건 똑같지 않냐?’ 이렇게 나올 게 뻔했다.
국제적으로도 골치 아픈데 국내적으로는 더 난리가 날 게 뻔했다. 당장 갱단과 카르텔이 쥐고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흑인들과 히스패닉 계열이었다.
‘흑인이라서 죽었다.’
‘백인이었으면 군대 투입했겠냐?’
‘히스패닉이라서 죽었다.’
‘난민들 죽이려고 군대 풀었냐?’
폭동 터지는 것도 미치겠는데 군대 진압은 정말 답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 LA 폭동이 터졌을 때도 처음에는 군과 무장경찰이 방어만 했었다.
“폭동 일으킨다고 협박하면 그거 테러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러니까 테러로 규정하고 정밀 폭격으로 쓸어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특수부대를 투입하기보다 그냥 폭발로 끝내면 되지 않나 싶었다.
[영상에서 보셨겠지만, 갱단은 빈민가와 인접해 있는 데다, 거점을 한곳에 두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있다면야 폭격도 옵션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조급한 상황이라면 어렵습니다.]
“카르텔도 그런가요?”
카르텔은 더 심했다. 이 새끼들은 두더지에 빙의라도 했는지 땅을 파고 아지트를 만들었다. 도시 아래 깊은 땅속을 파고들어 자리 잡았기에 폭격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수부대가 진입했던 수로와 하수 터널이 놈들 아지트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하나였습니다. 폭격하기도 그렇다고 폭파하기도 여의찮은 곳에 자리 잡은 놈들이죠.]
러시아는 체첸 반군에게 우라를 해버렸고. 중국은 천안문에서 중국했었다. 최근엔 위구르에서 중국놀이 중이고. 그걸 문제 삼았던 미국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겠다는 건가?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군대 한 번 잘못 보내고 폭탄 한 번 잘못 떨궜다가 경제와 정치가 한꺼번에 나락 갈 위험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그래도 저와 김 양을 콕 집어서 지원 요청한 이유를 모르겠네요.”
[······‘M 블랙 브라더스’ 갱단과 ‘피스 패닉’ 카르텔이 지금 문제를 일으킨 갱단과 카르텔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애들이었다. 스피커 폰으로 듣고 있던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걔들이요.”
[두 분에게 죽은 갱과 카르텔 조직원 가운데 보스의 친동생, 사촌 동생, 애인과 친구, 아끼던 부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건 관계자를 넘기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키겠다고 했답니다.]
어-
음-
마루와 김 양이 서로 마주 봤다.
‘좆됐나?’
‘좆됐음.’
‘그러니까 LA에 폭동 터지면, 그 원인이 우리한테 있다고 할 각이란 소리지?’
‘ㅇㅇ’
애들을 그런데 보냈으면 뒈질 각오를 해야지 뭔···. 복수하겠다고 지랄하는 거라면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버지니아에서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타격대를 보내고, 실패하면 두 분의 신상정보를 갱단과 카르텔에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씨발.”
“썅-”
마루와 김 양의 입술이 동시에 열렸다. 이제 좀 쉘터 만들어 놓고 남은 기간 여행도 좀 하고 여유도 좀 부리고 그러려고 했더니 초장부터 풍년이 들었다.
[대만, 우크라이나, 일본이 동시에 심각해진지라, 특수부대를 더 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검증된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루가 김 양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어쩔까?’
‘조지셈.’
안 간다고 하면? 영상을 보니 또 보내봐야 털릴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또 털리고 나면 버지니아는 폭동 막겠다고 김 양과 자신의 신상을 넘길 거고. 놈들이 여기까지 꾸역꾸역 기어 올 게 뻔했다.
기어 오는 새끼들 잡다가 디트로이트에 있는 갱단까지 엮여 버리면? 매일 밤 피칠하고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간다?’
‘가셈.’
김 양이 눈빛을 보냈다.
“너는?”
“어-”
마루의 눈을 피하는 김 양이었다.
가봐야 땅거지 새끼들이라 돈도 안 될 것 같고. 버지니아도 그렇고 타격대에 군도 있을 거 같은데 걔들이랑 같이 들어가면 파밍도 힘들 것 같고.
맞다. 무엇보다 섬세한 유지보수와 안정적인 관리가 필요한 우리 간호사는 어떡하고 가겠는가? 이 험난한 어둠의 디트로이트에 여리고 가녀린 우리 간호사를 혼자 두고 떠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래.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이며 비도덕적인 행동이었다. 김 양이 홱 당당하게 마루를 봤다.
“안 감.”
김 양의 단호한 표정에 마루가 고개를 돌렸다.
“버지니아에서 조건은 뭐라고 하던가요?”
[조건 말입니까?]
과장은 뜬금없이 나온 조건에 물음표를 띄웠다. 신상 공개 안 되려면 무조건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국토안전국 산하 프리랜서로 등록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죠.]
그런데? 프리랜서라고 해놓고 무료 봉사하라고? 신상 깐다고 협박해서 무료 봉사?
신상 까져서 여기로 몰려오면 피곤하겠지, 피 칠갑하겠지. 이쪽 동네 갱단까지 엮이면 정말 짜증 나겠지. 그렇다고 호구가 될 수 있나? 그렇게 한 번 두 번 엮이다 보면 계속 엮으려고 할 텐데?
마루는 기순과 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피를 보지 않으려면 피 보는데, 돈이 많이 들면 됐다. 그냥 많은 돈이 아니라, 아주 존나게 많은 돈.
“그러니까 지금 LA 폭동을 막는 작전에 들어가는 거네요. 터지면 엄청나게 상황 복잡해지는 폭동을 막는 작전 맞죠?”
[···그렇습니다.]
과장도 마루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감을 잡았다.
‘안 감.’했던 김 양이 ‘뭔가?’ ‘뭔데?’ 하는 얼굴로 변해 초롱초롱 마루를 봤다.
“여기 빌딩 공사비가 좀 그런데 여기 공사비랑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 대금으로 가능할까요?”
[···그렇게 협의하도록 하지요.]
공사비랑 물건으로 퉁이라는 말에 김 양의 기대했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갱단이랑 카르텔 아지트에서 나온 금붙이는 이쪽에서 챙기겠습니다.”
[금 말입니까?]
“예. 금붙이만요.”
[그것도 협의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장과의 통화가 끝나고 마루가 김 양에게 물었다.
“안 감?”
“감!”
김 양이 발딱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