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39
저공 비행하는 헬기
마루는 보급받은 칼을 뽑아 들었다. 무광 흑색 칼날. 숯을 칠해 놓은 것처럼 짙은 검은색 칼날의 표면은 거칠었다. 울퉁불퉁한 굴곡이 피가 흐르게 파놓은 혈조처럼 칼날 전체에 있었다.
띵-
단단한 느낌. 부러지지 않고 이가 나가지 않는 칼을 원했는데, 기존에 쓰던 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러면 깨지지 않을까? 너무 단단하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오히려 깨질 수 있는데.
써보면 될 일이었다. 스로인 나이프와 칼 하나, 대형 쿠크리 하나, 글록 19, 2자루에 탄창 8개만 했는데도 제법 묵직했다.
신형 방탄복은 아직 양산되지 않은 시제품이었다. 그래핀 소재에 여러 방탄 소재를 겹쳐 만든 옷이었다. 도톰한 검은색 니트나 폴라티 같은 디자인. 최첨단 방탄복이라기보다 어디 할인점에서 막판 떨이 재고 물량 대충 입고 나온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공대생들 패딩 안에 입는 딱 그런 느낌의 옷. 심지어 색도 검은색이었다. 고급스러운 검은색이 아니라 무광에 칙칙해서 때 타지 않게 생긴 작업복 같았다.
“그냥 찐- 같음.”
김 양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방탄복을 품평했다. 김 양은 착한 마음으로 찐- 다음을 그냥 생략했을 뿐이었다.
“찐다, 같다고?”
“······.”
침묵은 때론 강한 긍정인 법. 김 양은 흥-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기분 좋게 기다렸었는데, 대전차 미사일이 없었다. 대전차 지뢰도 없었다.
바렛은 있었지만, 총알이 아니었다. 분명히 미국에는 12.7mm 열화우라늄 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없었다. 고작 철갑탄만 줬다.
바렛에 쓰는 저격용 철갑탄이 나쁜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열화우라늄 탄 정도는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텅스텐 철갑탄이라도. 그나마 샷건이랑 샷건에 쓰는 스마트 탄은 왔으니까 다행이라고 할까?
폭발물도 요구량의 절반도 안 됐다. 수류탄은 20발을 요구했는데 꼴랑 6발. 연막탄과 최루탄, 섬광 폭음탄 전부 요구량의 20~30% 정도였다. 방독면과 정화통도 그랬고 산소마스크는 아예 컷 당했다.
연막탄 가운데 백린탄은 꼭 필요했는데, 그것도 안 줬다. 진짜 제대로 약빤 놈들이랑 싸워본 경험이 없는 건가? 모잠비크 드릴 드립 하는 걸 보면 분명히 약쟁이들이랑 싸워 본 경험이 넘칠 텐데.
“백린탄 잘렸음.”
“그럼 그게 통과될 줄 알았냐?”
아재칼을 닦던 마루는 어이없었다. LA 갱단과 카르텔 잡는데 백린탄을 쓰자고? 그거 금지 무기 아니었나? 썼다가 사진이라도 한 장 찍히면 그냥 난리 날 텐데?
“백린 연막이면 약쟁이도 비명 지름.”
“비명 지르게 해서 뭐하게? 그거 쓰다가 걸리면 좆되는데 주겠냐?”
“어설프게 갔다가 좆되는 것보다 나음.”
“그야 맞는 말이기는 한데, 우리만 가는 것도 아니지 않냐? 특수부대랑 버지니아 애들이랑 같이 가는데 그런 거 함부로 못 쓰지.”
김 양의 경험상 마약 조직 약쟁이랑 싸우는데 이거저거 다 재면, 제발 뒈지겠다고 고사 지내는 거였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백정이 옆에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짜증 남.”
김 양은 짜증 났다. 개-짜증 났다. 총알도 마음에 안 들지, 방탄복은 병맛 스타일, 백린탄도 없고, 독가스탄도 없었다. 대전차 미사일도, 대전차 지뢰도 빠꾸먹었다.
이러다가 장갑차나 방탄차 나오면 어쩔 건가? 저쪽에서 RPG 때려 박고 그러면 어쩔 건가? 마약 조직이랑 싸울 만큼 싸워봤을 텐데 그걸 모르나? 아니면 알면서 좆 박으라고 그러는 건가?
“왜 그러는데?”
“짜증.”
그냥 시작하자마자 ‘다 뒈져라-’ 해버릴 것임. 김 양은 다짐했다.
그렇게 마루와 김 양이 탄 헬기가 비행장에 착륙했다. 국토안보국 직원들이 짐을 내려 비행기에 옮겨 실었다. 디트로이트에서 LA까지는 일반적인 비행시간으로 대략 4시간~ 시간 30분 걸렸다.
“지금 출발하면 작전 시간 3시간 전에 도착하게 됩니다.”
“새벽 4시에 진입한다고요?”
4시면 너무 이르지 않나? 한 시간 더 늦춰서 5시쯤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예. 자세한 자료는 비행기에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제트기는 미끈하고 날렵했다. 뭔가 자주 타던 항공사 대형 비행기와는 다른 느낌. 이런 비행기를 처음 타본 김 양이 조그맣게 감탄했다.
‘오-’
영화에서나 봤던 비행기. 안은 더 예술이었다. 널찍하고 푹신한 좌석. 넓은 공간. 그리고 이쁜 언니들.
“필요한 것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고기.”
“식사 말씀이십니까? 어떤 것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양? 소? 닭? 돼지? 콩고기? 스튜어디스가 메뉴판을 넘기며 설명했다. 메뉴판에 있는 조리예, 맛있게 보였다. 포크 질 몇 번에 끝나게 생겨서 그렇지. 고심하던 김 양이 입을 열었다.
“고기로 5인분.”
“5인분이요?”
아, 조금 적은가? 김 양은 조심스럽게 주문을 추가했다.
“7인분?”
“······ 예. 7인분 주문받았습니다.”
마루도 김 양과 똑같이 주문했다. 조금 부족하게 먹어야지, 머리가 잘 돌아갈 것 같았다. 잠시 뒤, 마루와 김 양은 먹는데 진심했다.
“식사 잘하셨습니까?”
국토안보국 직원이 작전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김 양은 입맛을 쩝 다셨다. 잘 먹긴 했는데, 뭐라고 할까 미묘하게 뭔가 빠진 느낌이라고 할까? 맛있게 먹었지만, 잘 먹었어도 뭔가 허한 느낌.
“새벽 4시 정각에 진입합니다.”
“8팀을 둘로 나눠 4팀씩 한쪽은 갱단, 다른 한쪽은 카르텔을 동시에 칩니다.”
“5명 한 팀으로 두 분은 각각 다른 팀에 들어가게 됩니다.”
“싫음.”
바로 딴지 거는 김 양. 미쳤나? 무조건 백정이랑 같이 있어야 했다. 김 양의 강한 반발에 직원이 애매한 얼굴을 했다.
“저격이 특기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냥 총도 잘 쏨.”
“칼린 씨는 칼을 잘 쓰시기 때문에, 카르텔을 타격하는 그룹으로 가서 전위를 맡게 됐습니다. 타격 대상이 카르텔인 만큼 지하 통로로 진입하게 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직원이 서류를 보며 말했다. 카르텔 본거지는 지하에 있었다. 수로와 하수구가 얽힌 지하. 냄새나고 노숙자들이 군데군데 있는 모습이 자료에 있었다. 냄새가 많이 날 것처럼 보였다.
김 양은 저번에 본 영상을 떠올렸다. 하수구와 수로에서 싸우는 장면, 막힌 곳에서 밀려드는 약쟁이들. 앞에 마루가 있으면? 그런 애들은 몇 명이 달려들어도 끝이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곳에서 구르는 게 싫긴 했지만, 안전빵이 ‘있냐?’, ‘없냐?'는 ‘사느냐?’. ‘죽느냐?’의 차이였다. 생각할 게 뭐 있겠는가? 무조건 같이 가야 했다.
“지하로 결정하시면 바렛은 다른 팀에 넘기겠습니다.”
지하에선 저격할 일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에서 저격하기로 하고 가져가는 건데, 빠지면 다른 팀에서 저격해야 할 것 아닌가?
어? 님아? 내 바렛을?
순간적으로 김 양이 결정장애 상태에 빠졌다. 그런 김 양을 두고 직원은 설명을 계속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적 지휘부의 확실한 제거. 그리고 갱단과 카르텔이 보유한 마약을 완전히 없애는 것입니다.”
“확실한 제거입니까?”
“예. 지난번 작전에서 지휘부 검거를 목표로 했었던 것이 더 큰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완벽히 제거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꿨습니다.”
“근거지를 타격할 동안 폭동을 막을 방법이 있는 건가요?”
마루는 그게 궁금했다. 이미 버지니아와 군에서 타격대를 보냈었다. 타격대를 잘 막기는 했지만, 무력을 동원해 자신들을 잡으려 했으니 폭동을 일으켰어도 일으켜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계속 일으킨다고 협박만 하고 있었다.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다지만, 대규모 폭동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폭동이 크게 번지려면, 무지성으로 분노할 촉매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LA와 인근 도시에는 별다른 큰일이 없었다.
따라서 놈들이 LA에서 폭동을 일으키려면 그만한 사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폭동이 막 터질 것처럼 속이고 그걸 강경 진압하게 유도함으로써, 폭동에 필요한 증오를 모으려고 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하는 질문마다 답을 들었지만, 마루는 뭔가 찝찝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찝찝함을 알아챘는지 직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더 했다.
“이건 비공식적인 이야기지만, 배후에 중국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 중국이요?”
“중국 정부의 개입이든지 아니면 중국 폭력조직의 개입이든지.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리스털 때문이군요.”
“그렇습니다.”
샬롯의 버서커 폴과 비슷한 약인 크리스털이 풀렸을 때부터 조짐이 있기는 있었다. 다만 심증이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그래서 개입한 증거를 찾기 위해 조직의 지휘부를 생포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만 더 키운 꼴이 됐습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직원은 팀의 작전을 설명했다. 간단했다. 카르텔을 타격하는 4개 조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진입하는 것. 골자는 참수 작전. 4개 조 가운데 어떤 조든 지하에 있는 본거지에 돌입 적의 지휘부를 전멸시키면 됐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루와 같이 카르텔 타격대에 들어가 바렛을 반납할 것인가? 아니면 갱단을 공격하는 팀에 들어가 바렛으로 저격할 것인가? 결정장애에 빠진 김 양에게 묻는 직원이었다.
“30분 드리겠습니다. 결정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
======
======
참수 작전 지휘부는 고요했다.
“빌어먹을···.”
검거에 한 번 실패해 그렇지 않아도 위험한 작전이 더 위험해졌다. 검거에서 참수로 작전의 방향을 바꿨어도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에서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갱단은 외곽에 있는 빈민들을 불러 모아 고기 성벽을 쌓았고, 카르텔은 멕시코나 남미에서 하는 것처럼 주변 난민들을 끌어모아 고기 방패로 삼고 있었다.
‘정말 하겠다는 건가?’
폭동을 터뜨리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뒤는? 감히 합중국을 테러하고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지옥 끝까지 가서 결국 죽을 게 뻔했다. 그런데도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다른 국가 개입했음이 분명했다.
“작전을 중지할까요?”
이대로 가면 빈민과 난민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안 돼. 놈들이 어떤 방법을 쓰는지 머리를 내민 지금 잡아야 해.”
지금은 LA지만 다른 대도시에서 이런 일들이 안 터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금 초장에 짓밟아 버려야, 그걸 본 다른 도시의 범죄 조직이 함부로 엉뚱한 짓거리를 하지 못할 것이다.
“후- 그래. 크리스털을 분석한 건 어떻게 됐나?”
“결정은 확인했는데 어떻게 합성한 건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효과는? 놈들이 쓴다면 우리도 쓸 수 있지 않겠나?”
“효과는 확실하지만, 위험한 약물입니다.”
“위험하지 않은 약이 어딨어?”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일단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거의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장기와 근육 신경이 손상됩니다. 지속시간이 일반 전투자극제나 마약보다 길지만, 그만큼 손상도 심합니다.”
중독성도 그랬다. 한 번 약을 하면 뇌가 맛이 갔다. 이딴 걸 사람에게 투약하고 지랄했으니 진압하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버지니아에서 공들여 영입했다는 잽스들은 어떻게 됐나?”
“오고 있습니다.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새벽 4시 진입.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어쩐지 초조했다. 자신의 군 경력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합중국의 안보였다.
‘감히. 고작 범죄자들 따위가, 합중국의 안보를 협박하다니.’
모조리 죽여야 했다. 싸그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렇지 않으면 놈들은 독버섯처럼 퍼져 합중국의 안보를 계속해서 위협할 것이다. 그게 눈에 보였다.
까득-
“용량 절반으로 해서. 앰풀 주사 만들어 타격대에 지급해.”
“···크리스털 말씀이십니까?”
40명이 투입되는 참수 작전이었다. 두 번 실패는 없어야 했다. 그 끝이 지옥이더라도 이번에 끝을 봐야 했다.
“문제가 된다면 책임은 내가 진다. 해.”
“···알겠습니다.”
쓰고 안 쓰고는 이제 타격대 개인의 몫이었다.
“소령님. 보안전문가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헐렁헐렁한 후드를 입은 사람이 쑥 들어왔다. 캡모자를 쓰고 후드를 두르다 못해 마스크까지 해서 보이는 것은 눈언저리밖에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나?”
해커 새끼. 범죄자 주제에 형량 협의를 한 놈이었다.
“그렇습니다.”
변조된 목소리. 이게 남자 새끼인지 여자인지 모를 변성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작전지역 CCTV를 차단하고, 전부 통제해야 하는데 가능한가?”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후드였다.
“좋아. 작전은 새벽 4시. 시작하자마자 인근 전체를 장악하도록.”
말없이 인사한 후드가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겨울, 어둠이 깊은 시각. 작전이 시작됐다.
======
======
낙서로 엉망인 건물 옥상.
바렛을 꼭 끌어안은 김 양이 스코프를 만지작거렸다. 최첨단 스코프였다. 난생처음 보는 스코프. 무슨 무슨 광학 장치에 디지털식 어쩌고를 통합해서 컴퓨터 칩으로 중력까지 계산, 그 결과를 저쩌고 한다는 건데.
시험 삼아 쐈을 때 쩔었었다. 뭐라고 할까 감각을 보정 하는 느낌. 저격하는 데 뭔가 날개가 돋은 것 같았다.
총알도 그랬다. 저격용 12.7mm 특수탄. 대충 구경 맞는 총알 넣고 쏘다가. 한 발 한 발, 한 땀 한 땀 정밀하게 가공된 탄을 쏘다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바렛을 들고 올라오긴 했는데.
[치직- 3분 뒤 진입.]
김 양이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스코프에 비치는 모습. 창문 뒤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진했다.
거리 1.8km
북동풍··· 습도···
자동으로 장치가 계산하고 조정해줬다. 여기에 김 양 특유의 감각이 더해졌다.
···
···
[3]
[2]
[1]
김 양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