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41
끼기기기기------
시멘트벽을 긁으며 쇳소리를 내는 금속 배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흐린 라이트. 적외선 카메라를 쓴 놈의 느릿한 움직임.
그쪽에 신경이 집중되는 순간, 날아오는 것.
부웅-
쇠구슬?
배수로 옆쪽 천장에 맞고 튕긴 둥그런 것이 마루의 등 뒤로 굴렀다.
끼기기기기----
팅!
배트로 벽을 때리는 놈. 마루의 신경이 앞으로 쏠렸다.
씨익?
놈의 미소가 거슬렸다. 마루도 같이 미소 지었다.
팍- 마루의 일보에 10m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와 동시에 마루의 등 뒤에서 뭔가 터졌다. 좁은 배수구에서 터진 폭발!
폭음이 배수 터널을 타고 울렸다.
!!!
파편이 마루의 등판을 사정없이 때렸지만, 신형 방탄복의 방어력과 앞으로 뛰쳐나가는 중이라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등판을 두들기는 파편에 마루의 감각이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동공이 확장됐다. 순간순간 슬라이드 화면처럼 변하는 풍경.
“!”
놈의 움직임이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느릿하게 인지됐다.
끼-----기--- 기----
벽을 긁던 금속 배트를 횡으로 휘두르려는 모습이 길게 늘어졌다. 씨익 웃던 입꼬리가 ‘0’처럼 벌어지며 뭔가 소리를 내려 했다.
“ㅇ ㅏ··· ㄴ···”
놈의 바로 앞으로 순간 이동 하듯 다가선 마루가 내디딘 다리에 힘을 주자, 철근콘크리트 배수로에 발자국이 찍혔다.
콰직- 바닥을 찍은 걸음이 수평으로 쏘아진 힘을 수직으로 밀어 올렸다. 발바닥에서 종아리, 종아리에서 허벅지, 허벅지를 타고 회전하며 치솟은 힘이 허리를 돌리는 원운동으로 변했다.
끼릿-
뜨겁다. 마루는 문득 그런 느낌을 받았다.
찌릿-
그 뜨거움을 무시하고 칼을 휘둘렀다. 허리에서 뒤틀어진 힘이 등판을 타고 어깨, 팔뚝을 따라 칼날에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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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간에 불똥이 튀었다. 파다닥 튀었던 불똥이 길게 꼬리를 물고 사라졌다. 배수로 벽에 뭔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깊게 파였다.
그렇게 마루는 놈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일직선으로 쭉 이어진 흔적 끝에 잘린 금속 배트를 들고 있는 놈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고, 걷지도 못했다. 단지 ‘0’ 벌어진 입술이 부르르 떨릴 뿐. 뭔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그런 절박함이 사선으로 무너졌다.
철푸덕-
축축한 바닥에 붉은 방울이 튀어 올랐다.
마루는 곧바로 허리춤에 달고 있었던 섬광 폭음탄을 뽑아 앞으로 던졌다. 허공에서 교차하듯, 저쪽에서 던진 동그란 것이 마루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왔다.
방패로 밀어 치듯 날아오는 둥그런 것을 앞으로 때려낸 마루가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번쩍이는 섬광과 이어진 폭음. 바로 연달아 터진 수류탄의 폭발 뒤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마루의 손에 들린 어둠이 비명을 쫓았다.
부카카칵!
눈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놈의 주둥이를 자기 엉덩이와 상견례 시켜준 마루가 허공에 칼질했다. 픽- 공기 썰리는 소리와 함께 칼날에 묻은 피와 지방이 떨어져 나갔다.
놈들은 보호구를 입고 있었다. 방탄복이라고 할까? 아니면 갑옷이라고 할까? 금속 배트 들고 있는 녀석을 갈랐을 때도 느꼈지만, 단단했다. 그러니까 최 전무 아재랑 같이 다녔던 자들과 비슷했다.
단순한 소총으로는 잡기 힘들어 보였다. 산탄총도 이런 방어구를 입고 있으면 큰 효과를 보긴 힘들었고. 수류탄 파편도 어느 정도 막은 것을 보면, 다른 곳으로 들어간 타격대들이 쉽진 않을 것 같았다.
처음 진압 실패 영상에서는 이런 놈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리고 여기에 크리스털까지 쓴다면? 답이 없었다. 대구경 총을 쓴다고 하더라도 머리나 몸통 급소를 맞추지 못하면 팔다리 하나쯤 뜯겨 나가도 달려들 거고.
‘수류탄이고 쇠구슬이고 일반인이 그렇게 던질 수 있나?’
금속 배트 놈은 모르겠지만, 쇠구슬과 수류탄 던진 녀석은 확실히 일반인 근력이 아니었다. 마루는 자기 엉덩이에 코를 박고 있는 놈의 머리통을 바라봤다.
신체 능력도 까다롭지만, 머리 쓰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한 쇠구슬을 던져 선입견을 심어 놓고, 나중에는 둥근 세열 수류탄을 던졌다. 자신이야 특수 방탄복을 입고 있어서 안전했지만, 다른 타격대원들은 어떨까?
무엇보다 이런 놈이 몇이나 될까?
무광 검은색 칼날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팅- 짧게 울리는 딱딱한 칼날. 뭐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단단했다. 이도 나가지 않았고.
멀리서 총소리와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터널을 타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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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상황실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수월하게 진행되던 초반과 달리, 타격대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중독자들이 계속 몰리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빌어먹을 약쟁이들! 대체 몇 명이야? 이제까지 몇 명을 잡았는데 아직도 기어 나와!”
카르텔과 교전하는 타격대가 죽인 약쟁이들만 벌써 300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말이 그렇지 5명 4개 팀, 그러니까 타격대 20명이 300명을 넘게 죽였으면 1인당 15명 넘게 죽였다는 소리였다.
“LA 인근 마약 중독 노숙자들의 절반만 있다고 가정해도 세 자리 숫자가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후- 숨이 턱하고 막히는 숫자였다. 로스앤젤레스 다운 타운의 스키드 로 (Skid Row) 지역은 대규모 노숙자 지역으로 유명했다. 몇천 명이 넘는 노숙자들 가운데 40%가량이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다. 40%의 절반이라고 해도 500명은 훌쩍 넘을 판.
“약쟁이들이 문제야 약쟁이들이. 거기에 난민들도 있겠지?”
“예. 불법체류자들까지 합하면 네 자리 숫자까지 봐야 합니다.”
약 빤 것들 네 자리 숫자에, 중간중간 무장한 카르텔 조직원들과 교전할 것까지 생각하면 총알이 먼저 바닥날 판이었다.
“지원부대 추가로 투입하도록 해. 보급도 최대한으로. 계속 밀어 넣다 보면, 잡든지 아니면 놈들이 밖으로 내빼겠지.”
“알겠습니다.”
참수 작전으로 깔끔하게 끝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뒀다. 놈들이 밖으로 쫓겨나는 순간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의 포위망이 조여올 것이다.
시내로 흩어지거나 기업체들이 밀집한 곳으로 가지 못하게 도로를 차단했고 무장 헬기도 대기 중이었다.
지하에서 죽거나 나와서 죽거나. 놈들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범죄 조직 따위가 합중국을 협박해?’
“갱들 쪽은 어떻게 되고 있어?”
“그쪽이 좀 더딥니다.”
“왜?”
“빈민가 사람들이 계속 갱들을 보호하는 바람에···.”
“뭐? 갱 새끼들이 민간인을 인질로 잡는 것도 아니고, 빈민들이 자발적으로 갱들을 보호하고 있어?”
“빈민가 사람들의 자식이나 친척, 친구일 테니까 말이죠.”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갱단은 내 가족, 친척, 친구니까 쏘지 마라? 미친 새끼들 아닌가? 하긴 남미 카르텔 진압했을 때도 그랬다. 한 마을 전체가 타격대를 공격했었다. 늙은 꼬부랑 노인부터 10살 먹은 아이까지. 온 마을이 적이 됐던 일.
“사정 봐주지 말고 전부 쓸어버려.”
“······.”
“뭐야? 왜 대답이 없나?”
“비무장 일반인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하신 겁니까?”
지휘관이 담배에 불을 붙여 길게 빨았다.
후-
세상 참 좋아졌다. 17~18년 전만 하더라도 테러 지랄하는 새끼들은 그냥 생으로 때려잡았었는데, 고작 20년도 채우지 못하고 머리가 꽃밭으로 변한 애들이 넘쳤다.
후-
지휘관은 다시 깊게 담배를 피웠다. 두 번 만에 절반 이상 타들어 간 담배가 지휘관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야- 시간 끌다가 갱들 놓쳐서 그 새끼들이 테러하면?”
“······.”
“그 새끼들이 탈출에 성공해서 LA에 폭동이 터지면?”
“······.”
“놈들이 그냥 미친 척하고 약을 뿌려 버리면?”
“······.”
“그래서 생기는 무고한 희생이, 지금 갱단 쉴드치고 있는 범죄자 새끼들 죽이는 것보다 작을까? 작전이 실패해서 일이 터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 자네가 지나?”
“······.”
작전 지휘실에 있는 사람들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
“EMP를 터뜨렸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해커도 준비하고 있어. 모든 책임은 명령을 내린 내가 진다고 했다. 그런데도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합중국의 군인은 민간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민간인을 향한 발포 명령을 철회해 주십시오!”
“허? 하? 자네가 보기에 내가 죽이고 싶어서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보는 건가? 합중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새끼들을 잡아야 할 거 아니야!”
“그 안보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누구를 위한 안보입니까? 시민에 대한 무차별 발포 명령은 부당한 명령입니다. 무엇보다 지휘관님의 재량을 넘어선 명령입니다.”
“너 씨발. 나가!”
부관이 나가지 않고 버텼다. 지휘관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작전 상황실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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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팀, 저격 지원 요청. 위치 34.0422894,-118.3147351]
김 양이 태블릿에 위도와 경도를 입력하자 스코프에 화살표로 방향이 표시됐다. 개편했다. 역시 자본주의는 위대했다.
위치는 잡았고 누굴 쏘라는 거야? 붉은 벽돌 낮은 건물 옥상에 갱들이 몰려 있었다. 아래를 향해 총알을 뿌리는 갱들.
쟤들 같았다.
[옥상. 적들의 저항이 심하다.]
맞네. 쟤들.
투캉- 철컥-
투왕- 철컥-
타앙- 철컥-
순식간에 날아간 3발의 총알이 5명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머리를 뚫어버린 총알이 뒤에 있는 갱의 몸통을 관통했다. 일타이피에 두 번이나 성공한 김 양은 뭔가 뿌듯했다. 역시 장비가 좋아야 했다. 그래야 했다.
[여기는 찰리 팀. 민간인들이 갱단을 둘러싸고 있다.]
응? 이건 무슨 소리?
김 양이 받은 좌표로 스코프를 이동했다. 갱들이 총을 쏘면서 이동하고 있는데 그 주위를 민간인들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었다.
[민간인들이 공격 루트를 가로막고 있다.]
[저격 가능한가?]
‘뭐지?’
미친 자들인가? 그렇지 않아도 숫자가 적은 타격대인지라, 민간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서는 갱단을 어떻게 할 수 없어 뒤로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미국은 저러면 그냥 쏴버린다고 하지 않았나? 공권력 권한이 크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네.’
EMP가 터진 구역은 정전으로 깜깜했다. 그리고 갱과 그들을 호위하는 민간인들은 정전되지 않은 구역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정전이 되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정전이 된 구역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김 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구를 겨눴다. 초조한 갱의 얼굴이 스코프에 들어왔다.
탕! 철컥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의 머리통이 터져, 굳은 놈에게도 한 방.
타앙! 철컥
머리통 둘이 사라지자 다른 갱들이 납작 엎드렸다.
응. 안 돼. 소용없어.
탕! 탕! 탕!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갱들의 머리통과 몸통에 구멍이 뚫렸다. 우왕좌왕하던 비무장한 민간인들이 엎드린 갱단 위로 몸을 던졌다.
그래도 소용없을 텐데.
김 양은 스코프 배율을 확대했다. 민간인이 몸으로 덮어 가려진 갱의 어깨가 보였다. 둔탁한 총성과 함께 갱의 팔이 떨어져 나갔다.
이어서 다른 놈의 허벅지에 총알을 꽂아 넣자, 총에 맞은 다리가 뜯어졌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였네?
탕!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던 갱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갱의 몸을 가렸던 여자가 머리통 절반이 날아간 갱의 몸을 붙들고 오열했다.
[Oh- JESUS···]
[HOLLY···]
축구 결승골 넣은 선수들이 몸을 겹치는 것처럼 민간인들이 살아남은 갱을 향해 몸을 던졌다. 샌드위치처럼 겹친 사람들.
[STOP!!!]
[Enough!!!]
김 양이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뗐다.
찰리 팀이 몸으로 장벽을 쌓은 민간인들을 묶어서 떼어냈다. 순간 번쩍 뭔가 폭발했다. 갱이 자폭한 것이었다. 폭발에 휘말려 수십 명의 민간인이 핏덩이로 변했다.
[여기는 브라보. 갱이 차량에 탔다. 이스트 5번가!]
총구를 돌린 김 양의 눈에 휘청거리는 자동차가 들어왔다.
점점 속도를 높이는 자동차. 운전석에는 눈이 뻘겋게 충혈된 갱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총을 든 다른 손을 내밀어, 길거리를 향해 총을 마구 난사하고 있었다.
퉁!
낮고 묵직한 반동이 김 양의 어깨를 자극했다.
운전석을 뚫고 들어간 총탄이 갱의 머리통을 부수고 뒤에 앉은 놈까지 한 번에 꿰었다. 운전자를 잃은 자동차가 가로등을 들이받고 흰 연기를 뿜어냈다.
팅!
탄창이 비었다. 탄창을 6개나 채워놨었는데 다 썼다. 김 양은 텅스텐 철갑탄을 들었다. 탄창에 탄을 넣어야 하는데, 손에 들린 텅스텐 철갑탄이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굵직했다.
좋아.
아-
좋아-
김 양은 자기도 모르게 텅스텐 철갑탄을 뺨에 대고 비볐다. 차가운 감촉이 얕은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차갑고 강하고 묵직했다.
12.7mm란 이렇게나 든든한 걸까? 어째서 난 이제까지 7.62mm 따위를 쓴 것일까? 어째서 회사에서는 7.62mm 따위를 주면서 그렇게 생색낸 것이지?
이제까지 난 매트릭스에 살고 있었던 것이야. 회사는 나쁜 회사였던 것이야. 그래 역시 백정이랑 같이 오길 잘했어.
응. 응.
그래 맞아.
백정이랑 와서 돈도 벌고 금도······
금?
뺨에 텅스텐 철갑탄을 비벼대던 김 양의 고개가 갸웃했다.
골드?
반대로 다시 갸웃.
여기서 저격하고 있으면 금은 어떻게 파밍?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