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43
흐르는 물에 휘발유가 떠내려갔고 그 위를 녹슨 철 냄새가 덮었다.
뽀각-
마루는 전술 조명 막대를 꺾어 빛을 밝혔다. 어두컴컴했던 앞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이는 것. 앞에 있는 것은 커다란 금속 문이었다.
‘응?’
문이 있어서 닫혔나 했더니, 꽉 닫혀있지 않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꽉 물리지 않은 모습. 문을 잡아당기자, 묵직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방패를 앞으로 내민 마루가 가만히 기다렸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이질적인 감각도 전혀 없었다.
뽀각- 뽀각-
전술 조명을 꺾어 안으로 집어 던지자, 깜깜한 공간이 서서히 밝아졌다.
‘?’
여기저기 급하게 도망친 흔적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앞을 막고 있던 새끼들은 시간 끌기 용이었다는 의미.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것들이 튀었네.’
추적할까?
······
굳이?
참수 작전이 실패하더라도 놈들이 도망치게 하면 성공이라고 했었다. 밖에서 캘리포니아주 방위군과 경찰이 합심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야.
마루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도망친 놈들은 위에서 처리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수색이었다.
안쪽은 호화스럽게 꾸며진 공간이었다. 마치 귀족의 저택을 땅속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화려한 모습. 고급 양탄자가 대리석 바닥에 깔려있고 금박으로 장식된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인테리어.
그리고 한쪽 구석에 쌓인 현금의 동산. 100달러짜리와 50달러짜리로 묶인 뭉텅이들이 쌓여있었다. 한쪽 귀퉁이가 무너진 것이 급하게 담아 간 것 같았다.
허-
산전수전 다 겪은 마루도 숨이 컥 막힐 정도였다. 현찰이 산처럼 쌓였다는 걸 묘사할 도리가 없었다. 그냥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 월드 축산 지하에서 봤던 현금 뭉텅이는 여기에 비하면 발톱의 때였다.
뽀각- 뽀각-
자기도 모르게 산처럼 쌓인 현금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마루가 우뚝 멈췄다. 아니었다. 일단 전체를 수색할 필요가 있었다. 돈은 어디로 도망치지 않을 테니까. 마루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군데군데 조명을 던져 밝혔다.
툭- 툭-
전술 조명이 양탄자와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넓은 공간이 조금씩 밝아지며 한쪽 벽에 누런 반사광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전술 조명 특유의 푸르스름한 빛으로도 감출 수 없는 누런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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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는 군부대가 대전차 미사일을 사용한 것은 아닌지 의혹을 보도했다.
[···참혹한 현장입니다.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갑자기 한복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뒤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뭔가 터졌어요.]
[모두 죽이려고 한 겁니까?]
[미쳤어요. 길은 왜 막은 겁니까? 미쳤습니다.]
[흑인이라서 죽였냐?]
[가난해서 죽었다!!]
[폭발은 뭔가?]
[폭탄으로 죽였다!]
[Black Lives Matter!!]
[Black Lives Matter!!]
[LA 전역에서 시위대가 모이고 있는 가운데, 이제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봉쇄하고 있는 현장에서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화면이 방송국으로 전환됐다.
[···현재 주 방위군이 포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캘리포니아주 의회에서는 의회의 동의 없이 계엄 활동을 한 것이라고 보고 청문회를 열겠다는 상황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계엄 활동은 아닙니다. 방위법에도 나와 있지만,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경우, 주 방위군은 철저한 통제하에 운용될 수 있습니다.]
[안보에 직결되는 상황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크게 세 가지 상황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적국의 특수부대가 침투해 공격할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는 테러리스트들의 테러 위협이 있겠군요. 마지막 세 번째로 무장 폭력 사태로 인한 치안의 붕괴입니다.]
[철저한 통제에 따른 운용이라고 하셨는데, 현재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의 봉쇄 활동이 주 정부의 통제에 따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현재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의 봉쇄 활동은 캘리포니아주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테러활동을 막기 위한 행동입니다.]
[다시 질문드리겠습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진행하고 있는 일부 지역 봉쇄는 누가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까? 주 정부인가요? 아니면 연방 정부인가요?]
[······.]
TV가 꺼졌다. 상황실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1차 검거 실패는 크리스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할 겁니까?”
“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뭡니까? 갱단과 카르텔이 서로 연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입니까?”
시장과 주지사가 한마디씩 했다.
“당장 민간인들 사상자가 여럿 나왔습니다. 이거 어떻게 할 겁니까? 민간인들 희생은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 의회에서 난리입니다. 주 방위군 봉쇄를 푼 뒤,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난리란 말입니다.”
주지사가 탄식했다. 갱단과 카르텔이 연합해 폭동에 테러까지 일으킬 정황이 드러났다고 해서, 봉쇄 작전을 지원했더니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 의회에서도 난리입니다. 옛날처럼 LA 폭동이 다시 터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비상사태 선언하고 관련자 문책해야 한다고 그럽니다. 정말 작전 중에 민간인을 쏜 게 사실입니까?”
지휘관이 지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민간인들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까? 당신이 민간인까지 쓸어버리라고 했다는 걸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어요!”
“제가 명령을 내린 건 사실이지만, 그 명령이 실제로 하달되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뉴스에서 나오는 저건 뭡니까? 민간인 사망자는 뭡니까?”
“갱단과 카르텔에서 언론과 방송에 로비한 것 같습니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로비? 그게 현장 지휘관이 할 말입니까? 언론 방송이 갱과 카르텔의 돈을 먹고 안보를 위협하는 짓에 동조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눌러 담은 지휘관이 침묵으로 응수했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럼 폭발은 뭡니까?”
“현장에 있던 타격대의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격에 몰린 갱 가운데 하나가 자폭한 사건입니다.”
타격대가 지니고 있던 액션 카메라에 담긴 영상. 타격대를 향해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다가오는 모습.
이어서 총성이 터지고 사람들이 갱들의 몸을 덮는 장면이 나왔다. 민간인이 몸을 던져 갱들을 가렸음에도 저격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총을 들고 있던 갱들의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통 반쪽이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저항하던 갱들이 잠잠해졌다. 이후 타격대가 저격을 중지하고 접근해 구속하려고 하자, 갑자기 폭발이 터졌다. 확실히 자폭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후- 좋습니다. 그럼 대책이 있습니까?”
조용히 있던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자폭 영상을 뉴스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범죄자들이 민간인 사이에 숨어있다가 검거될 위기에 처하자, 자폭 테러를 한 영상이 여러 방송국을 통해 나갔고, 그로 인해 시위대의 확산이 주춤거렸다.
이를 기회로 버지니아와 국토안보국에서는 다양한 자료를 언론과 방송에 뿌렸다. 갱단과 카르텔이 저지른 범죄, 캘리포니아주와 LA에서 벌어진 사건을 재조명하는 뉴스가 연이어 계속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봉쇄된 지역이 악명 높은 갱단, M 블랙 브라더스와 카르텔 피스 패닉의 거점 구역이라는 것이 밝혀진 뒤로 시위대가 양분됐다.
무조건 무력 진압 반대. 그래도 흑인이라서 죽었다. 라티노라서 죽었다. 그러니까 가난해서 난민이라서 죽었다는 쪽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군대 투입은 좀. 일단 봉쇄는 풀어야 하지 않나? 안에 있는 민간인은 무슨 죄인가? 하는 쪽이었다.
후자는 설득할 수 있었다. 봉쇄를 풀면 갱과 카르텔 조직원들이 도망칠 것이고 그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설득이었다.
그렇게 자칫하면 폭동으로 번질 사태가 가까스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만큼, 캘리포니아주 방위군이 만든 봉쇄선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갱과 카르텔 조직원들 사살됐다는 소식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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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아아아
김 양은 12.7mm 텅스텐 철갑탄을 놓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안았다.
어쩌나?
어쩌지?
어떡해?
어쩌면 좋을까? 골드. 금. 파밍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스코프에 확대된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래고래 뭐라고 지랄하는 놈이 보이거나 말거나. 손에 들고 있는 자동 주사기로 약쟁이들의 목덜미에 주사를 놓고 있든지 말든지.
그렇지 않아도 눈이 돌아간 약쟁이들이 주사를 맞고는 발광하기 시작했다. 타격대를 향해 몰려드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김 양이 방아쇠를 당겼다.
굵직한 탄피를 떨어뜨린 바렛이 묵직한 총알을 내뱉었다.
퍽! 턱뼈 아랫부분이 터지면서 목이 반쯤 떨어져 나간 놈이, 허공을 향해 마약 주사기를 흔들었다.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김 양은 의욕이 사라졌다.
철컥-
탕!
느릿느릿 나무늘보가 움직이는 것처럼 띄엄띄엄 총소리가 울렸다. 휑한 눈동자로 느릿하게 총을 쏘던 김 양의 귓가에 깨진 형광등 밟는 소리가 들렸다.
까직-
저격 포인트를 잡았을 때, 올라오는 계단에 깔아뒀던 깨진 형광등이 밟히는 소리.
까직-
멍했던 김 양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변했다.
바렛과 보급품을 챙긴 김 양이, 갈고리 총을 옆 건물에 쐈다.
취리리릭- 로프가 풀리며 옆 건물에 박힌 갈고리. 단단하게 줄을 고정한 김 양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몸을 실었다.
13~14m가량 떨어진 건물 옥상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간 김 양은 곧바로 줄을 끊고 내려온 건물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콰아아아앙!!!
매설해 놓은 폭탄이 터졌다.
후두둑 떨어지는 파편들. 치솟은 불꽃과 먼지.
그리고 그 뿌연 먼지 속으로 뭔가 날아왔다.
탕!
철컥-
공중에서 바렛을 맞은 그림자가 고꾸라졌다.
떨어지는 그림자 옆으로 하나둘 날아오는 또 다른 그림자들.
타앙-철컥-
타앙-철컥-
타앙-철커덕-
틱-
하나- 둘. 셋. 넷을 연달아 처리했지만, 탄창이 비었다.
탄창을 가는 그 짧은 순간에 이쪽 옥상으로 떨어져 내린 것들이 뻘건 눈으로 김 양을 노려봤다.
검은 피부, 붉게 충혈된 눈 그리고 허연 이빨.
크후! 크후!
크워어어어!
거칠게 내쉬는 숨과 고함에 끈적한 타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렛을 언제 내려놨는지 살포시 치워놓은 김 양의 손엔 글록이 뽑혀있었다.
대가리. 저거 딱딱해 보이는데 어쩌지?
타격대는 뭘 하는 새끼들인 거야?
약쟁이들이 저격수 잡으러 오는 걸 그냥 뒀다고?
총이라도 쏴서 경고라도 해주든지 뭐 하자는 건가 정말.
한 놈이 김 양을 향해 몸을 던졌다.
타다당!
연달아 2방을 눈에 쐈지만, 한 발은 맞았고 한 발은 광대뼈를 때렸다. 눈에 맞은 놈이 달려오다 말고 눈두덩을 감싸고 비명을 질러댔다. 데굴 옆으로 피한 김 양이 다른 놈의 눈을 노렸다.
뒤에 놈은 앞장선 새끼가 눈에 맞은 것을 봤는지 팔뚝으로 눈을 가린 뒤, 달려들 각을 보고 있었다. 역시 단순한 약이 아니었다. 크리스털에 뭘 섞었든지, 아니면 어쨌든지 일반적인 약쟁이는 아니었다.
저번에 만났던 흰옷이나, 그쪽 놈들.
김 양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팔뚝으로 눈을 가린 놈이 김 양의 흔적을 찾으러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크후! 크후!
몇 번 거칠게 숨을 내몰아 쉬던 놈이 분을 이기지 못하겠는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어디냐!
어디 갔냐!
이 씨발련아!!!
크아아아아아!!!
크게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온 차가운 금속.
앙?
콰아아앙!
입안에서 터진 수류탄에 눈, 코, 입, 귀에서 피를 쏟아낸 놈이 고목 쓰러지듯 뒤로 넘어갔다.
김 양은 눈에 총알이 박혀 날뛰는 놈에게 총을 겨눴다.
총구가 하나 남은 눈을 향하자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는 놈.
쏘려는 여자와 상처입은 짐승이 서로를 노렸다.
긴장감이 공간을 조금씩 휘감았다.
그렇게 긴장감이 팽팽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김 양이 도망쳐온 저격 포인트에서 뭔가 썰리는 소리가 났다.
콰자작!
이어서 뭔가 묵직한 게 날아오는 소리.
부우우우웅!
퍽!!!!
한쪽 눈이 멀어 시야가 좁아진 놈의 머리통에 커다란 백 팩이 틀어박혔다. 뭐가 들었는지 한 방에 목이 꺾이고 머리통이 으깨진 놈이 그대로 무너졌다.
“포인트는 저쪽이라고 나왔던데 왜 여깄어? 옮겼으면 옮겼다고 하든가.”
이쪽으로 풀쩍 뛰어내린 마루가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이 새끼들은 또 어디서 왔고?”
어- 어-
저기- 그러니까- 저거-
김 양이 눈이 휘둥그렇게 커진 채 말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