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44
목이 꺾이고 머리가 함몰되어 죽은 놈 옆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백 팩.
김 양의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대화들.
구르지 않았지?
그래 분명 구르지 않았어.
휙 날아와서 대가리를 빠갠 뒤, 가볍게 데굴데굴 구르지 않았다. 그냥 쿵-이었다.
무거운 거 맞지?
응.
개-무거워 보임.
머릿속 김 양 1과 김 양 2가 서로서로 대화를 마쳤다.
무엇보다 냄새가 났다. 묵직한 냄새가.
쇳덩어리?
아니다.
녹슨 쇠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냄새는······.
마루는 그 모습을 보곤 조금 섬뜩했다.
뭐냐? 앤?
막 눈이 휘둥그렇게 커진 것도 무서운데, 영혼이 빠진 얼굴로 터벅터벅 뭔가 중얼중얼 혼잣말하면서 백 팩으로 향하더니 킁킁-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니, 열어보는 것도 아니고 왜 냄새를 맡는 건데?’
슬쩍 마루를 돌아보는 김 양. 기분 나쁜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히죽 웃고 있었다.
“야. 너 어디 아프냐?”
“좋음. 하아-”
뭔가 열기가 느껴지는 김 양의 목소리에 마루가 입을 다물었다.
열어보지도 않고 뭘 믿고 저러는 거지? 정말 냄새만 맡아도 알 수 있는 건가? 그건 그거대로 이상했다.
마루는 백 팩 옆에 앉아 쓰다듬. 히죽. 쓰다듬. 히죽을 반복하고 있는 김 양을 무시하고 주변을 살폈다. 멀리 총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엉망이었다.
예측대로라면 갱들이고 카르텔이고 남은 놈들은 최대한 조용히 도망칠 것이라고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방 분탕질하는 놈들이었다.
‘하긴···.’
봉쇄를 뚫으려면 뭔 짓이든 하겠지.
저격 지원이 멈춰서 그런지, 김 양의 통신기에서 저격 지원 요청이 쏟아졌다.
[저격 지원 요청!]
[액쟁이들이다!]
[저격수! 저격수!]
[뭐하고 있···]
김 양은 ‘안 들려요. 안 들려.’ 모드로 백 팩에 껌딱지처럼 붙어, 도와줄 기미가 없었다.
“김 양아.”
그래도 마루가 부르니 슬쩍 돌아보기는 하는 김 양이었다.
“쟤들 나중에 지랄하면 어쩌려고.”
“신경 안 씀.”
저격 포인트로 약쟁이들 올라왔는데 경고도 안 해준 새끼들이 뭐가 이쁘다고.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이젠 빨리 돌아가서 까봐야지. 이 정도면 얼마나 될까? 김 양이 가뿐하게 무시하자 마루는 골치가 아팠다.
“그거 제대로 챙기려면 다른 소리 못하게 해야지. 딴소리하면 피곤해진다.”
“···알겠음.”
초밥 밥 위에 회가 얹어진 모양으로 백 팩 위에 붙어 있던 김 양이 슬그머니 바렛을 챙겼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위치를 잡더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는 모습. 평소 김 양의 속사를 생각한다면 느릿느릿 뒈지든지 말든지 그런 느낌이었다.
윙- 낮은 모터 소리. 드론이 내는 소리가 들렸다. 저격이 멈추자 김 양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러 온 것 같았다. 군용 중형 드론이 김 양이 본래 저격했던 포인트를 빙빙 돌다 근처로 다가왔다. 마루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중형 드론은 구석에서 저격하고 있는 김 양을 확인하곤 주변을 살핀 뒤,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EMP로 CCTV 전부 나가서, 편하게 움직여도 되겠다 싶었는데, 드론이 있었네.’
쯧-
여러 대의 드론들이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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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장비가 가득한 벤.
후드를 눌러 쓴 사람이 소리 질렀다.
“아오. 진짜!”
음성 변조기도 짜증까지 변조할 순 없었다. 당장 뉴튜브에 올라간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우는 것도 미칠 지경이었다. 팀 단위로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을 혼자 하는 것도 답답한데,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것도 많았다.
“사만다. 뉴튜브 쪽은 일단 지역 봉쇄로 돌리자.”
[뉴튜브 지역 봉쇄. 코드 조정 들어갑니다.]
“유톡 쪽도 지역 봉쇄로 돌리고”
[유톡 지역 봉쇄. 코드 조정 들어갑니다.]
너무 많이 올라와 하나씩 지우는 건 불가능했다. 차라리 이 지역의 데이터 이동을 방해해, 봉쇄하는 쪽이 더 가능성 있었다. 그마저도 해킹을 지원해주는 인공지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드론으로 들어온 영상들 있지? 그거 분류해서 올려 줘.”
[23대의 드론에서 촬영한 영상입니다.]
[교전 영상]
[수색 영상]
[지원 영상]
[······]
여러 모니터에서 동시에 4배속 빠르기로 재생되는 영상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상하좌우로 움직이던 눈동자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
“15번 영상. 정지.”
[15번 영상 정지합니다.]
타다다닥
손가락이 경쾌하게 자판을 두들기자, 15번 드론이 촬영한 장소가 떠올랐다. 높은 건물 옥상. 건물 비상구 옆에 길게 그어진 실선이 보였다. 마치 뭔가 잘라낸 것 같은 흔적.
폭파나 총격으로 저런 모양의 금이 생길 리 없었다. 깨끗하게 그어진 흔적 아래엔 토막 난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다.
타다다닥
‘15번 드론을 조종한 쪽이···’
지휘 본부에서 그쪽으로 보냈다. 그럼 그 흔적을 낸 뭔가를 추격하려고 했던 건가? 상황실을 녹음한 음성 파일을 재생시켰다.
[···저격이 멈췄습니다.]
[상황을 확인···.]
저격이 멈춰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15번 드론을 보낸 것이었다. 후드는 재빨리 다른 드론들도 확인했다. 저격수는 모두 5명이 있었다. 5명 전부 침묵. 저격수들이 있던 곳에 남겨진 습격의 흔적.
다른 저격수들은 전부 죽은 것이 확인됐다. 5명 가운데 4명이 사망. 확인되지 않은 한 명이 다시 저격 지원을 시작했다는 정보가 떠올랐다. 15번 드론이 확인한 곳에서 보이지 않았던 저격수.
15번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계속 돌렸다. 저격 포인트에 남겨진 기괴한 흔적 뒤로 15번 드론은 주변 건물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찍힌 저격수의 모습. 여자 저격수의 모습이었다. 군복이 아닌, 사재 옷을 입은 모습.
후드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잠시 멈췄다.
‘용병?’
이런 작전에 용병을 썼다? 실력이 좋은 용병이라면 쓰겠지만, 대체로 저격수는 현역을 쓰기 마련이었다. 뭣보다 저격 포인트에 있던 그 기괴한 흔적. 토막 난 시체들과 저격수는 어떻게 생각해도 매치되지 않았다.
타다다다닥
잠시 멈췄던 손가락이 다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삑!
“어?”
차단. 뭐지 이년은? 뭔데 록이 걸려있어?
타다다다닥
삑!
아니. 진짜 뭐야 이거. 버지니아 직원이라도 되는 거야? 이중으로 잠겨 있어?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지. 그래서 시작한 거 아니겠는가?
삑! 삑! 삑!
‘와 씨발 뭔.’
버지니아에서 걸었다 싶었는데 국토안전부에서도 걸어놓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거 건드렸다가 좆되는 거 아닌가? 하면서도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후드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몇 개의 더미 정보를 거쳐 나온 마지막 자료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처럼, 새로 만든 신분 티가 역력한 정보.
이거 뭐지? 뭔데 이렇게까지 한 거지?
후드는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바라봤다.
정지된 화면 속엔 바렛으로 저격하고 있는 여자 저격수의 모습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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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목이 잘린 채, 버둥거리던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크우우우우우
질질 흘리는 침에 피가 섞이기 시작했다. 살겠다는 생각보다 죽이겠다는 살의가 가득한 모습.
“후- 더럽네. 이거.”
칼날을 비틀어 넣자, 뿌각! 뼈와 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진 약쟁이. 마루는 약쟁이의 몸통을 뚫고 벽에 박힌 칼날을 뽑았다.
기분이 더러웠다. 이성을 잃은 약쟁이들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중간중간 섞어 먹은 놈들이 기분을 더럽게 했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제정신도 아닌 미묘한 놈들.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한 약쟁이가 아닌, 이런 놈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갱이든 카르텔이든 주로 빈민과 노숙자들, 난민들에게 뿌렸던 약과는 다른 약을 조직원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지금 막 이곳으로 올라온 놈들도 그랬다.
휙- 칼을 휘두르자, 칼날에 붙은 핏방울과 찌꺼기가 붉은 자국을 바닥에 남겼다.
‘칼날은 괜찮고.’
마루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실 밖을 봤다. 드론 하나가 왔다 갔다 저격하고 있는 김 양을 촬영하고 있었다. 괜히 찍혀서 좋을 게 없었다.
쿠당탕!
크워. 크워.
크워어어어!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리. 마루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스트레칭하곤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걷어찼다. 둥실 떠오른 시체가 계단 한쪽으로 처박히며 야트막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잠시 뒤, 눈이 뻘겋게 물든 놈들이 게거품을 물고 계단을 올라왔다.
크와아아악!
바리케이드를 넘어오겠다고 앞으로 두 팔과 목을 길게 뺀 놈이 마루를 보곤 외쳤다.
거참 좋은 자세로 쭉 뻗었네.
쓰걱!
놈의 모가지와 양팔을 가뿐하게 털어낸 마루가 뒤엉켜 올라오는 것들을 향해 칼을 까딱였다.
“순서대로 와. 순서대로. 어디 가지 않을 테니까.”
크와아아아!
우으어어어!
시체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점점 커졌다.
김 양은 계단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안심했다. 뭔가 푸근하고 평화로운 느낌.
끼에에에에엑!
가끔 약을 좀 적게 먹은 놈이나, 약발이 이상하게 들어간 놈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대서 신경을 긁긴 했지만, 대체로 잔잔하게 정리됐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상황이란 말인가?
그래 보호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김 양은 스코프에서 잠시 눈을 떼고 백 팩을 바라봤다. 보기만 해도 차오르는 감정.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실 안쪽에서 들리는 써는 소리. 평화로운 옥상······
위이이잉-
애애애앵-
조금 떨어진 공중에서 드론 하나가 뱅뱅 돌고 있었다.
철컥- 타다당!
어느새 뽑힌 글록에서 불꽃이 튀었다.
‘짜증 나게 하고 있어. 분위기 좋았는데.’
퉷- 침을 뱉은 김 양이 다시 백 백을 봤다. 상처받은 감정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이스트 로우 서쪽 건물 저항이 거세다.]
[6번가 방향! 도주하는 차량 막아!]
무전기가 시끄러웠다. 다른 저격수들은 뭐하고 이 지랄인지.
살짝 샐쭉했던 김 양이 푸근한 눈빛으로 백 팩과 계단실 열린 문을 바라보곤 다시 저격 자세를 잡았다. 잠시 후, 느긋하면서도 기계적으로 울리는 총성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두웠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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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들의 저항이 끝났습니다.]
[포위망을 빠져나가려는 카르텔 조직원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수색 들어갑니다.]
[···지역. 클리어]
[주 방위군 도로를 따라 전진합니다.]
[교전 지역 뒤처리 시작합니다.]
작전이 성공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였지만, 지휘권을 박탈당한 지휘관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갱단과 교전했던 타격대는 절반 이상이 전사했다 했다. 저격수는 총잡이 용병 하나를 빼고 다 죽었다. 카르텔 놈들의 거점을 공략하기 위해 지하수로로 들어간 타격대는 소식이 끊겼다.
포위망을 만들고 방어만 했던 주 방위군에서도 사상자가 다수 나왔다.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카르텔 두목을 놓치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갱단 두목은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갱단이든 카르텔이든 조직원 대부분이 갈려버렸으니, 실질적인 위협은 사라진 게 맞았다.
“갱단이 와해 됐습니다.”
“카르텔도 뿌리를 뽑았어요.”
“이제 정리만 제대로 하면 되겠군요.”
“작전지역 인근 피해가 너무 커요.”
“경제적인 피해도 피해지만, 사상자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건 어떻게 할 겁니까?”
주지사와 시장을 비롯한 사람들이 전부 지휘관을 바라봤다.
늙어버린 듯한 얼굴로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제 책임입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회의실이 활기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