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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146화 (146/280)

러스트 [RUST]-146

마루와 김 양이 탄 비행기가 이륙하고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김 양은 습관적으로 시계를 확인하곤 의아한 얼굴로 마루를 봤다. 스마트 워치가 디트로이트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

“아- 국토안보국 과장이 좀 보자고 하네.”

“?”

“뭐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그래서 그렇겠지.”

마루가 칼집을 톡 건드리곤 김 양이 옆에 끼고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마루의 손가락이 가방을 향하자 김 양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그런 거 아니니까 인상 피고. 우리가 좀 많이 챙기긴 했어도. 갱단 본거지는 건드리지도 않았잖아.”

“···갱단?”

괜찮다는 마루의 말에 긴장이 풀렸다가 곧 시무룩해지는 김 양. 그러고 보니 갱단 본거지는 구경도 못 했다. 거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었을까? 갱들은 금붙이도 많이 달고 다니는데, 역시 저격 따위를 하는 게 아니었다.

잠시 시무룩했던 김 양의 눈에 신형 바렛이 들어왔다. 김 양은 시제작 바렛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저격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신형 바렛을 챙기지 못했을 테니까.

갱단 본진을 털지 못한 게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이미 지난 일. 그나마 마루가 넉넉하게 챙겼고 신형 바렛과 텅스텐 철갑탄을 챙겨서 다행이었다.

‘샷건이랑 스마트 탄은 써보지도 못했네.’

저격이 아니라 침투조였다면 썼을 텐데.

“지하수로 괜찮았음?”

“···더러웠지.”

상황도 더러웠고, 약 빨고 덤비는 것들도 더러웠다. 마루의 말을 듣던 김 양이 조그맣게 말했다.

“샷건 개 좋은데.”

그런 공간이라면 샷건이 답이었다.

얼마나 좋은가? 그 좋은 걸 왜 안 쓰나? 백정은 다 좋은데 날붙이만 주로 쓰는 게 좀 그랬다. 왜 문명의 이기를 쓰지 않을까? 역사를 바꾼 건 총이었는데.

“샷건 좋지. 근데 샷건 들고 갔으면 끝까지 가지도 못했어.”

총알은 어떻게 할 건가? 그 굵직한 샷건 탄약을 200~300발씩 들고 다닌다고? 군장에 총알만 잔뜩 짊어지고 갈 건가?

가져갔다고 쳐도 문제였다. 수십 명씩 한꺼번에 몰려오는데 장전은 어떻게 하고? 심지어 카르텔 놈들이 했던 것처럼 휘발유 뿌려 버리면 샷건이고 뭐고 총은 무용지물이었다.

김 양이 고개를 팩 돌렸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냥 둘 다 쓰면 좋다고 한 거지. 흥-

“아? 그러고 보니 너 저격 포인트 옮긴 거 상황실에서는 모르고 있었던데? 뭔가 문제 있었냐?”

“병신들임.”

마루는 김 양의 대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다.

병신들이라. 저격 포인트 옮긴 걸 모르고 있어서 병신들이라는 건지. 아니면 저격 포인트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으니 병신들이라는 건지. 다른 이유가 더 있을지, 참 애매하게 단호한 대답이었다.

“내가 그냥 지나갔으면 어쩌려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위치 추적기든 무전기든 따로 챙겨서 가지고 다니자.”

김 양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갸웃했다.

“원래 이럼?”

뭔가 킹왕짱 힘세고 강한 미국을 상상하다가 같이 일해 보니, 어쩐지 허당 느낌을 받은 김 양이었다.

“왜? 뭐가?”

“뭔가 그랬음.”

제일 병신 같았던 게, 갱들이 저격 포인트로 올라오는데 경고 하나 받지 못한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격수 지키던 애들이 약 빤 갱에게 순식간에 당해 경고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이 죽었다지만,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했으면 그게 병신이 아니면 뭔가? 김 양은 가차 없었다.

“놈들 움직임을 생각하면 그렇지. 타격팀도 태반이 죽었는데.”

후방에서 지원 사격하는 저격수를 지키는 데 정예를 투입하지는 않았을 거다. 정예인 타격대원들도 크리스털 빤 애들은 어떻게 못 하고 쩔쩔매는 판국에, 일반 병사들이 놈들을 저지하고 보고까지 하길 바란다는 건 무리였다.

“······.”

“책임 소재도 있고, 체계적으로 작전 세우고 인원 분배하는 것도 그렇고 다 쉽지는 않았을 거다. 급하게 작전에 들어가서 그런 부분도 있고.”

당장 겉으로 엮인 것만 봐도 버지니아, 국토안보국, 마약단속국, 연방수사국, LA 경찰청,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특수부대, 캘리포니아주지사, LA 시장이었다. 다들 자기 사람들 먼저 챙기려고 했을 테니, 더 큰 사고가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

여기에 노숙자 문제, 난민 문제, 빈민 문제에, 인종 갈등까지. 교통정리가 깔끔하게 되긴 힘든 상황이었다. 이렇게 끝난 것만으로도 어떻게 보면 선방이라고 봐야 했다.

“복잡함.”

“복잡하지.”

“괜찮겠음?”

“적당히 보여주고. 적당히 넘어가야지.”

달인 정도로 보이면 되려나? 조금 더 보여줘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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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브라운 과장은 영상을 돌려보고 다시 돌려봤다.

처절한 사투의 흔적이 그대로 담긴 영상은 타격대가 착용하고 있던 액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벌써 몇 번이나 돌려본 영상. 카르텔 본거지를 공격하기 위해 지하수로에 진입한 타격대원들이 약을 맞아 가면서 싸웠음에도 처치한 적들의 숫자는 30명 남짓이었다.

냉병기로 사람을 죽이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것도 약에 취한 자들과 싸우는 건 더 끔찍했다. 찌르고 베어도 급소가 아니라면 무시하고 달려드는 자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다음 영상이 문제였다. 뒤처리하러 들어간 자들이 찍어 올린 영상.

후-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보고 또 봐도 상식에서 벗어난 영상이었다. 토막 난 시신이 빽빽하게 들어찬 수로의 모습. 시체를 밟지 않고서는 앞으로 갈 수 없는 영상이 이어졌다.

[블라디마루 칼린 씨가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과장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비서의 안내를 받은 마루가 안으로 들어섰다.

“오는 길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손을 내밀어 맞이하는 과장. 악수하는 그의 눈동자가 슬쩍 마루의 허리춤을 향했다. 얌전하게 매달린 칼이 보였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예.”

자리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과장이 태블릿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중간에 정지된 화면 속 전술 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것은 지하수로였다. 시체들이 뒤엉켜 있는 지하수로.

과장은 태블릿 속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마루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런 동요 없는 표정. 그냥 담담한 모습이었다.

“영상에 나오는 시신들 그쪽이 손 쓴 겁니까?”

“일부는 그렇습니다.”

태연하게 대답하는 마루의 말에 과장이 반문했다.

“일부요?”

“예. 약을 과하게 먹었는지 갑자기 자기들끼리 찌르고 죽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자기들끼리 치고받지 않았어도 시간적 여유만 좀 있었으면 저 혼자서 다 정리했을 거긴 합니다만.”

과장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니까 굳이 숨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일본이 만든 슈퍼 솔저가 아닐까? 했던 의혹이 조금 옅어졌다.

만약 그랬다면 한다면 지금처럼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티 나게 행동이지 않았을 것이니까. 그럼 초능력자? 그랬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뭔데 이렇게 담담하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습니다.”

“······.”

“그렇다는 건, 합중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닌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렇겠죠.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우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드리면 될까요?”

마루가 옆에 둔 칼을 느릿하게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르르릉- 금속음과 함께 칠흑빛 칼날이 뽑혔다.

“단단하다고 잘리지 않는 게 아니고, 질기다고 벨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말이죠.”

푸칵- 인조대리석으로 만든 테이블 상판 귀퉁이가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쿵- 잘린 상판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과장은 눈을 껌벅였다. 눈앞에서 봤음에도 믿기지 않는 일. 지금 칼로 인조대리석을 자른 건가? 이게 가능한가?

마루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비석을 칼로 자른 사람도 실존했다고 하는데, 방금 보셨다시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죠.”

이렇게.

서컥- 옆에 있는 원목 소파가 깔끔하게 수직으로 양분됐다. 좌우로 벌어진 소파를 담담하게 바라본 마루가 조용히 칼을 칼집에 밀어 넣었다. 스르르륵- 쇳소리와 함께 검은색 칼날이 감춰졌다.

살며시 테이블 위에 칼을 올려놓은 마루가 과장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갑옷을 입은 사람들도 아니고, 방탄복이나 방검복을 입은 자들도 아니고 베는 건 쉬웠습니다. 칼날이 견딜 수 있을지 좀 걱정스럽기는 했는데, 구해주신 칼이 정말 좋은 칼이더군요. 덕분에 편했습니다.”

“허- 큼- 흠- 다행이군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방금 인조대리석 절단하듯 썰어댔으면 영상 속 피바다가 당연했다.

떠올려 보니 유럽에서도 완전 무장한 기사 한 명이 마을 하나를 몰살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눈으로 본 결과를 믿지 않을 정도로 꽉 막힌 과장은 아니었다.

“좋습니다. 지하수로 건은 그렇게 알도록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과장이 태블릿을 건드리자, 문서들이 떠올랐다. 서류에 적힌 내용은 마루가 디트로이트 빌딩에 요구한 시설들 목록이었다.

[태양광 발전 필름 설치 공사]

“태양광 발전은 그렇다고 칩시다. 어쨌든 전기를 쓰겠다고 하는 거니까 말이죠.”

과장의 손가락이 휙 화면을 넘기자. 목록이 변했다.

“근데 이건 뭡니까?”

[스마트 팜]

[스마트 축산 시스템]

“빌딩에서 농사를 짓다 못해, 축산업까지 하겠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마루의 침묵에 과장이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며 말했다.

“일본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

“지금 하는 공사. 목적이 뭡니까?”

“······.”

천천히 마루의 입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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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밴.

여러 모니터에 다양한 영상이 동시에 떠올랐다 지워졌다. 그걸 바라보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기지개를 켰다.

“아오- 미치겠네.”

어차피 변하는 건 없었다.

유명한 해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보를 뿌렸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이게 패배주의적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정보의 공유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구호는 퇴색된 지 오래였다. 감춰진 정보 좀 까발렸다고, 비리를 까발렸다고 잡혀서 목줄 채워졌으면 된 거 아닌가?

“하- 젠장- 어디까지 가는 거야?”

귀화한 일본인. 이례적으로 빠른 시민권 발급. 버지니아가 힘을 썼으니 순식간에 처리된 건 알겠는데, 버지니아가 왜 힘을 썼는지는 또 감춰져 있었다.

무슨 양파도 아니고 하나 까면 또 껍질이 나왔고 다시 깠더니 또 껍질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쏙 나온 사건. 변종 따개비 사태. 그러니까 시애틀 인근 산불 사태는 변종 따개비 확산을 막으려고 한 사건이었다.

“방사능 변종 따개비라.”

일본은 지진과 화산폭발, 해저지진에 쓰나미까지 겹쳐 거의 고립된 상황이었다. 하늘길도 막혔고 바닷길도 부유석 때문에 막혀 버렸으니까.

그리고 지옥이 됐다는 일본에서 탈출한 일본인들이 미국에서 빌딩 공사를 하고 있었다. 명백히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공사를··· 분명히 뭔가 알고 있는 게 확실했다.

“영 찝찝하네.”

정말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거라고 한다면.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미국에서도 종말에 대비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처럼 뭔가 대놓고 요새를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걸 생각해서라도 안면은 익혀두는 게 좋았다.

‘디트로이트는 진짜 싫은데.’

검은색 밴이 스르륵 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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