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48
디트로이트는 시끌시끌 활기찼다.
태양이 지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지자 그 고요함을 깨듯,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이어를 축하하는 고함과 총소리가 길거리를 가득 수놓기 시작했다.
탕! 타당!
샷건에 화답하듯 소총 갈기는 소리.
타다다다다다!
다 닥치라는 것처럼 터진 폭음.
쾅!!
아? 저건 누가 수류탄 하나 깠나 보다.
조금 외딴 곳에 우두커니 있는 폐가로 캠프파이어를 했는지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 그러니까 지나가다 총질해도 그런가 보다 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
“며칠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여긴 원래 이런가요?”
“그··· 디트로이트는 연말에 조금 그렇습니다.”
운전하고 있는 국토안보국 직원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빵! 빵!
마루 일행이 탄 차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들. 라이트를 껐다 켰다 하면서 발광하던 차들이 옆을 휙휙 추월해 내달렸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는 거죠?”
“정부 기관 차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겁니다.”
“정부 기관 차량인 건 어떻게 알고요?”
“번호판도 그렇고, 번호판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긴 차량은 거의 정부 기관에서 쓰는 차량이다 보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모로 대단하네요.”
정부에 뭔가 쌓인 게 많나? 대충 동네가 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고르긴 했지만, 생각보다 조금 많이 활발했다.
날이 어두워진 지 얼마 안 됐는데, 많이 한산한 도로. 고작 저녁 7~8시 정도인데 이렇다니, 창밖을 보던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뭐라고 생각했는지 직원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쪽만 그렇지 그래도 번화가는 괜찮습니다. 야경도 좋고요.”
“아. 예.”
“정말 많이 좋아진 겁니다. 7~8년 전만 해도 위험했죠. 그땐 정말 심각했거든요.”
웃기지 말라는 듯 요란하게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다다다당!
탕! 탕! 타당!
총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펑! 펑!
밝게 타오르는 불꽃이 하늘로 치솟아 올라 폭발했다.
“지금도 괜찮네요. 활기차 보이고.”
“그. 그런가요? 하. 하.”
마루의 대답에, 삐질 식은땀을 훔친 직원이 조용히 운전만 했다.
“도착했습니다.”
직원은 호텔 입구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허겁지겁 차에 올라탔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뭐가 그리 급한지 검은색 밴을 몰고 부랴부랴 돌아가는 모습. 많이 바쁜 것 같았다.
“너 뭐하냐?”
“···흐으으읏!!! 잠깐.”
사람들이 보고 있거나 말거나, 김 양은 가방 하나를 붙잡고 온 전신의 힘을 끌어모아 데드리프트를 시도했다.
“?”
“이이이이에엣···. 아- 안되네.”
2차 시도를 실패한 김 양이 뭔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올라- 개-무거워.’ 이런 표정? 마루는 어이가 없었다.
그 잠깐의 고요를 뚫고 끼이이- 작게 모터 소리가 들렸다. 마루가 슬쩍 소리 나는 방향을 쳐다보니 CCTV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호텔 앞에서 시끄럽게 이러고 있으니, 보안 쪽에서 확인한 건가?’
“알았으니까 사람들 다니는 길 막지 말고 이리 비켜.”
“흐흐흐흐. 허리 조심하셈.”
김 양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실실 웃었다.
마루가 카트에 실린 가방을 들어 엘리베이터에 내려놓자, 쿵-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이어지는 묵직한 소리에.
삐삐삐빅-
엘리베이터가 중량 초과 경고음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헤벌쭉 웃었다.
그 모습을 엘리베이터에 달린 CCTV가 가만히 찍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관 밖에서부터 복도 그리고 엘리베이터까지. 계속해서 지켜보는 느낌.
마루는 어쩐지 신경이 조금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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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에 들어오자마자, 김 양은 가방을 하나 붙잡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코-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낸 김 양이 허리를 부여잡고 실실 웃었다.
“허리 조심하라며?”
“괜찮음.”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는 건지. 마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녀오셨어요.”
간호사가 며칠 만에 많이 수척해진 얼굴로 인사했다.
“어. 그간 별일은 없었고요?”
“예. 전 호텔에만 있어서···.”
호텔에만 있었는데 무슨 노가다를 밤낮으로 한 몰골이 됐냐?
“아. 얼굴이 많이 상하셨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네. 얼굴이요? 아니요 괜찮아요.”
간호사와 마루가 인사하는 동안, 김 양은 꾹 물린 가방의 지퍼를 열어젖혔다. 요리사가 참치 배를 가르는 것처럼 호쾌하게 지퍼를 연 김 양의 눈동자가 누런빛으로 물들었다.
부르르르 김 양의 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떨리더니, 이어서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히끅- 히끅-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는 김 양. 그 소리를 들은 간호사가 화들짝 김 양을 향해 갔다.
“어디 편찮으신가요?”
“아니···.”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도 김 양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있었다. 훌쩍이는 김 양이 하염없이 바라보는 곳. 간호사도 김 양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흡-
가방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금덩이. 골드바의 모습에 간호사도 딱딱하게 굳었다.
‘뭐지? 뭐야? 뭔데 이 사람들. 금을 들고 왔어.’
그리고 간호사의 눈에 들어온 가방···들? 가방이 아니라 가방‘들’이었다.
히이익
간호사도 부르르 떨었다.
금괴로 침대 프레임을 만들고 그 위에 현찰로 매트리스를 삼은 김 양은 밤새 발광하다 해가 떠올라서야 잠들었다. 그걸 옆에서 뒤치다꺼리한 간호사가 퀭한 눈으로 마루를 배웅했다.
“큼. 그냥 주무시지.”
마루는 이렇게 누가 배웅하는 게 낯설었다. 그냥 나가면 되는 데 꼭 따라와서 이러니까 뭔가 좀 낯간지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에요. 안녕히 다녀오세요.”
“김 양이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문 열어주지 마시고요. 아시죠?”
“네.”
마루는 팔자 좋게 늘어진 김 양을 봤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럼.”
복도로 나오자, 끼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모터음. CCTV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 보안팀은 무슨 밤낮없이···.’
뭐가 그렇게 볼 게 있다고 이쪽만 보고 있···. 여기만 본다? 감시? 왜? 마루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호텔 로비 프런트.
마루가 직원에게 클레임 걸었다.
“여기 보안팀은 CCTV 조종해서 사람 관찰하고 그럽니까?”
“예? 고객님 저희 호텔에서는 고객님의 신상 보호를 위해 자동으로 운용되는 CCTV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보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고객님. 보안팀은 연락받아야 출동하고 있습니다. 보안팀이 자의적으로 CCTV를 조종하거나 그럴 수 없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문의하실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어제랑 오늘 CCTV 움직임은 뭐지? 마루는 기분이 찝찝했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공사하고 있는 빌딩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조금 빨리 걸으면 10분 안쪽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국토안보국에 맡기기를 잘했네.’
사람을 따로 사서 했으면 한참 걸렸을 텐데, 국토안보국에서 공사를 봐주니 확실히 진척이 빨랐다. 지금도 대형 건설장비들과 백 단위 인부들이 공사 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층부터 5층까지는 전시관으로 썼던 빌딩인지라. 여러모로 손 볼 부분이 많았다. 제일 중요한 방어책은 빌딩에 접근하지 못하게 외부에 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컨테이너를 쌓아 한쪽 면을 컨테이너로 막고 바깥 부분에 거푸집과 철근을 배근해 철근콘크리트 벽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안쪽에서는 컨테이너 문을 열 수 있어 컨테이너를 창고처럼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바깥은 철근콘크리트 벽이라 든든했다. 철근콘크리트 컨테이너 조합이라 재료도 아끼면서 내구성도 충분해 보였다.
“이렇게 하면 벽 두께가 12ft에 육박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2.5m 컨테이너+철근콘크리트 벽두께 1m 합하면 3.5m가 넘는 두께였다.
“12ft가 넘으면 대충 3.6m 두께라는 소리죠?”
“예? 3.66m니까 그렇습니다.”
마루는 아쉬웠다. 생각 같아서는 두께를 10m 넘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많이 복잡해졌다. 지반공사도 다시 해야 했고. 지하도 다 뒤집어야 했다.
“외부 태양광 필름 작업은 어떻게 됐습니까?”
“10부터 25층까지 북향을 제외한 3에 붙이고 있습니다.”
“전력은 충분히 나오고요?”
“태양광 필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전력은 충분합니다.”
내부 공사도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마트 팜을 비롯한 식품 생산시설, 플라스틱류를 재활용하는 시설, 하다못해 작은 전기 고로가 있는 철공소까지.
“공사는 언제 끝날까요?”
“내일부터 연말 연초 휴가에 자재 수급 문제가 겹쳐서. 내부 인테리어까지 완전히 끝마치려면 내년 4월까지는 공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한국보다 느린 느낌. 디트로이트라는 이유로 5시가 되면 칼퇴근하는 인부들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웅- 웅- 국토안보국 과장의 전화.
“예.”
[버지니아에서 추가로 협조 공문이 와서···]
버지니아는 돈이 넘쳐나나? 빌딩 공사비에 안에 들어갈 장비, 추가로 저장할 물품까지 하면 엄청나게 깨질 텐데? 죽어 나갈 자리에 처넣으려고 그러는 건가? 뒈지면 없던 일이 되니까? 마루는 즉답했다.
“생각 없습니다.”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지요?]
날카로운 과장의 반응. 어투가 변했네? 이 아저씨 이런 아저씨가 아닌데 날카로웠다. 마루가 고개를 까닥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제저녁부터 CCTV도 그렇고 영 찝찝하더니.
“그러죠.”
[···하. 미안합니다. 내가 좀 민감했군요. 이번에 일본에 파견된 구조대 사령관이 내 사촌이라서 조금 급했습니다.]
“일본이요?”
[위성 통신이 중간에 끊겨서 확실하지 않지만,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내용이라서 말입니다. 추가로 구조대를 투입해야 할 상황인데 버지니아에서 일본 현지 상황에 정통한 사람이 가야 구조 가능성이 커진다고···.]
마루는 어이가 없었다. 국가 안보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중요한 일이면 특수부대를 전부 끌어모아서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은 안 갑니다. 그리고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일이라면···.”
중간에 잡음이 생기면서 약간 통화가 끊겼다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국토안보국 과장도 그걸 느꼈는지 조용해졌다.
[···이거 통신보안이 되는 겁니까? ]
“제가 알겠습니까?”
[···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일본은 갈 생각이 없습니다.”
뚝-
이거 통신보안 이야기 나온 거 보면 도청이라도 당한다는 소리지? 마루의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예.”
마루는 현장 감독과 인사하고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에 있는 CCTV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움직임. 모터가 달려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웅- 웅-
김 양의 전화.
“왜?”
[어- 음- 호텔 건너편에 검은색 밴 있음.]
“뭐라고? 밴이 어쨌는데?”
[어제 우리 왔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음.]
김 양은 습관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래서 종일 그 자리에 있는 검은색 밴이 거슬렸다.
“어떻게 생긴 건데?”
[우리 타고 왔던 거? 그거랑 똑같이 생겼는데?]
김 양의 말에 마루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감시? 어느 새끼들인지 모르겠지만, 감시인 것 같았다. 국토안보국은 아닐 테고. 그럼 버지니아나 연방수사국일까?
좋아 일단 조지자. 조져 놓고 나면 뒤처리는 국토안보국에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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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칼날이 밴의 옆을 서서히 헤집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기긱-----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철판이 갈라지면서 나는 쇳소리.
히에에에에에엑!!!
안쪽에서 성별 미상의 기괴한 비명이 들렸지만, 마루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칼질을 계속했다.
느릿하게 밴의 옆구리를 따기 시작하는 칼날. 안쪽에서 벌벌 떠는 목소리로 뭔가 외쳤다.
“문··· 문··· 문!”
문?
“문 열게요!”
지랄!
콰지지지직-
길게 밴의 배를 가른 칼날이 가로 세로로 휘둘러졌다.
뻥 뚫린 밴. 전자장비가 가득한 내부가 곱창처럼 드러났다. 한쪽 구석에 후드를 쓰고 마스크까지 한 왜소한 사람이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있었다.
“너 뭐야?”
“저···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닷.”
“그러니까 어디?”
검은색 칼날이 후드의 목젖을 살짝 긁다가 팔을 향했다. 깨끗이 자르면 다시 붙일 수 있었다. 칼날이 위로 올라가자 후드가 소리를 빽 질렀다. 음성 변조 장치가 찢어져라. 외친 후드. 그 소리를 들은 마루가 칼을 거뒀다.
“좋아. 일단 나와.”
마루는 후드를 끌고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