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50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 같은 김 양의 눈빛에 후드는 식은땀이 조금 솟았다. 칼잡이가 쳐다봤을 때와는 다른 박력.
“아니, 주고 말고 할 건 아닌데··· 쟤를 어떻게 하려고?”
“쓸모 많음.”
“어디에 쓰게?”
“여기저기.”
지금 이 자들이 무슨 이야길 하는 거지? 이거 혹시 내 이야긴가? 후드는 패닉에 빠졌다. 얼굴이나 좀 익히고 뭔 상황인지 확인하고 싶었지, 덜컥 코 꿰이자고 온 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힐끗 후드를 쳐다본 김 양이 입맛을 다시곤, 마루를 향해 초롱초롱 눈빛을 보냈다.
‘저거 나 줌.’, ‘아껴서 잘 쓸게.’, ‘진짜임.’
해커를 가지고 뭘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알아서 하겠지. 뭣보다 간호사를 도촬한 녀석 아니던가? 잠시 빵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보낸다 생각하면 되리라.
“그래.”
“후후후훗- 감사.”
마루의 허락을 받은 김 양이 휙- 고개를 돌려 후드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리 온?
후드는 탄식했다.
하—
이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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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이 말했다.
“2호기.”
“···저 말입니까?”
빡- 김 양이 후드의 정강이뼈를 걷어찼다.
역시 이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럼 내가 백정에게 2호기라고 하겠음? 아주 정신이 썩어 빠진 게 맞았다.
간호사도 이러더니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었다. 나 때만 하더라도 이런 애들은 그냥 다 젓갈이 됐었다. 캡슐이 되기도 했고. 최소한 5명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그랬었다. 그러니 일단 개조부터 들어가야겠다. 김 양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2호기?”
“···네.”
후드는 울고 싶었다. 대체 내가 왜 여길 왔을까?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지만, 이건 죽는 것도 아니고. 도망칠까? 어떻게 도망치지? 김 양의 눈을 피해서 도망칠 수 있을까?
“무슨 생각?”
“아닙니다.”
“아님? 뭐가 아님?”
깍!
“!!!”
깐 데 또 까는 김 양이었다. 미치도록 아팠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 숙인 후드에게 김 양이 속삭였다.
“하드 까봐.”
“어···. 하드요?”
후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드에는 이러저러한 것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특히 이쪽 일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구해 놓은 붉은 도작 콱콱 찍힌 자료들. 비밀 어쩌고 하는 것들이 널려있었다.
거기에 몰래 긁었던 웹캠이랑 CCTV까지 생각하면···. 그런 후드의 절박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 양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드 까. 모조리.”
후드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드만은 그것만은 안 된다고 하기엔 분위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나온 반사적인 대답.
“왜요?”
후드의 대답에 김 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충격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 양. 지금 얘가 뭐라고 한 거지?
왜··· 요···?
지금 들은 말이 꿈이 아니라 현실? 실화냐? 얘가 나한테 ‘왜요?’라고 한 거 맞음? 김 양이 필사적으로 마루를 바라봤다.
‘지금 내가 들은 말, 너도 들었음?’ 제발 환청이라고 해달라는 듯한 김 양의 눈빛에 마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간 김 양의 손에 권총이 뽑혔다.
순식간에 안전장치가 풀리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는 김 양.
빠깡!
매캐한 화약 연기가 총구에서 피어오르고 후드의 머리통 옆에 총알구멍이 뚫렸다. 어느새 쭉 뻗은 마루의 칼집이 김 양의 권총을 옆으로 밀고 있는 모습이 후드의 눈동자에 비쳤다.
어?
후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저 멍했다가, 자기 머리통에 구멍이 뚫릴뻔한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굳었다.
바로 눈앞에서 발사된 총. 미련 없이 당겨버린 방아쇠, 그리고 흐릿하게 쳐다보는 김 양의 눈동자.
“야- 얼타지 말고 화장실로 들어가.”
마루가 김 양의 시선을 살짝 가려주며 말했다. 비척비척 화장실로 들어가는 후드의 뒷모습을 노려본 김 양이 샐쭉했다.
“?”
“아니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으면 애를 잘 다독거릴 생각을 해야지. 실력 있어서 좋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뭔 짓이야?”
마루는 김 양이 원래 이런 애인가 고민했다. 그러니까 성질 죽이고 살다가. 이제 슬슬 자유를 얻었다 싶으니까 본성이 드러나는 건 아닌가?
“폐급임.”
“아니. 솜씨 좋다더니 갑자기 폐급?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왜 그렇게 빡쳐서 그러는 건데?”
“저게 ‘왜요?’라고 했음.”
“무슨 소리야?”
“말대꾸.”
“하- 일단 진정하고 총 넣어.”
마루의 말에 김 양은 착하게 총을 넣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 머리통 하나를 날릴 뻔했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순둥순둥한 김 양. 마루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야. 그래도 그렇지. 그러면 되겠냐?”
“?”
“됐고. 너 갑자기 그러지 마라. 간호사한테는 안 그랬었잖아.”
“간호사는 말대꾸 안 했음.”
“아- 진짜- 일단 쟤 머리통 날리지 마라. 알았지?”
“알겠음.”
순둥하게 미소로 대답하는 김 양. 마루는 갑자기 닭살이 돋았다. 방문이 열리고 긴장한 얼굴의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총소리가 나서.”
간호사가 불안한 얼굴로 마루와 김 양에게 말했다.
“일없음.”
“별일 아닙니다.”
간호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루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
바운스- 바운스- 보잉747- 여객기의 우렁찬 엔진 소리- 하늘을 가르며 흔들리는- 보잉-
순간적으로 간호사의 얼굴이 아닌, 가슴으로 향하는 시선을 옆으로 돌린 마루가 김 양을 봤다. 역시 김 양의 아방한 얼굴을 보니 평안해졌다.
그래. 편안했다. 마루의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김 양의 얼굴에서 목으로, 목선에서 아래로 향했다. 초원에 살짝 솟은 완만한 언덕···이 아니었네?
마루는 뻘쭘하게 머리를 긁었다. 이게 의식하지 않다가 한 번 의식이 되기 시작하니까 진짜 신경 쓰였다. ‘후드 새끼 왜 그딴 해킹을 해서 사람 심란하게.’
“큼- 흠- 공부는 잘되고 있습니까?”
“아? 네. 제가 알아보니까. 여기 의학전문대학원 티오가 좀 있어서요. 이 근방에 동양인 인구가 적어서. 잘하면 가능할 것 같아요.”
“잘됐네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세요.”
“감사합니다.”
간호사가 인사를 꾸벅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급히 방으로 도망친 것 같은 느낌. 마루가 김 양을 보자, 예의 그 아방한 얼굴로 마주 보는 김 양? ‘뭐임?’이라는 표정.
“아니. 아까 하던 말 다시 하면. 알았지? 그냥 성질대로 쏘지 말라고.”
“알겠음.”
죽을 고비를 넘긴 후드는 화장실에서 늘어졌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다. 그냥 어리바리했을 뿐이었다. 근데 변기에 앉아 방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떠올리자, 반사적으로 몸이 떨렸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숨이 막혀 질식해 죽을 뻔하더니, 다음에는 머리통이 실시간으로 날아갈 뻔했다.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는 걸 실감하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질질 소변이 샜고, 언제 변비였냐는 것처럼 단단한 토끼 똥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숨이 점차 거칠어졌다. 후드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골랐다.
밖에서 악귀 같은 김 양의 목소리가 나긋나긋 울렸다.
“나오셈.”
착한 목소리. 저게 방금 사람 대가리 하나 날리려고 한 년이 낼 목소린가? 마치 ‘해치지 않아요. 자- 무서워 말고 이리 나오세요.’ 하는 목소리에 후드는 전신에 힘이 빠졌다.
“나.갑.니.다.”
끌어모은 힘으로 간신히 대답한 후드가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온 후드. 김 양이 선량한 얼굴로 말했다.
“하드 까셈.”
“······.”
후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만다를 작동시켰다. 사만다의 인공지능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는 모습. 프로그램에 어느 정도 소양이 있는 김 양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렇게 열린 하드 속 파일을 살피던 김 양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거 나임?”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옥상에서 저격하는 김 양의 모습이 담긴 파일이었다. 영상 속 김 양이 총을 뽑아 드론을 날려버리는 것까지 찍혀 있었다.
“······.”
후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김 양은 후드를 한 번 노려보곤 계속 파일을 재생했다.
갱단과 카르텔 본거지를 정리하는 영상도 전부 있었다. 압권은 역시 백정의 흔적. 시산혈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 영상으로만 봐도 소름이 오도독 돋는 김 양이었다. 역시 백정이었다. ‘그렇지 이게 백정이지.’
김 양은 어쩐지 뿌듯한 심정으로 마루를 힐끗 보곤 영상을 돌렸다.
그리고 최근 파일을 여는 순간, 눈앞을 가득 채운 두 개의 바운스. 바운스.
보잉- 보잉-
흔들- 흔들-
살랑- 살랑-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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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양을 진정시킨 마루가 후드를 쥐잡듯이 잡는 모습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김 양이 조금 충동적인 면이 있기는 했다. 간호사를 잡도리 했을 때도 좀 그런 면이 있기는 했지만, 대뜸 ‘죽어라!’ ‘그냥 뒈져버려!’ 그러지는 않았었다.
전에도 그랬을까? 지금처럼 막 나갔다면 월드에서 자리 잡지 못했을 거다. 월드 축산에 다녔을 때, 김 양을 단순한 경리 정도로 생각했었던 시절에도 그랬다. 지금 같은 성질이었다면 뭣도 모르고 치근덕대던 아재들 전부 실종됐을 테니까. 그럼 지금은?
?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을 어디서 받았었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도망쳤을 때? 한국에서 월드 애들 잡았을 때? 기순이와 일본으로 갔을 때?
본래 한 번 욱하면 터지기는 했었다. 괜히 중학교 시절 마도중 작은 하마라는 별명이 있던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밖은 소란스러웠다. 아직도 수습이 끝나지 않았는지, 길 건너편에서는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길게 늘어지고, 생각이 뚝뚝 끊겼다.
옆구리가 터진 밴.
그 밴에 사람이 들어가는 걸 보고 그냥 쏴 재낀 갱들.
놈들이 다짜고짜 쐈으니까 썰었다.
밴을 털려고 했다가 김 양에게 귀 떨어진 뒤, 돌아와서 총질한 새끼들.
그러니까 정당방위로 썰었다.
놈들을 썰고 해커를 잡아다가 CCTV를 지워버렸다.
마루는 느릿하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놈들은 총질하고 그냥 떠나려고 했었다. 총질을 피해 밴 밖으로 빠져나온 뒤, 확실히 봤다. 총알을 쏟아부은 놈들은 자리를 뜨려고 하는 모습을. 근데 그걸 당연하다는 듯 썰어버렸다.
일본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변이된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
성격이 급해짐
충동을 잘 억제하지 못함
후- 마루가 심호흡했다.
걸린 건가? 확실하지 않았다.
감염자들처럼 미쳐서 날뛰었으면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다닐 수 없었을 테니까.
걸렸다가 낫기도 하나? 그쪽으로는 정보가 없었다.
결과만 보자면 충동을 참지 못하고 휘둘린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감정적 충동에 휘둘려 칼을 뽑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써는 것 같았다.
그럼 그게 더 문제 아닐까?
웨용- 웨용- 웨용-
늘어졌던 사이렌 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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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를 잡는 것을 말린 마루가 방금 했던 생각을 김 양에게 이야기했다.
요즘 너무 그러는 거 같지 않아?
일단 베고 본다.
냉큼 쏘고 본다.
우리 뭔가 이상하지 않니?
“안 이상함.”
“······.”
“좋음.”
아주 좋았다. 너무 좋았다. 얼마나 좋은가? 당연히 좋지 아니한가? 김 양이 나사 풀린 미소를 지었다. ‘우리 좋음.’ 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