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58화 (158/280)

러스트 [RUST]-158

4m가 넘게 쌓인 눈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치웠을까?

눈 속에 파묻힌 장애물을 어떻게 치웠을까? 인력으로 버려진 자동차와 무너진 건물 잔해 등을 치울 수 있었을까?

조그만 제설 장비들이 윙윙 엔진 소리를 내며 터널 밖으로 나갔다.

“전투 준비!”

“각자 위치로!”

“헬기 이륙 준비.”

“빨리빨리 내려.”

무한궤도가 달린 조그만 굴착기와 불도저처럼 생긴 차량이 제설 장비를 무장으로 교체했다. 포클레인에게 장착된 것은 화염방사기, 불도저에 달린 것은 20mm 기관포와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

화륵- 화염방사기 앞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위이이이잉- 기관포가 조준선을 정렬하고 조종사의 헬멧에는 다양한 정보가 떠올랐다.

그 뒤에서 들리는 기계음. 조그만 몸체에 12.7mm 기관총과 고속 유탄 발사기가 달린 전자동 터렛이 자리를 잡았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HUD) 드론들이 전해주는 정보, 레이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표시했다. 파랗고 하얗게 표시된 전방.

차가운 눈덩이 안쪽으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 같은 붉은 형상이 아른거렸다.

“11시 방향. 화염방사기 대기.”

뚫어 놓은 눈 터널 안쪽 저편에서 낮게 깔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 ■■■■

HUD에 떠오른 화면, 선명한 붉은색 물결이 터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기.”

떼로 달려드는 소리가 터널 밖으로 퍼졌다.

“쏴!”

조준하고 있던 기관총과 기관포가 불을 뿜자, 터널을 찢어 버릴 것처럼 쏟아지는 불꽃.

철갑탄으로 피워올린 불꽃에 터널 안쪽을 가득 채운 무언가는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중지. 사격 중지!”

뜨겁게 달궈진 총신이 뿌연 수증기를 내뿜으며 침묵했다. 하얀 터널 입구에서 조금씩 선홍색 핏물이 흘러나왔다.

“전진!”

HUD를 장착한 병사들이 터널 안에서 발견한 것은 천 단위가 될 법한 쥐 떼였다.

그게 쥐가 내는 소리였다고? 무슨 짐승이 낼 법한 소리였는데? 씨발 쥐도 짐승이었지.

“자료랑 비교하면 크기 차이가 너무 나는데요?”

“그래.”

일본에서 탈출했다는 자들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자면 대형 바퀴벌레, 쥐가 있다고 했다. 사람 팔뚝만 한 쥐라고 하더니, 팔뚝은 무슨 얼어 죽을 팔뚝?

“50에서 55파운드는 될 법합니다.”

“미치겠군. 쥐 새끼 한 마리가 무게가 20kg이 넘어갈 크기야···.”

대형견 중량이었다. 크기도 성인 여성 몸통과 비교했을 때 작지 않아 보였다. 확실히 이딴 게 계속 몰려들었으면 곤란하긴 했을 것 같았다. 위험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고작 이딴 덩치 큰 쥐새끼에게 해병대가 밀렸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바퀴벌레도 더 커졌을 수 있겠네. 손바닥 크기라고 했었지? 그거 2배에서 4배 더 큰 바퀴가 덤빌 수 있으니까 병사들에게 미리 알려주고 동요하지 않게 단속시켜. 샘플로 몇 마리 빼고, 전부 태워버리고.”

“알겠습니다.”

낮이라 눈을 파서 만든 터널은 안쪽 깊은 곳까지 하얗게 환했다. 그 순백의 공간을 가득 메운 쥐의 사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핏물, 피를 빨아드려 붉게 물든 하얀 눈.

“잔탄 확인하고. 총알 아끼라고 해.”

“넷,”

젠장.

쥐새끼들 잡는데 총알을 너무 퍼부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너덜너덜 늘어진 쥐새끼를 걷어찬 대위가 침을 뱉었다.

‘바퀴, 쥐, 새, 물고기들 그리고 변종 따개비.’

대위는 정보를 되새김질했다. 감염자들은 분노 조절을 못 한다고 했었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치 좀비처럼 변한다고 했다.

‘그건 문제가 아니야.’

분노조절장애 걸린 것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변종 감염이었다. 변종은 사람들의 뇌와 심장을 파먹는다고 했다.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진 변종은 사람을 잡아먹으면 먹을수록 지능이 높아진다고 했었다.

‘아마 변종이 있을 거다. 변종 때문에 구조대가 무너졌다고 보는 게 맞아.’

분노조절장애? 해병대 구조대가 그런 말랑말랑한 것에 녹았을 리 없었다. 아마 제일 큰 문제는 변종과 보급이었을 거다.

더럽게 걸렸네.

“본부에 연락해서, 탄 더 달라고 해.”

헬기가 움직일 수 있을 때, 최대한 보급을 쌓아야 했다. 나중에 다 잃는 한이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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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명이 넘는 대규모 병력을 일본에 상륙시켰는데, 악천후로 주저앉아 버렸다. 작전은 고사하고 밥만 축내고 있는 상황.

일단 이상기후가 진정될 때까지 한국으로 후퇴시키려고 했더니 중국과 북한이 반발했다. ‘일본 구조하러 간다고 대규모 병력 보내더니, 한국으로 보내?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냐?’ 발광했다.

거기에 보급도 문제였다. 보급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될 만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당연한 이야기가 시가전과 게릴라전 그리고 뭐 같은 지형, 기후와 결합하는 순간. 그냥 답이 없어진다.

그러니까 아프간이 아련하게 떠오를 것 같은 상황? 아프간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엉망이 되고 있었다.

미 본토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로는 배링해를 거쳐 홋카이도 북부, 사할린 남부 해역을 지나, 일본 서부에서 한국 동해로 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부유석과 변종 따개비 때문에 항로가 막힐지 몰랐다.

항공수송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야 빙 돌아서 어떻게든 한국까지는 갈 수 있었는데, 만약 홋카이도와 사할린 화산이 터진다면? 거기에 백두산까지 터져버린다면?

반대로 이동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니까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항공 수송해야 할 판. 상상하기도 끔찍할 루트였다.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쇼미더머니도 한계가 있지, 1달러짜리를 보급하는데 8달러 10달러씩 처박기 시작하면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현지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일본 혼슈 서부 일부만 간신히 돌아가고 있는데, 해저화산 폭발로 태평양과 남중국해 항로가 사실상 막혀버려 연료 수급이 어려워졌다.

그 여파로 화력 발전소 가동률이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한국 방향 항로가 살아있어, 그 루트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구하면 됐지만, 도쿄 대지진으로 정부가 날아간 일본이었다.

심지어 그 뒤에 만든 임시재난 정부까지 증발해 버렸다. 지금은 각 지방 정부가 각자도생하고 있는 상황, 일본에 정부가 없는데 뭘 믿고 가스를 주나?

이런 상황에서 미군이 편안하게 보급 까먹으면서 겨울 보낼 수 있을까? 일본은 지금 자국 이재민도 감당 못 하는 판국인데?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미군 기지 앞에 일본 난민들이 친 텐트촌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철조망 건너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일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돌아버리겠군.”

그냥 미칠 노릇이었다. 병력 때려 박아서 속전속결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건만, 돌아가는 꼴이 엉망이다 못해 지랄이 됐다.

“저들을 전부 굶겨 죽일 수도, 얼어 죽도록 그냥 둘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게 문제였다.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피난민들이 임시 기지로 몰려들고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그쪽도 난리입니다. 해로가 막혀서 사실상 호주와 유럽에서 오는 수입 루트가 막힌 데다. 중국에서 수출 규제를 때린 여파로, 식료품을 비롯한 생활필수품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는 상황입니다.”

중국이 또 중국해 버렸다. 일본 대재앙으로 기후변화가 생겨, 내년도 농작물 수확이 불확실하다는 핑계로 한국에 식료품 생필품 수출 금지를 때려 버린 게 결정타였다.

호주 유럽에서 수입하던 거 막혔지, 미국 수입량도 항로가 늘어지면서 물량 줄었지, 그 상황에서 중국이 중국?

한국도 사상 초유의 식량 위기 사태가 예고되면서 난리가 났다. 거기에 대고 ‘일본 애들 굶어 죽겠다. 난민들 먹이게 식량 내놔라, 미군 보급 더 내놔라.’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큰일 났습니다! 대규모 폭력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뭐? 일본 경찰은 뭘 하고 있어!”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휘말려 버렸습니다.”

“···돗토리 현에서는? 지방 정부에서는 뭐라고 해? 경찰을 더 보내든지 자위대를 보내든지 뭘 해야 할 거 아니야!”

“연락받지 않습니다.”

“이 새끼들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건가? 이 시국에?

“폭도들이 기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시위 진압용 장비는 없었다. 물대포? 최루탄? 그딴 장비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경고 방송하고. 경고 사격해. 그래도 무시한다면··· 방어 수칙대로 해.”

“···알겠습니다.”

경고 방송이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잠시 뒤 시작된 경고 사격. 다시 경고 사격이 이어졌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처럼, 성난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기지를 향했다.

“미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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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전역에서 밤하늘을 꿰뚫듯 총성이 울려 퍼졌다. 새해를 축하하는 총소리가 밤하늘을 꿰뚫었다. 역시 디트로이트식 신년 행사였다.

타다다다다당

투다다다다닥

도로는 한적했다. 총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데 누가 차를 타고 돌아다니겠는가? 외딴 지역과 슬럼가 도로는 텅 비어있었다.

가로등이 깨져 어둑한 도로 한쪽 구석. 흐릿한 어둠이 일렁이더니 김 양의 머리가 쏙 나왔다.

철컥. 철컥.

비싼 총알이 아까워서 좀 싼 총알을 썼더니 잼이 걸렸다.

흥- 역시 총알은 비싼 거 써야 해.

갱들 따위에 비싼 거 쓰기 아까워서 동네 총포상에서 대충 할인하는 거 썼더니 이랬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스물셋?

마지막 한 놈은 확인 사살 못 했으니까.

‘응 스물셋.’

역시 디트로이트는 편안했다. 김 양은 총총 호텔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아 TV 뉴스를 보고 있는 마루.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분위기 썰었다.

김 양은 벽에 붙은 표어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생각하고 쏘자.]

생각하고 쐈습니까?

···네. 쏠 놈만 생각했습니다.

[착하게 잘하자.]

착하게 잘했습니까?

···네. 모두 착하게 해줬습니다.

오늘도 지켰습니까?

네. 지켰습니다.

표어에 한 점 부끄러움 없었다, 싸구려 총알을 썼어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 양은 오늘 하루도 뿌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만족하고 있는 김 양, 마루는 그런 김 양을 힐끗 보곤 TV로 시선을 돌렸다.

후드의 정보 탐색을 이용해서, 빌딩 주변에 있는 범죄조직 거점을 정리하고 있었다. 김 양을 좀 풀어줄 겸, 미래를 대비한 사전 정리 작업이었다.

연말 연초의 디트로이트는 거의 반쯤 무법지대인지라, 은신 로브를 쓴 김 양이 활동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거기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김 양이 작업하는 인근 지역 CCTV를 장악했고, 휴대폰까지 해킹한지라 완벽한 뒤처리가 가능했다.

갱들이 떼죽음을 당했어도, 그냥 갱들끼리 싸웠나 보다. 그 정도에서 끝났다. 이래저래 후드의 작업량이 좀 많아지긴 했지만, 슈퍼컴퓨터를 향한 후드의 염원은 잔업 따위로는 꺾을 수 없었다.

“이제 몇 군데 남았지?”

“···3곳.”

김 양은 급격히 다운됐다. 3곳이면 내일 하루 만에 끝낼 수도 있었다.

“얼마 안 남았으니까, 유종의 미. 알지?”

“··· 8마일 아래쪽도 갱들 많다고 함.”

“그건 일단 이쪽 정리 끝나고.”

“알겠음.”

그럼 또 넉넉하게 닦을 수 있었다. 김 양이 살짝 회복됐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일본에 고립된 부대를 구하기 위해 대규모 부대를 파병했던 일 기억하십니까?]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구조작전이 좌초될 위기에 겹쳐, 미군 기지 인근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입니다.]

[···동행한 종군기자들이 보내온 영상입니다.]

분노에 날뛰는 피난민들이 철조망을 향해 달려들었다. 경고 방송과 사격을 여러 차례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사람들.

철조망이 전신을 옭아매도 무시하고 밀려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을 밟고, 아래 깔린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쓰나미처럼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총소리와 동시에 화면이 전환됐다. 망가진 기지와 바닥에 흥건한 피가 화면에 잠시 떠올랐다.

[···폭도들이 기지를 공격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방어 지침 대로 명령했습니다.]

[피난민을··· 강경 진압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향후 구조작전에 영향을···]

[이번 작전에 신형 소총을 비롯해 첨단무기를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작전 자체가 무산 될 상황이]

[다음 뉴스입니다. 일본에서 터진 대규모 화산폭발이 현재 이상기후에 원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워싱턴 대학교 미셀 박사팀은···]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의 여파로 지구의 온도가 1도가량 낮아진 사례를 봤을 때, 그보다 더 대규모로 더 많은 화산이 한꺼번에 폭발한 지금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삑=삑=삑=

인터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울릴 일이 없는데···

[블라디마루 칼린님. 국토안보국에서 찾아오셨습니다.]

하- 작게 숨을 내쉰 마루가 TV를 껐다.

“올려보내지 마시고, 지금 내려간다고 해주세요.”

직접 찾아왔다?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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