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60화 (160/280)

러스트 [RUST]-160

새해 일본은 폭설에 한파가 겹치고 여진까지 덮쳐 아비규환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이 하얀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이곳 해안가는 평년 기온보다 4도나 낮은 기온으로 눈이 내렸는데요.]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와 먼지, 연기가 태양광 차단의 원인 가운데 하나지만··· ]

[지구의 에너지 순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학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일본에서 또다시 피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이번까지 합하면 벌써 3차례나 폭동이 발생했지요? 원인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전력, 식료품, 방한용품 등 생존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이를 두고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도난 병원에 고립된 미군과 미국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파병된 군대가, 사실상 일본 피난민들의 생계와 치안을 책임지는 후방부대가 된 가운데, 유엔에서는 일본에 평화유지군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안건으로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상임이사국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은 평화유지군 일본파병에 반대할 것을 밝혔는데요. 어째서입니까?]

[중국과 러시아 대표는 일본의 대재난에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렇지만 유엔평화유지군을 파병하려면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고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가장 강하게 반대한 중국 대표는 일본이 대재앙을 입었다고 평화유지군을 파견한다면 이제까지 재난을 당한 다른 나라에는 어째서 평화유지군을 파병하지 않았는지, 그것부터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중국을 비난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지 않습니까?]

[영국과 호주는 이러한 중국의 반대가 정치적이며 악의적이라고 논평했습니다. 현재 활발한 지진과 화산 분화를 보면, 불의 고리라는 별명을 가진 환태평양 조산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만에 대규모 재난이 터질 경우, 이번 일본의 사례를 들어 유엔군을 파견하자는 움직임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중국 측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거침없이 반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일본 대표의 발언이 사실상 공신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일본 대표는 일본 정부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일본 정부가 대재난으로 사라졌기 때문인데요. 다시 구성된 임시재난 정부마저 무너져, 일본 대표의 발언력이 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일본에서는 중앙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현재 각 지방은 각자도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임시 정부가 무너진 이후, 구심점이 없기 때문인데요. 이는 현재 각 지역이 처상 상황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난민들이 끝없이 몰려들었고, 폭동이 터졌으며, 강경 진압되기를 벌써 3차례.

1만 명이 넘는 미군의 보급. 그리고 그 주변으로 몰려든 거의 20만 명에 육박하는 피난민 툭하면 벌어지는 폭력 사태. 폭력 사태의 확산과 갑자기 폭도로 변하는 것까지. 상황은 악화일로에 빠져버렸다.

“이번엔 사상자가 얼마나 나왔나?”

“지금까지 집계된 사상자만 2,300명이 넘습니다.”

“우리 측 사상자는?”

“87명입니다.”

3차례의 폭동을 진압하는 동안 200명 가까운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폭동은 점차 규모를 불려가고 있었다. 기지를 포위하다시피 모인 피난민 숫자가 2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폭동이 일어난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답답하군. 경고 사격을 들어 먹지 않는 건 대체··· 지금 우리가 태평양 전쟁을 재현하고 있는 건가? 피난민들은 우리에게 반자이 돌격하고 있고? 대체 이유가 뭔가?”

“아무래도 정보대로 변이된 코로나에 걸린 여파가 아닐까 합니다.”

“그놈의 코로나! 그게 문제라면 다들 눈이 뒤집혀서 난리가 났어야지!”

“걸리는 사람과 걸려도 증상 없이 그냥 지나가는 사람, 잘 걸리지 않는 사람이 나뉜 것 같습니다.”

“후- 좋아- 그래. 그래서 폭동을 일으키는 피난민들은 그 병신 같은 바이러스에 걸려, 머리가 획 돌아서 막 나가는 거다?”

“현재 상황과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귀화한 자들이 변이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말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무슨 바이러스가 마약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영향을 준다는 건 소설을 넘어서 망상에 가깝다고 했다.

증거 자료도 없었고 단순히 증언만 있는 상황.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미치게 한 원흉이 코로나라는 소리에 비웃음 쳤었다.

‘이왕에 하는 김에 코로나가 좀비 바이러스라고 하죠?’

그리고 지금. 전문가들이 비웃었던 증언이, 웃고 넘길 게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미치겠군. 부대원들 피난민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고, 전부 PCR 검사 시행하도록.”

“넷!”

“걸린 사람은 바로 격리 조치 취하고. 의무대와 생화학부대에 연락해서 대책 마련하라고 해.”

“넷!”

“그리고. 피난민들에게 공지하도록. 폭력 사태가 터지든, 폭동이 일어나든 부대 근처로 접근하면 남녀노소 누구를 막론하고 실탄 사격한다고. 머리가 돌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래도 부대 쪽으로 오는 것들은 경고 방송과 경고 사격 이후 사살한다. 비무장이라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팔다리 쏘지 말고 바로 사살해.”

변이 코로나에 걸려 미친 거라면,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도난 병원으로 간 강습부대는 어떻게 됐나? 아직도 연락이 없나?”

“현재 무선 통신이 가능한 거리가 4마일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무선 통신 거리가 고작 6km? 눈이 이렇게 많이 와서 공기가 제법 맑아졌는데도? 힘들군. 도난 병원에는 대체 뭐가 있길래 아직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모양인 거야?”

“연락병이 가져온 영상을 분석한 결과, 인간형 생명체와 교전 중임이 밝혀졌습니다.”

“인간형 생명체? 어이가 없군.”

“······.”

인간이면 인간이지 인간형 생명체? 뭐 하자는 건가?

사실일까?

인간의 뇌와 심장을 파먹으면서 진화한다는 변종이 있다는 황당한 증언이?

‘빌어먹을 전문가들. 개 같은 상황.’

테이블에 벗어 놓은 모자엔 하얀 별이 반짝거렸다. 준장이 손을 뻗어 모자에 붙은 별을 만지작거렸다. 오돌토돌 손끝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거대 바퀴는 흔적도 없었다. 미친 듯이 공격했다는 새 떼도 마찬가지였고 정체 모를 검은 괴물도 없었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그랬다.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바퀴벌레만 커졌다거나, 설치류만 커졌다는 건 가능해도, 곤충, 설치류, 조류, 사람까지 영향을 주는 바이러스?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신체적 변이를 일으킨다고? 쥐새끼를 개새끼 크기로 뻥튀기하는 바이러스? 영화냐? 그딴 게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냐? 그런 입장이었다. 그게 상식적인 생각이기도 했고.

근데, 거대 쥐가 나왔다.

없다고 불가능하다고 하더니,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코로나도 있었다. 사람 뇌 파먹는 변종으로 의심되는 영상도 찍혔다.

이제 바퀴벌레, 새, 정체불명의 검은 괴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있다고 가정하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생화학전, 방사능전 장비를 지급하고. 특수기갑병단 대기시켜.”

미군은 진지하게 철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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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빌딩 공사장.

빌딩에는 슈퍼컴퓨터, 비상 서버센터, 소형 원전 같은 중요시설이 들어오게 됐고,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요한 시설인지라 보안이 강화됐다.

마루는 후드가 있는 통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보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보안을 명분으로 국토안보국 직원들과 경찰들이 공사 현장 인근에 쫙 깔렸다. 공사가 끝나고 나면 다수가 보안 요원으로 탈바꿈해서 눌러앉겠지.

이해할 수 있었다. 뭘 믿고 덜컥 주겠는가? 줬다는 걸 핑계로, 보안을 핑계로 슬금슬금 하겠지. 아마도 선뜻 넘겨준 이유가 있을 거다.

그 이유가 뭐든 주고받고. 적당히 선만 지키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저쪽에서 답 없이 나올 경우, 편한 마음으로 착하게 잘하게 하면 되지 않겠나?

칼 손잡이를 잡자, 날카로워지던 신경이 조금씩 진정되는 마루였다.

‘다 그런 거지.’

그간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마루는 여유가 좀 생겼다. 후드의 합류로 인해 도청이라든지 몰카, CCTV 걱정이 많이 없어졌다.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여차하면 그냥 시원하게 썰어버려도 대충 덮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마루가 여유롭게 행동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 그. 그.”

“? 그?”

CCTV로 오는 것을 봤을 텐데? 마루가 통제실로 들어서자 후드가 버벅거렸다.

“그···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결과?”

“그거. 질병통제센터 산하 연구실에 혈액 보낸 거 말입니다. 여기 내용.”

마루가 모니터에 뜬 내용을 확인했다.

‘복잡하게 써 놨네.’

전문용어가 너무 많았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든 도표와 실험 결과들.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만 확인하면서 페이지를 전환했다.

김 양은 감염됐다. 김 양에게서 채취한 시료를 배양해 얻은 바이러스를 실험용 쥐에 투입한 결과, 실험용 쥐의 뇌가 일부분이 변성됐다. 자제력이 확연히 약해졌다는 분석.

도난 병원에서 봤던 자료와 비슷한 결론이었다. 다행인 것은 실험 개체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점이었다. 100마리를 실험했을 때, 자제력이나 조심성을 완전히 상실한 쥐가 86마리, 자제력과 조심성이 약해진 쥐가 12마리,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지 않은 쥐가 2마리였다.

사람에게 대응시키긴 어려웠지만,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지 않은 쥐가 있다는 것. 그리고 자제력과 조심성을 전부 상실하지 않은 사례가 제법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너랑 간호사 결과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행이었다. 마루는 계속해서 자료를 읽었다. 감염 초기에는 감염력이 강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감염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내용.

한 사람이 변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가정하자, 그럼 감염 초기 증식한 바이러스는 감염력이 강력해 공기나, 비말로 타인에게 전염시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염력이 약해지는 추세로 돌아서고, 어느 순간부터는 감염력을 거의 상실했다.

‘이게 가능한가?’

상식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장기간 봉쇄를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그것만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방법일지 몰랐다.

‘중국은 뭔가 알고 있었군.’

변이되기 전 중국의 바이러스 대응 방식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 마약과 바이러스가 작용하는 부위가 비슷하다는 자료. 변이되는 형태가 비슷하다는 결과.

마루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결과들이 있었다. 마치 바로 앞에 있는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느낌. 멈춰야 하는데 멈출 수 없는 곳으로 연구 내용이 치닫고 있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추가 생체실험 필요.]

···

···

[오리지널 바이러스 확보를 통해]

···

···

[운동능력 향상, 반사신경 활성화를 통제···]

···

···

[일본에 PMC를 파견, 비공식적 샘플 채취를 요망.]

···

···

[감염자 확보 필요.]

[변이된 감염자 확보 필요.]

마루가 후드에게 말했다.

“이거 들키지 않았지?”

“예. 네.”

“우리가 보낸 샘플 날려버릴 수 있겠어?”

“어. 날려버린다니···”

“샘플을 폐기하거나 내용을 날려버려서 특정할 수 없게.”

“가. 가능합니다.”

“좋아 그렇게 하고. 슈퍼컴퓨터 말이야, 구하기는 했는데 네가 적어준 사양은 아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새것을 구하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형이상학 연구실에서 사용하던 것을 받아오기로 했어. 프로그램 오류가 좀 있는 모양인데, 내일 들어오기로 했으니까 확인해 봐.”

“가···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한 후드가 작게 어깨를 떨었다.

‘사만다. 드디어.’

‘···우리의 꿈이··· 우리가 사만다.’

살짝 떨리던 후드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뭔가 오열할 느낌에, 마루는 자리를 피해 슬쩍 밖으로 나왔다.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진 마루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기순이 녀석 한국에 도착했다고 딱 한 번 전화하더니 이후론 연락이 없었다.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고.

‘조금 있으면 한 달인데. 이거 한 번 가봐야 하나?’

마루가 호텔 복도를 걷는데, 방 안쪽에서 미약한 구동음이 들렸다.

위이이이잉-

문 건너.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스르르릉-

칠흑에 잠긴 칼을 가만히 뽑은 마루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자 보이는 모습.

끼잉- 끼잉-

위이이이잉-

위잉- 위잉-

김 양이 폴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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