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61화 (161/280)

러스트 [RUST]-161

위잉- 위잉-

갑옷? 좀 동글동글한.

그러니까 뭔가 선이 부드러운 갑옷 비슷한데 그건 아니고. 강화 외골격( exoskeleton )?

마루가 뽑았던 칼을 칼집에 넣었다.

“지금 뭐 하냐?”

“연습.”

끼이이잉-

우이이잉-

소리가 아주 큰 건 아닌데, 거슬리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전기차에서 나는 웅웅 소리 비슷한. 어쨌든 기도비닉이 필요한 곳에서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근데 김 양이 이걸 왜? 은닉이 중요한 저격수에게 이게 왜 필요하지?

“?”

“이거. 일본 가면 준다고 함. 써보라고 주고 갔음.”

“······.”

“이거. 완전. 좋음! 진짜. 좋음! 이거.”

‘이거’ 3번 반복에, ‘좋음’ 엑센트까지.

‘꽂혔군.’

저번에는 바렛에 꽂히더니, 이번엔 엑소슈트?

“힘 좋음.”

좋다는 걸 강조한 김 양이 옆에 놓인 체인건을( Chaingun ) 번쩍 들었다. 엑소슈트를 입고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한 체인건이었다.

체인건의 특징은 신뢰성이 높다는 것이다. 총알이 걸릴 경우, 동력을 사용하는 체인을 이용해 불발탄을 배출하기 때문이었다. 단점은 외부 동력을 사용한다는 것. 다시 말해 전기가 없으면 먹통이 된다는 점.

‘배터리로 엑소슈트와 체인건을 쓰긴 어려울 것 같은데.’

탄창까지 합하면 무게가 25~27kg 나갈 법한 체인건을 빗자루 들 듯 가볍게 드는 모습. 확실히 부드럽게 움직였다.

“동력이 뭐냐?”

“?”

마루의 질문에 김 양은 ‘그딴 거 모름.’ 했다. 잘 움직이고 힘세면 됐지 뭐가 그리 궁금한가?

‘어디 보자.’

점프는 힘들었다. 아까 봤지만, 폴짝폴짝 수준. 관절은 제법 유연했다. 다리 찢기, 파쿠르 같은 아크로바틱한 동작은 불가능했어도 걷고, 뛰고, 구르고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범주.

거기에 크기와 중량이 과도하지 않았다. 사람이 입고 움직여야 하는 엑소슈트가 크고, 무겁지 않다는 건 아주 큰 장점이었다. 실내에서도 운용 가능하다는 거였으니까.

따로 전용 수송차량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대충 덩치 큰 사람 정도의 크기라 사람이 쓰는 장비를 쓰기 편했다.

“이거 보셈.”

휙- 휙-

체인건을 들고 이런 자세로 저런 자세로 바꿔 겨누면서 김 양이 말했다.

마루는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하는 김 양을 봤다. 본래 계획은 혼자 일본으로 가서, 최대한 빨리 정보만 챙긴 뒤, 한국에 들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김 양까지 엮을 줄이야.

일본은 엉망이었다. 돌멩이를 던지는 원숭이까지 있었으니까. 마루 자신이야 피하면 됐고, 여차하면 날아오는 돌멩이를 쳐내면 된다지만 일반인은 아니었다. 날아오는 돌멩이 하나하나가 치명적일 테니.

바퀴벌레나 쥐 떼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혼자만이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김 양은?

총화기를 잘 다루고 여러 잡다한 지식이 많은 김 양이라고 하더라도 위험한 곳이 지금 일본이었다. 그래서 김 양은 이곳에 남기고 다녀올 생각인 마루였다. 후드와 간호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엑소슈트가 걸렸으니, 따라가겠다고 하겠군.’

김 양이 있으면 편하기는 했다.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든든했으니까. 거기에 엑소슈트로 무장한 김 양이라면 확실히 전력감이었다.

‘이걸 어쩌나···’

돌아오는 길에 기순이를 볼 생각이면 데려가는 것이 좋았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 장거리 저격수가 가진 위력은 이미 경험해 봤다.

‘남은 애들은 맡겨야 하겠군.’

후드와 간호사 보호는 PMC 애들이나 경호원 고용하는 것보다 국토안보국에 맡기는 게 좋았다. 빌딩 공사하느라 보안 요원들 넘치는 상황이니, 크게 까다롭게 굴지 않을 것이다.

“짐 챙겨. 바로 출발하게.”

“알겠음.”

김 양이 좋다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마냥 싱글벙글.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와 달랐다. 요즘 들어 부쩍 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맞았다.

발랄하게 짐을 싸는 김 양의 뒷모습을 보자니, 바이러스가 두뇌에 영향을 줘 성격이나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는 연구 일지가 떠올랐다.

폭탄과 수류탄을 바리바리 챙기는 김 양의 행동에 마루의 상념이 깨졌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히히 웃은 김 양이 슬쩍, 옆에 있는 수류탄을 몇 개 더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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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수송기는 생각보다 내부가 넓었다.

“국토안보국 찰리 민입니다.”

“블라디마루 칼린입니다.”

한국 부산에서 헬기를 이용해 돗토리 현에 있는 미군 캠프로 이동, 미군 캠프에서 다시 도난 병원 인근 전진기지로.

“전진기지에 도착하면 그곳부터는 독자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보급은 자유롭게 가능합니까?”

“탄약과 식료품은 가능하지만, 그 외의 것은 사실상 곤란하다고 봅니다.”

국토안보국에서 직접 관여한다고 하면 군부에서 반대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들고 온 것이 신형 엑소슈트 실전 검증.

군부에서 사용하는 엑소슈트가 있었기 때문에 군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회사와 경쟁하는 다른 업체의 엑소슈트를 챙겨가야 그림이 나왔다.

김 양에게 챙겨준 엑소슈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더라도 군부에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할 것이라는 점. 군부에서 선택한 엑소슈트를 사용하고 있는 있는데, 경쟁사의 엑소슈트를 실험하겠다는 형국이니, 텃세나 견제를 받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렇군요. 그럼 이쪽을 보조해줄 인력은 몇 명이나 됩니까?”

“전진기지까지 함께할 인원은 저를 포함해서 6명입니다.”

단순한 명분은 아니었다. 실제로 실전 검증을 겸하고 있었으니까. 그와 관련된 연구진과 기술진을 합해 6명, 마루와 김 양을 포함하면 8명이었다. 적지 않은 숫자.

“일이 끝나면 저와 미스 킴은 한국에서 잠시 일을 보려고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얼마나 걸리시겠습니까?”

“늦어도 하루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면 가능합니다만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목표가 단순했기에 계획도 간단했다.

‘다 필요 없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정보만 챙겨 나오는 것.’

뉴스에서 본 것보다 일본의 상황은 심각했다. 눈이 내렸다 하면 40~50cm씩 뿌려대고 있었다. 제설작업을 멈추는 순간, 순식간에 눈에 파묻히는 상황.

3차례나 폭동을 진압했지만, 끊이지 않는 폭력 사태와 감염 폭증. 더 견딜 수 없었는지 미군 캠프에서는 철수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미군 캠프 앞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보급을 더 챙겨 놓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챙길 것을 챙겨 뒤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찰스 민의 말대로였다. 그렇게 일행이 둘로 나뉘었다. 마루와 김 양은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전진기지를 향했다.

전진기지라고 해도 운동장 2개 정도 넓이였다. 아령처럼 양쪽으로 불룩한 형태로 한쪽에는 치누크 헬기가 착륙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막사가 있었다.

이곳도 캠프처럼 엉망이긴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 며칠 동안 수차례 공격했지만, 도난 병원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기이이이잉-

구동음과 함께 3.5~4m는 될 법한 기체에서 조종사가 내렸다.

“놈들이 또 건물 안으로 도망쳤습니다!”

군부에서 쓰고 있는 엑소슈트는 엑소슈트라기보다 로봇이라고 볼 정도로 덩치가 컸다. 그러니 건물 안에서는 제대로 운용할 수 없었다. 대안으로 유인 작전을 써서 몇 번 재미를 봤지만, 놈들도 학습한 건지 유인 작전이 먹히지 않기 시작했다.

“또?”

“유인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기갑병 조종사의 말에 중위가 인상을 썼다.

“옥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미에 속지 않고 있습니다.”

“지독한 새끼들. 얼어 뒈지지도 않고.”

병원 옥상에 있는 헬기 착륙장을 이용해서 구조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옥상 여기저기 쥐죽은 듯 숨어있다가, 헬기로 강하작전을 펼치려고 하면 사람만 쏙 낚아채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뭐야?”

“아크텍에서 왔습니다.”

마루가 서류를 내밀자, 착- 가져간 중위가 마루와 김 양을 지긋이 노려봤다.

“아크텍? 엑소슈트인가?”

“······.”

눈이 없나? 서류 가져갔으면 읽어나 보지? 마루는 중위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보다시피···. 이곳 상황이 좋지 않아. 데이터를 쌓겠다고 하는 것도 좋은데,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겠나?”

“······.”

“그런가? 그럼 하나만 확실히 하지, 똥을 싸는 건 좋아. 하지만 뒤를 닦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만 명심하면 돼. 알겠나?”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마루를 보곤 헛웃음 진 중위가 서류를 돌려주며 말했다.

“그럼 행운을 빌지.”

“······.”

코를 찌르는 탄 내에 마루가 주변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구덩이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쥐와 개, 고양이 따위가 뒤섞여 불타는 모습.

개와 고양이? 저게?

“저거 봤지?”

“봤음.”

“우리가 저번에 봤던 것보다 확실히 크지?”

지하 연구소에서 봤던 쥐 떼들. 그때도 팔뚝만 해서 기겁했었는데, 구덩이에서 불타고 있는 쥐는 언뜻 봐도 더 컸다.

“훨씬 큼.”

김 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20kg은 됨직한 요크셔테리어와 치와와. 저런 종류가 저렇게 큰데, 더 큰 견종은 얼마나 커졌을까?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표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컸다. 쥐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컸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흔적을 보니, 점차 습격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후속으로 뒤따라 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갈 여유가 없어 보였다. 언제 다시 습격이 터질지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

만약 일행이 오길 기다리다가 습격받는다면? 그렇게 한 번 휘말리게 되면 전진기지 방어하다가 날이 저물 것이다.

“이거 피곤하겠는데?”

“······.”

마루의 말에 김 양도 동의했다.

“어디로 감?”

“직진이지. 1층.”

계단으로 가자고? 15층까지?

“엘리베이터 타고 바로 올라가면 되지.”

“그거 있음?”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엘리베이터 열쇠. 아직 가지고 있었음?’

‘당연하지.’

도난 병원을 거점으로 삼겠다고 그 고생을 했었는데, 그걸 다 주고 왔겠냐? 하나는 꿍쳐뒀었지.

오- 김 양의 눈빛을 잠시 즐긴 마루가 검은색 코트를 입으며 말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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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그림자가 김 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앙!

퍽- 강철 주먹이 기다렸다는 듯 그림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강철 주먹을 맞아 뒤로 튕겨버린 그림자를 향해 겨눠진 총구.

파타타타닥!

파다다다닥!

체인건이 쉬지 않고 불꽃을 뿜자, 구석에서 튀어나온 것이 순식간에 너덜거리는 넝마조각으로 변했다.

위이이이잉!

[클리어.]

도난 병원 1층 접수대 인근은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기갑병이라고 불리는 군부의 엑소슈트 몇 기도 여기저기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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