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67화 (167/280)

러스트 [RUST]-167

김 양은 선발대에 합류했다. 전선을 나무에 묶고 거점을 만든 뒤, 방어하는 역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는 모습에 마루가 한국에 들어가면 그때 먹었던 고깃집에 가자고 했다. 좋아하면서도 어쩐지 맥없는 김 양.

“왜 그러는데?”

[······.]

대충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아마도 유 이사가 가지고 있는 총 때문일 것이다. 콜트 파이슨이라고 했던가? 착하게 권총을 계승하고 싶었나 보다.

“혹시 유 이사의 유품이 생기면 챙겨가마.”

[응.]

유품이라는 말에 기운을 회복한 김 양이 밖으로 점프할 준비를 마쳤다.

“3.”, “2.”, “1.”

“GO!”

다다닥 내달린 엑소슈트가 하늘을 날았다.

푸확! 추진기에서 가스가 뿜어지고 낙하속도를 줄인 엑소슈트가 눈더미 속에 폭 착륙했다.

동시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과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진기지에서 탈출 작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늘어진 전선이 하나둘씩 팽팽해졌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도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 가운데 몇 명이나 살까? 마루가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유 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칼잡이 아가. 애들 그만 구경하고. 슬슬 밥 값해야지.”

확실히 말 한마디를 해도 긁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일렁-

마루가 흐릿한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피식-

웃음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이 새끼 보소.”

대놓고 웃어? 유 이사의 입이 긴 호선을 그렸다.

======

======

맨 마지막까지 병원에 남겠다고 버둥거리던 중령은 부하들이 잘 포장해서 아래로 배송했다.

“앞으로 30분. 딱 30분 동안만 놈들의 엉덩이에 불을 지르면 된다. 할 수 있나?”

“우! 우! 우!”

해병대원들이 한목소리로 화답했다.

유 이사와 월드 PMC 소속들은 한 쪽에 뭉쳐 장비를 다시 점검했다.

“여기서 똥이 되고 싶은 병신은 없겠지?”

“민식이는 여기가 정들었다고 하던데요?”

“나도 들었어. 여기서 고양이나 한 마리 키우고 싶다던데?”

“고양이 똥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큭큭 킥킥 웃음소리

“좋아. 쟤들은 쟤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하고. 우리는 13층, 14층, 15층 딱 이 3층만 휘젓는다. 30분이다. 딱 30분만 화끈하게 놀다 가자.”

“예-”

유 이사가 부하들을 이끌고 먼저 나섰다. 그 뒤를 따라나온 미 해병대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조용했던 병원 여기저기서 총성과 폭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엘리베이터 문이 강제로 열리는 소리. 마루는 텅 빈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금은 텅 빈 1층 로비엔 적막만 감돌고 있었다.

‘쥐들이 바글거려서 최루탄 쏴서 쫓았었는데. 다 어디로 갔지? 위가 시끄러우니 전부 그쪽으로 몰려갔나? 음?’

안쪽으로 들어서자 김 양이 밀고 왔던 복도가 나왔다. 체인건에 다져졌어야 할 시체 상태가 이상했다. 복도에 널린 쥐의 사체를 발로 툭 쳐 뒤집은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머리통이 없었고 가슴도 푹 파여있었다. 몇 마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여기 복도에 깔린 사체 전부 머리통이 없었다. 뒤집어 보진 않았지만, 심장도 없겠지.

뇌와 심장에 무슨 호르몬과 영양성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부분을 먹으면 먹을수록 멍청했던 놈들이 점점 똑똑해진다고 했었다.

전진기지에서 기갑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괴물들이 매복이나 유인이 걸리지 않고 있다는 말.

마루의 눈동자가 복도를 훑었다.

그렇지 않아도 똑똑해진 것들이 이렇게 많은 쥐새끼의 뇌와 심장을 먹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 탈출 작전의 핵심은 일종의 성동격서였다. 소란스럽게 해서 탈출하는 것을 감춘다는 것. 놈들이라면 이번 소란을 어떻게 생각할까?

유인과 매복 작전에 당하지 않을 정도로 약아진 것들이 여기 이 쥐새끼들 머리통까지 먹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까지 바리케이드 속에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먹잇감들이 갑자기 달려든다? 고맙기는 하지만 얘들 뭐지? 그리곤 어떻게 반응할까?

‘지랄 났네.’

날카로운 살기에 마루가 고개를 들었다. 깜깜한 복도 저편. 등불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함정이었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는 기척이 없더니, 도망칠 곳 없는 복도 양 끝에서 슬며시 포위하는 것들.

‘광학 은신 로브가 안 먹혔나? 저번엔 먹혔던 거 같은데. 놈들 감각이 예민해졌나?’

고양이들이 노려보고 있는 곳은 총에 맞아 고장 난 부분. 살짝 일그러져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배터리 닳게 작동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마루가 은신을 해제하자, 복도 양 끝을 막은 고양이들이 서로 화답하듯 소리쳤다.

“야- 이러면 반칙이지. 고양이는 단독 사냥 아니냐?”

캬아아앙-

맨 앞에 있는 고양이가 웃기지 말라는 듯 화답했다.

스르르르릉-

까딱.

마루가 칼끝을 흔들었다.

“누가 먼저 뒈질래?”

짙은 살기가 마루의 몸에서 뿜어졌다. 순간 움찔 놀라 뒷걸음친 괴물 고양이들이 캬아아악- 하악질과 동시에 달려들었다.

======

======

투다다다다닥!

다다다다다닥!

“씨발 유 이사님! 이 새끼 이상합니다!”

“계속 쏴. 교대로.”

변종이라고 하더라도 총알을 쏟아부으면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지금 앞에 있는 이건 총알이 먹히지 않고 있었다.

“아니 씨발. 안 먹힌다니까요!”

“좆까고 쏴 새끼야. 안 먹혀도 저지는 되잖아!”

유 이사가 스피드 로더로 재장전하며 외쳤다.

“얼굴. 대가리를 노려!”

“대가리에 집중사격!”

찰칵- 다르르륵- 실린더를 돌린 유 이사가 6.8mm 신형 철갑탄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버티고 있는 변종을 향해 달렸다.

“계속 쏴!”

유 이사는 사선을 피해 벽에 달라붙어 달렸다.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마치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쑤시던 관절통이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진통제와 수면제를 먹고 잠들지 않아도 됐다.

일본에 오고 난 뒤, 점차 몸이 좋아졌다. 그만큼 지루해지고 그만큼 짜증이 났지만, 그것도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그놈이 꺼져가던 유 이사의 광기에 불을 붙였다. 이딴 괴물은 의미 없었다. 진정한 괴물은 인간이어야 했다.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유 이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달리는 걸음걸음에 모래 먼지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꽉 막힌 복도가 어느새 아프간의 고원으로 변했다. 앞에 있는 건 터번을 쓴 약쟁이. 방탄복과 철갑을 두른 채 발광하는 놈.

총알을 막으려고 양팔로 얼굴을 가린 놈의 가랑이 사이로 슬라이딩한 유 이사. 아래에서 보이는 놈의 콧구멍.

그 콧구멍을 향해 총구를 겨눈 유 이사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당! 연속으로 틀어박힌 두 방에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만세를 부른 놈이 뒤로 넘어갔다.

쿵!

쓰러진 변종의 목젖을 발로 짓밟은 유 이사가 코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변종의 주둥이에 총구를 박아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들썩들썩 머리통이 흔들리더니 눈과 귀와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버둥거리던 변종이 축 늘어졌다.

후흐흐흐흐흐

총성 사이로 드문드문 울려 퍼지는 유 이사의 웃음소리.

“유 이사님 눈 돌아갔으니까 알아서들 잘해. 병신같이 얼 타다가 대가리에 총 맞지 말고.”

“아 젠장- 몇 년 잠잠하시더니 왜 또 저러시냐?”

“그러게.”

“야! 수류탄! 수류탄!”

“뭐? 어디?”

유 이사가 변종의 주둥이에 수류탄을 밀어 넣고 안전핀을 뽑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유 이사님. 뒈진 새끼한테 뭐하는···”

팅- 안전클립 튕기는 소리.

“씨발! 수류탄!”

“아!”

쾅!

붉은 피 먼지가 피어올랐다.

“야 다들 괜찮냐?”

“유 이사님은?”

유 이사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피 먼지 저편에서 들렸다.

“병신 새끼들. 언제부터 이렇게 죄다 병신이 됐냐. 응?”

“아니. 우리 나이를 생각하자고요. 좀.”

수류탄이라는 말에 옆으로 몸을 던진 부하들이 꿈지럭거렸다.

“지랄들 한다. 지랄들 해.”

“진짜 깜빡이 좀 켜면서 그러시면 안 됩니까.”

“이제 다들 나이 먹어서 뼈가 삭았다고요.”

“나이? 나이 먹으면 방탄이 되디? 괴물들이 피해가? 후딱 안 일어나? 여기가 안방이냐?”

유 이사는 뭉그적거리는 부하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새끼들. 그러고 보니 이 새끼들이랑 벌써 20년 넘게 굴렀구나.

“야. 새끼들아. 뒈질 때는 멋지게 뒈지는 거다.”

“아- 왜 또 그럽니까. 돈 번 거 멋지게 쓰라고 해도 될까 말까 하는 판국에.”

“이번에 돌아가면 은퇴합니다. 전.”

“저도 때려치울랍니다.”

“좆까 새끼들아. 지옥으로 튀어봐라. 도망칠 수 있나.”

아아아아악!

비명을 질러대는 부하들을 향해 중지를 세운 유 이사가 고개를 돌렸다.

“야. 손님 온다.”

철컥! 바로 자리를 잡고 조준하는 부하들.

유 이사도 총알을 재장전했다. 다 좋은데 이게 지랄 맞았다. 장탄수가 6발이라는 점.

콰등!

계단실 문짝이 뜯어지며 거대 고양이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캬아아아아악!

괴물 고양이가 하악질하며 노려보자, 전장에서 단련된 부하들이 얼어붙었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순간 뻣뻣해진 부하들.

“병신 새끼들이! 쏴!”

유 이사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부하들을 흔들었다. 하나둘씩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하는 부하들. 이것들도 변종처럼 총알이 먹히지 않았다.

“개 씨발.”

“죽어!!!”

빗발치는 총탄을 무시하고 달려드는 고양이들. 두다다닥- 내달리는 놈들과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변종은 저지할 수 있었는데, 이것들은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눈. 눈이다.’

유 이사는 침착하게 고양이의 눈을 노렸다.

“벽으로 붙어! 가운데 열어!”

유 이사의 외침에 부하들이 슬금슬금 양쪽 벽으로 붙었다.

벽에 붙으면 공격 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벽에 충돌하지 않으려면 달려드는 속도도 줄일 수밖에 없었고.

“?”

“!”

양쪽 벽에 붙었으니, 괴물들도 벽에 붙은 사람들을 노리기 위해 한쪽으로 붙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것 같았다. 마치 뭔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캬아- 캬아아아아-

소리가 마치 ‘비켜! 저리 비키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유 이사님?”

“사격 중지!”

철컥! 사격을 멈춘 부하들이 반사적으로 탄창을 갈고 재장전했다. 순식간에 옆을 스쳐 지나가는 괴물 고양이들.

그리고 그 고양이들 뒤를 뭔가··· 그림자?

푸카카카칵!

앞서 달리던 고양이 뒷다리가 잘렸다. 그냥 허공에서 갑자기 잘린 것 같았다. 뒷다리가 잘려 엎어진 놈을 뛰어넘어 도망치려던 고양이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졌다. 허공에서 찢어진 옆구리. 내장이 공중에서 쏟아졌다.

철푸덕.

내장을 잃은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기어가다 서서히 멈췄다.

캬아아악!

하아아악!

뒷다리가 잘린 고양이가 앞발을 허공에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모습. 유 이사와 부하들은 그 황당한 모습에 멍하니 총구를 내렸다.

서걱! 고양이 앞발이 하나 잘리고.

푸칵! 순식간에 머리통이 날아갔다.

“······.”

“······.”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흐흐흐흐흐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 이사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멋진 새끼. 씨발 새끼. 흐하하하핫. 존나 죽이는 새끼네!”

전신이 찌릿찌릿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저런 거에 총구를 겨눴었다.

저런 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일렁-

살짝 일그러진 공간이 유 이사를 스쳐 지나갔다.

아- 씨발 못 참아. 뒈져도 좋아.

유 이사의 눈이 돌아가는 순간, 천장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쾅! 쾅! 콰아아앙!

천장이 무너지며 변종이 뛰어내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유 이사의 눈동자는 일렁이는 공간을 찾아 헤맸다.

“야- 야- 야아아아!”

유 이사의 외침에 반응하듯 변종이 손을 뻗었다.

“이런 씹새끼 말고.”

탕!

단 한 발처럼 울리는 총성. 변종의 양쪽 눈에서 피가 솟구쳤다.

“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