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68화 (168/280)

러스트 [RUST]-168

마루는 뒤에서 들리는 외침에 피식 웃었다.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르는데, 목청도 좋았다.

‘김 양이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저렇게 되지 않도록 잘 챙겨줘야겠다 생각하는 마루였다.

‘총은 어렵겠네.’

유 이사와 부하들이 싸운 흔적을 보니, 유품이 생기긴 어려워 보였다. 그 여자도 대단했지만, 부하들도 상당한 베테랑들이라 변종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는 이상, 큰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 양이 실망하려나.’

이번 작전 성공해서 길버트 브라운 중령 살려 보내면, 받기로 한 거 받고 거기에 보너스로 콜트 파이슨이고 뭐고 하나 내놓으라고 하면 되겠지.

큰 병원인 만큼 공간이 넓었고 그만큼 아주 징글징글하게 많았다. 하루에 100마리씩 잡아 죽인다고 해도 최소 한 달은 칼질해야 할 정도.

다행인 점이라면 자기들끼리도 먹고 먹힌다는 것이랄까? 쥐가 몰려드니 고양이가 따라왔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위력이 약한 일반탄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점. 철갑탄이면 모를까 그냥 일반탄으로는 쥐나 잡으면 다행이었다.

휘릭-

칼을 휘둘러 붙은 핏방울과 지방을 털어낸 마루였다.

‘확실히 베는 맛이 변했어.’

쥐새끼 가죽도 그렇고, 고양이 가죽도 질겼다. 변종도 마찬가지였고. 가죽, 근육, 골격 전부 변하고 있었다. 벨 때 느껴지는 저항감이 달랐다.

두부나 어묵처럼 벨 수 있었는데, 순식간에 서걱서걱 애호박이나 가지 써는 느낌으로 변했다. 이런 느낌이 양파나 양상추 손맛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비트나 당근 썰 때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

그쯤 되면 개인용 총화기로는 잡기 어려워질 것이다. 잡으려면 12.7mm~20mm 정도는 써야 먹히겠지.

그보다 더 나간다면? 한 마리 썰 때마다 요트 잡을 때처럼 힘써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렇게 변한 것들이 쥐새끼들처럼 단체로 스텝을 밟는다면?

‘어려워.’

휙- 휙- 칼을 휘둘러 시뮬레이션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도난 병원에서 처음 변종과 마주쳤을 때, 변종은 그냥 일반 감염자가 변한 것에 불과했다. 육체적인 능력이 강했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한계에 걸친 강함이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변종들은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다. 일반인보다 최소 15~20%는 더 큰 덩치. 이번에 마주친 변종들 덩치가 전부 2m에서 2.2m는 됐다.

강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맨손으로 기갑병의 장갑을 뜯어내고, 자동차를 폐차시켜 버린다. 콘크리트벽을 주먹으로 때려 부수고, 철근을 엿가락처럼 구부리고 비틀어 뽑는다.

심지어 신형 6.8mm 총탄으로 잡지 못했다. 눈이나 코, 입 같은 약점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개인화기가 먹히지 않는다고 봐야 했다.

‘착각했네.’

착각하고 있었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변했다. 이미 변했고, 여기서 더 변할지가 문제였다.

‘전부 교체해야겠어.’

빌딩에 돈을 더 바르는 한이 있더라도 방어 시스템을 갈아엎어야겠다. 생각하는 마루였다. CIWS(Close-In Weapons System 근접방어 무기체계)로 교체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부족한 화력보다는 과잉 화력이 나았으니까.

======

======

팍- 츄라라라라라락-

줄이 감기는 소리와 함께 엑소슈트가 굵직한 나뭇가지 위로 올라갔다.

김 양은 사방을 살폈다. 하얀 눈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외선 탐지 모드로 살펴봐도 딱히 잡히는 게 없었다.

“후-으-”

한숨인지 신음인지 둘이 뒤섞인 소리를 낸 김 양이 멍하니 하얀 설원을 바라봤다.

유 이사. 유 이사. 유 이사.

‘넌 손이 느려서 이거 못써.’

유 이사의 목소리. ‘넌 안 돼.’ 하는 눈빛.

권총 한 자루로 중국 조직원 수십을 황천으로 보내버린 사람에게 안 된다는 소리를 했다.

‘손은 그저 그런데 눈이 좋네.’

‘눈이 나쁘지 않으니까, 샤프 슈터 그쪽으로 가봐.’

저격수 재능은 있지만, 건 슬링어의 재능은 없다고 말했다.

‘재능이 없기는’

기이이잉-

엑소슈트가 체인건을 권총 뽑듯 휙- 내밀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기이잉-

다시.

기이이잉-

느려. 반응이. 엑소슈트의 반응이 느렸다. 느리다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유 이사를 떠올리고 나니 느리게 느껴졌다.

‘이게 재능이란 거다. 잘 보렴.’

탕!

한 번의 총성. 터지는 두 개의 풍선.

그때부터 김 양은 그 총에 마음을 뺏겼다.

‘콜트 파이슨 45구경.’

짙은 파란색으로 빛나는 특유의 총신. 상아로 장식한 그립. 티타늄과 금으로 상감한 무늬.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 콜트 파이슨은 필요 없었다. 원하는 것은 유 이사가 가진 바로 그 콜트 파이슨.

‘왜 갖고 싶어?’

유 이사가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가 웃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아?”

김 양은 백정이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눈이 웃고 있지 않다는 말. 도발하는 거 아니냐고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유 이사는 자기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휘어진 입꼬리. 웃지 않는 눈.

‘니가 이걸?’

그런 느낌. 그게 그런 웃음이었었구나.

‘꼬마야. 내가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총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거.’

‘너도, 나도 한 방이면 똑같아지는 거야.’

‘갖고 싶어? 노력해보렴.’

작은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시절, 김 양은···

투다다다닥!

타다다다당!

전진기지 방향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텅 빈 설원을 바라보던 김 양의 눈앞에 붉은색 점이 하나 들어왔다. HUD에 표시된 붉은 점 하나.

삑! 삑!

동작감지 센서와 열감지 센서가 반응하고 있었다. 상당한 속도.

눈 속?

뭔지는 모르겠지만 쌓인 눈 속을 파헤치고 접근하고 있었다.

김 양이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피난민들과 군인들에게 경고했다.

[12시 방향! 눈 아래로 정체불명 접근!]

팽팽하게 당겨진 전선을 타고 사람들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눈 밑으로 뭔가 온다는 말에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12시! 100m 전방!]

병사들이 위치를 잡았고, 피난민들도 각자 자리를 잡았다.

70m··· 40m··· 20···

카타다다닥!

엑소슈트가 파고드는 붉은 점을 향해 체인건을 갈겼다. 7.62mm 탄환이 순식간에 눈구덩이를 만들었다.

파파파파팍!

철갑탄에 두들겨 맞은 붉은 점이 옆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 붉은 점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체인건.

‘버텨?’

최소한 3~4방은 명중했을 텐데? 예광탄의 불꽃이 일직선을 그리며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예광탄의 인도를 따라 병사들도 그 방향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게 이어지던 예광탄의 불꽃이 뚝 끊겼다.

[바로 밑에! 피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아래로 붉은 점이 들어갔다. 살충제에 맞은 개미들처럼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꺄아아아악!

비명을 남기고 한 명이 눈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류탄 까!]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김 양이 소리쳤다.

주저주저하는 사람들.

김 양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한 달 넘게 버틴 새끼들이라고 해서 개념이 있을 줄 알았더니, 썩어 빠진 것들이 넘쳤다. 굳이 뒈지겠다는 걸 말릴 이유 없었다.

김 양은 작살총을 옆 나무에 쐈다. 로프가 연결되고 다시 또 다른 방향으로 쏘고. 김 양이 서 있는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로프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앗!

두 번째 희생자가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위치는!”

[치지직- 놈의 위치가 어디야!]

[사람들 아래에 있음. 사람들 밑으로 움직여서 정확한 위치 확인 불가.]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 모를까 저렇게 우르르 몰려다니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는데 어쩌라고? 이런 상황에서는 동작감지 센서와 열감지 센서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사람들도 빨간 영상으로 표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멍에 수류탄을 까 넣으라고 했건만. 안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눈에 보이는 공포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서웠다.

고작 2명이 죽었을 뿐인데 마치 수십 명이 죽은 것처럼 통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향해 병사들이 외쳤다.

“라인 지켜!”

“움직이지 마세요!”

“입 닥쳐! 주둥이 다물라고!”

“다들 조용히 해!”

전선을 타고 막 내려온 사람들이 더 공포에 취약했다.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안전하게 있다가 탈출하겠다고 내려왔더니, 뭔 괴물이 자기들 발밑에 있단다.

“도망쳐!”

“전부 흩어지면 되잖아!”

“총소리. 총소리 나는 곳으로!”

“저기- 저쪽이 전진기지다.”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뛰어!”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몇 명씩 짝을 지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붉은 점이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을 노리고 움직였다.

김 양은 나뭇가지 위해서 아래를 지켜봤다. 말해 뭐하겠나?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붉은 점이 온 방향이 문제였다.

‘12시 방향.’

도난 병원 방향이었다.

잠시 뒤.

삑- 소리가 났다.

한 번.

이어서 붉은 점이 하나 떠올랐다.

삑- 삑-

두 번.

이제는 셋이 된 붉은 점.

도난 병원 방향에서 나온 붉은 점 셋이, 사방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쫓아갔다.

김 양은 후- 작게 숨을 골랐다.

셋? 그나마 다행인가?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걸렸다면 표시창이 부글부글 끓었을 테니까.

‘슬슬 가자고 해야 하나?’

내려올 사람들은 거의 다 내려온 것 같았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놈들을 유인해준 사람들도 생겼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가는 게 좋았다.

김 양과 같은 생각을 한 간부가 있는지, 사람들을 데리고 전진기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치직- 정찰 바람.-]

[알겠음.]

미리 박아둔 로프를 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동하면서 정찰하는 김 양이었다. 전진기지 쪽에서 이쪽으로 지원을 온다고 했었는데, 끊이지 않는 총소리와 폭음을 보면 그쪽도 여의치 않은 것 같았다.

[반경 200m 이상무.]

[치지직- 확인.-]

먼저 유인해준 사람들이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었다. 그쪽으로 간 붉은 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얗게 쌓인 눈. 눈에 빠지지 않게 설피를 신은 사람들이 폭폭- 걷고 있는 모습은 일견 평화롭기까지 했다.

삑-

동작감지 센서가 소리를 냈다.

아- 조용히 가나 했더니. 김 양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었다. 붉은색 점이 뜨지 않았다.

‘?’

삑- 삑-

표시창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

삑-삑-삑-삑-

삑-삑-삑-삑-삑-삑-

삑-삑-삑-삑-삑-삑-삑-삑-삑······

======

======

두 눈을 부여잡은 변종이 바닥을 뒹굴었다.

크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

유 이사의 부하들이 변종의 주둥이에 유탄을 때려 넣었다.

펑! 펑! 퍽!

40mm 열압력탄이 입안에서 터지자 변종이 조용해졌다.

“유 이사님 왜 저러시는 건데?”

“내가 알겠냐?”

식식- 발광하는 유 이사를 버려둔 채, 부하들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거 봐라. 이거.”

대검으로 변종의 시체를 힘껏 찌르자, 우습게 튕기는 칼날.

“이것만 이런 게 아니다. 아까 저거 고양이 가죽도 장난 아니야.”

“이제 고양이 어떻게 키우냐. 씨발. 꿈에서 나오겠다.”

“고양이 가죽이 어떤데?”

“어떻긴 이거보다 훨씬 낫겠더라.”

입고 있는 방탄복을 툭툭 치며 한 대답에, 오- 하는 부하들.

“대검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자르려고?”

“민식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 민식이라면 인정.”

“음. 확실히.”

6개의 눈동자가 한 사람을 향했다.

“이 씨발 새끼들이. 뭘 어쩌라고?”

“해보라고.”

“수고.”

“화이팅!”

잠시 뒤, 흥분을 가라앉힌 유 이사 앞에 너덜너덜 찢긴 고양이 가죽이 놓였다.

“뭐냐? 이 걸레는?”

“이게 말입니다. 보기에는 이래 보여도 죽이던데요?”

이 걸레가? 유 이사가 웃었다.

“흐흐흐흐흐. 그래 구멍 하나 새로 뚫고 싶다. 이거지?”

“아니. 일단 여기에 쏴 보라고요. 한 번 쏴 보시고 하세요. 좀.”

탕!

바닥에 널린 넝마에 총알이···

안 박혀?

타탕!

안 박히네?

“······.”

“어떻습니까? 이게 다 민식이가 한 겁니다.”

오오오오

“강민식!”

“강민식!”

유 이사가 연초를 하나 입에 물더니 민식이를 보며 말했다.

“야- 이걸로 대충 걸칠 것 좀 만들어봐라.”

“강민식!”

“강민식!”

“닥쳐 이 씨발 새끼들아! 아니, 이사님 말고요.”

그렇게 얼룩덜룩 너덜거리는 털 뭉치를 입은 5명이 계단을 내려갔다.

“근데 30분 충분히 넘지 않았냐?”

“그러게.”

“······.”

"유 이사님은?"

“누구 찾는 거 같던데?”

못 들은 척, 유 이사가 성큼성큼 앞장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