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70
툭- 소리와 함께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통.
문자를 전송하던 손가락이 그대로 움찔거렸다.
[괴물?]
[엎드···!]
푹- 엎드리라는 외침의 끝에 틀어박힌 칠흑빛 칼날. 주둥이를 뚫고 들어간 칼날의 으직 소리를 내며 반전했다.
[?]
[!!!]
스그그그극- 뼈와 살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180도 반전한 칼날이 입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코를 지나 미간을 거쳐 정수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박이 터지듯 머리통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뜨거운 김이 뿜어지는 내용물이 엎질러진 순두부처럼 후두둑 쏟아졌다.
[······.]
[으!!!]
[!!!]
충격으로 굳어버린 자들의 앞. 투명했던 공간이 일그러지다가 흔들리더니 마루의 모습이 드러났다.
‘···역시 잠깐 충전한 것으로는 얼마 못 버티네. 그럼 가까운 놈부터···.’
마루의 살심은 살기로 변해 바로 앞에 있던 사람에게 쏘아졌다. 찐득한 살기를 바로 코앞에서 받은 자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었다.
개장수를 처음 본 강아지가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바르르 떨면서 주저앉는 사람은 푹-소리와 함께 자유를 찾았다.
동료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반응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죽어!!!]
[쏴!!!]
[!!!]
방아쇠가 당겨지기도 전 새까만 달빛이 네 사람을 훑고 지나갔다. 흑요석 같은 원반이 팔목을 지나 목을 스치고 허리와 어깨를 한 바퀴 돌았다.
▶?▶?▶?▶?▶?▶?▶?▶?▶
츠리릭- 크리릭- 스기긱- 투기긱-
흑요석 원반이 지나간 뒤에야 뒤따르는 소리. 무엇인가 절단되고 썰리고 잘리는 소리.
손가락에 힘을 줘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
뒤돌아서고 싶지만 굳어버린 발걸음.
이 모든 것이 환상처럼 그들을 속이는 것 같았다.
[······.]
[······.]
[······.]
[······.]
찰나의 정적.
끝없이 늘어진 공간 속에서 그들을 서로 볼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생명에서 분리되는 동료의 육체를. 동료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몸뚱이 역시 이미 절단되었다는 것을.
그렇게 절망하고, 절망해서, 절망한 뒤에야 그들은 먼저 자유를 찾은 동료의 곁으로 떠날 수 있었다.
‘음-’
마루는 무너져 내린 잔해를 보곤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을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은신 로브와 비교해 보자면 좀 떨어지는 것 같더라도. 야간에 쓰기에는 충분해 보여서 조금 무리했더니, 몸이 뻑적지근했다.
촥- 칼을 휘둘러 칼날에 묻은 핏방울과 지방을 털어낸 마루가 바닥에 떨어진 문자전송기를 집어 들었다. 전송기를 꼭 쥐고 있던 손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며 핏방울이 튀었다.
어설픈 중국어로 알아들은 말은 몇 단어였다. 뭘 전한다고 해서 일단 막으려고 했는데, 전송기에 적힌 내용은 이미 전송된 뒤였다.
뒤이어 계속 뭔가 문자가 올라왔지만, 중국어를 쓰지 않은 지 오래인지라 몇 마디 빼고는 알 수 없었다.
[지령] [사살] [생포] 같은 단어들이 섞인 문장들. 마루는 일단 전송기에서 신경을 끄고 태블릿 PC에 뜬 화면부터 확인을 시작했다.
열린 폴더에는 유 이사를 찍은 사진들이 많았다.
‘관음증인가?’
왜 유 이사를 찍어대고 난리지? 이런 각도 저런 각도 멀리서 찍은 사진부터 밥 먹고 있는 사진까지. 누가 보면 극성 팬클럽이거나 파파라치가 찍었다고 볼 정도.
‘응?’
이렇게 저렇게 화면을 넘기던 마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로 넘겼다가 앞으로 다시 반복하는 사진들. 그리고 그 아래 사진을 촬영한 날짜와 시간.
한 달 전에 찍었던 사진에 보인 유 이사는 젊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40대 정도로 보였다. 40대 초반 정도. 그것도 자기 나이보다 훨씬 동안이었다.
넘겨지는 사진첩, 보름 뒤에 찍힌 사진에는 많이 어려진 모습이 담겨있었다. 다시 보름이 지나고 오늘 찍힌 사진 속 유 이사는 마루와 마주했던 모습이었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 그대로 그녀는 사진 속에서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유 이사의 시선이 있는 방향에는 익숙한 은신 로브의 뒷모습이 있었다.
‘저거 설마 내 뒷모습?’
대체 언제부터 날 노린 거지? 그냥 간을 본 게 아니라, 노리고 있다가 간을 봤단 말인가? 대체 왜?
“어이없네.”
어쨌든. 중국 애들한테 노려지고 있으니 잘하면 김 양이 기대하는 유품이 생길지 몰랐다. 마루는 자유를 향해 떠난 이들의 유품을 조용히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
======
전진기지
대령은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대체 뭘 잘못 먹었길래 저러는 건가?
로이 스턴 소위.
빌어먹을 로이 스턴 소위가 스턴건을 박아 넣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기갑병을 끌고 그대로 돌격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냥 냅다 돌격하면 어쩌란 말인가? 그게 얼마짜리 기체인데. 도난 병원 1층에서 잃은 기갑병만 해도 팝콘 튀길 상황인데 나머지를 죄다 끌고 가?
대령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자신을 다스렸다. 그래도 능력 하나는 좋은 놈이니까 갔겠지, 아무런 대책 없이 가지는 않았겠지.
“결과는?”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령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지금 끌고 들어간 기갑병을 잃는다면 그대로 불명예 전역을 시켜버리리라 다짐한 대령이었다.
“장갑차를 추가 지원 보낼 테니, 버티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령은 즉시 지원 부대를 출동시켰다. 미운 새끼지만 뒈지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비벼 끈 대령이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대령님. 버지니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버지니아? 거기서 왜? 일단 들어오라고 해.”
짙은 색 양복을 입고 어둑한 선글라스를 낀 금발 남자가 가지런한 미소를 지으며 대령에게 인사했다.
“그린필드 대령님.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버지니아 극동 3과 존 스미스라고 합니다.”
“그래 존 스미스씨, 내가 예전에 만났던 그쪽 사람은 조나단 스미스였고, 그 전에 봤던 직원은 조 스미스였지. 겉치레는 됐고 용건이 뭔가?”
버지니아 놈들은 항상 이랬다. 가명 뒤에 숨어서 사람 달달 볶는 것들. 이번에는 또 무슨 지랄을 할지, 제발 작은 지랄이어라. 대령은 속으로 기도했다.
“합중국을 배반한 반역자가 있어서 말입니다.”
‘씨발.’ 대령은 눈을 감았다. 하필이면 자기가 지휘하는 부대에서 배신자가 나오다니. 준장은 물 건너갔나?
“스파이인가?”
“예. 오랫동안 몸을 감추고 있어서 찾기 힘들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찌를 때까지 육군 방첩대는 뭘 하고 있었던 건가? 육군에서 벌어진 일은 육군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령의 얼굴에 짙은 피로감이 떠올랐다.
“왜 하필 지금이지?”
“놈들이 엮인 줄기부터 뿌리까지 한 번에 뿌리를 뽑으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존 스미스의 얼굴.
“그래서 어느 나라인가? 일본은 아닐 테고. 러시아인가?”
대령은 부하들 가운데 동유럽권 출신 부하들이 있는지 생각했다.
“아니면 중국?”
존 스미스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중국계 미국인은 생각보다 많았다. 서부 개척시대 그러니까 청나라 시기부터 미국에 들어온 사람들의 후손부터 중화민국이 밀릴 때 도미한 자들의 후손, 그리고 경제개방 이후 물밀 듯이 들어온 유학생 출신까지.
당장 머릿속에 떠오른 부하들 가운데, 중국계 미국인만 하더라도 열 손가락이 넘었다. 두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중국계인 경우는 더 많았고.
그렇다고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했다. 시민권을 가진 중국계 숫자만 600만에 육박하고 있었으니까.
당장 이번 작전에 투입된 병력만 하더라도 중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병사들이 천 단위로 나왔다.
이번 작전은 지역이 동아시아인 만큼 피부색이 비슷한 병사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뽑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시아계 병사들이 많아졌고 그 말은 중국계 병사들도 많아졌다는 의미였다.
“이걸 의도한 건가?”
“위에서도 동의한 일입니다.”
대령은 입을 다물었다.
“아시다시피 국제정세가 좋지 않습니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그렇고 중국과도 마찬가지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상황은 이렇습니다. 일본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숨겨둔 무엇인가가 주인 없이 떠돈다면 전 세계 어디든 노리겠지요.”
“······.”
맛있는 먹잇감이 껍질이 벗겨진 채, 잡아 잡숴 달라고 하고 있으니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보내봤겠지만, 보시다시피 일본 상황이 쉽지 않거든요. 찔끔찔끔 보내봐야 괴물들 밥이 됐을 테고. 자료가 있는 건 확실한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하던 찰나. 우리 군이 대규모로 구조대를 파견한 것이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싹 솎아내겠다?”
‘빙고.’ 하는 표정으로 존 스미스가 말을 받았다.
“러시아 쪽에서도 반응이 있었지만, 제일 큰 반응은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리할 수 있는 만큼 정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잡다 보면 언젠가는 다 잡겠죠.’ 존 스미스가 혼잣말했다.
대령은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증거는 찾았나?”
“물론입니다.”
존 스미스가 산업용 휴대폰처럼 생긴 전송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검붉은 피가 채 굳지 않은 전송기였다.
“이게 놈들이 근거리 통신에 사용하는 전송기입니다. 일반 휴대폰과 PC에도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장비더군요. 놈들이 주고받은 정보를 살피던 중, 아주 재밌는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아- 실수했습니다. 재밌다기보다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어쩌면 인류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정보니까요.”
“······.”
선글라스 뒤에 빛나는 파란색 눈동자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대령은 그 노골적인 눈빛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이번 탈출 작전 길버트 브라운 중령이 원본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탈출 작전에 한국의 월드 그룹 소속 PMC도 함께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맞습니까?”
“맞네.”
“월드 PMC의 유 이사와 그 부하들 전부. 생포 또는 사살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여기 이건 상부의 명령서입니다.”
존 스미스가 테이블 위에 명령서를 올려놓고서 대령의 앞으로 밀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제정신이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나?”
한국은 동맹이었다. 거기에 월드 PMC라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함께 일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생포 또는 사살하라고? 이게 무슨···.
대령의 놀람과 분노어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존 스미스가 입을 열었다. 기괴한 표정. 욕구를 넘어서 음습하기까지 한 눈빛, 질척거리는 감정을 숨기지 않은 억양.
“절대 말입니다. 절대. 유 이사와 그 부하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는 안 됩니다. 머리카락 한 톨. 피 한 방울. 전부. 우리 합중국의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대령의 불살이 푸들거렸다.
“생포. 어렵다면 사살. 반드시 시신은 회수. 명령입니다.”
“······.”
======
======
탕!
한 번의 총성. 두 발의 총탄. 두 개의 눈알에서 피가 터졌다.
캬아아아아앙!
거대한 고양이가 눈이 먼 채, 머리를 흔들며 발광했다. 그걸 멀뚱히 바라보는 부하들에게 유 이사가 소리쳤다.
“이 새끼들이 노냐? 놀고 있어?”
“아니 총도 칼도 안 먹히는 데, 어쩌란 말입니까?”
“야. 민식아 그거 가져와 봐.”
“그거라니요?”
“발톱 뽑았다는 거. 그거로 가죽 잘랐다며?”
“예. 뭐. 여기 있습니다.”
민식이가 내민 휘어진 발톱은 마치 카림빗 나이프 같았다. 고양이가 커진 비율보다 더 큰 발톱. 날이 세워진 발톱 길이가 20cm는 됨직했다.
손잡이와 날까지 세운 모양. 이걸 언제 했데?
유 이사가 고양이 발톱 카림빗을 역수로 쥐었다.
캬아아아악! 캬아아악!
괴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하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멀어버린 눈 대신 코와 귀에 모든 감각을 쏟은 것처럼 주변을 살피던 놈이 유 이사와 부하들이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