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71화 (171/280)

러스트 [RUST]-171

캬아아아앙!!

누린내 나는 살기가 유 이사와 부하들을 덮쳤다. 유 이사의 입이 호선을 그리며 길게 찢어졌다.

“나비탕 먹어 봤니?”

“미쳤습니까?”

“아니다. 미치셨지요.”

그 목소리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괴수가 몸을 날렸다. 부하들은 메뚜기 뛰듯 흩어졌고 유 이사는 달려드는 괴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흉기 그 자체인 괴수의 앞발이 유 이사를 노렸다. 눈이 멀었어도 놀라울 만큼 정확한 공격에는 날 것 그대로의 살기가 생생히 배어 있었다.

공기를 찢듯 순식간에 휘둘러지는 앞발을 흘리듯이 피한 유 이사가, 역수로 쥔 발톱 나이프를 보드라운 뱃가죽에 박아 넣었다.

발톱이 닿자 풀쩍 뛰어오른 괴수. 발톱이 뱃가죽에 박힌 채 튀어 올라, 점프한 힘이 그대로 박힌 발톱에 몰아졌다.

부가가가가각!

뱃가죽 갈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내장이 쏟아져 내렸다.

뜨거운 피와 내장을 그대로 뒤집어쓴 유 이사가 양팔을 벌리며 미소 지었다.

“오우- 쉣!”

“어우야-”

“큼- 흠- 아니 순대를 목에 걸고 웃는 건 뭡니까?”

“야- 됐다. 가셨어. 이미.”

부하들이 뭐라 그러든 간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피바다에 서서 두 팔을 들어 올린 유 이사가 낮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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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 피칠을 한 유 이사는 얼굴만 하얬다. 붉은 핏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옷과 신발은 발걸음마다 피 발자국을 남겼다.

“아- 씨- 진짜. 유 이사님. 그거 씻어야 한다니까요. 기억 안 나십니까? 아프간에서 담배 태우다 대가리 날아간 놈 말입니다.”

“아 그 새끼. 존나 병신 같은 새끼가 불빛만 차단하면 된다고 깡통으로 가리고 태우다가 뒈졌었지.”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기본 아닙니까. 기본. 냄새 지우는 건.”

“맞습니다. 아프간에서는 그렇게 지···. 아니, 냄새 지우라고 하셨던 분이 피칠을 하고 그러시면 진짜.”

“아니 화장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옆에 널린 게 병원 화장실인데. 물도 나오겠다. 왜 그러십니까?”

“그거 냄새 맡고 괴물들이 달려든다니까요. 피 냄새 풀풀 풍기면 여기 상처 입었다. 아니면 여기 먹잇감 뒈져 있다. 그렇게 광고하는 거 아닙니까?”

부하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했다. 유 이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게슴츠레 뜬 눈으로 방향을 살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함을 느낀 부하들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 있다고 광고?”

“···어?”

“야. 무서워.”

“설마?”

서로를 보며 눈빛을 교환한 부하들이 으워어어억 했다.

“아니. 씨발 유 이사님.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거 아니죠?”

“그거 아니죠?”

“설마? 진짜?”

“야 포기해. 됐다. 저 상태 한두 번 보냐?”

유 이사는 흔적을 찾았다. 예민해진 감각으로 바닥을 살펴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유 이사님 뭘 찾는 거냐?”

“글쎄다. 계속 저러시는데?”

“썅- 저거 또 왔다!”

“진짜 그거 좀 씻자니까요.”

피 냄새를 맡은 거대 고양이 두 마리가 유 이사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거친 살기, 사냥감을 보고 흥분한 표정. 고양이도 표정을 지을 수 있나? 부하들은 격철을 잡아당겼다.

투다다다닥!

타다다다당!

2인 1조로 고양이 괴수들을 저지하는 부하들. 유 이사는 나긋나긋한 발걸음으로 고양이들을 향해 걸어갔다. 낯선 고통에 온몸을 비틀던 고양이들은 접근하는 유 이사를 신경쓰지 못했다.

캬아!

크에에엥!!

6.8mm 총탄은 가죽을 찢고 안으로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고양이들이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주기엔 충분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서바이벌 게임용 BB탄을 맨몸으로 맞는 정도랄까?

정말 놀라고 화나서 달려든다면 무시하고 달려들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면 어정쩡하게 아파하고 피할 세기. 그렇기에 언제든 괴물 고양이들이 달려들지 몰랐다. 그럼에도 유 이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유 이사의 손에 들린 콜트 파이슨의 공이가 휘릭 젖혀졌다. 이어진 속사로 총알 6발이 한 번에 때려 박혔다. 코와 눈에 총을 맞은 거대 고양이들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만 지랄들 하고 조져!”

유 이사가 재장전과 동시에 고갯짓했다.

쇠파이프에 발톱을 매단 신석기 스타일을 들고 씨불-씨발- 거리면서 앞으로 나서는 부하들.

“조져!”

“어이!”

한 사람이 연약한 콧구멍에 발톱을 걸어 찢자, 고양이가 앞발을 휘두르며 저항했다. 그 틈을 타 귀를 찢고, 보드라운 뱃가죽을 긁어버린 부하들.

고양이 두 마리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뒈져랏!”

“죽어엇!”

“쑤셔!”

“지영아!”

“······.”

“······.”

“아니. 난 마누라 보고 싶다고.”

“······.”

‘미친 새끼. 재수 없게.’, ‘아오. 저걸 그냥.’, ‘죽고 싶다고 고사를 지내지. 그냥.’ 부하들이 부인 보고 싶다는 한 명을 갈궈대기 시작했다. 그에 발끈하는 남자.

“언제까지 그런 미신을 믿을 건데? 엉?”

“닥쳐 새꺄. 일 끝나기 전에 누가 마누라 찾고 그러냐? 재수 없게.”

“말도 못해? 내가 마누라 찾고 다녀도 그 좆같은 아프간에서도 잘 살았고, 이라크에서도 한몫 잡았는데. 뭔 말도 못···”

퍽! 퍼퍼퍽!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뒤로 꼬꾸라지는 남자. 한 사람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남은 자들이 바로 괴수 시체 뒤로 바짝 엄폐했다. 넓다지만 그

“이런 씨발!”

“저격이야?”

저격이라고 하기엔 연발이었다. 연발 저격도 있나? 무엇보다 건물 안이었다. 병원 안에서 저격이라고? 대체 누가?

“방향은?”

“3시!”

큰 대자로 뻗어버린 남자. 사지가 다 붙어 있었다.

“대가리는 멀쩡해!”

“아오. 병신 같은 새끼. 주둥이 좀 조심하라니까.”

퍽! 퍽!

엄폐한 시체 위로 총탄이 틀어박혔다. 둔탁한 충격으로 볼 때 7.62mm보다 묵직했다. 6.8mm로 간신히 생채기 냈던 가죽이 푹푹 파였다.

“환장하겠네.”

뭔지 모르겠지만 자주 접한 총알은 아니었다.

저격용 철갑탄을 썼다면 방탄복은 의미 없었다. 장갑차 철판, 엔진블록까지 뚫는 총알인데 고작 방탄복으로 막긴 불가능했으니까.

일반탄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방탄복으로 막는다고 하더라도 그 충격량은 고스란히 전달될 테니.

두둑- 두두두둑- 두두둑-

저따위로 총질하는 저격수가 있을까?

여럿 있었다면 한 명만 노리는 게 아니라 동시에 여러 타겟을 노렸을 텐데?

어떤 새끼지?

미군이 탈출 작전하고 있는 지역에서, 지랄을 내? 뒤지려고?

그럼 미군? 미군이 우릴 공격한다고? 왜?

“거리는?”

“몰라.”

“유 이사님은?”

엄폐하는 순간, 유 이사를 놓친 부하들이 사방을 확인했다. 저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내달리는 유 이사.

“저기. 그냥 직진 중.”

“저 양반 또 저러네. 엄호사격!”

“끼어들 때, 깜빡이 좀 켜시라니까. 진짜.”

엄호사격을 위해 머릴 살짝 내밀자, 바로 틀어박히는 총알. 머리통 옆을 살짝 스쳤지만 무시하고 총을 갈겨대기 시작하는 부하들.

“섬광탄!”

“3. 2. 1!”

번쩍!

강력한 빛이 터졌다. 환하게 밝아진 공터에 빛 무리가 어른거렸다.

“3시 제압사격!”

벌떡 일어나 총알을 쏟아부은 부하들이 다시 괴수 시체 뒤로 엄폐했다.

잔탄 확인.

한 번 마주칠 때마다 총알을 물 뿌리듯 뿌려댔으니 간당간당했다. 여러 탄창에 조금씩 남은 잔탄을 모아, 탄창 하나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크릭-크릭- 삽탄하는 소리의 끝에 한 사람이 말했다.

“야?”

“왜?”

좆됐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새끼들이 미군이라도 그렇고, 미군이 아니라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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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이사는 부하들을 믿고 3시 방향 통로를 향해 내달렸다. 부하들이 요란하게 시선을 끌어주고 있었다.

측면으로 사선을 피해 달리는 중, 강력한 빛이 등 뒤에서 비쳤다. 섬광탄이 터지고 긴 그림자가 앞을 향해 늘어졌다.

‘지금이다.’

총질한 새끼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굵직한 착탄음이라 저격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중돌격소총이었다. 불펍식 특유의 모양, 러시아제 ASh 12.7mm 중돌격소총.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유 이사는 전부 지워버렸다.

중요한 건, 저게 내 새끼들을 쐈다는 거였다. 그것도 내 눈앞에서.

탕! 한 발의 총성으로 날아간 두 발의 총탄.

한 발이 피카티니 레일 위에 달린 조준경을 터뜨렸고 다른 한 발은 방탄 마스크를 쓴 안면부를 강타했다. 45구경 철갑탄이 9mm 대응 방탄 마스크를 부수고 얼굴에 박혔다.

끄아아악!

양손으로 안면을 부여잡고 나뒹구는 적.

“야. 이 씨발 새끼야! 너 뭐냐?”

놈을 심문하려 다가서던 유 이사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 이놈 하나?

그것은 전장에서 닳고 닳은 경험과 직감이 보내는 경고였다.

유인? 함정? 매복?

살기는 없는데? 그럼 뭘 노린 거지? 나를 유인했다? 부하들과 분리하려고 했어? 왜?

뒤로 물러서는 유 이사의 팔뚝에 마취 탄이 박혔다. 반사적으로 마취 탄을 털어냈지만, 빙글 세상이 돌기 시작했다.

내려앉을 듯 무거워진 눈꺼풀 너머, 미친 듯 달려오는 부하들이 보였다.

병신 새끼들이 지랄들을 해요.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씹새끼들아-”

꺾이던 무릎을 세운 유 이사가 천근처럼 무거워진 콜트 파이슨을 들어 올렸다. 천 번 만 번 반복했던 동작. 익숙한 자세가 낯설었다.

보이는 적이 없었다. 흐릿해지는 시야.

씨발.

맨 앞에서 달려오던 상현이가 쓰러졌다.

씨발. 씨발.

이어서. 병덕이가 무너졌다.

유 이사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프간의 어느 고원이었다.

고립된 참호. 죽어나가는 부하들. 지원은 없었다. 구조도 없었다.

또. 빌어먹을

또다시. 좆같은.

[저것들이 미쳤나?]

[죽여 버려.]

중국어?

순간, 일렁이는 공간이 느껴졌다.

모두 셋. 그림자 저쪽에 숨어있는 무언가.

타다당! - 천근만근 무거운 콜트 파이슨이 불꽃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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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총에 맞고 쓰러진 두 사람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괴수 가죽을 두르지 않았으면 위험했었다. 이게 이렇게 성능이 좋을 줄이야.

“씨발 살아있냐?”

“넌?”

엎어졌던 상현이와 병덕이가 몸을 뒤집어 앞을 견제했다. 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린 중국어와 함께 비척비척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유 이사의 손이 움직였다.

타다당!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쏜 것 같은 모양새. 하지만 총알이 허공에 틀어박혔다. 파직- 화면이 깨지듯 공간이 일그러지며 방탄복을 입은 자들이 드러났다.

상현과 병덕이 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탄피가 바닥에 뿌려지고 쓰러지는 놈들.

“중국 새끼들이 여긴.”

“저번에도 있었잖아. 그 새끼들.”

그러고 보니 처음 일본에 왔을 때도 중국 애들이랑 엮였었다. 그래도 그때 엮인 놈들은 뭔가 범죄조직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 이놈들은 어떻게 봐도 특수부대 아닌가?

“다 괜찮냐?”

맨 처음 쓰러진 대수를 챙기고 온 민식이가 동료들의 상태를 묻고 유 이사를 향해 뛰어갔다.

“병··신 새끼들이··· 오지 마라니까···”

“···눈이나 제대로 뜨고 그러세요.”

민식이가 아. 예. 뭐. 하는 표정으로 해독제를 유 이사의 팔뚝에 박아 넣었다. 대충 성분 중화시킨다는 약이라고 했으니 그냥 두는 것보다는 낫겠지.

약 효과가 돌았는지, 눈을 껌뻑이던 유 이사가 말했다.

“대수는?”

“지영이년이 과부 팔자는 아니었나 봅니다.”

처음 두들겨 맞았던 오대수도 목숨은 건졌다. 갈비뼈가 부서지고 팔이 뒤틀렸지만, 어쨌든 살아있었다.

“이거 가죽 아니었으면 다 뒈졌을 겁니다.”

민식이가 씩 웃었다.

“근데 뭘 찾으셨던 겁니까?”

“··· 아니다. 우리도 이제 탈출하자.”

비틀거리는 유 이사를 부축한 민식이가 발걸음을 옮겼다.

[3조? 3조 결과는 어떻게 됐나?]

“유 이사님. 이 새끼들 통신 되나 본데요?”

시체를 파밍하던 상현과 병덕이 전송기를 들고 왔다.

“대충 챙길 건 다 챙겨. 놈들이 더 있을지 몰라. 합류를 우선한다.”

“예-”

그렇게 올라간 15층은 난리가 아니었다. 사방에 널린 토막들.

“여기도 지랄 났었네요.”

“······.”

여기다. 여기 있었다. 그게 여기에 있었다.

후끈 피가 달궈졌다, 신경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놈이 여기에 있었다.

“야-”

소리쳤지만, 부끄러울 정도로 작게 나오는 목소리.

“씨발-”

“왜 그러십니까? 불편하십니까?”

“아니다.”

자기를 업고 있는 민식이의 말에 아니라고 대답한 유 이사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중국 씨발 새끼들.’

유 이사를 꽉 묶은 민식이가 먼저 줄을 타고 하강했다. 이어서 중상을 입은 대수를 들쳐 맨 상현이가 마지막으로 병덕이 로프를 탔다.

탈출 집결지역은 텅 비어있었다. 피난민들과 미 해병대는 먼저 떠난 모양. 도난 병원에서 들리는 총성과 폭음으로 보아, 같이 내려갔던 미군 후방부대는 아직도 괴수들과 교전하고 있는 듯했다.

“설피부터 신자.”

“그래야겠네. 내가 대충 간이 썰매라도 만들 테니까. 좀 챙겨라.”

“어야.”

간이 썰매를 만들어, 유 이사와 대수를 싣고 끌기 시작했다.

“넌 씨발 나 아니었으면 뒈졌어. 그러니까 입 닥치고 있어라.”

“쿨럭- 좆까.”

민식이의 갈굼을 쿨하게 받아친 대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양옆 빙산처럼 쌓인 눈 벽이 쫙 갈라지고 있었다.

“쿨럭- 멈춰!”

“!?”

눈 속에서 들리는 강력한 구동음.

기이이이잉-

쌓인 눈더미를 뚫고 기갑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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