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75
마루는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내달리며 말했다.
“은신한 놈들부터 조져. 미사일 새끼들은 내가 맡을 테니.”
“······.”
대전차 미사일을 가진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나온 거야? 일단 미사일 가진 놈들부터 정리하고, 은신 장비 가진 놈들은 김 양에게 맡기는 게 좋을 듯싶었다.
김 양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흔적에 대고 중얼거렸다.
씨발 새끼···
존나 종간나··· 새끼
일찍 오든지··· 왔다고 하든지···
개새끼···
두두둑!
엑소슈트를 스친 12.7mm에 김 양이 노기를 터뜨렸다.
그래 저놈 때문이야.
저놈이 사태의 원흉인 것이야.
죽이자!
죽인다!!
죽이는 것이야!!!
아?!
은신 장비 가진 놈부터 처리하라고 했지···
으으으
‘네놈 위치가 어딘지 찍어 놨어. 그래 네놈 말이야 네놈!’
삑- 삑-
김 양은 헤드업디스플레이에 떠오른 열감지 영상과 동작감지센서 정보를 이용해, 은신한 놈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
======
마루는 태연하게 식은땀을 숨겼다.
방금. 실수했다면 김 양은 죽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도 폭발에 휘말렸을지 몰랐다.
그런데
벴다.
소형미사일이라고 해도 미사일이었다.
그걸 베어버렸다. 썰어버리고 말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손끝의 감각이 미쳤다. 그래 그건 죽인다고밖에 다른 표현이 없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걸린 것은 두 사람의 목숨. 뒤가 없이 달려간 끝에··· 잘랐다.
칼을 잡은 손끝에서 전류가 흘러 척수를 타오르는 느낌. 찌릿하다 못해 짜릿했다.
보병용 대전차 미사일을 치켜든 놈이 엑소슈트를 겨누는 모습. 발사하기 전에 베야 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썰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아 올랐다.
그 짜릿한 손맛을 느끼고 싶었다. 한 번 더.
다시 베고 싶어! 2토막이 아니라 4토막을 내면 어떨까?
‘미쳤냐? 미쳤어?’
욕망을 억누른 마루가 걸음을 재촉했다.
팟- 팍- 탁- 단 3걸음에 25~30m를 주파한 마루. 일렁이는 무엇인가가 갑자기 눈앞에 다가오자, 놀란 적이 허공에 대고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이 점화‧발사됐지만, 마루의 검격이 더 빨랐다.
푸화-----아--
발사관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썰리는 미사일.
???
▬▬▬▬▬▬▬▬▬▬▬▬▬▬▬▬
!!!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그리고 이어진 유폭.
바로 얼굴 어림에서 폭발한 미사일 파편에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적.
“끄아아아악! 눈이! 얼굴이!”
푹-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에게 안식이 내려졌다. 그렇게 일렁이는 그림자가 잿빛으로 흘러내리는 눈송이 사이로 사라졌다.
[지금 봤나?]
[방금 봤어?]
[저게 뭐야? 뭐냐고?]
사방이 요란스러운 중국어로 넘쳤다.
보고도 믿지 못했고, 믿을 수 없어도 무서웠다. 남은 것은 공포.
오히려 총에 죽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차라리 총알이었다면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미사일도 총에 맞아 유폭된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건 그게 아니었다.
허공에서 검은색 무엇인가가 나와, 미사일을 잘랐다. 그래 썰어버렸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봤지? 미사일이 잘린 거?]
[······.]
미지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아무리 강인하게 훈련된 정병이라고 할지라도. 미지의 공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저건 은신 장치일 뿐이다!]
[조짐이 있는 곳은 쏴ㅂ······.]
김 양의 체인건이 시끄럽게 구는 놈의 몸통을 총알로 다져버렸다.
[보이는 것부터 공격해!]
[엑소슈트다! 쏴!]
[기관단총!]
부랴부랴 엑소슈트를 향해 총구를 돌리는 적들. 총구가 옆으로 돌자마자, 한 명의 몸통이 반쪽으로 분리됐다.
[으아아악! 안 돼!]
투다다다다닥!
옆에 있던 전우가 아무런 기미도 조짐도 없이 갑자기 반 토막 나자, 멘탈이 나가버린 사람이 사방으로 총을 갈겨댔다.
탕!
뒤에 있던 장교가 정신이 나간 병사의 머리통에 납탄을 박아 넣었다.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
서걱-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뻐끔거리는 머리통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
[······.]
짧은 순간 침묵의 바람이 불었다. 그 고요함 속으로 잿빛 눈발이 뜨문뜨문 흩날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적막을 깼다.
[바닥! 바닥이다! 바닥을 봐!]
[발자국! 움직이면 발자국이 찍혀! 거길 쏴!]
[떨어지지 마라! 5인 1조, 3인 1조로 뭉쳐.]
적들의 신경이 온통 마루로 향한 틈을 타, 미 해병대는 필사의 탈출을 시작했다.
[저기 중령이 도망친다! 잡아!]
[놓치면 네놈들과 네놈들 가족 전부 인체박물관에서 만나게 될 거다!]
그렇게 적들이 미 해병대를 노리자, 다시 날뛰는 마루. 중간에 팀을 나눠 한쪽은 마루를 견제하고 다른 한쪽은 미 해병대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그럴 땐 김 양이 날뛰었다.
적들의 숫자가 줄기 시작했다. 총구를 돌린 놈들까지 합하면 거의 2배 가까운 숫자였는데 어느새 숫자가 비슷해졌고, 이어서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예광탄의 불빛이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선을 그렸다.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미 해병대는 적의 측면과 후면을 공격하는 지원군(?)의 활약에 놀라워했다.
“액션 카메라로 찍고 있나?”
“예. 전부 찍었습니다.”
도난 병원을 탈출했을 때부터, 바퀴의 포위를 뚫은 장면, 배신자들과 교전했던 상황까지 전부 찍고 있었다. 전파 방해, 재밍이 아니었다면 찍은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했겠지만, 불가능한 상황.
“무슨 일이 생기든 사령부에 전달해야 해.”
“···알겠습니다.”
일본 국회와 비밀 연구소에서 얻은 자료, 그리고 이곳에서 찍은 영상은 전부 1급 기밀에 해당할 정보였다.
서로의 목숨이 걸린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고, 마루와 김 양의 지원에 힘입어 미 해병대는 포위를 뚫고 퇴각에 성공했다.
적들은 퇴각하는 미 해병대를 필사적으로 물어뜯었지만, 기갑병과 장갑차량까지 공세에 합류하자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후퇴한다.]
[···전원 퇴각!]
“후아!”
“이겼다!”
살아남은 자들은 기쁨을, 죽은 자들에게는 애도를 그리고 마루와 김 양은 찬사를 받았다.
======
======
퇴각하는 적들을 향해 20mm 발칸을 시원하게 갈긴 기갑병에서 조종사가 내렸다. 김 양과 눈이 마주친 조종사가 씽긋 윙크를 날렸다. 김 양의 미간에 쿡- 주름이 잡혔다.
‘똥 싼 거 각자 닦으라고 했던 놈이 윙크를?’
윙크부터 날리고 본 기갑병 조종사도 김 양의 얼굴을 기억했는지 ‘살아있었냐? 의외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쿨럭- 고맙네.”
길버트 브라운 중령은 마루와 김 양에게 감사했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그래. 덴. 그 녀석에게도 빚을 졌군.”
중령은 품에 있던 작은 USB를 마루에게 건넸다.
“이건 조금 다른 정보일세. 국토안보국에서 관여할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뺐지만, 그 녀석에게 전해주게. 그리고 말했던 건. 최대한 지키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길버트 브라운 중령 일행을 구한 기갑병과 장갑차들은 곧바로 바퀴벌레에게 포위된 피난민과 그들을 지키고 있는 해병대를 구하기 위해 출발했다.
본래는 브라운 중령과 같이 전진기지로 간 뒤, 그대로 한국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김 양과 마루가 탄 장갑차가 작전에 투입된다며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중간에 내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마루와 김 양은 하하하- 서로 마주 봤다.
장교가 마루의 은신 장비를 보며 질문했다.
“바퀴는 어떻습니까?”
‘은신 장비로 바퀴를 속일 수 있냐?’는 이야기.
“거의 안 통합니다.‘
바퀴 특유의 감각 때문인지, 은신 장치에 잘 속지 않았다.
“그렇군요. 상대해 보셨습니까?”
“예. 까다롭더군요.”
까다로웠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바퀴였을 때도 지랄 맞았는데, 이게 팔뚝, 허벅지 크기가 된 뒤로는 끔찍했다.
일단 일반 총알은 잘 먹히지 않았다. 총알이 뚫고 못 뚫고의 문제가 아니라, 뚫었어도 그냥 무시한다는 의미였다.
칼로 절단해도 마찬가지였다. 세로로 쪼게, 좌우로 나눴는데도 다리를 버둥거리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호러였다.
“참 지랄 같군요.”
장교가 탄식했다. 총알에 맞아도 무시하는 바퀴와는 좀 다르지만, 거대 고양이만 하더라도 6.8mm 일반탄으로는 가죽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쥐라도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할까요? 그나마 6.8mm라서 저지라도 했지, 5.56mm였으면 저지도 못 했을 겁니다.”
괴물 쥐는 잡았는데, 고양이는 못 잡는 상황. 그렇다고 화기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7.62mm부터는 먹히고, 12.7mm로는 확실히 잡을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보급과 급탄이었다.
장교가 연초를 하나 꺼내 물었다.
“빌어먹을! 융단폭격으로 쓸어 버리면 간단한걸.”
구조고 나발이고 처리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처리하는 건 간단했다. 폭격이 힘들어? 그럼 미사일은? 뒀다가 사골국 끓여 먹게? 그러니까 중성자탄이나 핵폭탄으로 조지면 끝나는 일이었다.
문제는 도쿄와 인근에 사는 인구가 3천만이었다. 함부로 핵이나 중성자 탄을 쓸 수 없다는 소리. 전부 괴물 밥이 됐다면 깔끔하게 정리했을 텐데, 100명 가운데 1명만 생존했다고 쳐도 30만이 살아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핵이나 중성자탄을 쏠 정치인이 있을까? 정치생명 끝장나고 싶으면 뭔들 못할까.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상황에서는 불을 쓰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군요. 살충제도 효과가 있겠죠.”
“후- 그렇지 않아도 괴물들 때문에 네이팜의 소모가 너무 큽니다. 전진기지도 사실상 중기관총과 네이팜으로 지키고 있어서요. 쓸 수 있는 양이 제한적입니다.”
불은 괴물들을 퇴치하는 데도 요긴했다. 바글거리며 덤비는 괴물들도 화염방사기로 어루만져주면 금방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만큼 소모가 빠르다는 것.
다시 시작된 화산 분화도 문제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잿빛 눈이 증거였다. 헬기로 보급을 받았었는데, 이젠 헬기 보급도 끊길 판이었다.
일본 북서부 톳토리 현에 설치한 거점 캠프도 보급품 일부를 제외하면 한국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작전을 더 진행하기는 불가능했다. 아마도 지금 바퀴벌레에게 포위된 해병대와 피난민을 구조하는 것으로 끝일 공산이 컸다.
장교는 연초를 깊게 빨아들였다. 갑갑함이 가시지 않았다. 은신 장비를 가진 블라디마루 칼린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인 전투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바퀴벌레였다.
‘아무래도.’
엑소슈트를 가진 킴 양의 지원이 필요했다.
“미스 킴 많이 힘드시겠지만, 이번 작전에 합류를 부탁드립니다.”
김 양은 입술이 얼굴이 퉁퉁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 ASh 12.7mm 그거 쓰는 놈을 찍어 놨었는데, 은신한 놈들 잡고 견제하느라 놓쳤기 때문이었다.
“엑소슈트 배터리 떨어져서 못 감.”
“호환 배터리 가져왔습니다.”
“체인건 총알 떨어져서 안 됨.”
“화염방사기로 교체하면 충분합니다.”
김 양이 마루를 쳐다봤다. ‘말 좀 하셈.’, ‘싫음. 짜증남. 개짜증남.’ 김 양의 눈빛에 마루는 대답 대신 짙은 코발트 색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어?”
“지나가다 주웠다.”
짜증이 넘치던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아방한 표정으로 변한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이··· 이거? 진짜 그거임?”
아무리 봐도 유 이사, 그 아줌마 총인데? 김 양은 차마 만지지 못하고 마루의 손에 들린 총을 요리조리 살폈다.
콜트 파이슨 38구경이 아니었다. 유 이사의 분신 콜트 파이슨 45구경이 맞았다. 상아로 장식한 그립. 티타늄과 황금으로 상감한 실린더와 총신···.
와- 와- 와-
와아아아앗-
초롱초롱 김 양의 눈빛이 변했다. 근데 왜 이걸 지금? 나 준다고? 지금?
김 양의 눈빛에 마루가 총을 회수하며 다리를 쭉 뻗었다.
“후딱 정리하고 쉬자.”
실망 많은 중대장이 할 법한 소리를 한 마루가 김 양을 그윽하게 바라봤다.
‘엑소슈트 입고, 불 좀 뿌리면 되잖냐?’. ‘부지런해야지 꼬투리 잡히지 않지.’, ‘일해라. 밥값 아직 멀었다.’
김 양은 퀭해진 눈으로 엑소슈트의 배터리를 갈기 시작했다.
======
======
급하게 온다고 왔지만,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화염에 녹은 바닥이 함정과 해자를 이루고 있었다.
“우선 포위를 풀어야겠습니다.”
장교가 기갑병에게 작전을 설명하자, 기갑병 3대가 쌓인 눈을 뚫고 그대로 들어갔다.
“그럼 무운을···.”
마루가 은신 장비를 챙겨입자, 김 양이 마루를 봤다.
‘바퀴한테는 소용없다면서 그건 왜?’
‘영상 찍히잖아.’
‘나는?’
‘넌 엑소슈트니까 영상 찍혀야지. 그거 협찬이나 마찬가진데. 예쁘게 찍히게 잘해라.’
‘협찬?’
‘그래. 협?찬.’
순식간에 눈빛을 주고받은 김 양이 침묵했다.
“······.”
“······.”
체인건과 화염방사기를 한 손에 하나씩 든 김 양의 엑소슈트가 바글거리는 바퀴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다 뒈져!]
[죽어! 죽어!!]
어쩐지 과격해진 김 양이었다.
어. 음. 협찬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