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76화 (176/280)

러스트 [RUST]-176

김 양의 협찬에 바퀴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염방사기에 불을 붙인 김 양이 불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르륵-활활-

불놀이야-화르륵-

바퀴와 함께 화끈한 춤을?

춤이고 나발이고 그냥 같이 활활 타버리는 김 양이었다.

[강함!]

[안전!!]

[불타지 않음!!!]

한 마디씩 내뱉으며 김 양은 부지런히 바퀴벌레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마루는 김 양이 뚫고 들어간 공간을 타고 포위망 안쪽으로 들어갔다.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피난민들과 해병대원들 부상자들까지 총을 들고 바퀴벌레를 저지하고 있었다.

6.8mm 신형 소총은 바퀴의 갑각질을 꿰뚫기엔 충분했다. 일반탄의 저지력은 훌륭했고, 철갑탄의 관통력은 탁월했다.

다만, 그렇게 뜯기고 뚫린 바퀴들이 죽지 않고 버둥거리며 공격을 계속한다는 점이 문제일 뿐.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제일 큰 위험이었다.

“끄아아아악! 살려줘!”

“죽어! 떨어지란 말이야!”

머리가 날아간 바퀴가 부당상해 누워서 총을 쏘고 있는 해병대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머리통이 날아간지라 한입만을 시전하지 못했지만, 갈고리 같은 발톱은 건재했다. 군복을 뚫고 들어간 발톱이 부상병의 살을 찢었다.

완전히 꽉 달라붙은 바퀴라, 옆에 있는 병사들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 뜯어내자니 갈고리 같은 발톱 파고 들어간 상황이라 생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총을 쏴서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몸통에 총을 맞은 머리 없는 바퀴는 다릴 꽉 오므려 부상병의 허벅지에 더 깊숙하게 발톱을 박아 넣었다.

끄아아아악!

“저리 비켜!”

한 사람이 대검을 뽑아들고 바퀴벌레에 칼질을 시작했다.

“젠장. 이게. 칼이 안 들어?”

칼이 바퀴의 껍질을 파고들지 못했다. 오히려 칼이 닿을 때마다 더욱 꽉 조이는 바퀴.

으아아악! 으악!

공간이 일렁이며 검은색 칼날이 삐져나왔다. ‘어?’, ‘어!’, ‘뭐야.’ 하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 병사들. 검은 칼날이 휘둘러지자, 바퀴의 다리와 몸통이 깨끗하게 분리됐다.

한 명을 구했지만, 마루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여기저기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바퀴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 해병대원들의 시선이 밖의 바퀴를 향하는 동안, 놈들이 아래를 뚫고 안쪽으로 나온 것이다.

뒤에 있던 부상병들이 제일 먼저 희생당했고, 그나마 몇 없는 노약자들이 다음이었다. 어린아이들과 학생들인지라 무기가 없었고.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당했다. 조그만 손가락이 잘려 눈밭을 뒹굴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

그럼 희생자들은 어딨지? 그게 문제였다.

부상병이 실려있던 들것. 피 묻은 총기, 뿌려진 탄피는 있었지만, 정작 시체가 없었다.

‘시체를 끌고 갔나?’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뚫린 구멍에서 바퀴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촤악-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을 토막 낸 마루가 외쳤다.

“여기 구멍! 화염! 화염 방사!”

바깥쪽만 견제하고 있던 해병대원 가운데 몇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구멍이라고?”

“어디?”

“여기다!”

“불붙여!”

화염방사기를 들고 온 병사가 바퀴벌레들이 가득 썰려있는 구멍 속으로 화염을 밀어 넣었다. 갑각류 타는 특유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이쪽에도 구멍!”

“놈들이 후방으로 들어오고 있었어!”

바깥쪽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병사들과 무장한 피난민들이 뒤에 생긴 구멍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어? 야. 누가 구멍 뚫렸다고 소리쳤어?”

“너 아니었나?”

“아닌데?”

병사들이 두리번거리는 것을 본 마루가 은신을 풀지 않고 조용히 물러섰다. 그나마 구멍이 많이 생기기 전에 막아서 다행이었다.

마루의 참전으로 혼란스러웠던 방어선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착각이 아니야. 놈들이 시체를 가져가고 있어.’

인간의 시체뿐 아니라, 동족들의 시체까지 끌고 가고 있었다. 사방이 바퀴벌레 죽은 것 천지여야 할 텐데, 잠깐 사이에 없어지고 있었다.

바퀴는 개미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체는 왜 가져가?

비밀 연구소에서 마주쳤던 바퀴들이 떠올랐다. 그놈들은 마치 군집체처럼 움직였었다. 그런 놈들이 더 커졌다면? 덩치만큼 똑똑해진 것이라면?

마루의 상념을 깬 건 묘한 소리였다.

“누르라고!”

“눌러서 뒤집어.”

“하잇!”

특유한 기합소리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루.

“손목에 힘을 빼!”

“예!”

“더듬이를 노려.”

“안 잘려요.”

“이리 나와!”

키가 160cm 넘을까 말까 한 왜소한 노인이 나기나타를 들고 있는 소녀와 일본도를 들고 있는 소년에게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서서 팔로만 휘두르지 말고. 움직이면서.”

“허리. 등의 힘으로!”

“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끊으란 말이다!”

바퀴벌레의 더듬이를 깔끔하게 자르는 노인이 있었다. 더듬이를 자른 노인이 칼을 거두지 않고 마루가 은신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거기 누군가?”

본래 쓰던 것보다 정교함이 떨어지는 은신 장비라고 해도, 잿빛 눈발이 날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알아채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충 찍은 건가? 아니면 정말 알아챈 건가?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노인이 팔을 들어 아이들을 옆으로 가라고 하곤, 마루가 은신하고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뗐다.

‘진짜 알아챘네.’

일렁- 마루가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내자, 노인이 좌우를 살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나? 약속과 다르지 않나?”

“······.”

‘이 노친네가 뭔 소리를···.’

마스크 속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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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돗토리현.

철수 준비에 한창이던 미군 캠프는 어수선했다.

“상황은 어떤가?”

사령관의 질문에 부관이 어두운 목소리로 답했다.

“폭설로 시야가 엉망입니다. 그리고 폭동이 다시 터졌습니다.”

“그놈의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퍼졌다고 봐야겠지?”

“···예. 그렇습니다.”

“전진기지 그린필드 대령은?”

“소식이 끊겼습니다.”

띄엄띄엄 연결됐던 통신이 또 끊겼다. 잠시 멎었던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화산활동도 활발해지는 상황인지라 언제 통신이 연결될지 기약하기 어려웠다. 한 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사령관님! 도난 병원에서 지금 길버트 브라운 중령이 도착했습니다.”

“뭐야? 바로 오라고 해.”

“상태가 좋지 않아 바로 의무대로 이송됐습니다.”

“의식은 있고?”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령관님께 전하면서 본국으로 최대한 빨리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병사가 내민 봉투엔 USB와 서류철들이 담겨있었다. 서류철 가운데 하나를 꺼내 본 사령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퇴각을 서두른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도록 하고, 준비된 부대부터 바로 출발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전진기지에 헬기 보내서 전부 싣고 와.”

“헬기는 어렵습니다.”

악천후도 문제였고, 화산이 다시 터지기 시작한 것도 문제였다.

“브라운 중령은 걸어서 왔나?”

“간신히 도착했다고 합니다. 헬기는 쓸 수 없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류철을 쥐고 있던 사령관이 벌떡 일어났다.

“무슨 방법이든 방법을 찾아! 전진기지에서 애들 다 철수시키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부관을 노려보던 사령관의 눈동자가 다시 서류를 향했다. 그러니까 이 잽스 새끼들이 10년 전부터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아니, 10년도 넘게 속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들···.’

어쩐지 이상하긴 했었다. 중국과 일본이 하는 짓이. 사드 배치 하나를 핑계로 한국을 조졌던 일을 생각하면 일본을 그냥 둔 이유가 왤까 싶었다. 중국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일본 정치인의 말에도 별다른 경제 보복이 없었던 이유는 뭘까 싶었고.

일본이 세계 3위 경제 대국이라서? 중국의 시장이라서? 많은 예측이 있었고 해석이 있었지만, 이 서류에 담긴 내용은 완벽히 달랐다. 일본과 중국은 예전부터 밀약을 맺고 있었다.

아시아 태평양에서 합중국을 몰아내고 동아시아 공영권을 만들겠다는 계획. 대륙은 중국이 해양은 일본이. 거기에 러시아를 포섭해 일중러가 뭉쳐 합중국을 몰아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이길 것 같으면, 중국 편에 서고. 합중국이 이길 것 같으면 합중국 편에 서겠다는 속내가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언제나 겉으로는 합중국 편에 서는 것 같지만, 놈들은 이미 그전부터 중국을 몰래 지원하고 있었다.

조선, 특수강, 화학,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까지. 일본은 꾸준히 중국과 대만에 생산시설과 기술을 매각했다. 그리고 그걸 받아먹은 중국은 급속도로 기술을 발달시켰고.

더 심각한 것은. 중국과 일본이 생화학,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부분에서도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점이었다.

서류를 넘기는 사령관의 손이 빨라졌다. 어느 순간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는 사령관.

“미친 새끼들.”

일본 정치인들은 미친 게 분명했다. 아니, 일본이 미친 게 분명했다. 사령관의 중얼거린 독백을 받듯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렸다.

“맞습니다. 미친놈들이 맞지요.”

반쯤 열린 막사 밖에서, 존 스미스가 빙글거리는 얼굴을 한 채 사령관을 보고 있었다.

전진기지에 간 놈이 여긴 어떻게? 그렇군. 길버트 브라운 중령이 올 때, 같이 타고 온 건가? 존 스미스와 눈이 마주친 사령관이 이를 드러냈다.

“버지니아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증거를 찾으려고 요원들을 대거 투입했었습니다···.

일본의 낌새가 이상해 대거 직원들을 투입했었는데, 대재난으로 잃고 말았다. 직원의 숫자가 확 줄어버려 난감한 상황이었다.

“···아시다시피 일본과 중국의 로비가 워낙 탄탄해서 말입니다. 증거를 들이대도 중간에 잘리는 판에 짐작만으로 뭘 하긴 어려웠습니다. 군도 그렇지 않습니까? 이쪽도 마찬가지라서, 그렇게 노려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

“가로 막고 서 있지 말고 들어오지.”

“감사합니다.”

존 스미스가 태연하게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 자넨 이 서류를 봤나?”

“물론 봤습니다. 가져갈 사본도 만들었고요.”

존 스미스가 서류가방을 살짝 들어 올렸다.

“놈들의 계획대로라면 대만 다음에는 한국이 타겟이더군.”

“그렇더군요.”

당연한 소릴 하는 것처럼 담담한 존 스미스의 대답에 사령관은 조금 울컥했다.

“남의 일인가? 이게 지금?”

“갑자기 터진 대재난에 놈들이 휩쓸렸지만,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재난 상황을 이용한다는 건 놈들의 본 계획에도 있던 내용이니까요.”

“그래서 회사는 어떤 생각인 거지?”

“뭘 그런 질문을. 회사도 군대와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죠. 위의 생각을 제가 알겠습니까?”

여상하게 대답하는 존 스미스의 말투에 사령관의 이마에서 핏줄이 꿈틀 튀어나왔다.

“위에서 까라면 깐다고? 그걸 말이라고 해? 미쳤나? 세계대전이 될 수 있단 말이다!”

존 스미스의 얼굴에 기괴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령관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사령관이 들고 있는 서류를 향했다.

“세계대전이요? 직접 보셨다시피. 저쪽에서는 이미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미합중국이 동아시아 태평양을 포기하고 물러서거나, 아니면 아포칼립스의 구렁텅이에 함께 빠지거나. 놈들은 손해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놈들의 계획대로라면 세상은 뒤집어질 것이니까.

“미쳤군.”

“···동감입니다.”

“이 정보가 본국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 짐작되나?”

“어떻게 되긴요. 당장 별일 있겠습니까? 아무 일도 없겠지요.”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회사에서 야근, 특근, 휴일 반납이 늘어나는 것만 빼면 변하는 게 있겠습니까? 선택은 위에 있는 윗사람들이 하겠지요.

“제정신이 아니군.”

“저도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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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침묵에 노인이 다시 재촉했다.

“약속대로 해주게.”

뭔 약속인지 모르겠지만, 이 노인은 뭔가를 알고 있었다. 찝찝한 뭔가를. 무엇보다 지금 마루가 입고 있는 건 중국제 은신 장비였다. 이걸 알고 있다는 소리는 중국과 접점이 있는 노친네라는 소리.

“···지금 상황을 보면 그쪽이 말했던 약속과는 다른 것 같지 않나?”

태연한 목소리로 마루가 뻥카를 날렸다.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며 칼을 앞으로 들이미는 노인.

“네놈···. 뭐하는 놈이냐?”

어라? 안 먹히네.

그런데 노인장. 사람한테 함부로 칼 겨누는 거 아니라고 모르나?

스르르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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