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78
존 스미스의 말에 사령관은 헛웃음 지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믿는다고 해도 웃기는 소리였다. 유 이사를 잡아서 뭘 어떻게 하겠는가? 젊어진 이유를 찾아서? 다음에는?
“합중국의 것이다? 하? 언제부터 노인네들의 욕망이 합중국의 의지가 됐지?”
“사령관님이 그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아닐까요?”
사령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지금. 날 모욕하는 건가?”
“전혀 아닙니다. 그 자리에 앉은 이유는 명백합니다. 사령관님의 능력을 위에서 인정했다는 걸 의미하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노인들이라는 것과 그 노인들이 합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렸을 뿐입니다.”
붉게 달아오른 사령관의 분노에도 존 스미스는 느긋했다.
“빌어먹을. 좋아. 그래서 정예 부대를 남겨서 수색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무력충돌을 감수하고서라도?”
“당연합니다.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에게도 좋은 기회니까요.”
그쪽도 정예 부대를 보냈을 것이다. 괴물들이 넘치는 일본은 좋은 실전 훈련장일 테니까. 이쪽이 신무기를 테스트한 것처럼 그쪽도 신무기를 테스트할 게 분명했다.
그쪽에서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리라, 미리 잠입시켜놓은 스파이까지 이용한다면? 이쪽의 신무기를 확보함과 동시에 전력을 줄일 수 있겠다고.
피차 사상자가 생기면? 괴물 탓으로 돌리겠지. 상대방의 시체를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저놈들이 자작극을 펼치는 거다.’ 라며 부인하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
그러니 서로 죽고 죽이기 정말 좋은 판이 깔린 셈이었다.
“기갑병이 있음에도 엑소슈트를 밀어 넣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나?”
“엑소슈트는 국토안보국에서 넣었습니다. 아마도 성능시험이겠군요. 군도 그렇고 국토안보국도 그렇겠지만, 회사도 국방과 안보에는 진심입니다.”
“허- 누가 들으면 다들 사이가 좋은 줄 알겠어?”
“가끔은 서로 기 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다 경쟁하느라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에 서면으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쪽에서는 이걸 준비했습니다.”
존 스미스가 작은 금속케이스를 하나 꺼내 열었다. 가지런히 들어 있는 알약들. 사령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신형 전투보조제라고 했었지.”
이라크전과 아프간에서 전투자극제가 사용됐었다.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됐었지만, 부작용도 심각했다. 본디 전투자극제는 그런 것이었다. 양날의 검 같은.
“그렇습니다. 기존에 사용했던 약제의 부작용을 최소화시켰고, 성능 개량도 끝내서 현존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실전 사용하면서 파악한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부분을 고친 전투보조제였다.
주사제로도 쓸 수 있고, 물 없이 씹어 먹는 것도 가능하게 해서 사용 편의성도 최고였다. 효과는 근력 강화를 비롯해 반사신경, 순발력 강화. 야맹증 개선과 더불어 심폐기능 개선 등 신체능력을 15~20%나 끌어 올릴 수 있는 역작이었다.
“이번에 확보한 자료를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놈들이 사용하는 약은 여러모로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사용 농도에 따라서 무려 50%에서 100% 넘게 신체능력이 좋아졌다.
단점은 이성을 잃는다는 점. 사람에 따라서 이성을 유지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이성을 잃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피아식별은 가능한 수준이니, 강력한 한 방으로 쓰기엔 부족함 없었다.
“하하. 이 미친 것들이 별 희한한 걸 만들어 버렸네요. 설마 사람 자체를 일종의 배양기로 사용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이러스를 이용해 원료가 스스로 증식하게 한다는 발상이라니. 천재··· 아니, 악마적이기 까지 하더군요.”
“자료에 나온 것처럼 그런 부작용이 있다면 놈들의 약은 자폭이나 마찬가지야.”
“동감합니다. 확실히 미친놈들이죠. 그런데 이런 미친놈들이 뿌린 걸 받아먹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더군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놈들의 돈과 약물이 합중국에 퍼지고 있었다. 자료를 보면 놈들은 벌써 10년 전부터 합중국을 갉아먹고 있었다. 최소 10년,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생각 같아서는 모조리 잡아 죽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월가 새끼들은 돈이라면 뭐든 하는 종자였고, 아직도 행복 회로 돌리고 있는 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사령관도 그에 동의하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군. 어려워.”
“어쩌겠습니까? 이런 상황이더라도,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인데 말입니다.”
구조작전이 탐색전이 될 줄이야. 그것도 여러 가지가 걸린 전초전이 됐다.
“솎아내기는 어떻게 됐나?”
“지금쯤이면 전진기지 쪽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겁니다. 던진 미끼가 큼지막했거든요. 길버트 브라운 중령이 미끼 역할로 고생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살아서 귀환했으니 작전은 성공입니다.”
“전부 거르지는 못했겠지?”
“그럼요. 놈들이 한 번에 다 드러났겠습니까? 적어도 30%는 남았을 겁니다.”
전면전이라면 2차 대전에서 일본인들을 격리했듯 격리하면 될 일이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많이도 남았군.”
“앞으로 몇 차례 더 솎아내기야 하겠지만, 근절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그나마 이렇게 위험한 곳이 생겨서 핑계가 좋아졌습니다. 여기서 계속 솎아내고 김을 빼면 오히려 전면전의 위험은 낮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일본 대재난 덕분에 걸러내기 좋은 장소가 생겼다. 여기서 소규모 무력충돌을 벌이는 방식으로 부딪친다면 전면전의 압력을 해소할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소규모 분쟁과 소모전으로 전면전의 위험을 낮춘다? 오히려 정 반대가 될 수도 있는데?”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법이고, 주먹질하던 것이 총질이 되기도 하는 법이었다.
“지금은 아닙니다. 이곳에 들어온 저쪽 정예를 모조리 잡아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들 정예가 잡혔는데, 함부로 일을 크게 벌이긴 힘들어질 겁니다. 정예들이 소모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당장 전면전을 하긴 어려워진다는 게 회사의 예측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부대를 철수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질적으로는 정예 부대를 증원해야 한다? 놈들의 정예병을 최대한 녹여버려서 전쟁의 의지도 꺾고?”
“그렇습니다.”
“겸사겸사 저쪽에서 챙겨가는 것도 막고, 유 이사도 잡고?”
사령관의 말에 존 스미스가 미소로 답했다. 말은 좋지, 쉬울 리가. 심지어 이쪽에는 기생충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그녀를 생포?
“유 이사를 생포하는 건 힘들어.”
“압니다. 그래서 시체라도 확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놈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저쪽이 더 안달 났을 겁니다. 길버트 브라운 중령을 놓치면서 연구자료도 날아갔고 희생만 생겼지요. 어떻게 잡아보겠다고 이쪽에 박아 놓은 첩자들까지 대거 까발려지면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놈들에게 현 상황을 만회할 방법은 유 이사를 잡는 방법뿐이니, 많이 조급할 겁니다.”
조급해지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후- 그 여자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건드리지 말라고 할 걸세. 그건 정말 미친 여자야.”
사령관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날뛴 유 이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와 한 번이라도 같이 작전을 나갔다면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되도록 이런 쪽으로는 피하고 싶은 유형. 아군으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스타일을 생포? 사살? 대체 얼마만큼 희생자가 생길지 생각하기 끔찍했다.
존 스미스도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겠습니까? 이미 손을 댔으니, 생포하든 시체라도 건지든 해야죠.”
“하아- 그래. 일단 전진기지에 있는 부대는 전부 남겨두는 것으로 하지. 골치 아픈 놈들을 모아둔 부대지만 이쪽으로는 제법 쓸만한 놈들이니까.”
전쟁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라 적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놈들과 교전하면서 유 이사까지 확보하려면 아무래도 숫자가 부족합니다.”
사령관과 존 스미스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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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고개를 푹 숙인 여자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거참.’
할아범은 어떻게 은신을 간파했을까? 아무래도 은신 장비를 알고 있어서 가능했겠지? 아니라면 감각이 바퀴벌레 급으로 좋다는 소리였다.
뭔가 아는 게 있어 보여서 살짝 낚아 보려고 했지만, 걸리지 않고 오히려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치매 노인이 동귀어진까지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짜증 나서 대충 휘두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쉽게 막을 수 있는 칼질은 아니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치매 할아범 팔 하나는 잘라버릴 생각이었는데, 그걸 또 흘려서 막다니.
‘제법이네.’
확실히 제법이었다. 눈도 정상이고, 깍듯하게 사과하는 것을 보면 정신도 제정신이었다.
저번에 사막에서 오순도순 잡았던 카르텔 간부급? 아니면 유 이사랑 비슷한 경우일까?
유 이사는 완전 맛이 간 사람이고 얘는 정상이니까 단순하게 비교하긴 곤란했다. 어쨌든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부족하다 싶었는데, 이 정도면 괜찮아 보였다.
그러니까 일단 킵 좀 해보자. 마루는 결정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말 한두 마디로 끝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어디서 대충 말 몇 마디로 도망치려고.
고개를 살짝 든, 여자가 고민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전화번호와 계좌를 알려주시면 충분히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엔화는 휴지가 됐는데?”
일단 너는 킵이이라니까.
“위안화 아니면 달러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오- 제법 돈 좀 있는 집안인가 봐.”
약간이지만 이죽거리는 마루의 딴지에도 여자의 얼굴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칼질을 받아 봤으니 분노 조절 잘하는 상태가 됐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뭣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거기에 위안화랑 달러를 언급한다는 것은 집안에 제법 돈이 있다는···.
‘집안?’
마루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했지?”
“가다마 키리코입니다.”
“가다마···?”
“들어보셨습니까? 예. 가다마 가문입니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보상은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여자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잠깐. 이거 그 집안 아니야?
마루는 떠오른 기억에 잠시 당황했다.
일본 참의원이라고 했던 그 늙은이가 가다마 아니었나? 헬기 타고 도난 병원에 오자마자 싹수가 노래서, 시원하게 옥상 밖으로 보내드렸던 그 영감. 그 사람 이름이···
“혹시 가다마 게이치 의원과는···.”
“네. 큰할아버님이십니다.”
대답과 함께 무슨 생각을 했는지, 뿌득- 여자가 이를 갈았다.
어. 음. 킵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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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쉬쉬쉭----
엑소슈트에 달라붙었다가 홀라당 불타버린 바퀴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엔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삑-삑삑-
헤드업디스플레이에 동작 감지 신호가 떴다. 바퀴들이 구멍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 속으로 파고 들어간 기갑병들이 뭔가를 한 것 같았다.
휴-
이 정도면 괜찮게 나왔겠지?
김 양은 엑소슈트에 달린 카메라 영상을 재생해봤다.
바글거리는 바퀴들 사이로 용맹하게 뛰어드는 엑소슈트. 히어로 물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은 모습. 끔찍한 바퀴벌레를 두려워하지 않는 웅장한 용기, 웅심이 솟아오르는 불꽃, 그리고 마지막엔 바퀴벌레들이 후퇴하는 모습까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응. 좋았다.
자체 액션 캠에 담긴 영상이 이런데, 미군 애들이 찍고 있는 영상이랑 합치면 진짜 각본 없는 영화가 되는 게 아닐까? 김 양은 은근히 다음 협찬이 기다려졌다.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보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방어능력이었다.
소총탄이나 9mm 권총탄, 이런저런 파편 같은 건 충분히 방호 가능했지만, 12.7mm 탄 방어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 그놈. 위치 찍어두고 놓친 놈.’
김 양은 잊지 않았다. 그때의 치욕을.
잠시 분노에 빠졌던 김 양이 다시 품평을 계속했다.
다음으로는 배터리. 풀로 움직일 수 있는 작전 시간이 짧았다.
‘배터리 용량을 키우든, 교체를 빠르고 쉽게 하든 해야 함.’
모름지기 사용 후기는 정직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더 좋은 제품을 만들지.
그럼 우리 백정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
잘 보고 있었겠지? 이 몸의 활약···을···.
왜년이랑 노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