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79
이 시국에······
협찬의 행방이 걸려있는 중요한 시점에 왜년과?!
화르르륵-
불타올랐던 김 양이 급진정했다.
일단, 사주경계를 다시 한 번 실시하는 김 양.
전방 바퀴 없고, 후방 바퀴 튀었고, 좌?우 바퀴 확실히 빠졌다. 포위망을 형성했던 바퀴들도 전부 사라지면서 치열했던 사투가 막을 내렸다.
기뻐하는 사람들. 살았다고 흐느끼는 사람들 사이로 해병대와 육군이 서로 악수하다 부둥켜안는 모습이 보였다.
‘좋았어.’
엑소슈트의 구동음을 한계까지 낮춘 채, 날렵하고도 은밀하게 현장을 급습하려는 김 양의 눈에 마루의 떨떠름한 얼굴이 포착됐다.
‘응?’
슬그머니 태세를 전환한 김 양이, 센서를 최대한 증폭시켰다.
[‘게이치’가 아니고 ‘케이치’이십니다.]
[아. 네. ]
[그럼 연락처와 계좌를 주시면 불미스런 일에 대해 꼭 보상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제 갈 길로 가는 일본 여자. 김 양이 슬그머니 혼자 남은 마루를 향해 다가섰다.
“누구?”
“아니. 정신이 좀 이상한 할배랑 엮였는데 그 손녀.”
“게이치? 케이치?”
“하아- 말하자면 길다. 근데 어떻게 왔냐? 바퀴들은?”
포위망이 제법 빡빡했었는데?
“도망쳤음. 포위 풀려서 지금 사람들 막 몰려가는 중.”
“잘됐네. 우리도 가자.”
“아까 봤음?”
“뭘?”
엑소슈트 헬멧이 슬쩍 마루를 향했다. 마루는 심사가 복잡한 표정으로 아까 일본 여자가 간 쪽을 보고 있었다.
김 양의 시선을 느낀 마루가 고개를 돌렸다.
[······.]
“왜?”
[아님.]
“아니야?”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따로 할 말이 있는 건가?
[아님!]
“뭐가 아닌데?”
김 양의 발걸음이 콩콩거렸다.
[아님!!]
이거 반응이 참. 마루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
······
······
“야. 아까 화끈하게 잘 태우더라.”
[······.]
기이이잉-
기이이잉-
엑소슈트가 속도를 높였다.
======
======
전진기지.
그린필드 대령은 쏟아지는 현황 보고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유 이사 부하로 보이는 자를 확보.]
[중상으로 보임. 심문 시작하겠음.]
[자폭 테러 발생!]
[아군 사상자 다수!]
이후 통신이 끊겼다.
“신형 무전기도 먹통인가?”
악천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던 신형 통신 장비였지만, 그것도 현재 상황에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 화산재가 섞인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 뒤로는 완전히 끊겼습니다.”
빌어먹을 화산! 화산재에 눈까지 쌍으로 지랄이었다.
그린필드 대령은 회색으로 몰아치기 시작하는 눈보라를 노려봤다. 악조건 속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정보였다. 그런데 통신이 끊겨 버렸다.
“유선으로라도 연결하란 말이야.”
“지금 주요 지점에 선을 깔고 있습니다.”
선만 깐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했다.
“답답하군.”
길버트 브라운 중령과 그가 가진 자료를 확보, 본진으로 이송하는 데 성공했다. 바퀴벌레들에게 포위된 피난민들과 해병대를 구조하는 것도 성공했다. 내부에 있던 배신자들을 솎아내는 작전도 용병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해결했다.
이제 남은 것은 유 이사와 그 부하들을 포획하는 것 하나였다. 그래서 모든 병력을 수색과 포획에 돌린 참이었다. 포획만 끝나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떠날 수 있나 싶었는데, 본진에서는 다른 소리를 했다.
전진기지의 방어를 강화할 것.
주요 거점 확보를 시작하고 경계를 강화할 것.
······
숙련된 적군과 교전 가능성 있음.
무장한 적을 발견할 시 선제공격할 것.
······
적군의 장비를 노획할 경우 우선 보관.
포로 심문은 버지니아 요원이 전담.
······
퇴각, 후퇴하게 될 경우, 수습하지 못한 장비는 전부 폐기.
······
그러니까 짧게 말하자면, 알을 박으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적들과 치고받고 싸우면서.
“ㅈ···.”
그린필드 대령은 욕을 아꼈다.
눈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판에 적군과 적극적으로 교전해라?
진지하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미쳤나?
위에서 까라면 까는 게 군인이라고 했던 과거의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막사 안으로 소위가 들어왔다.
“로이 스턴 소위. 임무를 마치고···.”
“됐어. 수고했네. 상황은?”
“피난민들과 해병대 인솔 완료했습니다. 도망치는 바퀴들을 추적, 본진을 찾아 섬멸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자네가 갔는데도?”
“예. 놈들이 본진으로 도망친다고 생각했었는데 함정이었습니다. 이것들 그냥 보통 벌레가 아닙니다.”
로이 스턴 소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우르르 몰려다니는 바퀴벌레였다.
하지만 조금씩 놈들의 움직임에 무언가 규칙이 생기고, 변화가 시작됐다. 개미도 아니고 바퀴벌레들이 협동을 시작했다. 그래 그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기습은 뭔가? 매복은? 망치와 모루는? 포위섬멸은? 인간들이 바퀴벌레에게 쓴 전술을 하나씩 습득하는 게 분명했다.
“바퀴벌레들이 학습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하? 그게 정말인가?”
“예. 어설프지만 확실히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후-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일단 기지로 데려온 월드 PMC 소속은 전부 무장해제시킨 뒤 격리하고 유 이사와 직속 부하 포획 작전에 자네가 직접 나가도록 하게.”
“예? 제가 말입니까?”
“그래. 로이 스턴 소위 자네가 직접 해. 말했지만, 사살은 피해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상황이 심각해졌어.”
“······.”
“중상을 입은 유 이사 직속 부하 한 명을 잡았는데, 자폭했네.”
자폭이라는 말에 로이 스턴 소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폭했다는 소문이 벌써 돌았어. 빌어먹을 소문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도는 건지. 그 소문을 들은 애들이 생포하겠다고 하겠나? 우리 애들 대부분 자폭이라면 지긋지긋한 애들이야. 유 이사든 누구든 보이면 무조건 쏘고 보겠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구르고 사고 친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자폭이라면 지질병을 내는 병사들에게 생포하라고 한다고 먹힐까? 이미 한 번 터졌는데?
“알겠습니다. 그런데. 유 이사 딸도 있습니까?”
“응? 딸이라니?”
“제가 유 이사와 똑 닮은 여자를 봐서 말입니다. 딸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피를 보지 않고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린필드 대령은 스턴 소위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딸이 아닐세. 그 여자가 유 이사 본인이야.”
“예?”
지금 이게 뭔 소리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충격을 받은 소위에게 대령이 쓴웃음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유 이사를 잡으라는 걸세. 생포가 어려우면 반드시 사살. 시체라도 확보하라는 명령이야.”
“······.”
그러니까 그 딸 같은 여자가 딸이 아니고 유 이사 본인이다?
회춘? 어떻게? 잡으려고 했다? 로제 룽이 배신한 이유에 유 이사가 원인?
로이 스턴 소위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재구성됐다.
로제 룽과 싸웠을 때 자신을 도와줬던 용병들이 떠올랐다. 거기서 본 여자가 유 이사 본인이었다면, 룽년은 유 이사를 잡으려고 갔었고, 자신이 난입하자 본색을 드러낸 것?
유 이사가 어려진 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린필드 대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놈들은 모든 작전에 실패했어.”
길버트 브라운 중령 확보도, 자료 확보도 심지어 이쪽에 박아 놓은 배신자들까지 대거 까발려졌다. 놈들이 만회할 방법은 단 하나. 유 이사 확보.
“숙청당하고 싶지 않다면 무조건 유 이사를 찾아야겠지. 그럼 누가 앞장설까?”
“······.”
작전에 실패한 자들, 유 이사를 놓친 사람들.
“이제 알겠나? 유 이사를 생포했으면 좋겠다는 것 말고도, 자네가 갔으면 하는 이유가 뭔지?”
로제 룽을 비롯한 배신자들 전부 유 이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됐을 것이라는 말에 로이 스턴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로이 스턴 소위와 그린필드 대령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렸다.
유 이사를 쫓다 보면 배신자들과 마주친다는 소리니까.
======
======
하늘에서 잿빛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흰 눈 위에 쌓이는 회색빛 잔해들.
12.7mm 탄이 스친 옆구리. 꽁꽁 싸맨 붕대에 울컥울컥 피가 배어 나왔다. 은신 장비 속에 웅크린 민식이 추억을 읊조렸다.
“···그때 말입니다. 유 이사님 수통에 술 넣은 놈. 병덕이 새끼였습니다.”
“아시잖아요. 그 새끼 조용히 있다가 한 번씩 터트리는 거.”
“······.”
“그러게 잠 좀 자지, 밤을 며칠씩 새고 왜 그랬습니까?”
“배신 한 두 번 당해보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진짜 뭔 희한한 버릇이 생겨도 그런 습관이 생깁니까?”
“주둥이에 총 물리고 쏘는 거에 재미 들리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상현이가 그거 뒤처리하느라고 아주 똥꼬가 헐었었죠···.”
“······.”
날이 저물도록 놈들의 수색은 끊이지 않았다.
“저 새끼들에게 원수라도 졌습니까? 아프간이나 이라크면 모를까? 중국 애들한테 원한···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털 애들이랑 원수졌었죠. 무슨 흑룡회인가 그쪽 애들이랑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그쪽 애들이랑 진짜 징그럽게 엮였네요.”
“······.”
가만히 있는 유 이사를 본 민식이 낄낄 웃었다.
“조용히 있으신 거 보니까. 마취가 좀 풀리시려나 봅니다. 유 이사님 이런 쪽으로는 연기를 참 못 해요. 정말.”
민식이 마취탄을 뽑아들자, 쥐죽은 척 있던 유 이사가 눈을 번쩍 뜨곤 으르릉댔다.
“하지 마. 너 죽는다? 진짜 죽어?”
“아니 죽인다는 소리 좀 그만하십쇼. 유 이사님이 죽이지 않아도 알아서 죽게 생겼는데 말입니다.”
‘겁 안 난다니까요.’, ‘대수 새끼 이런 기분이었나?’ 중얼거린 민식이 버둥거리는 유 이사의 목덜미에 기어코 마취제를 박아 넣었다. 절반이 넘게 들어갔는데도 팔팔한 유 이사.
민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계속 주사액을 계속 밀어 넣었다. 하나가 다 들어가고 나서야 몸부림치며 기역, 니은 자체를 취하던 유 이사의 몸이 서서히 뻣뻣한 토막으로 변했다.
“와- 진짜. 무슨 실시간으로 내성이라도 생기는 겁니까? 1/10만 맞아도 바로 뻗을 건데, 이걸 이젠 한 방 다 놔야 할 판이니. 뭡니까? 코뿔소라도 된 겁니까?”
“······.”
분노가 가득한 유 이사의 눈빛에, 민식이 머쓱한 얼굴로 은신 장비 밖을 살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축축하게 흘러나온 핏물이 배를 타고 바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젠장. 텄군.’
“중국 놈들이야 워낙 때려잡아서 그렇다고 치고, 미국 애들은 또 왜 그러는 건데요?”
“솔직히 말해 보시죠? 몰래 뭔 사고 치신 거 있죠? 예?”
키득거리는 민식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유 이사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절하듯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갔었다. 당연히 꼼짝도 못 했었다. 하지만 몇 차례 마취제를 맞으면서 확실히 내성이 생기는 것 같았다.
뿌득- 유 이사가 이를 갈았다.
회색빛 눈보라는 순식간에 빛을 삼켜버렸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방이 깜깜해졌다. 어둠 속에서 중간 중간이 잘린 서치라이트의 빛이 사방을 헤집었다.
놈들은 추적을 포기할 기색이 전혀 없었다. 민식은 탄식처럼 숨을 내뱉었다.
“하필 엮여도 쌍으로 엮입니까.”
‘중국.’ 그리고 미합‘중국.’ 끔찍한 게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다. 다시 킥킥 웃음이 나오는 민식이었다.
“유 이사님 기억나십니까? 이라크에서 저 처음 봤을 때 존나게 싫어하셨잖아요.”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 남자가 머리를 왜 기르고 다니냐.”
“······.”
“공대생은 전부 나중에 노예로 살 테니. 지금부터 훈련 시켜주마.”
“아니.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요. 공대생이 뭘 어쨌다고 노옙니까?”
“······.”
주절주절 말을 줍던 민식이 툭 내뱉었다.
“상현이랑 병덕이 말입니다. 이혼하고 뻐꾸기 된 거. 상대가 한 사람입니다.”
“!?”
“그거 조 사장이에요. 조만덕 사장. 이사님이랑 저희 밖으로 계속 돌리고 남는 시간에 뭘 했겠습니까?”
“!!!”
“그 양반 이라크랑 아프간에서도 그랬잖아요. 그냥 유부녀만 보면 눈 돌아가는 거. 그러니 아프간 애들이 미쳐서 날뛰고 그거 보고 이사님이 피바다 만들고. 조 사장은 불놀이 즐기고”
“유 이사님이 결혼하셨으면 진짜 피곤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애들 전부 한 번에 몰아넣은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대충 상황 알고 보낸 거 아니겠습니까?”
사방을 휘젓던 서치라이트가 한쪽으로 방향을 잡더니, 점점 은신하고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걸렸나?’
하루는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낄낄. 좆됐네. 아까부터 그냥 웃음이 나왔다. 포기해서 그런가?
“그리고 뭐라고 했습니까? 거울 좀 보고 살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번에 왜 이렇게 예뻐졌냐고 회춘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가 대수 싸대기 맞는 거 보고 애들이 입 다물었잖아요.”
“그때 좀 신경 써서. 마스크라도 쓰고 다니시든지. 가면이라도 쓰든지. 화장이라도 떡칠을 하셨으면 이런 일 안 생겼을 거 아닙니까.”
유 이사의 얼굴이 뭔 개소리냐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유. 그냥 어려지시니까 찡그리는 표정도 깡패시네. 깡패셔.”
“왕 서방이고 엉클 샘이고 왜 저 지랄이겠습니까? 공돌이 출신인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유 이사님 얼굴이 문제더라고요. 거울 안 보고 사셨어요? 아니. 어려졌다고 말하면 그냥 줘 패니까 애들이 뭐라고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했잖아요. 큭큭. 아니 진짜 모르고 있었습니까?”
민식이 작은 거울을 유 이사의 앞에 들이밀었다.
‘무슨 개소리···.’
거울을 본 유 이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흐릿한 빛에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얼굴을 가로지른 흉터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
피 묻은 붕대 위에 폭탄과 사제 네이팜을 둘둘 말아 묶으며 민식이 낄낄거렸다.
“그러니까 신경 좀 쓰고 사시라니까.”
“······.”
“유 이사님. 아니, 누님. 조 사장 이야기고, 애들 이야기한 거. 누님 성격 아니까 한 겁니다. 여기서 조 사장에게 갔다가 통수 맞지 말라고 한 거고, 애들 이야기 미련 남기지 말고 추억으로 묻으시라고 한 겁니다.”
“······.”
“중국 애들이고 미국 애들이고 존나 지독한 새끼들인 거. 누님도 아시잖아요. 조 사장 씹새끼인 것도. 민 사장 개새끼인 것도 아시고요. 누님까지 복수한다고 설치다가 뒈지면 누가 애들 기억해 주겠습니까?”
“······.”
‘야-’
유 이사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왕에 회춘하셨는데, 병신 같은 아재들을 잊으시고 행복하게 사셔야죠. 애들도 그걸 원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병신 같은 새끼들이지만 목숨값은 다 치르고 갔잖습니까? 낄낄. 이젠 제 차례가 왔네요.’
민식이 유 이사가 걸치고 있는 겉옷을 벗긴 뒤, 자기가 입던 겉옷을 덮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한 자루는 또 어디에 흘리셨데?”
유 이사가 목숨처럼 들고 다니던 두 자루의 콜트 파이슨이 한 자루만 있었다. 허리춤에 대충 걸친 민식이 꽁지 머리를 풀고, 유 이사의 겉옷을 어깨에 걸쳤다.
“누님. 뒈지시면 지옥에서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사십쇼. 행복하게. 이제 손에 피 묻히지 마시고. 보통으로. 그거 누님 꿈이었잖아요.”
‘야- 이 좆같은 새끼가. 멈춰.’
‘멈추라고.’
‘거기서.’
은신 장비 밖으로 나서던 민식이 뒤를 돌아봤다. 길게 푼 머리가 회색빛 눈발을 맞으며 휘날렸다.
씨잌- 웃음을 끝으로
잠시 뒤.
커다란 섬광이 어두운 하늘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