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180
커다란 구덩이. 사방에 튄 폭발의 흔적은 참담했다.
“여기서 자폭했다고? 유 이사가?”
“예. 유 이사를 확보하기 위해 접근했던 병사들 전부 폭발에 휘말렸습니다.”
“우리 쪽만?”
“아닙니다. 저쪽도 상당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유 이사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적과 마주치고 말았다. 양측에서 서로 유 이사를 확보하겠다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에게 넘겨주기보다는 사살하려 했고, 시체에서 팔다리 한쪽이라도 챙겨 보겠다고 교전이 격화됐다.
기갑병 3기가 소형 대전차미사일을 두들겨 맞고 박살 났고, 저쪽은 은신 장비로 무장한 특수부대가 소대 단위로 갈려버렸다.
급기야 양측 사상자가 세 자리 숫자가 넘어갈 상황까지 갔는데, 거대한 폭발로 마무리된 것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승리한 쪽은 미군이었다. 기갑병이라는 다목적 전천후 장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20mm 발칸포, 화염방사기, 미사일로 무장한 병기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써먹기 좋았다.
“자폭한 사람이 유 이사라는 증거는?”
“여기 있습니다.”
불에 타다 만 홀스터. 건 슬링어가 차고 다니는 홀스터였다.
‘고작 이거 하나?’ 라는 표정에 병사가 수건으로 감싼 총을 한 자루 내밀었다. 여기저기 폭발의 흔적에도 고유한 색상을 잃지 않고 있는 리볼버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코발트 색에 상아로 된 손잡이. 금과 티타늄으로 장식된 45구경 리볼버. 38구경은 그나마 조금이라도 돌아다녔지만, 45구경은 정말 돌아다니는 물건을 찾기 힘들었다.
“하아- 그렇게 갔나.”
유 이사도 그 부하들도 예술적으로 미친 새끼들이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자폭 공격으로 동료를 잃었다고 하더니, 자기들도 꼭 그렇게 가네. 빌어먹을. 존 스미스는 콜트 파이슨 45구경을 다시 수건 위에 올려놨다.
“다른 건 없고?”
“겉옷은 중국 측에서 회수해 갔습니다.”
“쯧- 옷이라면 혈흔이나 머리카락이라도 있었을 텐데.”
“어차피 화염에 노출됐기 때문에 의미 없지 싶습니다.”
“하긴. 옷에 묻은 핏방울로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는 아니니까 말이지.”
전투병력, 비전투 병력을 합해 4천이 넘게 죽은 상황. 작전이 극비로 진행됐지만, 비공개 방식으로 군부와 의회, 행정부 고위층에는 정보가 넘어갔다.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인지라 딜레이가 좀 있었어도 연락에 문제는 없었다.
유 이사의 회춘 정보에는 모두가 열광했고, 일본 열도 동부 지역 그러니까 관동지역에서 발생하는 변이 사태에 대해서는 반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미국이 관동지방을 장악하고 다른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쪽의 의견은 이랬다.
짐승들의 변이 메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큰 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더 큰 돼지나 닭은? 식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세상이 변한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도 잘 연구하면 좋지 않을까?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특수한 성분을 자체적으로 증식시켰다는 건 놀라운 성과 아닌가? 그걸 아깝게 그냥 버리나? 그러지 말고 어차피 망한 일본 관동지역을 실험실 삼아 계속 연구하자.
무엇보다 돌연변이가 발생했고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생겼다면, 미국이 앞장서서 해당 지역을 보존하고 장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초인들은 미국으로 다 싣고 와라. 일단 실물 보고 이야기하자. 특히 유 이사는 꼭 데려와라.
중성자 탄과 네이팜으로 모조리 쓸어 버리고 태워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저번에 따개비 사건 잊었냐? 그게 급속도로 생장하는 약점 아닌 약점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급속 성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 스스로 가라앉지 않고 미국 서부 해안을 휩쓸었다면?
따개비 하나만 봤을 때도 살 떨리는데, 일본에 있는 미친 바퀴벌레가 본토로 넘어와서 퍼지면 그건 누가 책임지냐? 바퀴도 그런데 쥐나 고양이 같은 게 퍼져서 사람들 잡아먹고 다니면?
동물이나 곤충은 그렇다 치고, 이상하게 변이된 바이러스가 퍼지면 그건 누가 감당하고? 당장 보고서 보면 사람들이 분노 조절 못 하고 나중에는 치매 된다는 데, 그게 퍼지면 감당은 되고?
초인이고 나발이고 일단 감염 위험 있을지 모르니까 일본에 둬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한국에 박아 놓고 관리를 하더라도 본국에는 안전성 검증되기 전에 들여올 수 없다. 유 이사면 모를까. 그러니까 유 이사는 잘 포장해서 데려와라.
둘 다 유 이사는 데려오라고 했었는데. 자폭 엔딩이 떠버렸다.
“난리 났군.”
시체라도 건질 수 있었으면 모를까, 시체는커녕 피 한 방울도 제대로 건지지 못한 상황.
“죽음으로 엿 먹인다는 게 이런 건가?”
이왕에 갈 거면 좋게좋게 가지 사람 참 피곤하게. 그냥 깔끔하게 권총으로 끝을 내면 안 됐나? 그렇게 폭탄이 좋으면 편하게 수류탄으로 하든지.
무슨 자폭 못 해서 한이 맺힌 것처럼 C4에 사제 네이팜까지 둘둘 말아 터뜨릴 건 뭐란 말인가?
골치 아프게 됐지만, 여기까지 왔으면 확률의 문제였다.
뽑기를 계속 뽑다 보면, 언젠가는 유 이사처럼 젊어지는 사람이 1명쯤은 나오겠지.
“일단 도난 병원에서 탈출한 민간인들 전부 검사하도록 하죠. 신체능력이 향상된 사람들과 뭔가 특이한 능력이 생긴 사람들은 따로 격리해 놓도록 합시다.”
“네.”
존 스미스가 마스크를 고쳐 썼다. 화산재가 눈처럼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만나는 생존자들은 무조건 격리하도록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일반인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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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스턴 소위의 유 이사 포획 임무는 적들을 수색 타격하는 임무로 변했다.
“젠장. 자폭이라고?”
“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카아악- 퉤-
폐에 끓는 가래를 모아 뱉은 소위가 벽을 때렸다. 콱-소리와 함께 패널로 조립한 벽에 주먹 자국이 났다.
“씨발. 좀 더 일찍 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그 아줌마. 씨발. 회춘은 왜 해서.’ 로이 스턴 소위는 입맛이 썼다. 화산재가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다.
크아아악- 퉤-
“소위님이 가셨어도 어떻게 할 기회는 없었을 겁니다. 중국 애들도 작정하고 달려든 상황이었거든요. 기갑병도 3기나 터졌고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월드 PMC 용병한테도 빚이 있었는데, 거기에 더해 아프간에서 유 이사에게 진 빚도 갚지 못하다니.
“진짜 쪽팔리게.”
배신자 새끼들 때려잡으면서 스트레스나 해소해야겠다. 소위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됐다. 그래서 룽년은?”
“도난 병원과 그 인근에서 출몰한다고 합니다.”
도난 병원은 변종들이랑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됐다. 그 인근에서 알짱댄다는 것은 기갑병 운용을 제한하겠다는 소리였다.
병원 근처에서 기갑병이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는가? 괴물들은 유인 작전에도 속지 않을 정도니 기갑병을 공격하지 않고, 기갑병을 보호하는 보병만 노릴 게 분명했다.
보병은 기갑병이 움직이는 동선에서 적의 대전차미사일 같은 소형 미사일류를 미리 발견하고 제거 보고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들이 괴물에게 당한다면?
은신 장비를 갖춘 적들이 홀로 남은 기갑병을 대전차미사일로 사냥하겠지.
“여우 같은 년이네.”
“이쪽 사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로이 스턴 소위님 기체 수리 완료됐습니다.]
[로이 스턴 소위님 기체 수리 완료됐습니다.]
방송을 들은 소위가 고개를 들었다.
필터로 공기를 정화하고 있음에도 미세먼지가 가득한 느낌. 이 답답함을 없애려면, 배신자들을 조져야 할 것 같았다.
“그년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발견되면 바로 알려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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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
감탄에 감탄을 더한 김 양이 앞에 놓인 콜트 파이슨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진짜임? 이거 나 주는 것임?”
“그래. 너 해라.”
흐흐흐-
마루가 툭 던진 말에 감탄사가 기괴한 웃음으로 변했고 반짝임이 흐릿한 뭔가로 치환됐다. 변태가 여고생을 노리는 눈빛이라고 할까?
손가락 끝으로 슬슬 총신을 쓰다듬는 김 양. 히죽히죽 웃는 모습에 마루는 고개를 돌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지경.
한참 쓰다듬고 볼에 비비더니 갑자기 분해하고 조립하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던 김 양이 갸웃했다.
“근데 이거 어떻게 구했음?”
“오다가다 주웠다고 했잖아.”
“농담 아니었음?”
“진짜라니까.”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니까 유 이사를 슥-해버리고 가져와 놓고 주웠다고 한 줄 알았는데? 그런 눈빛이었다.
“그 사람 자폭했다고 하더라. 소문 쫙 돌았는데 못 들었냐?”
“유 이사가··· 자폭?”
그럴 사람이 전혀 아닌데? 게릴라들을 게릴라로 말려 죽이는 여자인데? 자폭하는 애들은 자폭시켜 버리고.
“정확하게 어디서 주웠음?”
“길에서 주웠다니까 몇 번을 말해.”
어? 왜? 길바닥에서 이걸 왜? 김 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이거 미끼? 함정?
금총 때문에 지랄 났던 거 생각해서, 모조리 분해해서 꼼꼼하게 확인했는데 발신기 같은 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손잡이 부분도 싹 분해해서 확인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그 여자가 이걸 버려? 흘려??
뭐지???
갑자기 솜털이 쭈뼛 일어서면서 ‘WARRRRRRRRRRY’하는 기분이 든 김 양이 들고 있던 콜트 파이선을 휙 치웠다.
“왜?”
좋다고 물고 빨더니? 갑자기 귀신 보듯 왜 그러는데?
“아님.”
으으으- 김 양이 힐끗힐끗 저주받은 아이템을 보는 것처럼 콜트 파이선을 곁눈질했다.
“아- 다들 여기 계셨군요.”
국토안보국 요원이 밝은 얼굴로 마루와 김 양에게 인사했다.
“그 총은? 그거 설마 요즘 소문이 자자한 그 총입니까?”
마루가 어깨를 으쓱하자 요원이 하하 웃었다.
“엑소슈트에 저장된 영상과 군에서 촬영한 영상을 분석했습니다. 정말 다양한 실전 데이터를 만들어주셨더군요. 제조업체에서도 매우 감사드린다고 따로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크흠- 김 양이 슬쩍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다.
“후기에 말씀하신 부분도 개선한다고 합니다. 가동시간과 방어력, 기동력을 올린 신제품을 보낸다고 하니,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큼. 큼. 김 양의 헛기침에 요원이 말을 덧붙였다.
“7.62mm보다 화력이 좋은 12.7mm 쪽으로 교체한다고 했으니 받아보시면 만족할 겁니다.”
괴물 딱지들에게 7.62mm는 약한 감이 있었다. 사람이 대상이라면 7.62mm도 충분했지만, 장갑차량이라든지, 신형 방탄복이라든지, 괴물들 대상으로 7.62mm는 약했다.
협찬··· 성공적.
신규 협찬. 응.
김 양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신상품도 낱낱이 해부해서 다시 최신상으로 업그레이드하리라.
“아. 그리고 영상에 나온 적들의 은신 장비 말입니다. 그걸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전리품은 전부 우리 소유로 하기로 계약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냥 양도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구매하겠다는 겁니다.”
간 본 건가? 마루가 피식 웃었다. 하긴 성과급 걸려있으면 못 참지.
마루가 획득한 주요 전리품은 비교적 온전한 은신 장비 2개, 약간 파손된 것 1개. 반파된 것 2개 합해서 5개.
ASh 12.7mm 불펍식 돌격소총 4자루, 같은 탄을 사용하는 RSh-12.7mm 리볼버 2자루 그리고 전술정보전송장치 2개 등이 있었다.
“우선 연구자료부터 정산하고 이야기하죠.”
마루의 대답에 요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어딜 한 번에 몰아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나씩 따로따로 계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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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소리와 함께 발이 쑥 미끄러지는 사람.
그렇지 않아도 미끄러운 화산재가 눈 위에 쌓이다 보니, 설피를 신었음에도 걷기가 쉽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세엑- 예- 세엑.”
피난민들과 들것에 실린 부상병들이 길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었다.
[너무 느림.]
“어쩌겠냐. 부상병들까지 같이 움직이는걸.”
마루와 김 양은 돗토리 현에 위치한 기지까지 이들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
[갔을 때 떴어야 했음.]
“그래. 브라운 중령 갈 때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때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중령 탈출시키고 이래저래 바빴으니까, 누가 알았겠는가? 중령을 태우고 간 헬기를 끝으로 헬기 운송이 멈출 줄.
“북쪽으로 가면 화산 피해가 그나마 적다고 하니까. 그쪽으로 가야지.”
보급품이 제법 쌓인 전진기지라고 할지라도 어느새 500명이 넘어버린 피난민들을 계속 먹이기엔 부담스러워졌다.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피난민들 전부 캠프로 보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래서 나온 방안. 북쪽에 있는 항구까지 도보로 이동, 수송선을 타고 돗토리 현에 있는 캠프로 이동하는 작전이었다.
괴수도 위험했지만, 더 위험한 것은 적군이었다. 피난민들 가운데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 사람이 생겼다는 정보는 저쪽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진기지에 콕 박혀있던 먹잇감들이 줄줄이 밖으로 나왔는데 그냥 두겠는가?
[작전 병신 같음.]
“그러게 말이다.]
미세한 화산재와 먼지 덕에 기갑병 가동시간이 극히 짧아졌다. 중간마다 유지 보수 시간이 길어진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이송 작전에 기갑병을 쓸 수 없다는 이야기로 귀결됐다.
결국, 작전에서 제일 큰 전력은 마루와 김 양의 엑소슈트였다.
삑-삑-삑-
[3시 방향. 속도 빠름]
스르륵- 마루가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화산재가 풀풀 날리는 눈밭을 거대한 고양이가 내달리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행렬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괴수가 앞다리로 허공을 내리쳤다. 일렁이는 공간이 앞다리를 피해 옆으로 뭉개지며 움직였다.
캬아아아아아!!!
하악질이 뒤섞인 소리에 바닥에 가라앉았던 고운 화산재가 둥실 떠올랐다. 투명한 공간에 미세한 화산재가 달라붙어 윤곽을 만들었다.
“와. 설마 이걸 노린 거냐?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마루가 은신을 해제하곤 겉에 묻은 고운 화산재를 툭툭 털었다. 괴물 고양이는 함부로 덤비지 않고 마루를 조심스럽게 탐색했다.
두두두두두둑-
행렬이 있는 곳에서 체인건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하악질하는 괴수.
캬아아아아아!!!
“하? 뭐냐 이거. 날 이쪽으로 유인한 거냐?”
마루가 씩 웃었다.
스르르릉-
자신감 좋네.
유인? 날?
캬아아아앙! 후다다닥!
어?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