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84화 (184/280)

러스트 [RUST]-184

뜬금없이 습격? 누가?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중국군이 온다.”

[여길? 지금?]

“이 도시가 거점일지 몰라.”

[?!]

아니라고 하더라도 해병대 데리고 도시에서 벗어나야 했다.

시가전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총질하다가 민간인들 사상자라도 발생한다면?

놈들이 얼씨구나 하겠지.

‘미군 민간인을 학살하다.’

‘무엇을 찾기 위해 미 해병대가 투입됐는가?’

‘미군이 숨기는 진실.’

이딴 내용으로 사방팔방 지랄할 게 분명했다.

일본인들도 있으니 그들을 증인으로 내세우겠지.

걸려도 더럽게 걸렸다.

“탈출로 확보해둬.”

[어느 방향?]

위쪽 항구 아니면 왼쪽 산?

“항구.”

[알겠음.]

“액션 카메라는 항상 작동하고 있었지?”

[항상 킴.]

“좋아. 은신한 놈들 들어가는 것도 있고?”

김 양이 헬멧을 톡톡 두들겼다. 당연히 녹화되고 있다는 말.

“잘했어. 그럼 먼저 가. 난 지휘관 보고 갈 테니까.”

장비를 챙긴 뒤, 마루는 액션 카메라부터 켰다. 지휘관이 아까처럼 엉뚱한 소리를 할지 모르니, 증거를 남겨두는 게 좋았다.

지휘관이 있는 곳은 뭔가 어수선했다.

아니, 어수선하다기보다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해야 할까?

“긴급 상황입니다. 지휘관님은 어디 계십니까?”

마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권총을 꺼내 드는 부관.

“꼼짝 마라! 놈을 체포해!”

뭐?

마루는 반사적으로 은신 장비를 작동한 뒤, 옆으로 빠졌다.

“놈이 왔다. 은신 장비다!”

부관의 말을 받듯 한 놈이 목소리를 높였다.

“용병이 배신했다! 암살자다!”

다시 복도 저쪽 끝에서 호응하는 소리.

“용병이 배신했다! 놈이 소령님을 암살했다!”

“이상하면 무조건 쏴!”

아니, 이 미친 새끼들이?

다행히 액션 카메라를 켜고 움직이고 있었다. 김 양의 엑소슈트에도 영상이 저장되고 있었을 테니까, 최악의 상황이 된다고 해도 지랄 당할 일은 없었다.

‘해병대 애들 살리기는 글렀는데?’

은신 장비를 쓴 놈이 침입해 소령을 암살한 것 같았다. 그럼 적이 침입했다고 생각해야지 왜 멀쩡한 사람부터 의심하나? 미리 작업해두지 않는 이상···. 아니, 이렇게 나온다는 건.

‘놈들이 날 노리고 있다?’

정보가 샜다. 은신 장비를 쓰는 용병이 있다는 걸, 놈들이 알고 함정을 팠다. 잠들어있었다면 영문도 모른 채 학살극을 벌일 뻔했다.

“찾아!”

“엑소슈트는 어떻게 합니까?”

“한패다. 무장 해제시켜. 반항하면 사살한다.”

“옛.”

다다닥- 복도 끝에 있는 창문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

“놈이 아직 여기 있다.”

“그냥 쏴!”

타타타타탕-

쨍그랑---

단 두 걸음에 15m를 달려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7층 높이였지만 2층 절반까지 쌓인 눈이 충격을 흡수해줬다. 마루는 눈 속에서 재빨리 각도를 좁혔다.

멀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물 쪽으로 파고드는 선택. 건물 쪽으로 몸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뛰어내린 흔적 근처로 빗발치듯 내리꽂히는 총알들.

해병대원들이 창밖으로 총구를 내밀고 지향사격을 때려 박았다. 쏟아지는 불꽃이 사방을 헤집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마루는 건물 외벽을 따라 옆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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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들리는 총소리에 김 양은 미간을 찌푸렸다.

‘습격?’, ‘방향은 호텔?’

해병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들리는 총성이었다. 백정이 습격이 있을 거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어떻게?’

애들이 불침번 서고, 사주 경계하는 걸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근데 바로 공격받았다고?

김 양은 퇴각로 확보를 위해 외곽 쪽으로 이동했다. 외곽을 경계하고 있는 분대는 공격받은 흔적 없이 멀쩡하게 있었다.

‘정말 여기가 적들의 거점이었단 말이야?’

“정지! 무슨 일입니까?”

분대장인 하사가 엑소슈트를 보자마자 상황을 물었다.

“지금 공격받고 있는 겁니까?”

[퇴각로를 확보하러 가는 중. 협력 바람.]

김 양은 대답 대신 협력을 요구하자, 선임관은 고민에 빠졌다.

“제가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화기 분대에 소대장님이 계시니 그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화기 분대에 있는 소위는 김 양의 협력요청을 거부했다.

퇴각로 확보하라는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 임무를 계속해야 하며, 본진을 구조하기 위해 지원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용병의 협력요청 따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수고]

“······.”

김 양의 빠른 손절에 소위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뭔가 구구절절 설득하고 설명할 줄 알았나?’

그런 거 없음. 바빠 죽겠는데. 뭔 이유. 못 알아먹으면 뒈져야지. 김 양의 경험상 일이 꼬이면 딱 2부류로 나뉘었다.

살 놈과 뒈질 놈.

살 놈은 알아서 살고, 뒈질 놈은 몰라서 뒈졌다. 굳이 뒈지겠다는 걸 살려봐야 어차피 발목이나 잡다가 여럿 피곤하게 만들고 죽었다.

‘제정신이면 뒤치긴 알아서 대비하겠지.’

퇴각로 확보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도 뒤통수 조심하지 않는 놈이면 거기까지인 거고. 김 양은 마루가 넘겨준 은신 장비를 엑소슈트에 걸쳤다.

기이이잉- 에이이잉-

일렁이는 그림자가 밤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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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가다마 케이치 참의원의 동생. 현재 가다마 가문의 수장이자 광인. 로제 룽은 번들거리는 노인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로제 룽 중위입니다.”

“흠- 필두(筆頭) 가다마 신타.”

자기소개에 대놓고 우두머리라니, 확실히 정보대로였다. 차남이자 가문의 그림자로 살아온 시절에 대한 강한 보상심리가 있다는 내용. 그녀의 생각을 끊듯, 노인의 긁는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룽 첸 소교가 직접 온다고 들었는데?”

“오라버니께서는 현재 도쿄 전역(戰域)에서 귀축미제와 교전 중이십니다.”

로제 룽의 답변에 노인의 입매를 비틀었다.

“일도 그렇지만 겸사겸사 약혼녀 얼굴을 보러 올 짬은 있지 않았겠나? 지휘할 다른 장교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만큼 능력이 좋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갈(喝)! 갑작스러운 호통과 광기에도 로제 룽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일본이 우습나? 가다마 가문이 그렇게 만만했나?”

대재앙으로 박살이 난 일본에 가다마 가문의 근거지인 도쿄 남부지역이 초토화됐으면서 소리치기는. 로제 룽은 담담한 얼굴로 미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인동맹 따위는 아쉽지 않게 됐다는 거군. 그럼 파혼을 하면 될 텐데, 그러기에는 이쪽이 쥐고 있는 카드가 먹음직스럽고, 어떻게 알맹이만 쏙 빼먹고 싶다는 건가?”

“······.”

노인은 이런 것들과 혼인동맹을 맺은 가문이 우스웠다. 복수를 위해서 뭐든 한다지만, 애초에 룽 가문과 엮이는 건 좋지 않았다. 군부와 엮이려면 북방을 담당하고 있는 북부 전구와 엮이는 게 나았다. 최소한 동부 전구든지.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더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피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약혼은 파기다. 다만 일시적인 협력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지.”

“이쪽에서 고마워해야겠군요.”

룽 가문에서 먼저 파혼을 요구했다면, 좋지 못한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떨어져 나가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이었다.

“물론. 대신 비축하고 있는 물자, 절반을 넘기도록.”

“하? 아니- 지금 뭐라고 하신 겁니까?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보급 물자 절반을 달라고 하신 겁니까?”

위자료로 보급 물자를 달라는 건가? 미쳤나? 보급품 절반을 주느니, 가다마 가문이고 뭐고 싹 털어버리는 게 나았다. 그쪽으로는 생각을 못 하나? 수틀리면 전부 묻어 버릴 수 있다는 거.

“들은 대로. 물자의 절반을 요구하네.”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하는 말입니까?”

10만을 넘게 보급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총화기를 비롯한 소모품만 해서 그랬다. 거기에 신무기를 포함하면 작은 나라를 점령해도 될 법한 보급이었다. 그것의 절반이라니. 미쳤나? 나라라도 세울 생각인가?

로제 룽은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 맞느냐는 표정으로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의 눈. 광기가 언뜻언뜻 비치는 눈에는 타협이 없었다. 로제 룽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올 때까지 물자는 이쪽에서 관리하도록 하지.”

“미쳤군요. 정말. 지금 남부군의 보급품에 손을 대겠다는 겁니까? 상호협력이 아니라 전쟁을 하고 싶은 건가요?”

“상호협력하고 싶다는 작자들이 몰래 들어와 있나? 키리코.”

손녀를 부르는 노인의 담담한 목소리에 여닫이문이 열렸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키리코가 로제 룽의 앞에 잘린 머리통 셋이 놓인 소반을 든 내려놨다. 함께 온 호위들이었다.

“은신 장비라. 양산에 성공했나? 하지만 날 노리기엔 어설퍼.”

“당신을 누가 노립니까? 이 사람들은 제 호위였습니다!”

“그걸 믿으라고? 호위면 완전무장하고 은신까지 써서 감시하나? 상대방에게 호위가 있다는 것도 숨기나? 심지어 파혼하기 전까지 결혼동맹이었던 상대와 만나는데? 솔직하게 말 해보게 수틀리면 이곳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당신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중요한 건 사실이네. 믿음이 아니라. 사실.”

가다마 가문이 룽 가문을 믿고 믿지 않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네. 그러니까 사실만 따져 보세.

힘을 합쳐 귀축미제를 동아시아에서 몰아내자고 했다가, 대재난으로 일본이 힘을 잃자, 아무런 사전 상의 없이, 대규모 병력을 보급할 수 있는 보급창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 보급창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

미제를 견제한다면서 일본이 그간 피땀 흘려 연구한 결실만 빼먹고 있다는 사실. 대재난으로 가다가 가문이 근거지를 잃자, 혼인동맹을 맺기로 한 가다마 가문을 무시한 사실.

힘이 빠진 가다마 가문에서 수틀리게 하면 조용히 처리할 목적으로 은신 암살자를 호위랍시고 3명이나 보냈다는 사실.

“그러니까 말일세. 사실이 그런데 억울할 게 있나?”

미국을 몰아낼 수 없다면, 오히려 더욱 깊이 끌어들인다. 균형이 무너진 중국과의 협력에 목을 매지 않고 미국과 중국이 끝없이 피 흘리도록 부추긴다. 거대한 두 나라가 흘린 피가 일본을 재건하는 밑거름이 되리라.

타다다다당!

창문 밖에서 들리는 총소리.

“시작됐군.”

그래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끝없이.

창문에 비치는 노인의 얼굴. 틀어진 미소가 캄캄한 밤 저편으로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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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파팍!

철근콘크리트가 팍팍 파이고, 굵직한 나무 기둥이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갔다.

“계속 쏴!”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쏴! 정면을 쏘라고!”

“안 보여도 쏴! 은신이다!”

12.7mm 탄은 확실히 위력적이었다. 방탄복으로 총알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충격량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방이 맞았을 때 이야기.

공중으로 뛰어오른 마루가 유성처럼 떨어졌다.

콰직- 수직으로 한 사람이 분리된 것과 동시에

부욱- 수평으로 휘둘러진 칼질에 동그란 피바다가 만들어졌다.

다시 점프해 허공으로 뛰어오른 마루.

으아아아아아!

죽어!!!

앞이고 옆이고 뭐가 뭔지도 모를 찰나에 썰려 나가자, 패닉에 빠진 병사들이 방아쇠를 끝까지 당겨댔다.

철컥!

틱!

덜덜 떨리는 손으로 탄창을 갈려는 병사들 위로 죽음이 내려앉았다.

바닥에 흩어지는 사지.

부유하는 머리통.

쏟아지는 피.

마지막 탄식.

스치듯 지나가는 검은 실선은 닿는 모든 것을 잘라버렸다.

흐아아아악!

“수류탄 던져!”

“미사일! 미사일을 쏘라고!”

“그냥 날려버려. 근처를 날려버리라고!”

정신이 나가버린 적들을 뒤로, 현장을 이탈하는 마루였다.

‘빌어먹을 징그럽게 많네.’

은신 장비가 없었다면, 인해전술에 말라버렸을 거다.

‘쯧-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네.’

이제 치고 빠지기도 여기까지. 할 만큼 했다. 탈출할 생각이 있었으면 진작 탈출했겠지. 김 양이 확보한 탈출로로 갔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꽤 많이 살았을 거다.

마루는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북쪽 항구 방향으로 이동했다. 뒤따라 가면서 추격해오는 적들을 중간에서 잘라먹을 생각이었다.

‘이건···.’

그런 마루의 앞에 미 해병대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총이나 폭탄의 흔적이 없는 시신들. 방탄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급소에 깊게 파인 상흔이 선명했다.

‘칼?’

날붙이의 흔적을 따라 흘러내린 피가 하얀 눈밭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래서 애들 눈이 돌아갔었던 거냐?”

이렇게 칼질로 장난을 쳤으니 오해할 만하지.

마루가 뾰족한 살기가 풍기는 방향을 향해 말했다.

“야. 거기. 나와.”

킥. 걸렸네.

그림자가 살짝 일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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