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190화 (190/280)

러스트 [RUST]-190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시각 오후 8:32분···]

[19시 15분에 출발한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에 사고가 발생하여··· 서행으로 운행하게 되었습니다.]

마루는 목을 좌우로 스트레칭하며 김 양에게 물었다.

“뉴스나 그런 건 없었고?”

“그냥 화면 하단에 기사 한 줄?”

“어떤 사고가 났는지 자세히 나온 기사도 없었어?”

“없었음.”

탈선인지, 충돌?추돌인지, 화재나 폭발인지, 사고 종류도 밝히지 않고 열차 사고로 뭉뚱그렸다는 이야기. 확실히 이상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 김 양과 서울에서 탈출했을 때, 가스폭발 사고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오해로 덮었던 일이 생각났다. 지금 열차 사고도 그런 식일 수 있었다.

“심은영 회장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

김 양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회장인데 공격을?’ 하는 표정.

일본에서야 증인만 없으면 된다 싶었을 테니 치고받고 했겠지만, 한국에서 대놓고 샬롯 회장을 공격한다?

미쳤나?

심은영이 부산 지역에서 오순도순하고 있을 때면 모를까, 샬롯 그룹 전체를 장악한 회장이 됐는데 대놓고 공격은 위험했다.

한국 세력이라면 정치적 배제를 우선하지, 다짜고짜 암살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KTX와 같은 걸 타고 가는 도중이라면 더욱.

‘그래서 헬기나, 차량으로 이동하지 않은 건가?’

헬기추락사고나 단순 자동차사고를 피하려고?

‘회장이 되고 나서도 조심했다는 건데.’

그런 심은영을 공격? 납치? 뭐가 됐든 대놓고 노렸다는 소리였다.

누가? 무엇 때문에?

‘연구자료 때문이겠지.’

일본에서 헤어진 경호원. 그녀가 가지고 간 연구자료가 목적일 것이다. 처음엔 협상하려고 했을 테고 심 회장이 거절했더니 공격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거기에 딱 맞는 영상을 봤다.

샬롯 CCTV 영상에 나온 놈.

일본이 망했으니,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지. 놈이 분명했다.

“가지가지 하네.”

“?”

열차는 아주 느리게 서행하고 있었다.

사건이 진행 중인지, 이미 끝나고 뒤처리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느리게 간다면 5~6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중간에 환승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제쳐놓고 솔직히 마냥 기다리기는 좀이 쑤셨다.

“어쩔래?”

‘가볼까?’ 마루의 눈빛에 김 양이 금빛으로 화답했다.

‘심은영 회장=금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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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통제 중이라서 이 앞으로는 가지 못합니다.”

“저기에서 세워주세요.”

마루와 김 양이 택시에서 내리자,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쿡쿡- 김 양이 마루의 옆구리를 찔렀다.

‘왜?’

‘저기 보셈.’

경찰 특공대 차량이 통제구역으로 안쪽으로 진입하는 모습. 도로를 통제하는 경찰들이 실탄을 확인하고 있었다. 공포탄을 빼고 실탄으로 교체하는 것도 모자라 추가로 실탄을 배분하는 걸 보니,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어지간한 사건이면 월드 PMC를 통해 암중에서 처리했을 텐데, 월드 쪽도 문제가 생겼나? 최 전무와 유 이사가 일본으로 애들 데려가서 그랬을까?

쿡-

‘골목. 안쪽으로 이어졌음.’

김 양이 귀신같이 경찰이 없는 골목길을 찾았다.

‘잘했어.’

‘후웃-’

눈빛을 교환한 둘이 골목길로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요리조리 돌파하는 김 양이 손으로 5층 건물을 가리켰다. 주변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3층 이하.

‘저기서 저격?’

‘응.’

‘좋아. 올라가서 방향 잡아줘.’

‘OK.’

도도도독- 첼로 케이스를 들고 뛰어 올라가는 김 양.

잠시 뒤, 퍽- 퍽- 건물 옥상에서 뭔가 두들겨 패는 소리가 났다.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신호를 보내는 김 양. 마루는 바로 통신기를 켰다.

[무슨 일 있어?]

[여기 경찰 특공대 저격수 있었음. 오래 못 있음.]

[알았어. 빨리 처리하고 튀자. 어느 쪽이야?]

[9시 방향. 경찰 현장에 진입한 뒤, 연락 두절. 군대 출동함. 30분]

군대까지? 일이 심각한가 본데.

휴대폰으로 뉴스를 살펴봤지만, 긴급속보라든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들어가고 5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먼저 돌아가.]

[알겠음.]

마루의 몸이 스르륵 사라졌다.

사고는 작은 마을을 지나는 곳에서 발생했다. 주변 인근에 높은 건물이라고는 5층 건물 정도. 대부분 2~3층짜리 건물들이 있는 마을에 살짝 걸친 곳이었다.

정지한 열차 바깥으로 튄 유리 조각들. 창문 유리가 밖으로 터졌다는 건 안에서 지랄 났다는 소리였다. 은신한 채 열차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루.

자그작-

?

한 걸음 내딛자, 유리 밟는 소리가 났다.

‘단순히 유리가 터진 게 아니면, 노린 건가?’

그럴지도.

마루는 발걸음을 뒤로 조심스럽게 물린 뒤, 바닥에 유리가 깔리지 않은 곳을 찾았다. 창문이 멀쩡한 곳은 앞쪽 객차였다.

전부 유리창이 터졌는데 딱 하나만 멀쩡하다?

이것 보소? 이건 또 이것대로 말이지.

마루는 피식 웃고 두 다리에 힘을 줬다. 팍-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마루가 열차 지붕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날카로운 감각이 아래를 훑었다. 채 가시지 않은 살기가 짙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살기를 느끼며 마루가 칼을 뽑아들었다.

스르르르릉-

그러니까 이쯤?

푸욱-

검은색 칼날이 열차 지붕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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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객실.

한 남자가 인상을 쓰며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발로 밀어냈다.

“에이- 왜 길목을 막고 지랄이야.”

그가 움직일 때마다 구겨진 총탄들이 바닥으로 하나둘씩 떨어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단검을 엉덩이에 슥슥 문질러 닦은 사내가 코웃음 쳤다.

흥-

[치익- 그쪽은 어때?]

“여긴 진작 끝났지.”

특공대? 별거 아니잖아?

[밖에 유리 밟는 소리 나다 끊겼다. 눈치 빠른 놈이라면 그쪽으로 갈지 몰라.]

“오면 좋지.”

그렇지 않아도 손맛을 보다만 것 같았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그냥 버러지나 다름없었다.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찍-하고 터지는 벌레. 괴물들의 먹잇감일 뿐인 가축들이 평화롭게 노닥이는 모습.

대재난이 터진 일본에 있었다면 다들 뒈졌을 것들이 즐겁게 하하하는 모습에 살짝 흥분했더니, 좀 지저분하게 처리하고 말았다.

“아오- 더럽게. 이 새낀 또 뭐야? 뒈지면서 똥을 쌌네. 똥을 쌌어.”

마음껏 활개를 쳐도 괜찮은 나라가 필요했다. 대일본이든 신일본이든 그에게는 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이 힘을 마음껏 누리를 수 있는지, 그것이었다.

“대의명분 따윈 개나 주라고 해.”

[···말 가려서 해, 나야 상관없지만, 나카소네나 가다마 애들이 들으면 찍힌다.]

대재난 이후 어떤 대의가 있었고 뭔 명분이 있었는가? 망하면 망할 뿐이었고, 뒈지면 그뿐이었다.

“찍으라지. 내가 아쉽나? 그쪽이 아쉽지.”

[하아- 알아서 해라. 사로잡아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

샬롯 회장이라고 했던가? 나이도 어린 년이 벌써 회장이라니. 세상이 썩었으니 이 모양이지. 사내는 다시 한 번 코웃음 쳤다.

“아직도 못 잡고 뭘 해? 내가 갈까?”

[아니, 너는 거기나 막아줘. 이쪽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래? 그럼 빨리 처리하라고 여긴 심심해서 죽겠어.”

순간 열차 지붕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팍-

뭔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

“잠깐. 여기 위에···.”

이리저리 걷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는 순간, 칼날이 뚫고 들어왔다.

꾸직-

남자의 두개골에 틀어박힌 검은색 칼날이 좌우로 이리저리 비집더니 이어서 열차 천장에 동그란 구멍을 만들었다. 그 동그란 틈으로 일렁이는 무언가가 쑥 내려왔다.

[위? 위에 뭔데?]

[야- 대답해. 위에 뭐가 있는데?]

무전기에서 다급하게 들리는 소리. 일본어.

[···덫에 침입자 발생. 기노시타가 당했다.]

이것들 보게, 하나 잡혔다는 걸 알면서 주파수를 바꾸지 않아? 병신인가? 군대만 갔다 왔어도 통신 보안은 알 텐데. 어쩌면 이걸 이용해서 함정을 팔까?

덫이라.

주변에는 경찰 특공대 복장을 한 시체가 몇 구 있었다. 방탄복이 가려주지 못한 부분, 목덜미와 허벅지 쪽에 칼자국이 선명했다.

한 번에 깨끗하게 찌른 것도 아니고 대충 막 쑤신 상흔을 보면 여러모로 덫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놈인 것 같은데.

마루는 머리통에 구멍을 낸 놈을 살폈다. 머리뼈 반절 정도가 뚫리고, 잘렸는데도 눈꺼풀이 움찔거리고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이거 아직 살아있어?

‘어라?’

뚫리고 쪼개진 부분이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마루가 칼을 치켜들자, 움찔거리던 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안 돼.’ ‘멈춰.’ 뻐금거리는 입술을 무시한 검은색 실선이 놈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컥-

툭- 데구르르

목이 잘렸는데도 바로 죽지 않고 잘린 단면이 꾸물거렸다. 지독한 생명력.

‘이거 참.’

칼을 타고 올라오는 감촉. 확실히 살은 질기고 뼈는 단단했다. 거기에 재생력까지 있다고? 이놈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도난 병원에 있었을 때 못 본 거 같은데?

피난민들 탈출시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35명 가운데 이렇게 생긴 사람은 없었다. 다른 곳에 있던 생존자인가? 괴물들이 날뛰는 일본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능력 하나 정도는 있다는 건가?

머리가 잘린 시체를 살피던 마루가 놈이 쥐고 있는 단검을 주웠다. 회색빛 칼날의 단검. 최 전무가 쓰던 아재 칼과 비슷한 색의 단검이었다.

[5분.]

무전기로 김 양이 5분 카운트 신호를 보냈다.

[···O.K. 재생력 강한 놈이 있었다. 머리를 쏴.]

[알겠음.]

일렁이는 공간이 열차 다음 칸으로 향했다.

위잉- 자동문이 열리고 투명한 유리로 된 출입구 저편이 보였다. 한 놈이 반대쪽 입구를 막고 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격발장치로 보이는 물건을 쥔 손.

“거기 멈춰! 투명망토! 은신한 것 다 알고 있다.”

“······.”

마루가 살짝 옆으로 움직였다. 옆으로 움직였는데도 놈은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은신을 간파하는 능력 같은 건 아니었다는 소리. 문이 투명하니까 건너편 문이 열린 걸 보고 찍었다는 말.

“여기 사람들 보이나? 전부 마취 가스에 잠든 사람들이다. 그 문을 열면 폭탄이 터져 전부 죽는 거야. 알았어!”

“······.”

남자가 기폭장치로 보이는 것을 흔들며 위협했다.

“은신 풀고 나와!”

“어서! 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색 실선이 투명한 문을 절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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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썰린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 회색빛이 쏘아졌다.

콱- 둔탁한 충격.

기폭장치를 들고 있는 손바닥에 틀어박힌 단검.

어?

고개를 돌려 단검이 박힌 손을 바라보는 순간.

일렁거리는 것이 남자의 코앞에 다가섰다. 훅- 불어오는 바람이 무언가가 눈앞으로 왔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놈이!”

외친 남자는 당황했다. 놈을 공격하려 했는데 두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진 두 팔.

팔이 잘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서야 밀려드는 고통.

아아아아악!

마루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전부 능력자 그런 거냐?”

이 사람은 재생력은 없어 보였다. 그냥 일반적인 신체 강화인가?

“으아아 팔- 내팔- 파아아아카아악!”

비명 지르던 남자가 갑자기 허공에 침을 뱉었다.

퉤에엣!

허공에 침이 달라붙으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치이이익-

서걱- 남자의 목이 바닥을 굴렸다.

“와- 씨-”

마루가 은신 장비에 묻은 침을 시체에 닦았다.

침을 닦은 부분이 지독한 냄새를 내며 삭아 바스러졌다.

[2분 30초]

김 양의 카운트가 생각에 빠지려는 마루를 재촉했다.

“알았어.”

이거 그냥 가긴 그런데? 그렇다면.

쿠과가각-

열차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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