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01화 (201/280)

러스트 [RUST]-201

일본 도쿄 북부.

화산폭발과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의 2월은 혹독했다.

“빌어먹을! 계속 수색하라고?”

이 상황에서 생존자 수색과 구조라니, 웃대가리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치?칙? A11 구역 중계기 교체 시작합니다. 치이이익-]

“중국 놈들이 근처에 있을지 모르니까. 사주경계 철저하게 해.”

[치이익- 알겠습니다. 삐이이익]

화산재와 연기는 지독했다. 향후 3개월 이상 통신 장애가 계속될 것이라는 예측에 대비해 소형 중계기를 사방에 박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적들은 그 중계기를 부수고 있었고.

중계기를 둘러싼 매복과 기습, 유인과 섬멸 작전이 반복됐다. 끝없는 소모전 양상.

통신 중계기와 레이더, 음파 탐지기까지 장착한 부표를 바다에 뿌려 중국의 추가 지원과 보급을 끊었다고 하는데, 저쪽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놓고 보급하기 어려워졌으니 공세가 줄어야 정상이지 않나? 그런데 반대로 놈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졌다.

비상식적인 상황의 연속. 모든 것이 엉망인 상황임에도 생존자를 수색하고 구조하란다.

“다른 이야기는 없었나?”

“없었습니다. 전선 유지, 생존자 수색과 구조 지속하랍니다.”

“미치겠군. 추가 지원과 보급은?”

“추가 병력은 불가. 보급은 12시간 안으로 온답니다.”

그나마 보급이라도 끊기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지간한 표범 크기로 커진 고양이들, 성인 남성 허벅지만 한 쥐새끼에, 30cm는 될 법한 바퀴벌레까지. 이것들 잡으려면 총알과 네이팜을 쏟아부어야 했다.

괴수들만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자들도 문제.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생존자들이 점심에 폭동을 일으켰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타나는 폭력성이라는데, 총구를 겨눠도 겁 없이 달려드니 강경하게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뺏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강경 진압하고 나면 일본인들의 반미감정이 치솟았다. 어쩌라는 건가?

그것도 모자라 꾸역꾸역 생존자 구조해서 모으면 그 가운데 이상한 애들이 있었다. 신체능력이 월등하게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버텼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생존자들이 많았다.

근데 그것도 문제였다.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뭉친 생존자들은 통제에 잘 따르지 않았다. 구조를 거부하거나 구호 물품만 내놓으라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는 무조건 데려오라는 데,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 명령대로 강제로라도 끌고 가려고 하니, 소문이 나쁘게 퍼졌다. 인체실험에 끌려갈 거라는 둥, 총알받이로 내몰릴 거라는 둥 온갖 악의적인 소문이 떠돌았다.

심지어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병기고를 털려는 시도까지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현장에서는 미칠 지경인데, 위에서는 그런 보고들을 무시한 채, 생존자의 확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치지직- 중위님 병기고로 여자 한 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자? 한 명이 확실한가?”

[삐이익- 예. 혼자입니다. 계속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치익-]

“경고한 뒤. 절차대로 해.”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비무장한 사람이라고 방심하고 있다가 병기고가 공격당한 사건. 혼자 왔다면 능력자일 가능성이 컸다.

[치이익- 알겠습니다. 여자!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쏜다! 삐이익]

다행인 것은 괴수들과는 다르게 능력자들은 대부분 총알이 먹힌다는 것. 총알이 통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떠돌았지만, 공식적인 발표나 보고는 없었다.

[치이이이이-]

“어떻게 됐나?”

[삐이이이-치익]

“어이? 홀든 하사. 응답하라.”

[치이이-삐이이이-]

“비상!”

“병기고가 습격받았다.”

“경계 병력 제외하고 전원 집합.”

“병기고로 간다!”

경고가 아니라 바로 쏴버려야 했다. 일본인 생존자들 민심이고 나발이고 우리 애들을 우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중위는 방독면을 꺼내 쓰고 나섰다. 막사 밖으로 나오자, 안개처럼 뿌연 공기 저편 순식간에 출동 준비를 마친 병사들이 보였다.

“병기고를 습격한 자는 능력자로 추측된다.”

“비무장한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병력을 이끌고 병기고로 향한 중위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병기고에서 막사까지 거리는 멀어야 70~80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경고 후에 사살하라고 했으니, 경고 사격을 했다면 총소리가 들렸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 없이 통신이 끊겼다.

“병기고를 포위한다. 2인 1조.”

“경고는 없다. 바로 사살한다.”

“비무장이라고 하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확인 즉시 사살해.”

2인 1조로 나뉜 병사들이 넓게 산개하기 시작했다. 화산재와 연기가 많이 걷혔다고는 하지만 가시거리는 20~30m 안쪽이었다.

병기고 앞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경계서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4명이 당했다고? 생각이 복잡해진 중위가 침착하게 전진했다.

휙- 뭔가 지나가는 느낌에 총구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저쪽에서 으직- 커직- 작게 들리는 소리. 다시 휙- 지나가는 느낌과 이어지는 소리.

“쏴버려!”

“보이면 무조건 쏘라고!”

그렇게 병기고 앞까지 가서야 볼 수 있었다. 제각각 쓰러져있는 4구의 시신은 처참했다. 머리가 터지고, 목이 돌아간 시신들. 다행하게도 병기고가 털리지는 않았다.

“병기고 확보. 모두 모여!”

·········

“병기고 앞으로 모여!”

·········

콰직!

둔탁한 충격음에 고개를 돌리자, 곁에 있던 병사 하나의 머리통이 반쯤 깨진 모습이 보였다. 보도블록 부서진 파편과 함께 뒤로 넘어가는 부하.

‘씨발.’

힐끗 돌아갔던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 것과 동시에 보이는 작은 손.

하얗고 작은 손이 중위의 숨통을 잡아챘다.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팔이 수수깡처럼 비틀어 부러졌다.

한 손으로 목울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총을 든 팔을 통째로 비틀어 버리는 모습.

끔찍한 고통에 중위가 발버둥쳤지만, 숨통을 움켜잡은 하얀 손은 자비가 없었다. 여자의 눈동자가 중위의 얼굴을 보곤 군복 명찰을 향했다.

“중위. 바란 중위.”

컥. 컥.

나른한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허윽.

허윽.

“바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점점 강해지는 악력.

뭘 물어보든 이걸 풀어줘야 대답을 하지. 바란 중위는 필사적으로 표현했다.

순간.

우지지직-

중위의 울대가 뜯어졌다.

생살이 통째로 뜯기는 끔찍한 고통. 치솟는 핏방울.

묻는다며?

묻고 싶은 게 있다며?

중위는 비틀어진 팔을 허우적거리며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런 중위의 눈동자에 들어온 여자. 중위를 내려다보는 나른한 눈빛.

“빨리 대답을 안 해서 말이야.”

·········

“아- 질문을 안 했던가?”

·········

“그럼 묻지. 내 총 어딨나?”

·········

뻐끔뻐끔 피가 솟는 목이 뒤로 꺾이며, 중위의 동공이 서서히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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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의 이야기에 마루는 이걸 믿어야 하나 싶었다.

“전진기지가 전멸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미군과 함께 싸워 봤지만, 전진기지 하나의 전력은 막강했다. 무엇보다 기갑병을 생각하면 전멸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화산재와 연기, 지독한 폭설로 일반적인 전차나 장갑차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제 몫을 하는 병기였다. 그런데 그런 기갑병이 있는 전진기지가 전멸?

현대전에서는 사상자가 15~20%만 생겨도 전멸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엄살일 가능성이 컸다.

“전멸이요? 사상자가 20% 이상 생겼다는 소립니까?”

[···표현을 잘못했군요. 몰살당했습니다.]

몰살이라고? 생존자가 없다? 이건 또 무슨 소리? 괴수 고양이나 쥐새끼들이 떼로 뭉쳐서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기갑병만 있으면 충분히 막았다.

그럼 바퀴벌레가 만 단위로 나와서 휩쓸었을까? 불가능했다. 팔뚝 크기 바퀴들이 만 단위로 모이기도 힘들거니와 그 규모를 어떻게 유지하겠는가? 그렇게 뭉쳐서 전진기지를 공격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네이팜 화염방사기면 바퀴벌레 구이가 될 뿐이었다.

“대체 뭐가 그랬답니까? 변종입니까? 변종이라고 하더라도 몰살은 힘들 텐데요.”

사람의 뇌나 심장을 먹을수록 똘똘해지는 변종이 공격했다고 하더라도 몰살은 힘들었다. 설마 중국군에게 공격당한 건가?

[사람에게 공격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흔적으로 봐서는 신체능력자의 공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위험한 신체능력자가 설치는 것 같으니, ‘우리도 좀 쩌는 칼잡이 하나 있지 않음? 걔 보내서 잡자.’ 이런다는 건데.

“어떤 상황인지 알겠습니다만, 지금 일본으로 가는 건 어렵습니다.”

[······.]

“일단 무기가 나갔어요. 저도 그렇고 미스 김도 그렇고요.”

이가 빠져서 톱처럼 된 칼도 그렇지만, 김 양이 쓰는 엑소슈트도 맛이 가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중화제도 여분이 몇 남지 않았다.

필요할 때 쓰다 보니, 달랑 2개 남은 상황. 미국에 가서 중화제 만들 시설도 챙겨야 하고. 미리미리 재료도 구해서 쟁여둬야 했다.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무기 말입니까?]

“예. 빈손으로 가서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본토에서 무기 만들어서 이쪽으로 보낼 시간이면, 대응팀을 꾸려서 보내는 게 훨씬 빠를 텐데요.”

칼 새로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거기에 김 양의 엑소슈트도 마찬가지. 그거 만들어서 보낼 동안 기다릴 시간을 생각하면, 대응팀 짜서 가는 게 훨씬 빨랐다.

[···후-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이야기하지요.”

[예.]

히죽이죽- 콜트 파이슨을 닦고 쓰다듬던 김 양이 눈빛을 보냈다.

‘일본. 안 가도 됨?’

‘그래.’

‘후후후- 기대해도 됨?’

‘?’

아? 협찬. 그렇지. 그거 잘했었지.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양의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졌다.

?

또 뭐가 있었지. 맞다. 한우 투플.

“저기. 기사님 가는 길에 한우 전문 정육점 좀 들리죠.”

“한우 전문 정육점 말입니까?”

“예. 괜찮은 곳 아십니까?”

“어디 보자. 이 근처에 하나 있네요.”

“그럼 부탁합니다.”

마루의 말에 김 양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드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하니까 한 20kg 정도 챙겨가면 되려나? 냉장으로 가져가는 거니까 그 정도면 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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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고개를 삐딱하게 돌렸다.

까악?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눈밭에 찍히는 발자국.

헉- 헉- 헉-

거친 숨소리가 허공에 퍼졌다.

뭐지? 뭐였지?

은신 장치를 켜고 전력으로 달리던 특수부대원이 잠시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헉- 하악- 헉-

여기까지 피했으니 됐나? 당장은 살았지만, 앞이 캄캄했다. 당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 실적을 더 쌓아야 했다. 가족들이 인체의 신비전에 가는 것은 막아야 했다. 어떡하든.

반드시 생포하고, 힘들면 시신이라도 확보하라고 한 여자가 자폭했다고 한다. 대노(大怒)한 당 지도부에서는 일본인 생존자들을 최대한 확보해 본국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특히. 신체능력이 강화되거나 특수한 능력이 생긴 자들은 절대 놓치지 말라고 했다. 놓칠 것 같으면 사살해서 시체라도 본국으로 보내라는 명령.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미 제국주의자들의 방해가 있기 전까지는. 보급품을 쌓은 거점 도시에서 미국놈들과 크게 붙어 다수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그것도 잠시. 피난민과 능력자들을 주축으로 한 일본 재건 세력이 등장하면서 거점 도시를 뺏겨 버렸다.

보급창을 여러 곳에 만들어 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뺏긴 도시를 되찾고, 계속 위로 올라오는 미제 놈들을 누르는 작전이 시작됐다.

이번 목표는 위로 삐죽 올라온 미제의 전진기지. 놈들이 박아 넣은 통신 중계기를 박살 내, 기갑병을 밖으로 유인하고, 주력부대는 우회, 놈들의 기지를 공략하는 작전이었다.

‘경계병이 없다.’

‘이상한데?’

‘함정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조용하다.’

‘인기척도 없어.’

‘산개.’

그렇게 미제의 전진기지 안으로 들어서자 널린 것.

시체들.

사방이 시체였다. 얼굴이 뭉개지고, 허리가 꺾이고, 사지가 부러진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반항한 흔적이 없다.’

‘탄피가 없어.’

‘뭐지?’

‘수색한다.’

그렇게 산개 수색하는데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화산재와 연기 때문에 가시거리가 짧았기에 여럿이 당했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건.

그는 품에서 특수 전송기를 꺼냈다.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까지 왔네?”

!

사내의 몸이 펄쩍 뛰어올랐다. 곧바로 도망치려 했지만, 은신 장비를 뭉개고 들어온 돌덩이가 남자의 골반을 부쉈다.

콰직!

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목소리가 서서히 다가왔다.

“내가 묻고 싶은 게 있는 데 말이야.”

끄윽.

끄윽.

우두둑-

으스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회색 눈밭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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