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06
간호사의 읍- 버둥거림을 보는 순간 마루는 감각을 활짝 열었다.
날카롭게 갈린 감각이 주변을 훑었지만, 근처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읍-읍- 발버둥이지?
기잉-
모터 소리.
김 양이 입고 다니는 엑소슈트 소리에 익숙하지 않았으면 지나쳤을 법한 소리가 옆쪽에서 들렸다.
기이이잉-
4족 보행용 로봇. 머리 부분에 팔이 달린 형태의 로봇이 하나씩 몸을 일으켰다.
‘뭐야?’
머리 부분에 달린 기계 팔이 마루를 향했다. 앞에 달린 테이저 총(Taser gun)과 마취총을 보는 순간, 마루가 몸을 틀었다.
파직-
테이저 건에서 나온 니들이 허공을 찔렀다.
이어진 마취총탄이 마루를 노렸지만, 마루의 칼질이 반 박자 더 빨랐다.
까득-하는 낮은 소리와 함께 들어가지 않는 칼날.
칼에 맞은 기계 팔이 반쯤 꺾여 휘적거렸다.
‘특수 소재?’
김 양의 엑소슈트에 사용됐다던 소재와 비슷한 재료인지, 칼질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그 틈을 타고 낮은 모터음이 추가로 더 들리기 시작했다.
‘2대. 3대인가?’
로봇들이 삼각형 모양으로 마루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칼질이 통하지 않아?
그렇다면 뭐.
칼을 왼손으로 쥔 마루가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빼 들었다. 일본에서 부딪친 중국 특수부대원이 들고 있던 권총. RSh-12 리볼버.
투카아아아앙!
묵직한 반동과 함께 12.7mm 철갑탄이 로봇의 카메라 부분을 때렸다. 센서가 집약된 중앙에 12.7mm짜리 철갑탄이 때려 박히자, 로봇이 간질환자처럼 사지를 떨어댔다.
양쪽으로 흩어지려는 로봇을 행해 불을 뿜는 총구. 순식간에 4발의 총성이 들리고, 2대의 로봇이 작동불능 상태에 빠져 바닥을 비비적댔다.
읍- 읍-
간호사의 필사적인 읍- 소리.
뭔데? 왜 또···
마루의 눈동자가 간호사의 시선을 따라갔다.
삐---삐---
삐-삐-삐-
작동불능이 된 로봇에서 들리는 깜박임. 점점 빨라지는 점멸등.
씨발.
마루가 간호사를 어깨에 들쳐 매고 병원 3층에서 뛰어내리자, 폭음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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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마루 칼린을 잡겠다고요? 미쳤습니까!”
덴 브라운 과장의 목소리가 크게 터졌다.
[말 가려서 하게.]
영상 속 인물의 당당한 태도에 덴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뭔 짓을 하신 건지 감이 안 잡히시나 본데 말입니다.”
[······.]
어디 해보라는 듯, 거만한 영상 속 얼굴을 향해 덴 브라운 과장이 이를 드러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그 목이 언제까지 붙어 있을 거 같습니까? 그가 당신을 찾아가면 막을 자신 있습니까?”
[직접 자기 발로 찾아온다면 번거롭지 않아서 좋겠군. 근데 그럴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어. 최정예 멤버로 3팀. 12명에, 3세대 신형 울프텍을 3기나 보냈으니까.]
시가전에 대비한 특수부대를 보냈다고?
하-
고작 3팀?
그 10배를 밀어 넣어도 잡을까 말까 한 판국에?
과장이 보기엔 시가전 상황에서 블라디마루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일본에서 교전한 영상을 봤으면서도 꼴랑 특수부대 3팀을 보낸 이유가 뭘까? 정말 주소 알려줘서 그쪽으로 보내버리라고 한 건가? 이쪽에서 보내면 함정 파놓고 기다리고 있겠다는 심산인가? 어이가 없어 별생각이 다든 과장이었다.
3세대 울프텍이라면 블라디마루를 잡는 게 가능할까?
견마형 4족 보행 로봇. 7.62mm 탄에 방호능력을 갖춘 차세대 전투보조 로봇이었다. 자체 인공지능 탑재, 원거리 조작 가능. 7.62mm 기관총을 장착하거나, 20~40mm 고속 유탄 발사기를 장착하는 것도 가능한 로봇이라면? 소대 전투력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울프텍이라면?
“좋습니다. 이렇게 하죠. 어차피 그쪽에서 잡았으면 이쪽에서 뭐라고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을 상황 같으니까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군.]
“만약 이번에 잡지 못하면 더는 건드리지 마십쇼.”
[그건 어렵겠어. 합중국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귀한 실험체를 그냥 내돌릴 수는 없지 않겠나?]
“실험체가 아니지요. 이미 현장에서 뛰고 있는 현역입니다. 착각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군. 자네는 이제 손을 떼게.]
“국토안보국을 무시하는 겁니까? 손을 떼라? 지금 정말 해보겠다는 겁니까?”
[일을 피곤하게 만들지 말지? 의회 동의가 필요한가? 아니면 행정명령이라도 받아야 하나?]
덴 브라운 과장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나왔다는 건, 위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소리였다.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한다. 좋아. 거위면 그럴 수 있다. 근데 거위가 아니면 어떨까? 배 가르겠다고 덤볐다가 역으로 죄 배가 갈려버리면? 정말 모르는 건가?
“관련된 사람들 누굽니까?”
[···잠시···.]
뭔가 보고를 받은 영상 속 남자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고래고래 고함지른 남자가 덴 과장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 말이 맞았군. 너무 쉽게 생각했었던 것 같아.]
“그렇죠.”
잡지 못했구나. 그럼 그렇지. 실실 웃음이 지어지는 걸 필사적으로 참는 과장이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솔직하게 말하지,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어.]
블라디마루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상황 찾을 겨를도 없었을 텐데, 배부른 놈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 과장이었지만 그냥 닥치고 있었다.
[일본에서 피난민들을 데려오려 한 이유는 알다시피, 신체능력이 강화된 사람들을 데려오려고 했기 때문일세.]
신체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능력자들이 생겼다. 초능력에 가까운 신기한 능력자들이 하나둘씩 보고됐다.
회춘한 여자부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재생력이 뛰어난 남자,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로 달리는 사람까지. 다양한 능력자들이 나왔고 그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망했다.
미군이 구조한 사람들 가운데 능력자들 대부분이 신일본이니 일본재건이니 이쪽에 붙어버렸다. 세계 각국 언론이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어,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없는 상황.
[···현재 본국에서 확보한 피난민들은 대부분 무능력자에, 신체능력 강화자들도 일반인과 비교해서 고작 30~40% 정도 강할 따름이네. 그 정도 신체 강화라면 사실상 운동선수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에 그치지···.]
그래도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30~40% 차이라고 해도 이들을 전문적으로 훈련 시킨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기본 바탕을 키우면, 커진 바탕에서 30~40%가 좋아지는 거니까. 여기에 부스터 약물까지 더한다면? 정말 일반인 2배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슈퍼 솔저도 가능했다.
만약 그걸 보지 않았다면,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걸 봐버렸다. 칼 하나 달랑 들고 수십을 썰어대는 것을 봤으니, 다른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심지어 조금 전에는 부스터까지 맞은 특수부대를 순식간에 도륙 냈다. 3세대 울프텍까지 포함해서. 화력으로만 따지면 중대급 전력인데 그걸 와해시키는 데,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 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
[미래를 생각하게. 중국에서 일본인 능력자들을 상당히 많이 확보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그래도 감쌀 생각인가? 미래를 감당할 수 있겠나?]
일본에서 데려간 능력자들을 세포 단위 하나까지 분석해서 인공적으로 능력자들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공 자궁 연구까지 상당 부분 진행한 중국이었기 때문에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이 나올 수 있었다. 중국이 초인을 뽑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초인으로 이뤄진 군대가 생긴다면? 그때도 윤리나 도덕을 찾고 있을 건가?
“중국 이야기는 됐습니다. 능력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헬파이어 앞에서는 꼼짝 못 할 테니까 말입니다.”
미사일이든 핵이든 가스든, 잡을 방법은 넘치고 넘쳤다. 단지 효율의 문제였다. 피차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끼리 윤리, 도덕, 미래 이야기해서 뭘 하겠나? 입에 발린 말은 집어치우고 심플하게.
“그래서 어떻게 잡을 겁니까?”
[···함정을 파야겠지.]
“다시 말하지만, 우린 돕지 않을 겁니다. 다만, 이번 공격을 누가 했느냐 그쪽에서 묻는다면? 답해주기는 하죠.”
[허- 그래. 그거면 됐네.]
영상 통화를 끝낸 덴 브라운 과장이 연초를 꺼내 들었다.
“칼이랑 총- 자료는 언제 올라와?”
[1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후-우-
돌아버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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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콰아아앙!
연달아 터진 폭음을 뒤로하고 마루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주 방위군과 경찰들의 신경이 병원에 집중된 틈을 타, 속도를 높인 마루였다. 그렇게 간호사를 둘러메고 한참을 뛰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축 늘어지는 간호사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마루가 깜짝 놀라 멈췄다.
으- 으-웁
으으으웁-
축 늘어진 간호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읍읍-댔다.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떼주자, 분수처럼 터지는 건더기들.
쿠웨에에에엑---
아?!
마루의 황망한 눈빛을 받은 간호사가 억지로 입을 닫았다.
크흡-
쿱-
콧구멍으로 삐져나오는···
쿠에에에에에엑----
히끅-
히끅-
더럽혀졌다는 얼굴로 훌쩍이는 간호사를 본 김 양이 ‘앤 또 왜 이럼?’하는 눈빛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하- 모르겠다.”
자기가 토해놓고, 서럽게 훌쩍이는 건 또 뭔가? 당한(?) 건 난데 말이지. 화를 내도 내가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마루의 미묘한 표정을 본 김 양이 끼융끼융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뭐임?]
‘지금 즙?’하는 김 양의 한 마디에 거짓말처럼 간호사의 안구를 덮친 쓰나미가 잔잔해졌다.
[이건 또 뭐임?]
김 양이 밧줄 사이로 도드라진 바운스를 눈빛으로 쿡 찔렀다.
두 손이 풀렸으면 알아서 몸을 묶은 것도 풀어야 하지 않나? 이것이···. 역시 교육의 효과가 떨어진 건가? 그런 건가?
조금씩 가느다랗게 변하는 김 양의 눈초리에 간호사가 허겁지겁 몸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댔다.
‘알아서들 하겠지.’
마루는 중앙 통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별일 없었고?”
“예. 근데···.”
후드가 시큼한 냄새를 피해 살짝 몸을 틀었다.
“아- 미안. 씻고 올게. 아까도 말했지만, 들어오지 못하게 해. 헬기도 마찬가지고.”
“무시하고 착륙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죠?”
“경고하고 미사일 쏴버려. 미사일 조준됐다는 경고 뜨면 대부분 피하겠지만, 배짱으로 밀고 들어오는 놈들도 있을 테니 그거 신경 쓰지 말고 쏴버려.”
“알겠습니다.”
샤워하고 나오자,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이 화상통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상통화라니요. 어쩐 일입니까?”
디트로이트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국토안보국 과장이 할 말이 있을 텐데 말이지.
[다친 곳이 없어 보여서 다행입니다.]
병원에서 대기하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는 뜻인가? 일단 모르는 척 말을 아끼는 마루였다.
[병원에서 습격받은 건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군요. 미안합니다.]
“···뭐 됐습니다. 또 이런 일 있을까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군요.]
덴 브라운 과장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계속 노리겠다는 소리니까.
“어디입니까? 누가 그러는 거죠?”
과장은 이걸 말해줘야 하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입을 열었다.
[전략방위 사령부 산하 기관과 라이저 제약입니다.]
“흠- 그렇군요.”
남의 일처럼 대답하는 마루의 얼굴에 과장은 침이 쌀짝 마르는 것 같았다.
[갈 생각이십니까?]
“아뇨. 왜 갑니까.”
덴 브라운 과장이 눈을 껌벅였다.
성질 부리면서 계획한 놈이 누구냐고 그냥 썰어버린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안 간다고?
“아쉬우면 오겠죠.”
좋은 본진 두고 왜 감? 뭔 짓을 해놨을지 알고.
무장, 방어 짱짱하게 한 벙커 빌딩을 두고 왜 나다니겠음.
드루와. 드루와.
들어오기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