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12화 (212/280)

러스트 [RUST]-212

김 양은 아주. 매우. 극히. 짜증 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넘게 뺑뺑이 돌리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하지 않나? 노스 타운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외곽 지역에 있는 마을들을 돌고 또 돌고.

이쯤 되면 백정이 도시락 싸 들고 오든지, 하다못해 바운스라도 와서 뒤치다꺼리라도 해주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김 양을 비웃듯 미어캣처럼 허리를 곧추세운 쥐새끼가 소릴 냈다.

찍- 찍-

‘어쭈- 이것들이 겁도 없이.’

맛이 살짝 가버린 개, 고양이들이 설치는 것도 모자라 설치류들까지 대낮에 도로를 활보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봤던 애들보다 작기는 한데.’

60달러짜리 총알 아깝게 12.7mm 쥐 1마리한테 쏘기도 그렇고. 김 양은 찝찝함을 누르고 마을로 들어갔다.

‘샤워. 목욕이 힘들면 샤워라도 하자.’

국토안보국에서 가끔 보급 차량이 왔을 때 빼고는 엑소슈트에서 박혀 있다 보니, 온몸이 가려웠다.

[151번 도로 오른쪽에 있는 마을입니다. 어제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알겠음.]

국토안보국 새끼들 처음에는 미안한 목소리더니 어제, 오늘 해서는 ‘그냥 해줘.’ 느낌이라 김 양의 기분이 바닥을 깔기 시작했다.

밤도 아니고 낮인데 사람이 없었다.

보통 엑소슈트를 입고 마을에 가면 사람들이 창문을 열어 본다거나, 애들이 구경하러 나와본다거나, 하다못해 동네 경찰이라도 와서 뭐라고 하기 마련인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좋아. 그렇다면.

끼융끼융

씩씩하게 걷는 김 양. 이래도 안 와?

끼융끼융

기분 나쁜 적막만이 그녀를 반겼다.

‘이거.’

김 양은 감지장치 감도를 최대한으로 올리고 격철을 잡아당겼다.

대략 70~80가구가 모여있는 마을. 한 가구 평균 3명만 잡아도 210~240명은 있어야 할 마을에 사람의 온기가 흔적도 없었다.

끄릭- 위이이이잉-

엑소슈트 어깨에서 사출한 소형 드론 2대가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열감지 작동]

드론의 센서가 열감지 모드로 변환됐다. HUD(헤드 업 디스플레이) 상으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마을. 중앙 도로를 따라 안쪽으로 깊이 들어왔음에도 아무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서 수색해야 하나?

기각

좁은 공간으로 기어들어갔는데 함정이라도 깔렸으면 어쩌라고? 백정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혼자 들어가서 버둥거릴 이유 없었다.

팅-

수류탄 클립 튀는 소리.

가까운 2층 주택 안으로 수류탄을 던져버리는 김 양. 유리창을 깨고 들어간 수류탄이 폭발하는 소리가 고요한 마을을 뒤흔들었다.

감지센서를 민감도 최대로 맞춘 김 양이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살폈다.

없다. 없다. 없다.

바짝 긴장한 채로 몇 분이 지났지만, 여타의 열상이 감지되지 않았다. 이곳은 텅 빈 마을이었다. 김 양은 국토안보국과 마루에게 연락했다.

국토안보국에는 뒤처리를, 마루에게는 교대를 요구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계속 자기만 뺑뺑이 돌릴 자세.

‘그냥 빈 마을이라고 하면 후딱 다른 마을로 가라고 할 거고.’

순간 번뜩이는 생각. 잠시 뜸을 들인 김 양이 말했다.

[이쪽 마을에는 생존자 없는데도 정리?]

[지금 거기 어디야?]

바로 백정이 교대하러 온다고 했다.

‘거짓말은 안 했음. 솔직하게 생존자를 찾지 못했을 뿐임.’

김 양은 느긋하게 국토안보국과 마루를 기다렸다.

그런 김 양을 향한 눈동자. 하수구의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둘, 넷, 여섯···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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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교통사고 난 구간이 여기저기 있다고 했으니, 자동차보다는 오토바이가 효율적. 그 가운데서도 소음이 적은 전기 오토바이가 좋았다.

“나가시는 겁니까?”

“어. 일단 스파이 애들 불러. 나갈 때 끌고 나가게.”

좋은 말로 나가라고 했더니 이것들이 간보나 싶어서 ‘전부 분리수거 해버려?’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를 일.

전략사령부도 그렇고 제약회사, 군산복합 애들과 좋은 관계란 물 건너간 마당에, 다른 기관 애들까지 전부 분리수거 해서 신경 날카롭게 할 필요가 있을까?

돌아가는 꼴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찝찝했다.

기순이와 같이 일본에서 도망쳤을 때가 떠올랐다. 공항 밖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조짐은 그전부터 있었다고 봐야 했다.

거대한 바퀴벌레가 기순과 마루의 등에 달라붙어서 호들갑 떨었던 일. 공항 근처를 배회하는 새들. 그리고 대지진 발생.

대지진 전에도 바퀴벌레는 일반보다 컸었고, 새들도 정상은 아니었다.

연이은 자연재해, 방사능 오염, 변이 바이러스 확산, 실험실 실험체 유출 같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본이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조짐은 그 전부터 있었다고 봐야 했다.

‘조짐이라.’

일본은 정부가 증발해 버리면서 빠르게 무너졌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정부가 살아있고 군대도 멀쩡했다. 심지어 총화기로 무장한 민병대나 자경대가 순식간에 구성될 수 있는 여건이었고.

‘어쨌든 일본처럼 빠르게 무너질 가능성은 적어. 그러니까. 굳이.’

간을 보나 싶은 생각에 조금 짜증 나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죽일 필요까지야.

마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자기들끼리 눈치 보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다가섰다.

“왜 여러분을 불렀는지 아시겠습니까?”

“······.”

“······.”

‘혹시?’, ‘들켰나?’하는 눈빛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랬다. 만약 스파이인 것이 들켰다면 한 명씩 처리하지 이렇게 대놓고 불러 모을 리는 없다고.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마루가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 다른 기관과 기업에서 보낸 스파이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

“!”

“아닙니다!”

“난 아니오!”

마루의 직진에, 놀란 표정을 짓는 자들, 즉각 반발하는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얼굴들 잘 봅시다. 언제 어디서 또 통수치는 자리에서 만날지 모르니까.”

그 말에 반발하던 자들도 순간적으로 옆을 바라봤다. 서로의 얼굴을 순식간에 훑어본 사람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 가운데, 유독 한 사람이 앞으로 튀어나와 소리쳤다.

“오해입니다! 증거 있습니까?”

쫙-

풀썩

따귀 한 방에 풀썩 기절해 버리는 사람. 마루는 따귀를 때린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야- 다들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꿈틀.

칙칙하게 피어오르는 살기.

“그렇게 죽고 싶어?”

“살려 주겠다고 하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절하고 살아서 나가면 될 일인데.”

마루의 눈빛에서 서서히 감정이 사라졌다.

“증거? 그게 왜 필요한데?”

“······.”

“······.”

큽-흡- 하나둘 숨 막히는 소리.

“오해? 내가 오해를 했으면?”

날카로운 예기가 사람들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럼 어쩔 건데? 죽고 싶냐?”

공기가 무거워진 느낌. 숨통을 콱 막아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

흐-으-

마루 가까이 있던 몇은 그대로 오줌을 지리고 주저앉았다. 달달달 떨면서도 도망도 치지 못하고 눈물 콧물 쏟기 시작하는 사람을 비롯해 호흡곤란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사람들까지.

“지랄들 하지 말고. 살려줄 때 집에 가서 부모님 얼굴 보고, 처자식 있으면 애들 보고 감사하게 생각들 하라고. 알겠습니까?”

살기가 사라지자, 견디지 못한 자들이 전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계속 구라면 팔다리 가운데 하나씩은 두고 가게 되니까. 적당히들 합시다. 적당히들.”

경고했음에도 몇 명은 끝까지 아니라고 했다.

“난 스파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정말이에요. 전 그냥 동생 따라서 왔을 뿐입니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무고한 사람 핍박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 애끓고 억울하다 못해, 구구절절 애원함에도 마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랄들을 하네. 억울하다고? 아니라고? 하- 이 새끼들이 정말. 일반인이면 살기를 어떻게 견디냐? 일반인이면 살기는 고사하고 이런 분위기도 못 버텨. 아니냐?”

“······.”

“······.”

살기 때문에 긴장해서 뇌가 굳었는지, 무조건 반사적으로 연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웃기지도 않았다.

“살기나 분위기는 그렇다고 쳐도, 일반인이면 무서워서 여기 붙어 있고 싶겠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겠지.”

어디서 연기질. 그럼 약속대로 두고 가야지?

스르르릉-

“자··· 잠···.”

“아아앗- 아니···.”

스컥-

끝까지 비비려던 자들은 팔다리를 남기고 쫓겨났다. 가족들과 같이 왔다는 둥, 동생 따라왔다는 둥 그럼 가족까지 세트로 내보냈다. 이렇게 관대함을 보여줬는데도 끝까지 딴소리 나오면 어쩔 수 없고.

“진짜 지독한 애들 많네.”

팔다리쯤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애들이 스파이짓도 하는 건가? 미국 애들이 이렇게 독했나? 스파이들을 정리한 마루는 곧바로 김 양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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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이이이잉-

낮은 전기모터 소리. 전기 오토바이는 휘발유 오토바이에 비해 조용했다. 주 방위군과 경찰들이 삼삼오오 순찰하는 디트로이트 시내에서 벗어나자, 분위기가 확 변했다. 세기말적 감성이 그대로 드러난 폐허.

화르르르륵-

빈집이 불타오르는 거야 이쪽 동네 전통놀이 같은 거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규모가 달랐다. 도로변에 붙은 집 10여 채가 동시에 타올라, 지나가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지경.

주로 밤에 캠프파이어를 했었는데 지금은 낮이었다. 대낮부터 빈집에 불을 지르고 다닌다는 이야기.

빈집이 한꺼번에 10여 채나 불에 타.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데도 소방차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심각했다. 여기저기 불이 난 곳이 많아 여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소리니까.

번화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은 관리되고 있지만, 슬럼가나 외곽지역 인구밀도 낮은 곳은 지금처럼 방치된 것 같았다.

이건 좋지 않았다.

활활 타오르는 빈집을 뒤로, 마루가 탄 오토바이가 속도를 높였다.

김 양의 말대로, 도로 중간중간 사고 난 구간이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대충 사고 차량을 도로 밖으로 밀어 버리고 이동한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사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현장에는 사망자가 그대로 방치됐다. 외곽까지 구급대가 오지 못할 정도라는 소리. 소방차도 그렇고 구급대 일손까지 부족한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확실히 좋지 않았다.

일상이 계속될 것 같겠지. 전쟁이 터지든 화산이 폭발하든 지진이 났든 외국의 일이었고, 소요사태는 다른 도시의 일이니까.

분노조절 못 하는 자들은 격리됐고 도시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정시 운행을 하고 있었다. 군대와 경찰이 순찰하면서 치안은 오히려 좋아졌다.

그렇게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뒤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피자나 치킨을 먹는 일상. 사건이든 사고든 한 발짝 떨어진 느낌. 많은 사람은 그렇게 느낄 것이다.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될 일을 호들갑 떤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마루가 보는 현실은 아니었다. 조금씩, 분명히 올가미는 조여들고 있었다.

외딴 마을에 들어서자 김 양이 멀리서부터 뛰어왔다.

끼융끼융끼융

반갑고도 가벼운 발걸음 소리. 일주일 넘게 밖에서 굴러서 그런지 좀 꼬질꼬질한 엑소슈트 헬멧 고글이 착- 위로 올라갔다.

[왔음?]

보면 모르나. 인사도 참.

피식- 웃은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자가 없다고?”

[하나도 없음.]

“흔적은? 혈흔이나 교전흔적 같은 거. 혹시 마을 단위로 대피한 건 아니고?”

[집 안 수색하지는 않았음.]

백업이 없이 혼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나? 자기 안전은 알아서 잘 지키는 김 양이었으니까. 그런 판단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안에 안 들어갔으면서,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았고?”

[수류탄 깠음.]

아? 그래.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류탄 깠는데도 반응 없었으면 그건 인정이지.

“국토안보국 애들은?”

[불렀음. 금방 도착한다고 했음.]

밝은 김 양의 목소리.

‘애들 오면 나 가도 됨?’, ‘교대임?’하는 눈빛.

왜 고글을 열었나 했더니. 픽- 웃은 마루가 대답했다.

“그래? 걔들 오면 한 번 싹 뒤져보자.”

어림없지. 어딜.

[···알겠음.]

끼유우우웅- 끼유우우웅-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국토안보국 차량이 마을로 진입했다.

“아- 블라디마루 칼린 씨 오랜만입니다. 미스 킴도 안녕하셨습니까?”

일본에서 마루 일행을 보조했던 요원이었다.

“일본에서 할 일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일본 상황이 좀 그렇게 돼서요.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고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죠.”

[······.]

국토안보국 요원들과 김 양, 마루가 빈집을 하나씩 수색하기 시작했다.

[치직- 아무도 없습니다.]

[삐이익- 여기도 빈집입니다.]

다들 도망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마루의 눈에 들어온 흔적. 양탄자 조각이었다.

‘양탄자 조각?’

근처에 떨어진 금속 벨트 장식. 가죽 허리띠는 어디로 가고 달랑 금속 벨트 장식만 남아있었다. 강력하게 드는 기시감.

이런 걸 어디서 봤었다. 금속으로 된 부분만 남아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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