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15화 (215/280)

러스트 [RUST]-215

쥐새끼들이 전선 끊을 정도로 똑똑해졌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함정 파고 매복했을지 모른다는 것까지는 넘어간다고 쳐도. 성동격서를 대비했다고?

어이없다 보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하하- 그냥 단순한 쥐새끼가 아니겠지 했는데 말이야.”

입꼬리를 올린 채 한 걸음 내디뎠다.

저벅-

발걸음을 따라 검붉은 살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무겁게 내리눌리는 공기. 죽음이 불꽃 사이로 일렁거리자, 찍찍대던 울음소리가 어느새 잠잠해졌다. 네이팜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만 밤하늘을 채웠다.

저벅-

부르르-

뻣뻣하게 굳어 쓰러지는 쥐새끼들. 오줌을 지리고 입에서 거품을 물고. 마루를 동그랗게 포위했던 모양이 뭉개지며 오뚝이 모양으로 늘어졌다.

저벅-

콰직-

빠직-

뼈가 부러지는 소음.

가죽 주머니 터지는 소리

걸음걸음마다 으스러진 핏덩이가 생겼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으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 쓰는 모습에 마루는 감탄하고 말았다.

이놈들 통제되고 있었다.

2차 대전, 진지를 구축한 독일군을 향해 달려들던 소련 병사들처럼. 확정된 죽음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고작 쥐가, 마치 사람들처럼 본능을 거슬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이없네.”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그냥 돌격했을까?

아니었다. 뒤에서 협박하고 종용하던 새끼들이 있었다.

정치장교. 독전관. 그런 애들.

그렇다면 이 쥐새끼들에게도 당연히 있겠지.

그런 역할이.

마루의 눈동자가 똑같아 보이는 쥐새끼들을 훑었다. 마루와 눈이 마주친 쥐들이 거품을 물고 뒤집혔다. 뒤집힌 쥐새끼 뒤로 군데군데 보이는 약간 덩치 큰 것. 저놈들이었다. 저것들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고 있었다.

찾았다.

마루의 낮은 중얼거림이 호랑이의 울음소리라도 된 것처럼, 동그랗게 포위하고 있던 쥐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그 동그란 파동이 반동이라도 된 듯 마루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수천 마리의 쥐 대가리가 그런 마루의 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죽음이 내려앉았다.

콰지직!

포위망 뒤편으로 날아간 마루가 독전관 쥐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놈들은 마루의 살기에도 약간은 버텼다. 굼뜬 움직임으로 입을 벌려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세워 저항했지만 허무했다.

툭-

발등으로 쳐올린 쥐가 허공에서 절단됐다.

팍-

대가리가 밟힌 덩치 큰 쥐의 몸뚱이가 파르르 떨다 늘어졌다.

부화아아악-

길게 이어지는 소리. 공기 갈리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닿는 곳에 있던 쥐들이 토막 났다.

찌이이이익-

‘이건 아니야. 도망쳐.’ 하는 소리가 한 번 터지고 나자, 사방에서 찍-찍-거리며 ‘살려줘.’, ‘도망쳐.’ 느낌의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동그랗게 포위하고 어찌할 줄 몰라 하던 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덩치 큰 놈들이 도망치는 쥐들의 꼬리를 물어 끊고, 머리를 내리누르며 통제하려고 했지만, 마루의 발길질과 칼질에 피떡으로 변했다.

두두두-둑-

수천 마리의 쥐가 떼로 도망치는 소리는 생각보다 요란했다. 그리고 그걸 보던 마루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 새끼들이?’

놈들이 도망치는 곳은 땅속이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땅굴을 파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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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방위군 지휘소

“어떤가?”

“뭐가 말입니까?”

지휘관의 질문에 연방수사국 요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 남자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하- 낮게 웃은 방위군 지휘관이 선수끼리 힘 빼지 말라는 얼굴로 말했다.

“국토안보국에서 그렇게 감쌀 만한 인재던가?”

“···요즘 영상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입니다. 기다려 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딥 페이크를 비롯해 CG로 떡칠한 영화와 실사를 구분하기 힘든 시대였다. 일본에서 싸운 영상? 그게 진짜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심지어 국토안보국은 정보기관이었다. 안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버지니아와 똑같은 놈들. 그놈들 손을 탄 영상을 곧이곧대로 믿으라고?

군부도 마찬가지였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놈들. 안보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어떤 기관이랑 똑같지 않은가?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들은 항상 그랬다. 사실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 건 아니었다고. 이게 다 합중국을 위해서였다고. 그러니 군부에서 공개한 영상을 액면 그대로 믿는 건 위험했다.

군부를 믿는다? 군산복합체로 꿀 빨던 놈들을? 스페인, 멕시코 전쟁부터 이라크전까지 군납비리에 불법으로 얼룩진 자들을?

연방수사국 요원은 오직 연방수사국만이 고삐 풀린 정보기관과 군부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블라디마루 칼린이라는 작자는 감시해야 할 대상이었다.

‘영상의 내용이 절반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자가 범죄자가 된다거나 테러리스트가 된다면, 최악의 연쇄 살인마와 통제 불가능한 테러리스트의 탄생이 될 테니까.

‘거기에 그 행동과 말투.’

그러니까 전두엽에 이상이 생겨, 감정조절이나 공감능력에 문제가 생긴 범죄자들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사회화에 문제가 있는 인물일 가능성도 있었다.

당장 그 남자가 주장한 해결 방식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냥 모조리 태워버리고, 포격으로 쓸어버리자는 주장. 그럼 생존자는?

“지켜보면 알겠죠.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연방수사국 요원의 말에, 지휘관이 코웃음을 쳤다.

“그래. 두고 보면 알겠지. 그 영상이 사실이라면···.”

국토안보국이니, 연방수사국이니, 버지니아니 이딴 곳에 둘 인재가 아니었다.

오직 군만이 그런 인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군부야말로 그런 인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인성에 조금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결과가 중요했다.

지금은 빛나는 희망이, 합중국의 영웅이 필요한 시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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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르르륵-

투다다다닥-

12.7mm 일반탄이 쥐떼를 분쇄했고,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통구이 잔치를 벌였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밀려오는 쥐들.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도 김 양은 질려 버렸다. 이동 거리가 얼마나 됐다고 탄 통을 2개나 비웠다. 조금 있으면 총열도 갈아야 할 판.

‘이거 확 써버릴까?’

최루탄에 저절로 손이 가는 김 양이었다. 마루의 오토바이에 있던 최루탄은 달랑 2발이었다. 주 방위군은 최루탄이 없다고 했으니, 최루탄은 2발이 전부.

확 써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은 김 양이 전신에 달라붙은 쥐들을 무시하고 장갑차를 향해 나아갔다. 반쯤 파묻힌 장갑차엔 쥐들이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팅- 푸화아아아악-

매캐한 최루가스가 터지자, 쥐들이 미친 듯이 도망쳤다.

찍?

찌이이이익!!!

역시 최루가스. 짐승들 쫓는 데는 특효였다.

통-통- 장갑차 해치를 두들긴 김 양이 후딱 나오라고 다그쳤다.

[후딱 나오셈.]

여기저기 타오르고 있는 불길 때문에, 공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최루가스가 오래가지 않을 듯싶었다.

[방독 마스크 쓰고. 빨리 나와!]

이 새끼들 쥐한테 쫄아서 못 나오는 것임? 설마? 쾅! 쾅! 장갑차가 울리도록 두들겨 댄 뒤에서 빼꼼 해치를 여는 병사들이었다.

몇 명은 방독면을 썼지만, 몇은 쓰지 않은 상태. 방독면을 안 쓴 놈들이 눈이 매운지 콧물을 찔끔 흘리며 다시 장갑차로 기어들어가려는 것을 김 양이 멱살을 잡고 장갑차 아래로 패대기쳤다.

[빨리 입구로 가!]

일본에 있던 애들은 빠릿빠릿했었는데, 주 방위군 애들은 함량 순도가 낮은 애들이 보였다. 김 양이 양몰이 하듯 병사들을 몰고 마을 입구로 향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로 마을 입구가 막힌 것을 본 병사들이 김 양을 바라봤다.

[여기. 이걸로 버티고 있으셈.]

화염방사기를 넘겨 준 김 양은 2번째 장갑차를 향해 달렸다. 처음 깐 최루탄 연기가 어느덧 옅어져 있었다.

남은 최루탄은 하나. 김 양은 12.7mm 탄을 아낌없이 쏟았다. 최루탄 연기가 흐릿해지면서 슬금슬금 접근하던 쥐들이 붉은 얼룩으로 변했다.

달궈진 총열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 재빨리 총열을 교체한 김 양이 마지막 최루탄을 터트렸다. 연기를 피해 다시 흩어지는 쥐떼.

최루탄 연기가 장갑차를 감싼 틈을 타 병사들의 탈출을 도운 김 양이 외쳤다.

[마을 입구로!]

허겁지겁 내달리던 한 병사의 발이 갑자기 땅바닥으로 쑥 꺼졌다. 발목을 넘어 종아리 아랫부분까지 쑥 빠진 사람. 내달리던 중이라 다리가 꺾였는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옆에서 뛰던 병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병사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후두둑-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다친 다리를 향한 시선.

단순히 부러진 것이 아니었다.

발목 아래로 쥐어뜯긴 상처.

쥐?

[빨리 뛰어!]

김 양이 재촉하려는 찰나, 엑소슈트의 다리가 바닥에 쑥 빠졌다. 가가가각- 그리고 구덩이에 빠진 엑소슈트 발목 한쪽을 갉아대는 소리와 진동.

땅굴? 부비트랩?

이거. 쥐가 맞아?

당황한 김 양이 몸을 일으켰다. 우수수- 힘을 준 반대쪽 다리가 바닥으로 꺼졌다.

‘미친-’

최루가스를 피해서 이렇게 했다고? 백정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전선을 끊은 쥐들이니까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했다.

김 양은 부스터를 켰다.

위이이이잉-

높은 고음과 함께 힘을 받은 엑소슈트가 무너진 자세를 잡고 점프했다. 실시간으로 깊어지는 구덩이 밖으로 나온 김 양. 너덜거리는 발목을 붙잡고 나뒹구는 병사들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숙여!]

투가가가가가각!

울룩불룩 올라오는 땅바닥을 향해 총알을 박아넣으며, 부상병들을 하나씩 잡아끌어 마을 입구로 간 김 양에게 마루가 무전을 보냈다.

[쥐들이 땅굴 판다. 조심해.]

진작 말하지.

[이미 당했음.]

[너도?]

[난 괜찮음. 5명 발목 나감.]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버텨.]

대답 대신 방아쇠를 당기는 김 양이었다.

[화염방사기. 아래로 뿌리셈!]

김 양의 말에 따라 땅바닥에 화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땅바닥을 달구기 시작하자, 울룩불룩 올라오던 땅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화염이 치솟기 시작했다.

오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화르르르륵!

마루는 던져놓은 네이팜을 터트리며 달렸다. 네이팜과 폭탄의 위력은 상당했다. 얕은 땅굴은 네이팜의 열기와 폭발의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놈들이 땅굴을 파서 마을 밖으로 도망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네이팜과 폭탄을 터트려 몰이를 한 뒤, 한 방에 날려버려야 했다.

마을 중앙 공터에 도착한 마루가 네이팜과 폭탄에 기폭장치를 설치했다. 타이머와 무선 격발 장치 2종류를 박아 넣었으니, 타이머를 작동하면 따로 격발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30분 뒤에는 무조건 폭발할 것이다.

마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불꽃과 폭음이 마루와 함께 달렸다.

“드론! 드론으로 확인해!”

저 앞, 마을 입구 쪽에서 분전하고 있는 김 양에게 마루가 소리쳤다. 김 양은 고개를 끄덕이고 엑소슈트 어깨에서 드론을 사출했다. 낮은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떠오른 드론.

“마을 중앙 공터!”

[알겠음]

두 대의 드론이 사방이 불바다가 된 마을을 가로질렀다. HUD에 떠오른 영상. 불길이 없는 마을 중앙 공터에 바글거리는 쥐떼.

[쥐들 바글바글함.]

“좋아. 사람들 비키라고 해.”

마루가 폭탄 꾸러미를 들었다.

[비키셈.]

부상병들과 병사들이 마을 입구에서 주섬주섬 비켰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장막 위로 폭탄이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불꽃으로 틀어막힌 입구가 뚫렸다.

“다들 서둘러!”

[나가셈!]

폭발로 인한 연기가 걷히기도 전, 병사들이 마을 밖으로 나갔다. 김 양까지 나가는 것을 본 마루가 격발 장치를 눌렀다.

콰아아아앙!

마을 중앙 공터에서 커다란 불꽃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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