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16
주 방위군 지휘소
지휘관과 연방수사국 요원은 마루와 김 양, 그리고 탈출한 병사들이 가져온 영상을 확인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맙소사.”
“······.”
장갑차에 갇혀있던 병사들을 구조하자마자 영상을 받았으니, 조작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보고 있는 이 영상이 사실이라는 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
쥐들이 이상했다. 아니,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매복, 기습, 통신차단, 유인도 모자라 땅굴과 함정까지.
지휘관은 곧바로 주 방위군 사령부에 연락했다. 연방수사국 요원도 본부에 보고했다.
“비상사태입니다.”
“추가 인력이 필요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래, 이성은 인간의 본질이었고 무기였다.
그래. 만물의 영장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괴물 쥐 습격 사건은 인간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사건이었다.
“지금 당장 생존자들 증언 확보해!”
미친 괴물 쥐가 어떻게 마을을 공격했는지 파악해야 했고
“국방성에 바로 올리라고!”
당장 지금 있는 자료도 최우선 보고해야 했다. 연락이 끊긴 마을이 미국 전역에 수십 곳이 넘었으니까. 그렇게 많은 마을이 전부 미친 쥐에게 당한 것이라면 상황은 끔찍했다.
지휘소가 부산스럽거나 말거나.
김 양은 한숨을 폭 쉬었다.
[샤워하고 싶음.]
제발.
이제 좀 쉬자는 김 양의 애처로운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루.
“그래. 있다가 질질 끌리기 전에 가자. 타라.”
위이이이잉-
김 양을 뒤에 매단 오토바이가 슬금슬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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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폰 끔?”
“어. 아무래도 시끄러울 것 같아서.”
그 말을 들은 김 양이 슬쩍 폰을 꺼내더니 전원을 끄는 모습. 그러고 보면 김 양은 따로 누가 전화하고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왕따는 아니고 애초에 친구가 없었나? 하긴 월드 축산 경리로 위장한 킬러였는데 친구가 있을 리가. 요즘 자주 붙어 다녀서 그런지, 같이 다닌 시간이 그래도 좀 쌓여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마루였다.
‘간호사랑 나이가 비슷하지··· 아니었네.’
간호사는 4년제 간호대학을 졸업했고 병원 경력까지 있었다. 마루와 비슷한 또래. 그에 반해 김 양의 나이는 대충 좀 어렸다.
‘22이었나? 23살이라고 했었나?’
고개를 숙였던 김 양이 데굴 눈을 굴리자 마루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미묘하게 안타까운듯한 눈빛?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뭐임?”
“아니. 그냥. 씻고 뭐 할 건데?”
“한숨 푹 잘 것임. 고기 먹고.”
“음. 그러고?”
씻고 먹고 자고 그럼 된 거 아닌가? 근데 갑자기 왜 이런 걸 묻지? 김 양이 갸웃했다.
“수영장 공사도 다 끝난 것 같은데, 푹 쉬고 내일 수영장이나 갈까?”
“좋음! 좋은 생각!”
오오- 피곤했던 것이 싹 가신 것처럼 활발해진 김 양이었다.
“그럼 푹 자고 내일 보자.”
촤아아아악-
몇 번을 샤워했는데, 네이팜 냄새와 쥐 내장 냄새가 생각보다 잘 빠지지 않았다.
어떤 영화에서는 새벽에 맡는 네이팜 냄새가 상쾌하다고 하더니 구라였다. 터진 내장 냄새도 마찬가지. 터진 건더기가 전술화랑 특수복 하의에 튀었을 뿐인데도 냄새가 뱄다.
특유의 불쾌함을 흘려보낸 마루는 간단하게 먹고 침대에 누웠다. 최고급 자재로 꾸며진 침실 천장엔 흔한 얼룩 하나 없었다.
······
마루는 눈을 감고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인적없는 마을.
전기가 끊긴 집안은 캄캄했다.
밝아지는 창문 밖, 사방이 불바다로 변했다.
타오르는 불길과 치솟는 검은 연기.
그리고 도토리 껍질 군모를 쓴 앙증맞은 다람쥐가 조그만 포크를 들고 달려들었다.
다람쥐? 포크?
띠띠띠띠- 띠띠띠띠-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마루는 황당했다.
‘개꿈인가?’
요즘 스트레스를 받았던가? 별로 스트레스는 없었던 것 같은데. 잠깐 눈 좀 감았더니 잠들어 버렸고 꿈도 이상한 걸 꿨다.
마실 나갔다 온 셈 치면 딱히 피곤할 것도 없었지만, 일주일 넘게 구른 김 양을 핑계 삼아 푹 쉴 요량이었는데 꿈자리가 영.
‘이상한 쥐새끼들 때문에 그런가?’
하긴 다람쥐도 쥐는 쥐니까.
마루는 대충 수영장으로 향했다. 찝찝한 마음을 수영으로 풀려고 했더니, 어쩐지 물에 들어가기 싫어졌다.
‘PTSD는 극복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익사할 뻔했던 일로 생긴 트라우마는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씩이랬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굳이 물에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햇살도 좋았고 일광욕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
마루가 선글라스를 쓰고 자리에 누우려고 할 때, 후드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기···.”
음성 변조된 후드의 목소리. 어딘지 주저하는 듯한 말투에 마루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 눈을 마주쳤다.
“무슨 일이죠?”
“저.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저한테 계속 연락이 와서···.”
그러고 보면 후드. 자기 발로 들어온 애였지.
정보기관 쪽인지 정부부처 라인인지 모르겠지만, 그쪽이랑 연결됐었던 애인지라 마루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이쪽을 달달 볶은 듯했다.
“그랬습니까?”
“······.”
‘중요한 일인 줄 알았네.’ 혼잣말한 마루가 선글라스를 제대로 쓰고 선베드(sun bed)에 자리를 잡았다. 마루의 신경 쓸 것 없다는 반응에 후드가 발을 동동 굴렀다.
“연락이 안 되면 온다고 하던데요?”
“여기로? 온다고? 누가요?”
“전략사령부인가? 거기랑 연방수사국에서도 그렇고 아? 해병대에서도 감사 인사하러 온다고. 길버트 브라운 중령이 그랬습니다.”
“전부요? 여기로 오겠다고 했습니까?”
“네.”
“미치겠네.”
느긋하게 쉬어보려고 했더니, 왜들 난리인지.
쓸데없는 일 생기기 전 손을 쓸 필요가 있었다. 마루가 휴대폰 전원을 켜자마자 전화기가 전신을 비틀었다.
웅웅 윙윙 앵앵 몸부림치며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쌓였다고 우는 전화기.
마루는 전부 거르고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연락이 힘듭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덴 브라운 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앞에 대기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어지간히 급했는지 의례 하던 인사도 생각한 과장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전화 좀 꺼 놓고 그랬습니다.”
[어디 다친 건 아닙니까?]
“예. 괜찮습니다.”
[후- 리온 마을에서 있었던 일은 들었습니다.]
‘들었다.’는 부분에 악센트를 주는 것을 보아하니, 쥐떼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쥐떼 말이군요.”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항공지원이 어려운지라. 상황이 심각합니다.]
확실히 단순한 괴물 쥐가 아니었다. 지하연구실에 있던 쥐들도, 도난 병원에서 마주한 쥐들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어제 마을에서 만난 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치 사람과 같은 반응에 독전관 역할을 하는 놈들까지 있었으니까. 판단력과 단체 행동을 보면 계급이 뚜렷한 일종의 군대처럼 보였다.
[게다가 연락이 끊긴 주변 마을을 확인하러 간 요원들이 절반 이상 실종됐습니다.]
함께 했던 국토안보국 요원들이 주변 마을 탐색한다고 흩어졌던 것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실종이라니. 안타까웠다.
“엑소슈트나 기갑병으로 정찰하는 게 좋습니다.”
계속 뺑뺑이 돌 생각 없었다.
“참. 여기 찾아온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국토안보국 쪽 사람 아니면 누가 와도 문 열어주지 않을 겁니다. 헬기 타고 오는 거야 막을 수 없겠지만, 추락사고 나지 않겠습니까? 근처가 강과 호수라 새들 많던데 말입니다.”
요새화를 왜 했겠는가? 아무나 오고 싶다고 들여 보내주고 그럴 거면 이렇게 안 했지. 헬기 타고 와도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문은 열어주지 않을 거다. 그렇게 하늘에서 알짱거리다 버드스트라이크 당하는 건 그쪽 책임이고.
마루의 말에 덴 브라운 과장은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니까 국토안보국 말고 다른 애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대화는 국토안보국이랑만 하겠다는 소리였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옴팡 뒤집어쓰는 건지 갑갑했다.
당장 연방수사국에서는 블라디마루를 1급 위험인물로 지정하고 근접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군부에서는 험난한 시기가 예상되는 만큼 영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블라디마루를 군인으로 영입해 합중국의 방패와 칼을 상징하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캡틴도 아니고.’
버지니아에서는 동아시아 첩보 관련해서 순직자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동양계 초인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인 만큼 블라디마루를 내놓으라고 소리 높이고 있었다.
덴 브라운 과장이 생각하기에 블라디마루는 폭탄이었다. 터지지 않게 살살 다독이면서 터트릴 때와 장소를 잘 골라야 하는 폭탄.
근데 폭탄을 군인으로 하자?
적당한 계급 달아주고서 까라면 까라. 귀관은 지금부터 히어로다. 합중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이자 간판 히어로. 그러니까 악으로 깡으로 굴러라. 명령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터지는 거였다.
연방수사국? 1급 위험인물로 지정해서 감시? 보호관찰? 미쳤나?
이건 버지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첩보? 애초에 블라디마루와 연이 닿았던 쪽은 버지니아였다. 그런데 간 보다가 깨졌으면서 다시 돌려달라? 그래서 어떻게 통제하려고? 약물 세뇌하려고? 자살하고 싶다는 건가?
이제까지 확인된 정보를 규합해 봐도 신체능력 강화자들이 다수 발견된 일본에서도 블라디마루와 견줄 만한 능력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활동 영상만 봐도 그랬다.
그런 만큼 블라디마루는 살살 구슬려서 쓰는 게 맞았다.
당장 지난밤 마을 사태만 해도 그랬다. 그가 없었다면 몰살이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투입된 병력이든 조사단이든 계속 잡아먹혔겠지.
[다른 기관 쪽과는 연락할 생각이 없다고 알면 되겠습니까?]
“예. 지금도 많이 피곤합니다.”
허-
다른 기관을 배제하고 국토안보국 산하에서만 활동하겠다는 건데. 서로 신뢰가 어느 정도 쌓였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귀찮은 일은 전부 피하겠다고 하는 건가?
‘둘 모두겠지.’
하나는 확실했다. 블라디마루와 일행들은 거위였다. 배가 갈리지 않게 보호해야 하는.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엑소슈트와 기갑병 말입니다. 어제 말했듯 시간이 걸립니다.]
엑소슈트와 기갑병 숫자가 쌓일 동안 김 양이라도 굴려달라는 소리. 마루가 고개를 돌려 수영장을 봤다.
수영장에는 김 양이 물에 둥둥 떠 있었다. 수영한다고 들어가 놓고는 시체처럼 둥실둥실 멍하니 표류 놀이를 하는 모습.
“미스 킴도 일주일 넘게 현장에서 굴러 피로가 쌓였습니다. 당분간 다른 일을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쥐는 정말 위험합니다.]
마루는 문득 꿈이 생각났다. 도토리 군모를 쓰고 날카로운 포크를 든 다람쥐가 나온 꿈. 시간이 지난다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몰랐다.
쥐도 그렇지만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터진 사건을 생각하면 좋지 않았다. 똑똑해진 쥐를 넘어 곰이나 늑대가 그렇게 변한다면?
아니, 거의 100% 변할 게 분명했다. 일본에서 괴수 고양이는 이성을 보였으니까. 추격과 각개격파를 노렸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단체행동을 했었고.
“쥐만 그런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일본 괴수 고양이에 대한 보고 기억하시죠?”
끄응-
자기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힘 줄 때 내는 소리를 낸 덴 브라운 과장이었다. 사방팔방에서 사건이 터지고 있어, 솔직히 한계였다.
[야생동물이나 반려동물, 가축들까지 변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립니까?]
“예. 거의 그럴 겁니다.”
변하는 건 확실했다. 전부가 변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에서도 그랬으니까.
“똑똑해진 놈들은 뇌나 심장을 먹은 놈들일 겁니다. 변종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랬으니까요.”
[···제물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겠군요.]
“맞습니다. 그 쥐들도 마을 하나를 잡아먹고 그렇게 됐을 테니까요.”
[하- 옐로우 스톤 인근 마을을 습격한 곰과 늑대도 똑똑하게 변했다고 봐야겠군요.]
“예. 단순한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사냥하려 한다면 희생자가 속출할 겁니다. 희생자를 잡아먹을수록 놈들은 더 영악해질 거고요.”
정신이 번쩍 든 과장이었다. 옐로우 스톤 공원에서 벌어진 사건이 방송을 탄 뒤, 그리즐리 베어와 회색 늑대 사냥을 하겠다고 전국에서 모인 사냥꾼들이 공원으로 들어갔다.
지금 이야기대로라면 사냥꾼들은 전멸이었다. 그리고 더 큰 위협이 된 짐승들이 마을과 도시를 덮치겠지.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