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20화 (220/280)

러스트 [RUST]-220

왓츠업 TV, 최고참 PD인 마이클 뉴먼은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갱에게 납치, 폭행, 그리고 불로 지져지는 고문까지.

성공적으로 수술했지만, 흉터는 어쩔 수 없었다. 마른오징어처럼 변한 손을 가리기 위해 장갑을 끼고 다녀야 했고, 일그러진 한쪽 얼굴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썼다.

“오우 SHIT!”

“저 새끼 얼굴 튀기다 만 것 같은데.”

“어디? 저거?”

“오- 프라이 페이스 아니냐?”

“설익은 거 같은데?”

“익히려면 화끈하게 바짝 익히던가.”

“남자라면 바짝. 시커멓게 익혀야지. 검-게- 피스-”

낄낄낄

“야- 그냥 마스크 벗고 다녀라.”

“존나 쿨하게 생겼네!”

“마법사 영화 끝판 악당급 면상일 거 같은데. 그 코 없는 새끼.”

“어이. 마스크 좀 내려 보라니까.”

세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화상 입은 사람에게 혐오적인 발언이나 폭언을 하는 자들도 있었고, 생긴 걸 꼬투리 잡아 해코지하는 자들도 있을 지경.

“버러지 같은 것들.”

마이클은 길바닥에서 시비 거는 자들을 지나쳤다. 이곳은 디트로이트, 많이 회복됐다고는 하나 어둠이 깊은 도시였다. 시커먼 어둠이.

순찰하던 경찰 2명이 모여있는 자들을 향해 다가섰다.

“어이 거기 모여서 뭐하는 거야?”

“선량한 시민을 경찰이 협박?”

우-우-우-

“야 찍어- 찍어-”

“폭력 경찰. 씨발 쩔어!”

마이클은 그런 거리에서 고개를 돌렸다.

부사장이 사장 자리에 취임하면서 공석이 된 부사장 자리에는 마이클 PD가 올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부사장 자리가 날아간, 마이클 PD가 은퇴하리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더 정열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마이클은 왓츠업 TV의 실세 가운데 하나였고, 사고 이후 성격이 변했어도 그를 따르는 직원은 많았으니까.

텅 빈 거리를 얼마나 걸었을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이가 10m는 훌쩍 넘어 보이는 철근 콘크리트벽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멀찍이 공사하는 것을 봤을 때는 그런가 싶었는데, 직접 보니까 확실했다.

이건 요새였다.

쓸모없다고 평가받던 요새는 시가전에서 재조명되고 있었다. 대형 건물의 요새화가 그것이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심 속 요새들은 시가전의 악몽이 됐다.

‘입구가 없어? 정문이 없는 건가?’

정문이라고 할 게 없이 완전히 벽으로 둘러싸인 빌딩. 입구라고 할 만한 곳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통로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차량의 출입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마이클 PD는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런 건물이 허가 났다는 건, 국가 기관과 연관됐다는 의미였다.

디트로이트시는 폭력과 폐허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재즈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이때 이런 건물을 지었다고?

“왓츠업 TV 마이클 PD입니다. 지금 빌딩 앞에 왔는데 입구가 없군요.”

[강변 방향으로 보시면 지하로 내려가는 경사 출입구가 있습니다.]

“예. 보입니다.”

[그곳으로 내려가셔서 보안요원의 안내에 따르시면 됩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자 거대한 문이 보였다. 금속재질로 보이는 문은 옛날 성문처럼 위로 들어 올리는 구조의 문이었다.

폭과 높이가 각각 5m는 될 법한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갔다. 금속 재질 문짝의 두께도 1m는 될 법했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대체 뭘 하는 곳이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PD를 마스크를 쓴 보안요원 두 사람이 마크했다.

“마이클 PD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공항검색대처럼 보이는 곳으로 인도하는 보안요원.

“위험한 물건이나 금속으로 된 것이 있으면 이곳에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한 것을 시작으로 검역 절차까지 거친 뒤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치겠군.’

어디를 봐도 군사적인 목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여차하면 내려갈 차단벽, 바리케이드로 사용하기 좋은 것들이 적재된 복도. 내부로 적이 침입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뚫고 들어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어서 오세요.”

1층 로비에 들어서자, 후드를 깊게 쓴 사람이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왓츠업 TV 마이클 뉴먼입니다.”

PD와 후드의 시선이 서로를 살폈다. 얼굴이 가려지도록 푹 뒤집어쓴 후드. 눈이 보이지 않는 반사 고글. 하관을 가린 마스크에 장갑까지.

강박적으로 맨살을 감추는 듯한 차림새에 PD는 어쩐지 동질감을 느꼈다. 그도 그랬으니까. 후드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서먹했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변했다.

“구인광고를 하려면, 어떤 회사인지 최소한의 정보라도 있어야 하는데, 메일에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러셨군요.”

PD의 말에 후드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다시피 범죄조직이 가짜 기업을 만들어 구인광고를 했던 사건이 있었던지라, TV 채널을 통해 구인광고를 내는 것은 조금 조심스러운 실정입니다.”

당시 구인광고를 냈던 케이블방송국 몇 개가 날아가 버렸다. 소송의 나라답게, 피해자들이 선임한 변호사들 피라니아처럼 물어뜯은 결과였다.

구인광고를 냈을 뿐 몰랐다는 케이블방송국의 변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구인광고를 내보낸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구인광고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

“식품회사면 식품과 관련된 사람을 뽑기 마련이고, 자동차 회사면 자동차와 관련된 인력을 모집하기 마련인데···.”

“그렇군요. 그 부분은 대표님을 만나 뵙고 직접 이야기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후드가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후드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대표님께서 지금 작업 중이셔서 잠시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 네.”

PD는 후드의 어휘 선택에 눈을 깜빡였다. ‘업무’를 보고 있다고 하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 대표인데 무슨 작업을 한다는 거지?

그렇게 잠시 뒤, 한 남자가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양인이었다.

‘설마 저 사람이 대표는 아니겠지?’

너무 어려 보였다. 고등학생? 대학생이나 될까? 어떤 헤비급 복싱 선수의 16살 때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 유명 프로레슬링 선수의 16세와 비교해도 어려 보이는 외모.

‘비서인가?’ 했던 생각은 그가 다가오면서 싹 사라졌다.

!

드럼통 모닥불이 타오르는 밤. PD의 눈동자에는 그날 밤이 보였다. 일렁이는 공간. 날카롭게 벼려진 살기. 갱들이 분리됐던 일들이 떠올랐다.

어째서? 왜?

찌르르 울리는 감각. 오도독 소름이 돋아 오르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필사적으로 힘을 줬지만, 전신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그분이 다가왔을 때, 마이클 뉴먼은 깨닫고야 말았다.

아--- 신이시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날 밤의 증거가. 그날 밤의 구원이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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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던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마루가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이루어지리라.’ 느낌이랄까? 김 양은 밖으로 나가는 PD의 뒷모습을 보곤 잠시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음.”

뭘 보고 괜찮다는 거지?

“눈빛이 진실함.”

“······.”

그런 눈빛이 진실한 눈빛이라는 거냐?

구인광고는 PD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후드와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것으로 보아, 믿고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쪽으로는 전문가이기도 하고.

“나갈 사람들은 나가고 있습니까?”

마루의 질문에 후드가 말을 아꼈다.

“그게 좀···.”

빌딩은 최고급,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말 그대로 돈을 물 쓰듯 써서 만들었으니까. 그런 곳에서 살다가 갑자기 나가라고 하니, 절대 나갈 수 없다는 사람들이 대다수.

숫자가 적으면 모를까 내보낼 사람이 더 많았다. 500명 가운데 400명 넘게 내보내야 하는데, 나가지 않고 버티겠다는 상황.

“3일이라고 했으니, 시간 되면 바로 강제 퇴거 들어갑니다.”

“그렇게 강제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곳은 디트로이트였다. 그리고 내보내기로 한 사람들은 본래 이 근방에 살던 사람들. 그 말은 총화기로 무장한 사람들을 강제로 내보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마루는 쓰게 웃고 말았다.

“남의 집에 들어와서 안 나겠다고 하는 건데. 자리 깔고 앉는 것도 모자라, 집주인을 협박하면 정당방위 들어가야지 별수 있나요.”

“······.”

“무엇보다 그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거, 지금까지 공짜로 먹어댄 거 아닙니까? 그 가족들까지 전부 데려와서 그랬으면 됐지, 여기에 그냥 눌러앉겠다고요? 양심이 있답니까? 공사할 때는 빨리 마무리 짓는 게 중요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공사가 끝났으면 알아서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그래놓고 안 나가겠다? 총으로 무장했다? 자살하고 싶나 보죠.”

자살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듯한 마루의 말에 김 양이 격하게 동의했다.

제일 나쁜 건, 그 사람들 하는 일도 없으면서 고기를 축냈다는 거. 대형 냉장고에 가득했던 고기가 일주일 만에 텅 비었다는 말에 김 양은 분노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수면 가스를 써도 되니까. 대화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싶으면 바로 가스를 써버리세요.”

“···예.”

칼에 피를 묻힐 것도 없었다. 재워버린 뒤 밖에 던져버리면 될 일이니까. 그랬는데도 엉겨 붙는다면야 뭐. 김 양이 출동하면 될 일이었다.

[꼭 내보내야겠습니까?]

덴 브라운 과장의 목소리는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네. 그 사람들 기본이 안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자신과 김 양이 바빠서 여기저기 계속 불려다녔으면 그런 작자들 배만 불려줬을 거 아닌가?

블라디마루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국토안보국도 상황이 미묘하긴 했다. 나가라는 인원 가운데 삼 분의 일은 전직 요원이나, 현직 요원의 친인척이었으니까.

공사를 빨리하면서 동시에 보안과 경비를 탄탄하게 하려면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보안과 경비니 최소한 믿을 수 있어야 했고 그럼 결국 인맥과 혈연으로 연결되기 마련. 그쪽에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는데 마냥 무시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들 덕에 별 탈 없이 공사를 마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공사가 끝났으면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지요. 가족들까지 모조리 데리고 돈 것도 모자라, 나가라고 했더니 애들 방패로 삼는 작자들도 있더군요. 그 사람들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덴 브라운은 블라디마루의 강경한 태도에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쌓인 물자가 가득하고 빈방이 넘치는데도 주인이 나가라고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사상자가 생기는 건 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발로는 안 나가겠답니까?”

[전략사령부와 질병통제센터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의회에 보고하겠다고 하더군요.]

여차하면 그놈의 의회 명령이라는 걸 들고 설치겠다고 하는 모양.

“그러라고 하세요. 안 나간다고 하면 그럼 강제로라도 내보낼 테니. 자발적인 퇴거는 오늘 저녁까지니까. 시간 되면 바로 내보낼 생각입니다. 수송차량이나 넉넉하게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시간이 됐다.

“가스 틉시다.”

마루는 단 1초도 더 기다리거나 않고 바로 가스를 틀었다. 순식간에 거주 층에 가스가 가득 찼다. CCTV를 깨부숴 버린 복도도 있었고 여기저기 나가지 않겠다고 바리케이드도 쌓아 놓은 모습.

“좋게 이사할 시간을 줬더니 하는 짓이 참. 봤지? 바리케이드?”

[봤음]

“일단 진입로부터 만들어.”

[알겠음]

김 양이 엑소슈트로 진입로를 만들면, 보안요원들이 들어가 마취 가스에 잠든 사람들을 끌어내기로 했다.

영차영차 김 양은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진입로를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널브러진 사람들. 진짜 총을 들고 있었다.

[총 봤음?]

‘감히 내 고기를 먹어놓고 총?’, ‘이것이 배은망덕?’ 김 양의 분노 지수가 하늘을 뚫었다.

“봤어. 참아라. 어차피 내보낼 사람들이다.”

[······.]

바리케이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만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들이 미쳤는지 방문에 열쇠를 따로 달았다.

[여기도 잠겨있음.]

비상시를 대비해서 강화문을 달아 놓은 게 오히려 손이 가는 일이 됐다.

결국, 보안요원들과 함께 하나하나 문짝을 따고 들어가서 마취된 자들을 하나씩 끌고 나오는 일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김 양의 분노조절 잘해와 보안요원들의 고생으로 일이 좋게 끝나나 했지만, 역시 미합‘중국’은 쉽지 않았다.

[레빗 방송국에서 빌딩에 대한 의혹 보도를 냈습니다. 지금 방송하고 있으니 보고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덴 브라운 과장의 문자를 받은 마루가 TV를 켰다.

[···이 영상은 디트로이트에 있는 어떤 빌딩의 내부 모습입니다.]

텅 빈 지하주차장 한쪽 통제 구역의 모습. 위압적으로 드러난 접근 금지 표시들. 복합장갑으로 만든 벽과 수직 개폐식 차단문이 찍혀있었다. 요새와 같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긴 영상 뒤로 진행자가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이상한 빌딩의 소유자는 누구이며, 무슨 목적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었을까요? 잠시 뒤에 해단 건물을 공사했던 인부들과 경비를 담당했었던 분들을 만나보겠습니다.]

하? 이거야 원.

마루가 어이없어하는 찰나, 웅- 웅- 덴 브라운 과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 끝나고 이야기 하자더니.’

“예.”

[지금 방송 봤습니까?]

“네. 역시 그냥 곱게 보내지 않을 걸 그랬나 봅니다.”

[그 방송 말고, 말입니다.]

덴 브라운 과장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레빗 방송 말고, 다른 방송사 말입니까?”

[왓츠업 TV. 지금 바로 돌려보세요. 지금.]

마루가 채널을 돌리자. 커다란 문구.

화려하게 금박이 샤라랑 뿌려지는 액자 뒤로 굵직한 글씨가 보였다.

[구원의 방주. 모집]

[당신의 영혼과 육신을 지킬 가장 안전한 곳]

[-H-O-L-Y---H-O-L-Y-]

[그분께서 항상 살펴주시고 지켜주시는 유일한 방주]

[각 분야에서 실력 있는 분들 모집합니다.]

······

······

어? 그러니까 지금.

······

······

[헌금과 기부는 종말에 대비하는 우리 모두의 사랑과 믿음입니다.]

oooo0♥♥♥♥0ooo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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