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21
왓츠업 TV
마이클 PD는 경건하게 두 손을 모았다. 장갑을 낀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둔탁한 감촉. 화상 때문에 손가락의 촉각을 거의 잃었기에 느껴지는 것은 뻣뻣함일 뿐.
“광고주님 잘 만나고 오셨나요?”
“아- 그래. 광고주님이셨지.”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반응이 아니라, 어딘가 녹아내린 것 같은 PD의 반응에 여직원이 ‘어라? 무슨 일?’하는 표정이 됐다.
PD의 머릿속은 광고로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콘셉트는? 전 영역에 걸쳐 사람을 모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분명 이곳저곳에서 찔러보는 놈들이 생길 테니까.
그곳은 분명히 방주였다. 그것은 이 세계가 침몰할 것이라는 예언.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확정된 현실. 그렇다면 종말이나 음모론은 어떨까?
미국은 음모론의 나라였다. 더 황당한 것은 음모론이라고 치부됐던 것들이 사실로 밖혀진 것도 많았고. 그래서 그런지 생존주의자들이라든지 음모론자들도 많은 나라였다.
‘아니야. 광고에 종말론이나 음모론이 드러나면 이상한 자들이 몰릴 수 있어.’
현실적이면 좋을 텐데.
‘현실이라··· 현실.’
여러 가지 사건이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완전무장한 주 방위군이 자주 보이는 일, 디트로이트 인근 마을 가운데 마을 주민 전부가 실종된 사건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터지고 있었다.
‘몇만을 감당할 수 있는 물자.’
방주의 규모나 시설이 너무 과도했다. 마을 사람 실종? 많아도 몇백 단위였다. 그게 그렇게 거대한 요새가 필요할 이유가 될까?
주 방위군이 완전무장하고 출동한다는 것은 범죄자들이고 뭐고 함부로 준동하지 못하는 억지력이 됐다. 주 방위군이 있으니 과한 방벽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게다가 그날 밤 그분께서 보여주신 위엄이라면 무장했답시고 설치는 범죄자들 따위야 수십. 아니, 수백도 정리하실 수 있으리라.
그러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방벽이 필요한 걸까?
그분이 방주를 만드셨으니, 종말은 확정적이었다.
어떤 종말이길래 그런 방주를 만드셨을까?
10m가 넘는 철근 콘크리트벽이 왜 필요할까?
복합장갑으로 만든 문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그분이 하신 일이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분의 뜻을 알고 싶었고, 그분의 뜻이 이뤄지도록 돕고 싶었다.
그분이 신적인 존재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분은 죽을 사람을 살려주셨고, 복수를 해주셨고 치워야 할 쓰레기들을 손수 치워주신 분이었으니까.
양심이 있고 은혜를 안다면 그분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은혜를 갚아야 했다.
장갑을 낀 손이 옆에 있는 책과 필통, 티슈케이스를 잡아 모양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벽. 높이 10m에 두께가 5m 됨직한 무식한 구조체.
‘벽이라.’
인간과 인간의 전쟁은 아닐 것이다. 벽은 폭격이든 포격이든 결국 무너질 테니까. 그렇다면 종말은 폭격과 포격으로 이뤄진 전쟁은 아니라는 소리.
벽. 목책. 석벽. 성벽.
PD의 머릿속에서 벽과 관련된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목책에서 성벽으로 넘어가는 이미지들. 옛날 마을 외곽을 두른 목책에서 중세의 성곽까지.
옛날 사람들이 목책을 두른 이유는?
야생동물과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야생동물과 외적?”
“예?”
그러고 보니 최근 야생동물 때문에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 인근에서 발생한 사건.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터진 사건 말이야. 그러니까 식인 늑대랑 곰은 어떻게 됐지?”
“유명한 사냥꾼들이 모여서 공원 안으로 진입했는데요.”
여직원의 답변이 미묘했다. 그러니까 진입한 것을 실시간으로 본 것 같은 어투?
“사냥꾼들이 사냥 영상을 라이브로 올리고 있나?”
“예. 조금 전까지 보고 있었어요.”
뉴투브에 접속해 사냥꾼들의 라이브 영상을 틀자, 유명한 사냥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실시간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유명한 멧돼지 사냥꾼 닐스보어를 시작으로 50구경 총알을 쓴다는 킬50, 로키산맥에서 레인저를 한다는 리얼헌트, 크로스 보우와 리커브 보우를 주력으로 쓰는 나우보우, 오버레인, 장거리 저격으로 사냥을 즐기는 블랙스코프까지.
한가락 한다는 사냥꾼들이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사냥하는 모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친구들 이것 보라고. 이게 바로 흔적이라는 거야. 사냥의 기본이자 시작이 뭐라고 했었지? 그래 추적이야. 추적.]
[멧돼지나 잡는 텍사스 촌놈이 추적을 알겠어? 돼지 새끼들은 먹이가 있는 곳으로 꾸역꾸역 내려오는 것들이잖아. 뭘 했겠어? 길목 잡고 방아쇠나 당겼겠지. 그게 사냥인가? 안 그래 친구들?]
리얼헌트와 그 일행들이 발자국을 보여주고 있었다. 쿡-찍힌 짐승의 발자국 옆에 한 명이 자기 발을 가져다 댔다. 성인 남성의 신발 크기만큼 큰 발자국에 사냥꾼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발자국 모양은 그레이 울프인데. 이렇게 큰 건 나도 처음이야. 발자국의 크기와 깊이로 대충 놈의 크기를 알 수 있는데···. 씨발 괴물이네. 이거 진짜 괴물이야. 핫핫핫!]
걸죽한 입담 속에 숨겨진 당황스러움이 영상에서 느껴졌다. 같이 있는 동료도 웃고 있지만 영 불안한 느낌. 그걸 알았는지 리얼헌트가 웃음 소리와 함께 들고 있는 총을 소개했다.
[짐승 새끼들이 사람을 공격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말이야. 바로 이 친구가 떠오르더군. 신사숙녀 여러분께 오늘 소개해 드릴 친구는 바로- .700 니트로 익스프레스 (.700 Nitro Express) 더블배럴 엘리펀트 건입니다.]
[핫핫핫- 600 니트로가 아니라 700 니트로! 요단강 건너 천국행 익스프레스 특급. 자- 이 든든한 총알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
.700은 구경을 의미하는 숫자였다. 0.50 구경보다 더 큰 총알이라는 의미. 저지력을 위해서 둥근 모양으로 가공된 거대한 총알은 한 발에 100달러가 넘는 고가의 총알이었다.
더블배럴 엘리펀트 건도 일반 샷건이 아닌, 주문 제작한 더블배럴 라이플에 탄약도 최강의 총알. 엄청난 크기의 늑대 발자국에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조금씩 밝아졌다.
[우리 천국행 익스프레스에 탑승할 손님이 기다리기 전에 가보자고 친구들.]
[다시 말하지만, 사냥의 기본이 뭐라고 했지? 그래 추적. 같이 추적하는 거야. 그래서 놈들에게 천국행 열차를 선물해 주면 우리 승리!]
PD는 다른 사냥꾼의 영상으로 돌렸다.
50구경 총탄을 사용하는 킬50의 채널.
[··· 맹수를 사냥하는데 쓸데없이 겉멋만 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전역한 저격수나 은퇴한 군인, 용병 같은 느낌을 풍기는 사내가 총알을 꺼내 들었다.
[어떤 사냥꾼들이 말하더군요. 군용 총알은 맹수사냥에 적합하지 않다. 그런 말들이죠.]
12.7mm 탄을 집어 든 킬50이 카메라 앞으로 총알을 내밀었다. 1달러 지폐 길이와 비교해도 작지 않은 총알. 생각보다 큰 총알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맹수라. 여러분은 어떤 맹수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자? 호랑이? 코뿔소? 악어? 고릴라? 물론 그 맹수들 전부 무서운 게 맞습니다. 위험한 맹수지요.]
[하지만 단언하건대, 지구 역사상 제일 무서운 맹수는 인간입니다.]
채팅창에서 긍정의 댓글들이 쏟아져 올라왔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50구경 총알은, 역사상 최고의 맹수를 대량 살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알입니다.]
[가격은 한 발에 3~4달러. 그런데 코끼리를 잡는다고 하는 사냥용 총알은 한 발에 100달러가 넘습니다. 과연 코끼리용 총알이 의미가 있을까요? 한 발에 100달러짜리 총알을 써야만 사냥일까요?]
[심지어 지금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잡는 일인데 말입니다.]
순간, 킬50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동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빠르게 달렸던 댓글이 순식간에 훅 줄어들었다.
(리얼헌트가 늑대 쫓고 있다!)
(지금 막 멀리 늑대 지나갔다)
(와 진짜 커. 진짜.)
순식간에 빠지는 구독자들. 킬50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겠군요.]
마이클 PD도 채널을 옮겼다.
리얼헌트 방송은 터질 듯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채팅은 정지 상태. 어둠 속에서 리얼헌트와 동료들이 야시경으로 언덕 중턱쯤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늑대가 뒷다리 하나를 접고 쩔뚝이고 있었다.
[친구들 보여? 뒷다리를 다쳐 무리에서 떨어진 놈을 찾았다고.]
회색 늑대들은 대체로 10여 마리 정도가 모여 무리생활을 한다. 집단의식이 강한 늑대들은 동료를 버리지 않기로 유명하지만, 늙고 심하게 다친 늑대는 스스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죽음을 기다리기도 했다.
[저기 저 늑대도 아마 그런 놈으로 보인단 말이지. 거리는 대충 600~650야드 정도. 바람 방향도 딱 좋아! 역풍이었으면 놈의 예민한 후각 때문에 가까이 어렵거든. 중요한 건 추적. 추적해서 뒤를 잡았어. 그럼 다음으로는 뭐가 중요하지?]
거리는 대략 550~600m.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였다.
[그래 바람의 방향하고 거리. 급하게 접근하지 말고 바람의 방향을 유의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 움직일 때는 되도록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해서, 단단한 지면을 딛고.]
아직 겨울, 마른 잡목이 우거진 곳으로 몸을 감추며 단단한 바위를 딛고 움직이는 리얼헌트와 동료들이었다.
[그럼 다음 단계는 뭐였지? 어디까지 접근하느냐? 최대한 가까이 가.]
[뭐라고 했어? 10야드라도 가까워질수록 명중률이 높아진다고. 우리는 사냥꾼이지 저격수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멀리서 폼 잡지 말자는 소리지.]
바람의 방향을 유의하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접근하는 사람들. 늑대는 힘겹게 언덕을 오르다 지쳤는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뒷다리를 핥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다가 놓칠 것 같다고? 그러면 어때. 신경 쓰지 말라고. 다시 천천히 추적하면 되는 일이야. 그러니까 친구들 마음에 여유를 갖고 조급함을 버리라고. 알았지? 그럼 이제 지켜보라고.]
화면이 적외선 영상으로 변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마른 가지가 내는 소리로 도드라지는 겨울 숲. 우거진 마른 잡목 뒤로 몸을 숨기고 다친 늑대를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냥꾼들.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녹지 않은 눈이 사브작 밟히는 소리에 뒷다리를 핥던 늑대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고개를 들고 좌우를 살펴보는 늑대.
가만히 제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춘 리얼헌트와 동료들. 늑대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다시 뒷다리를 핥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사냥꾼들의 신경이 최고조로 집중되는 순간. 바람의 방향이 살짝 변했다. 바로 앞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사냥꾼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놈은?’
‘눈치채지 못했다.’
‘좋아. 준비.’
수신호를 하면서 자리를 잡은 사냥꾼들의 총구가 몸을 동그랗게만 늑대를 향하는 순간, 훅 들어오는 누린내.
부스럭-
우거진 옆 수풀에서 들리는 소리.
허어어억!
맨 왼쪽에 있던 사람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씨발!”
리얼헌트와 동료들의 총구가 정면에서 왼쪽으로 돌려졌다. 거대한 회색 늑대가 동료 한 사람의 머리통을 감 따듯 따버리곤 수풀 속으로 도망쳤다.
“쏴!”
투다다다닥!
파바바박!
동료들 전부 7.62mm AK 계열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연발로 쏟아붓기에 거침없었다.
그리고 그 요란한 총소리를 틈타. 오른쪽에서 매복하고 있었던 회색 늑대 무리가 달려들었다.
사냥감의 등을 잡는 완벽한 기습.
정면에 집중하게 한 뒤, 왼쪽에서 기습하는 것처럼 속인다.
인간들이 왼쪽에 총을 쏘는 동안, 총소리를 이용해 오른쪽으로 최대한 접근. 단번에 몰살.
으아아악!
흐헉--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사냥꾼들은 사냥감으로 변해 버렸다.
우득-
콰직-
일반적인 회색늑대도 큰데, 그보다 3~4배나 될 법한 괴물 늑대들의 이빨과 발톱 앞에, 사냥감들은 연약할 따름이었다.
“FUCK!”
“FUCK YOU!!”
콰아앙!
700 니트로 익스프레스 탄에 회색 늑대 한 마리가 쓰러졌지만, 그뿐이었다.
콰아앙!
총구 방향을 보고 몸을 피하는 괴물 늑대. 마지막으로 리얼헌트의 허탈한 독백이 영상을 채웠다.
[함정···.]
맹렬하게 달려드는 늑대 한 마리, 처음에 추격했던 뒷다리 다친 늑대가 멀쩡한 모습으로 리얼 헌트를 향해 주둥이를 벌렸다.
콰드드득-
붉게 물들던 화면이 정지되더니,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
······
‘해당 방송은 시청할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