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23
PD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기고 싶었지만, 광고 사태 이후엔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국을 넘어 캐나다까지 한방에 팔려버린 일이 사태가 아니면 뭔가? 디트로이트는 캐나다가 코앞이었기에 캐나다에서도 입주희망자가 오고 있는 판국이었다.
“일단 정형사도 있어야 합니다.”
[부처(butcher) 말씀입니까?]
가끔 하겠지만, 본격적으로 입주자들이 채워진 뒤에는 지금처럼 생각날 때 한 번씩 하는 방식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예. 부위별로 꼼꼼하게 해체할 수 있는 숙달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 알겠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일하거나 거기 형식으로 작업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그쪽이 부위별로 잘 분류하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족들과 이야기할 때도 한 번에 되는 일이 없었는데, 무슨 말을 하든 단번에 알겠다고 하는 PD에 마루는 헛기침했다.
[다른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거기에 정중했다. 뭔데 뭔가 아주 정중한 응대. 극존대에 가까운 어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작용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HO··· HOL···.
“총포 수리 제작할 수 있는 사람과 도검류 제작 전문가, 탄약 전문가 그쪽도 필요합니다. 각 분야 2~3명씩은 있었으면 합니다. 최대 5명은 넘을 필요 없고요.”
[건 스미스는··· 예. 알겠습니다. 입주자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할까요?]
가족들이 문제였다. 1명 들여오는데 부인과 자식을 넘어 친가와 외가, 동생과 그 처자식, 처자식의 가족의 가족 이럴 거면 어떻게 데려오나?
“본인과 부인, 자식까지만 인정하는 것으로 하죠. 예외는 친인척이 필수적인 자격증, 경력이 있는 경우, 심사를 거쳐 통과했을 때로 하고요.”
[그렇게 알겠습니다.]
아? 맞다. 여기저기서 집어넣은 사람들을 몽땅 내쫓았으니 연구 인력도 다시 뽑아야 했다.
“연구 인력도 필요합니다. 일단 이쪽에 제약 관련 시설이 있으니까 그쪽 연구직과 바이오, 컴공, 프로그램 쪽도요. 슈퍼컴퓨터가 있는데 놀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슈퍼컴퓨터 말씀이십니까? 그게 있다면 인력을 섭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최근에는 프로그래밍만 잘하면 가상실험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신형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었다.
“그럼 수고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마루는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정신적으로 소진된 느낌이었다. 기순이 새끼가 있었으면 신경 안 써도 됐을 텐데. 그래도 PD가 진짜 미친 사람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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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연구소
“바퀴벌레 샘플 연구는 어떻게 됐나? 아직도 실험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일본에서 가져온 샘플은 모두 2종류, 버지니아에서 보낸 샘플 그리고 일본에 파견된 군부에서 보낸 샘플. 각각 따로 연구하고 있었지만, 양쪽 모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변종 따개비 연구팀은 벌써 신형 지혈제, 수술보조제를 만드는 데 성공해 엄청난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쪽은 몇 개월 동안 연구했음에도 제자리걸음인지라 연구소장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유전적 특성 확인이 거의 다 끝나갑니다.”
“언제까지 게놈 지도에만 매달리고 있을 건가? 특성 파악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제성 있는 연구 아닌가? 실용성 있는 연구 말이야.”
수석 연구원은 묵묵히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소장이 다시 한 번 역정을 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발상의 전환이! 따개비 가지고도 인류 역사에 남을 약을 만들었는데 우리는 지금 제자리만 맴돌고 있어. 이게 무슨 망신이냔 말이야!”
“······.”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우리 연구원들도 같이 뛰어야 하는데 다들 도와주지를 않아. 기초연구 좋지. 게놈지도 필요하지. 그런데 저쪽은 변종 따개비 기초연구를 해서 그런 성과를 냈나? 따개비 유전지도를 만들어서 성과를 냈어?”
“······.”
“왜 우리 연구소 연구원들만 그러냐는 거야. 따개비 가져간 애들은 알아서 지혈제, 접착제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번식력을 이용한 미래 식량 자원 연구까지 그냥 넘치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1억 4500만 년 전 백악기에 나온 바퀴벌레를 가지고도 기초연구만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다들 왜 이러는 건가?”
“······.”
“일본에서 온 것도 바퀴지 않나? 크기가 커도 바퀴 아닌가? 그럼 특성을 잡아서 쓸만한 연구 주제를 뽑아야지 그걸 게놈 지도부터 다시··· 하- 정말. 이번 달까지 뭐든 결과 나오지 않으면 자네 연구팀은 해산이야. 그리 알게.”
수석 연구원은 입을 꾹 다물고 밖으로 나갔다.
“에이- 저놈 하나 때문에 아주 분위기를 망쳤어.”
수석 명찰 달고서도 기초 어쩌고 본질 어쩌고 하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따위로 돌아가니 다른 연구원들도 쓸데없는 분위기에 물들어서 자기들 하고 싶은 연구만 하기 시작한 거고. 저놈 하나 잡으면 다른 연구원들도 제정신 차리겠지.
연구소장이 작심하고 있는 동안, 수석 연구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곳에 들어올 때 조건이 뭐였던가?
다른 것은 보지 않았다. 자유로운 연구. 돈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명예를 원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연구의 자율성 하나만 보고 비밀연구소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놈의 성과. 그놈의 시장. 빌어먹을 상품성. 대체 기초연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전자 부분은 정말 조심해서 접근해야 했다.
유구한 세월을 내려온 안정적인 유전자 구조를 건드리는 게 유전공학이었다. 지능과 관계된 유전자를 찾았다고 그걸 건드리면? 그게 원인이 되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연구결과 지능과 관계된 유전자가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건드리는 놈들이 사방 천지였다.
유전자 조작을 거쳐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갖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제초제 내성을 갖도록 유전 조작한 식물이 안전하다고 목숨을 걸고 증명할 수 있는가?
매끼 자기가 유전자 조작한 식품만 먹으라고 한다면, 부인과 자식, 부모와 친인척 입에 기쁘게 쳐넣을 수 있겠나?
유전자 조작해 놓고 먹으라고 파는 놈들은 유기농, 무공해, 무항생제 최고급만 처먹겠지. 최소한 안전성이 검증되기 전까지는 팔아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수석 연구원은 지긋지긋했다.
변종 따개비 연구팀의 연구성과? 그도 봤다. 놀라운 성과 맞았다. 그런데 안전성은? 순간 지혈제, 특수 접착제, 수술보조제. 엄청났다.
하지만 안전성은? 변종 따개비 자체의 유전정보는 기존 따개비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런 변종이 생겼을까? 그런 의구심은 들지 않나?
아주 미세한 차이로 완벽히 다른 생명체처럼 변했는데. 그게 정상일까? 그런데 그걸 원료로 약을 만들어? 만든 건 좋다고 쳐 그걸 사람한테 바로 쓴다고?
진지하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수석 연구원은 컴퓨터 앞에 앉아, 분석 자료를 확인했다. 일본에서 온 괴물 바퀴벌레도 일반적인 바퀴벌레와 유전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해병대원들이 괴물 바퀴벌레에게 공격당하는 동영상.
[···쏴!]
[포위됐습니다!]
[화염방사기!]
[놈들이 눈 아래를 파고들었습니다!]
하나하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존에 밝혀진 바퀴의 습성과는 너무나 달랐으니까. 바퀴벌레가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는 것부터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총연과 화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바퀴는 자극에 민감한 벌레였다. 그런데 저렇게 움직인다고? 몇 번을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영상.
띠링-
메일 수신음.
내용을 확인하자, 위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디트로이트에 새로 생긴 연구실에서 연구 인력을 모집한다는 메일. 모집 분야는 다양했지만, 바이오 분야를 제법 많이 뽑고 있었다.
‘이런 메일을 왜 나한테 보냈지?’
아래를 읽어보니, 기관에서는 자신이 그쪽으로 들어가 연구도 하면서 일종의 정보원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곳에는 이제 미련이 없었다.
[크리리릭-]
동영상 속 바퀴벌레들이 눈 속으로 사라지는 영상을 끈 수석 연구원은 디트로이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좀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성과에 미친 소장이 발광하는 이곳보다야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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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융끼융---
끼이이이이융----
엑소슈트가 다다닥 달리다가 점프했다. 거의 40km 가까운 속력으로 내달리던 몸체가 붕 떠올랐다. 한 18m가량 멀리뛰기를 한 엑소슈트가 착지하더니 자세를 잡았다.
착- Y자로 자세를 잡고 다시 착- T자로 팔을 벌린 뒤, 허리를 착- 숙여 인사로 마무리.
[좋음.]
김 양은 흡족했다.
역시 지난 상품평을 꼼꼼하게 작성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 쥐랑 싸우면서 느꼈던 부분이 많이 개선된 모델.
위이이잉- 엑소슈트 주변을 호위하듯 드론들이 주변을 도는 모습.
드론도 2기에서 4기로 늘었다. 가용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일단 날려 놓으면 알아서 정찰, 위기경고, 이상징후 확인 같은 걸 알아서 했다.
그쪽을 알아서 하니까 신경 쓸 일이 확 줄었고, 위치 정보 보내주는 대로 바로 쏘면 되니까 일하기 편했다.
‘배터리 성능 아주 좋음.’
대략 30~35% 정도 작전시간이 늘어났다. 출력도 그렇고. 지금 뛰어 보니까 운동성능 자체가 전보다 좋았다. 김 양이 슬쩍 백정을 바라봤다.
국토안보국에서 새로 보내온 칼을 뽑아 들고 요래조래 통나무를 조각하고 있는 모습. 그냥 툭툭 힘 빼고 슬쩍슬쩍 치는 것 같은데 통나무가 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게 가능한 건가? 한 손으로 설렁설렁 조각?
‘응- 백정이면 가능.’
저게 통나무가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라고 해도 가능하겠지? 빌딩에 칼자국 냈던 걸 떠올린 김 양이 주억거렸다.
‘그럼 나는?’
엑소슈트를 입으면 자신감이 뿜뿜했다. 20mm발칸 뿐 아니라 대전차 미사일 정도는 자유롭게 들고 다니면서 쓸 수 있었다. 방어력도 많이 좋아져서 12.7mm 철갑탄 20mm 일반탄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엑소슈트의 주먹을 쥐자, 뀨우웅 모터음과 함께 꽉 쥐어지는 주먹.
파워! 힘이 느껴졌다.
기계의 힘. 과학의 파워!
힐끗-
다시 백정을 봤다.
될까?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이렇게 파워 업을 하면 백정이랑 어떻게 비벼볼까?
막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백정을 봐도 뭐라고 할까···.
우리 백정 잘한다? 그런 느낌? 응.
이제는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대충 휙휙 하는데 통나무가 슥슥 썰리고 있었다. 김 양은 이해를 포기했다. 애초에 현대전에서 칼잡이가 설친다는 게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으니까.
끼융끼융
‘근데 이 소리는 어떻게 안 됨?’
벌써 3번이나 소리 좀 어떻게 해달라고 했는데도 변하는 게 없어.
다다다닥-
뀽뀽뀽뀽----
내달리는 엑소슈트를 보며 마루는 전화를 받았다.
[···입주 신청 경쟁률이 1:200을 넘었습니다.]
“예? 200대 1이요?”
1:20도 아니고 200이 넘었다고?
[국제 뉴스에서도 화제가 돼서 그런지, 외국에서도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몰려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외국에서 신청한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습니까? 뽑는다고 하더라도 여기까지 오기 힘들 것 같은데요.”
항공기 추락사고가 2월에만 40건이 넘었다. 심지어 버드 스트라이크를 피하려 야간 이착륙을 하는 데도 그랬다. 거기에 비자 문제라든지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자가 격리 기간 같은 것을 생각하면 힘들어 보였다.
[방주에 입주할 수만 있다면 여타의 번거로움은 전부 감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서 입주 신청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루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광고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될··· 만하구나. SNS에서도 사이비니 아니니 논란이 터졌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면야. 꼭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된다면 뽑아야죠.”
웅-웅-
PD와 통화하는 도중에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의 전화가 겹쳤다.
“지금 전화 왔네요.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전화를 바꾸자, 덴 브라운 과장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건은 받으셨습니까?]
“아. 예 잘 받았습니다.”
엑소슈트와 칼 이야기였다. 훈련장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김 양을 보니 엑소슈트는 만족한 것 같았고, 통나무를 썰어본 결과 칼도 괜찮았다.
저번 칼보다 이번 것이 조금 더 탄성이 있다고 할까? 단단한 걸 베어도 손에 무리가 덜 가긴 할 것 같아서 좋았다.
[어떠셨습니까?]
“만족스럽습니다.”
내구성은 써봐야 알겠지만. 덴 브라운 과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전에서 한 번 써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마루는 순진무구하게 폴짝거리는 엑소슈트를 바라봤다. 마루의 눈빛을 느꼈는지 끼융? 고개를 돌리는 김 양.
그래, 협찬받았으면 상품평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