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24화 (224/280)

러스트 [RUST]-224

키이잉-키이잉-

김 양의 발걸음은 분노의 발걸음.

역시 믿을 놈 없었다. 분명히 며칠 푹 쉰다고 했건만, 신상품 나오자마자 다시 뺑뺑이?

협찬이면 단가?

······?

그래. 그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백정이 나서서 그럴 건 아니지?

······?

나서서 할 건가?

여튼. 그랬다.

소고기를 잘 잡아서, 잘 먹인 이유가 이것이었나? 정녕?

제일 중요한 건 그거였다.

‘너랑 나 둘 다 나가서 없는데, 여기서 일 터지면 피곤해지니까 한 사람은 있어야지 않겠냐? 그러니까 네가 가라.’

‘왜 나?’

‘협찬. 상품평. 좋아요.’

‘······.’

협찬 실전기동이라는 명분을 거역할 수 없었다. 엑소슈트를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이게 있어서 12.7mm를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고, 20mm 발칸도 쓸 수 있었다.

계속 쓰다 보니까 이게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 생존키트랑 무기, 탄약 다 합해서 100kg은 훌쩍 넘는데도 끄떡없었다. 이걸 어떻게 잃나?

키융키융

분노의 발걸음이 수용의 발걸음으로 변했다.

‘작전지역은 디트로이트 북동부 휴런 호수와 캐나다 국경 인접. 공원 쪽에 늑대가 출몰했다는 목격담이 있다고 해. 그 근처에는 늑대가 없었다고 하니까 확인해 보고 인근 지역 수색해봐.’

그러니까 집 근처에 이상한 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미리 치워버리라는 소리였다. 넓은 지역을 돌아봐야 하니까 또 밖에서 자야 한다는 말이었고.

‘백업 없음?’

‘국토안보국이고 연방수사국이고 하다못해 경찰, 주 방위군 할 것 없이 지금 사방에서 사고 나서 인력이 부족해 난리다. 따로 굴러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라.’

‘쥐새끼처럼 난리면?’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뒤로 퇴각해, 힘들면 버티고. 저번처럼 바로 갈 테니까.’

백정이 바로 온다고?

그렇다면야. 뭐.

흥-

끼융끼융

김 양은 주변을 살폈다. 도로가 있는 곳까지는 픽업을 타고 왔지만, 목격담이 있는 곳은 공원 산책로 근처,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공원 산책로 진입. 수색개시.”

[수고해.]

보병이 시가전, 산악전에서 소형 미사일이나 20mm 이상 중화기를 들고 자유롭게 이동하긴 어려웠다.

30~40kg에 거치대와 예비 탄약을 포함하면 80~100kg짜리 무기를 인력으로 옮기기 쉽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고정된 자리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으면 드론과 순항미사일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소형 미사일이라든지, 소대, 중대 지원 중화기를 들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병기가 필요했고 그 결과 나온 것이 엑소슈트와 기갑병이었다.

지진과 화산폭발, 폭설로 엉망인 일본에서 엑소슈트와 기갑병의 활약은 대단했다. 화력이야 전차나 자주포, 공격헬기에 비하면 약했지만,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서의 적응력은 충분했다.

다양한 괴수들이라든지, 은신 장비에 12.7mm 돌격기관총으로 무장한 중국군 특수부대를 타격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단점은 고가라는 점.

가볍고 얇은 장갑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리핀 복합장갑 같은 걸 써야 했다. 고출력 소형 모터도 비쌀 수밖에 없었고, 신형 배터리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엑소슈트든 기갑병이든 고성능 반도체가 많이 필요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사태 이후 반도체 수급은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었고. 이것은 다시 생산가격을 승천시키는 요인이 됐다.

김 양이 좋아할 모든 요소를 갖춘 게 엑소슈트였다. 일단 비싸고, 무엇보다 비쌌으며, 결과적으로 비쌌다. 거기에 성능까지 끝내주게 좋았으니까. 특 레어템이기도 했고. 어쩌겠나? 상품평 작성해야지.

“늑대 흔적 없음.”

동작 감지장치에도 잡히는 게 없었다.

[치익- 거기를 기준으로 12시에서 3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수색해봐.]

“알겠음.”

======

======

산책로 한쪽 있는 CCTV를 통해 안쪽으로 진입하는 엑소슈트가 보였다.

“공원 내부에 있는 CCTV랑 주변 CCTV 전부 확인해서 늑대라든지 들개라든지 찾아보고 바로 알려주시고. 오후부터 새로 입주하는 사람들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그쪽도 놓치지 말고 확인해 주세요.”

“예.”

마루는 후드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고 보니 예전과 작업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그러니까.

“사만다는 쓰지 않습니까?”

순간 파르릇 살짝 떨었던 후드가 작업을 이어갔다.

“사만다는 지금 따로 작업하는 게 있어서요.”

“인공지능 도움 없이 커버 가능하겠습니까? 인력 더 필요하지 않고요?”

통제실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은 좋지 않았다. 후드의 목소리가 살짝 튀었지만, 음성변조기가 그걸 가려줬다.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면 보안에도 문제가 있고, 사만다가 복귀하면 문제없습니다.”

그렇다면야.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별해서 받기는 하지만, 다른 기관 쪽 사람들을 전부 거르는 건 힘들 겁니다. 그러니까 새로 입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끄나풀이 있다고 가정하고 보안에 신경 써야 합니다.”

“예. 주의하도록 할게요.”

이번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 가운데 바이오 관련 쪽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몇몇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연구하고 싶다고 했고.

“아. 참. 바이오 쪽 연구하는 분들이 슈퍼컴퓨터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죠. 슈퍼컴퓨터는 언제부터 사용 가능한가요?”

“···지금요? 바로는 쓰기 어렵습니다. 프로그램 최적화 중에 있어서요.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슈퍼컴퓨터도 최적화가 필요한가?

“오래 걸리는 건 아니겠죠? 프로그램이랑 시스템 관련 인력도 곧 뽑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

“예? 예. 알겠습니다.”

웅- 웅- PD의 전화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통제실 밖으로 마루가 나가자 후드가 살짝 숨을 내뱉었다. 사만다가 너무 오래 걸리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 추가 인원이 들어오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사만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지?’

후드가 잠깐 집중력을 잃었을 때, 모니터 영상 한쪽 구석으로 뭔가가 슬쩍 지나쳤다.

언제나 PD는 정중했다. 한참 나이 많은 사람이 너무 정중하게 자신을 대하다 보니, 오히려 조금은 부담스러운 마루였다.

[다름이 아니라, 국토안보국과 버지니아 양쪽과 연관된 사람이 입주를 신청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양쪽이요? 국토안보국, 버지니아와 연관됐다고 스스로 밝혔다고요? 뭐 하는 사람인데요?”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하드웨어와 시스템, 설계, 최적화 이쪽 전문가입니다.]

“함부로 받기엔 위험한 사람이네요.”

하드웨어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다루는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국토안보국과 버지니아 양쪽과 관련된 사람이 작심하고 시스템을 장악하기라도 한다면?

?

지금껏 일 처리 하는 것을 지켜본 결과 PD도 이런 위험성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물어봤다는 이야기는, 뽑아야 할 이유가 있다거나, 뽑지 않기엔 너무 아까운 능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 사람이 이곳에 꼭 필요한 사람인가요?”

마루의 질문에 PD가 잠시 말을 골랐다.

[···예전에 대표님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저를 말입니까?”

[예. 슈퍼컴퓨터 설치문제로 만났던 적이 있다고. 슈퍼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그걸 고칠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아? 그 사람. 모듈 원전이랑 슈퍼컴퓨터 설치문제로 덴 브라운 과장이랑 같이 왔던 그 머리숱이 조금 안타까웠던 분.

“기억납니다. 근데 그 사람이 여기에 입주하겠다고 했다고요? 국토안보국도 그렇고 버지니아도 그렇고 그쪽도 전문가 부족하다고 안 놔줬을 텐데요?”

[그···]

PD가 머뭇거렸다. 뭔가 조금 당혹스러운 느낌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

[···슈퍼컴퓨터를 정말 아끼는 것 같습니다.]

??? 이건 무슨 소리지? 슈퍼컴퓨터를 아껴서 직접 입주하겠다고?

아니. 그러기는 했다. 폐기처분 슈퍼컴퓨터를 살려보겠다고 직접 왔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방금 후드와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최적화가 늦어지고 있는 모양. 슈퍼컴퓨터 전문가가 있으면 최적화든 뭐든 도움이 되겠지.

“이쪽에 한 번 입주하면 나갈 수 없다고 하세요. 굳이 나가겠다고 하면 내보내 주겠지만,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 생각 잘해서 결정하라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받으실 생각이십니까?]

“예. 일반 컴퓨터와 다르기도 하고, 여기 있는 슈퍼컴퓨터가 좀 특이한 것 같거든요.”

오류 떴다고 폐기하려 했다는 것도 그렇고 폐기하는 걸 막으려고 국토안보국이 움직였다는 것도 그랬다. 마루가 보기에도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슈퍼컴퓨터인지라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았다.

[···예.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동 쪽에서 입주 신청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중동이요?”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고 하더니, 중동에서도?

[사우디 6 왕자가 입주 신청을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영어권이나 유럽이면 몰라도 뜬금없이 중동? 그것도 사우디 6 왕자? 이쪽도 PD가 그냥 거절하기는 이름값이 크긴 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금이 필요하시면 입주를 허락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요. 왜 사우디에서 이곳까지 오려고 하는 걸까요? 사우디나 중동지역 상황이 좋지 않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부 권력 투쟁도 격화되고 있고 예멘 후티 반군과의 전황도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루는 잘 몰랐지만, 중동지역 왕족이니 귀족이니 하는 사람들 내부 권력 투쟁은 정말 살벌했다. 암살도 빈번하게 일어났고.

“상황이 위급해서 이쪽으로 피하고 싶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중동은 복잡했다. 특히 권력과 연관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 입주시켰다가 무슨 피곤한 일이 생길지 몰랐다.

거기에 아랍권이면 부인이 한 다발에 경호원까지 생각하면, 왕자 한 명 입주시키려고 했다가 한 100여 명은 들여와야 할 판.

딱히 자격증이나 능력 있는 것도 아니고. 경호랍시고 자체 무장한 100여 명이 세력을 이룬다? 좋을 일 없었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별로 부족할 일 없었다.

지금도 김 양이 열심히 ‘로동’해서 달러 벌고 있지 않은가? 협찬도 빵빵하게 받고 있고. 앞으로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현물이고 안정성이지.

“거절하세요.”

[예.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

위이이잉-

엑소슈트 주변을 호위하듯 기동하는 4기의 드론.

2 드론이었다면 전·후면 전후, 좌‧우면 좌우만 봤을 텐데, 4 드론은 전후좌우를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사각이 없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알아서 선행 정찰도 해줘 정말 편했다. 역시 4 드론.

이런 거 없을 땐 정말 어떻게 일했는지, 고생했던 회사 생활을 생각하면 아련해지는 김 양이었다. 그 고생을 했으면서도 소고기도 제대로 못 먹었던 걸 생각하니 치밀어 오르는 분노.

솔직히 그 당시에 비하면 지금은 고생도 아니었다. 소고기 복지도 확실하지, 협찬도 탄탄했다. 여차하면 백정 콜도 있으니까.

‘금괴도 있고.’

휴런 호수를 따라 3시간 가까이 수색을 했는데도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3월이지만 이쪽 동네는 아직 서늘하다고 해야 할까? 공원과 산책로 주변에는 살얼음 낀 곳도 있었고 나무그늘 아래엔 녹지 않은 눈도 조금씩 있었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서 뭘 봤다는 거지?

“동부 11구역까지 흔적 없음.”

[칙- 확인했습니다.]

2호기가 응답했다. 백정은 어디 나간 모양.

“12구역 수색 시작함.”

김 양은 북상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가볍게 소고기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수색. 거의 4시간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서서히 해가 기울어져 조금 있으면 저녁이 될 시간.

“북동부 4구역 흔적 없음.”

[삐이- 확인했습니다.]

이거 이렇게 며칠 동안 뺑뺑이만 치는 거 아니야?

없다고. 없어.

진짜 뭔 개새끼도 없는데 늑대는 무슨, 아무것도 없구만.

응?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없어?

하나도??

HUD(헤드업디스플레이)에 4 드론이 지금까지 촬영한 영상을 빨리 감기로 확인했다. 4기의 드론이 찍은 영상에도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러니까 종일 수색하는 동안 고양이고 쥐새끼고 산새고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미국 공원인데 짐승들이 한 마리도 없다고?

심지어 사람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변이 바이러스 사태라고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디트로이트 인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날씨가 서늘하다고 종일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말도 안 됐다.

찌릿-

김 양이 격철을 잡아당겼다.

철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