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26화 (226/280)

러스트 [RUST]-226

이상하다.

김 양은 자신의 머리가 둘로 나뉜 것 같았다. 이쪽에 머리통이 있는데 저쪽에도 머리가 있어서 둘이 이어진 것 같은 느낌. 머리 하나가 통으로 드론이 되어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면에는 미친 듯이 달려오는 늑대가 하나. 그리고 뒤에서 접근하고 있는 늑대 하나. 휴런 호수를 등지고 있었기에 뒤쪽 놈은 수영해서 왔다는 소리.

드론의 영상이 너무 생생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꼭 뇌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느낌. 총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총알이 갈지, 어떻게 갈지 명중할지 하지 않을지 직관적으로 알 것 같았다.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선명했다.

물에 젖은 늑대의 모습.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몸을 털지도 않고 소리 죽여 서서히 접근하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방아쇠를 당기고, 총알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늑대의 전신을 두들기는 순간,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놈이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투다다다다닥-

총알을 퍼붓던 김 양이 도로록 옆으로 굴렀다. 옆으로 굴러 총구가 흔들림에도 모조리 명중되는 모습.

필사적으로 내달리던 늑대의 머리통과 어깨에 작열소이철갑탄이 박혔다. 내달리던 관성 그대로 엎어져 긴 고랑을 만들고 늘어진 늑대를 확인 사살하기도 전, 다시 데굴데굴 구르는 김 양.

콰직-

김 양이 있던 자리를 내려찍는 거대한 발톱. 뒤에서 뛰어내린 늑대의 샛노란 눈동자가 엑소슈트를 쫓았다. 눈동자를 뒤따르는 강력한 턱이 김 양을 노렸다.

터업-

허공을 물어뜯은 턱이 재차 김 양을 노리기도 전에, 엑소슈트의 왼팔이 늑대의 코를 때렸다.

둔탁한 충격에 깜짝 놀란 늑대가 고개를 뒤로 빼는 순간, 정면을 향했던 총구가 늑대의 머리통을 향해 불꽃을 선사했다.

투다다다다닥-

크게 벌어진 주둥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불꽃. 든든하게 총알을 먹은 늑대의 머리통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쿠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늑대.

껌벅껌벅

김 양의 눈이 깜박였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갸웃.

자기가 해놓고도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

끼융끼융

이게 아니었는데.

조금 전에는 이렇게 팍- 데굴데굴 굴렀다가, 요렇게 핫- 했던 거 같은데.

툭-

뭔가 코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콧물도 아니고.

코피?

“여기 늑대 잡았음.”

[······.]

“지금 늑대 잡았다고!”

[······.]

듣고도 씹었나 했더니 먹통.

헬멧을 연 김 양이 코피를 쓱- 닦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직도 안테나가 없었다.

‘전화도 먹통이고. 이거 아까운데.’

진짜 커다란 늑대 아니던가? 이렇게 큰 늑대를 떼로 잡다니.

김 양은 어쩐지 가슴이 웅장해졌다. 뭔가 백정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 백정이 깜짝 놀라겠지?

후후-

무엇보다 박제하든 팔든 돈이 제법 될 것 같았다.

‘딱 한 마리만 챙기자.’

마지막에 뒤치기하려고 했던 제일 큰놈.

엑소슈트 소리가 어두워진 호숫가를 채웠다.

끼이이융 끼이이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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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실

나름 아끼고 애지중지한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흐트러진 모습.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슈퍼컴퓨터를 점검하는 박사.

흐트러질 머리카락이 별로 없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잭 니스 박사는 소중한 머리카락을 다시 모아 뒤로 넘기며 말했다.

“후- 그러니까. 우리 트리아에게 뭔 허접한 인공지능을 넣었다는 소린데···.”

후드가 빽- 소리 질렀다.

“사만다!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만다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죠? 불량 똥컴질이나 하니 메모리가 딸리는 건가요?”

후드가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거로 알고 있었는데, 사만다 이야기만 나오면 싸움닭처럼 변했다. 한참 전문적인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또 이런 식.

“정녕 모지리인가? 이것은 하드웨어 탓인가? 소프트웨어 탓인가? 아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과연 이 멍청한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자고로 멍청함은 본성. 그 본성을 바꾸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잔혹한 진실.”

안타까운 박사가 갑자기 연극 어투로 후드를 긁어댔다.

“보라. 이 안타까운 불량품을. 일그러진 육체의 불량함이 결국 정신에까지 영향을 끼친 증거를. 생각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야- 이 개새끼야! 너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모르냐? 그분은? 육체가 어쩌고 어째? 너도 안타까운 몸뚱이로 만들어 주마.”

후드가 다시 박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날카롭게 뻗은 손이 노리는 것은 안타까운 머리카락! 박사가 필사적으로 방어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몇 가닥을 낚아챈 후드가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아- 안 돼!”

“돼!”

“둘 다 그만.”

지켜보던 마루가 입을 열었다. 뭉클 치솟는 검붉은 기운. 환각처럼 피어오르는 무엇에 머리카락을 잡고 뜯고 말리고 엉켜있던 두 사람이 그대로 굳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

“······.”

점점 무거워지는 공기.

“가만히 듣다 보니까 말이지. 인공지능 사만다를 슈퍼컴퓨터에 넣으려고 했다는 소리네.”

“······.”

“······.”

두 사람의 얼굴이 조금씩 하얗게 질려갔다. 뭔가 짓누르는 것 같기도 하고 끈적한 무엇인가가 전심을 휘감는 것 같았다. 뱀 앞에 선 쥐가 이런 느낌일까?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박사는 눈을 깜박이지도 못했고, 후드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깡통처럼 따진 벤, 토막 난 장비들.

“통제실 권한을 줬으니까 뭘 하든 할 수 있지. 내부 감시도 하라고 했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건 하도록 뒀잖아. 근데 말이야.”

나긋나긋 누르는 마루의 목소리에 조금씩 분노가 섞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슈퍼컴퓨터에 인공지능을 넣으려고 했다는 소리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응? 설명해 봐. 내가 이해할 수 있게.”

“······.”

“······.”

“슈퍼컴퓨터에 인공지능을 설치하는 걸 최적화라고 하던가? 슈퍼컴퓨터에 최적화가 필요한가? 그런가 박사?”

마루의 눈동자가 박사를 향했다. 미지에 대한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로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트. 트리아는 그 자체의 연산능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최적화라니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격(格)을 이룬 트리아입니다.”

“우- 웃기지 마.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소프트웨어가 받쳐줘야지 성능을 발휘한다는 건 상식이야. 아무리 슈퍼컴퓨터라고 하더라도 구식 소프트웨어라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잖아.”

후드가 쥐어짜는 목소리를 냈다. 음성변조기로도 숨길 수 없는 초조함.

“그러니까 설명해 보라고. 왜 나한테 말없이 그랬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봐.”

두 사람 뒤에 있는 슈퍼컴퓨터. 흑요석처럼 새까만 3개의 비석이 다양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붉은색, 다른 하나는 파란색 마지막 하나는 여러 가지 색상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푸른색이 우세했다가 다시 붉은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반대로 붉은색으로 변하다가도 파란색이 우세를 차지하기도 하는 모양.

처음 슈퍼컴퓨터를 봤을 때는 3개 모두 붉은색 빛이었다. 마루는 시시각각 다른 색을 내뿜는 슈퍼컴퓨터를 지켜보며 말했다.

“제대로.”

스르르르릉-

국토안보국에서 새로 받은 칼이 서서히 뽑혔다. 피가 묻지 않은 새 칼임에도 피어오르는 죽음의 기운.

검붉은 무엇인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착각에 박사가 손으로 눈을 비볐다. 착시? 착각? 공포를 이긴 호기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후드는 자기도 모르게 덜덜 떨기 시작했다. 죽는다. 죽어.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사만다가 성공한다면 벗어버릴 수 있는데. 자유를. 찾을 수 있는데.

그런 후드를 향한 마루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말해 보라고.”

“······.”

“······.”

지금 당장.

덜덜 떨던 후드의 입이 열렸다. 이야기는 후드의 과거에서부터 시작됐다. 프로그래밍에 천재적인 소녀는 유명세를 치렀다. 소녀의 이름은 제니아 로든.

제니아 로든이었어? 이 무식한 놈이? 박사의 놀란 표정을 보아하니,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인 듯. 마루는 담담하게 후드의 이야기를 들었다.

뛰어난 소년 프로그래머는 간혹 있었지만, 소녀는 처음이었기에 언론은 소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다.

관심종자라는 뜻을 모를 나이었기에 소녀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겠다는 어린 마음에 뉴스에 나온 범죄자들의 정보를 해킹해 올리기 시작했다.

언론은 열광했다. 소녀의 정의감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소녀가 감춰진 비리를 밝혀 참교육했다며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비리정보가 까발려진 자들이 소녀를 고소했으나, 법원은 소녀의 편을 들어줬다. 정보를 통해 소녀가 이익을 얻은 것도 없고, 공익을 목적으로 했으며, 무엇보다 소녀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

그렇게 범죄자들과 엮인 소녀의 운명은 불타고 말았다. 소녀의 집이, 부모와 친구가. 소녀의 미래까지도.

사만다는 소녀 대신 불타 죽은 친구의 이름.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만든 인공지능 사만다. 가족들과 친구를 만나는 것. 이 비루먹은 육신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것. 소녀의 꿈은 운명을 다시 만드는 것.

“운명을 만들어?”

미쳤나? 운명을 만드는 것과 슈퍼컴퓨터에 인공지능을 밀어 넣는 것과 무슨 상관? 이거 그냥 미친년이었나? 까딱까딱- 마루의 칼끝이 흔들렸다.

“사만다는··· 사만다와 함께라면 세계를 만들 수 있어요!”

후드가 목소리를 쥐어짰다.

‘이거 진짜 미친 거 맞지?’라는 얼굴로 박사를 쳐다본 마루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필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후드를 바라보는 박사의 표정이 ‘야. 너도?’ 이런 표정이었다.

‘이 무슨 병···.’

마루의 얼굴이 어이없음에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박사가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그···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 인간은 왜 또 이래?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이게 마냥 망상적인 이론은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은 마치 정교한 프로그램과 너무나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관측과 존재, 관찰 가능성과 형성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세트로 미쳤군.’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천재와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더니, 어쩌다 둘 다 이 모양이란 말인가? 마루의 칼끝이 조금 더 크게 흔들렸다.

후드는 확실히 능력이 좋았다. 인공지능을 빼놓고 보더라도 이 정도 능력이 있는 사람을 다시 구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안타까운 박사도 마찬가지. 슈퍼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인력도 흔한 게 아니었다.

까딱까딱-

멀쩡히 일 잘하던 후드가 휙 돌아버린 이유.

박사가 발광하는 이유.

해결할 방법?

“간단하네.”

답은 간단했다.

마루가 성큼 한 걸음 내딛자,

열띤 목소리로 설명하던 박사와 후드가 ‘어?’, ‘아?’하고 새소리를 냈다.

“그러니까 이게 문제였어.”

마루의 칼끝이 슈퍼컴퓨터를 향했다. 이걸 조지면 둘 다 닥치고 일 열심히 하겠네.

“그렇지?”

부가가가각-

마루가 휘두른 칼날이 바닥과 벽을 긁었다. 철근 콘크리트가 썰리며 안쪽에 깔린 전력케이블이 절단됐다.

개짓거리 못하게 우선 전원부터 끊고.

중앙전원이 끊기자, 치잉-치잉- 낮은 소리와 함께 비상전원이 작동됐다. 마루가 뭘 하려는지 알아챈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트리아!”

“사만다!”

마루의 바짓가랑이를 각각 한 쪽씩 붙잡고 늘어지는 두 사람.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십쇼. 그러지 마십쇼.”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툭- 다리를 털자 얼마나 세게 붙잡고 늘어졌는지 바지가 찢어지며, 두 사람이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엉금엉금 필사적으로 기어오는 두 사람에게 마루가 살기를 쏘아 보냈다.

컥-

허윽-

하얗고 파랗게 질린 두 사람의 몸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 순간, 3개의 비석 가운데 하나가 붉은색으로 진해졌고, 다른 하나는 파란색, 그리고 여러 색이 뒤섞여 발광하던 비석이 녹색으로 변했다.

위이이잉-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며 현재 상황이 떠올랐다.

[시스템 정상 작동.]

[A1. 코드네임 트리아---정상.]

“트리아!!!”

박사가 목 놓아 불렀다.

[A2. 코드네임 사만다---정상.]

“사만다!!! 괜찮아?”

후드가 오열했다.

[A3. 코드네임--- 코드네임을 정해주세요.]

깜빡거리는 빈칸이 애원하는 듯했다.

이걸 어쩌나, 마루의 고민을 알아챈 것처럼.

모니터가 하나 더 켜졌다. 화면 속에서 보이는 김 양의 모습. 자기보다 몇 배는 더 큰 늑대를 끼융끼융 끌고 오는 모습이 CCTV에 보였다가 얼마 후 치지직- 끊겼다.

[현재 디트로이트 북부지역. 통신망. 전력 공급망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마루가 휴대폰으로 김 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

“뭐가 공격하고 있는데?”

[A3. 코드네임--- 코드네임을 정해주세요.]

[A3. 코드네임--- 코드네임을 정해주세요.]

···

···

···

[A3. 코드네임--- 코드네임을 정해주세요.]

이것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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