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28화 (228/280)

러스트 [RUST]-228

아니. 왜?

자기는 이렇게 저렇게 칼질로 헬기도 슥/하고 빌딩도 촥/했으면서. 왜? 난, 약?

김 양은 세상 억울했다. 자연빵으로 한 건데, 약이라니.

“그러니까 일본 도난 병원에서 있었잖아. 제약회사 여자한테 약 뺏은 거. 그거 썼냐고?”

“아님.”

그게 언제 적 이야기?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약이라니. 분통하고 원통하고 절통했다.

“그래? 아니야?”

“진짜 아님!”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거 부작용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며? 그런 말 믿지 마라. 중화제 쓰면 된다고? 말이 쉽지, 그거 진짜 위험한 거다.”

당장 오버히트에 중화제를 써도 내성이 생기지 않을까? 혹시 모르는 부작용은 없을까? 쓰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판국에 대놓고 쓴다? 제정신 아닌 짓이었다.

“알았음.”

알겠다고. 기분이 급 다운된 김 양.

스르르르르릉-

왜 또? 김 양이 움찔하는 것을 무시한 마루가 늑대의 배를 땄다.

꾸직-꾸지직-

썰리는 소리. 한 번에 확 자르지 않아서 그런지, 칼끝에 느껴지는 저항감이 상당했다. 일본 괴물 고양이도 제법 질겼는데 이건 괴물 고양이보다 훨씬 더 했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가죽도 두꺼웠다. 단순히 두꺼운 탓이라고 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질긴 가죽.

“오- 이놈 이거 진짜 상당한데? 이야- 아니, 이걸 어떻게 상처 없이 잡았데? 너무 신기해서 약했나 그랬지. 이건 나도 상처 없이는 못 잡겠네.”

칼잡이가 무슨 수로 상처 없이 잡겠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다운됐던 김 양은 다시 날아올랐다. 추락은 다시 비상하기 위함이라고 했던가?

“진짜 자연이었음. 완전 쩔었음.”

“협찬은 어때?”

칼질이 지나간 뱃가죽이 벌어지며, 촤르륵- 쏟아지는 내장.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었다.

“4드론 좋음.”

“음. 그래?”

목구멍을 뚫고 들어가 내장 이곳저곳을 시커멓게 태운 작열소이철갑탄 자국. 10~15mm 복합장갑도 꿰뚫는 총탄이 가죽도 아니고 살을 관통하지 못했다는 건 신기했다.

“드론이 4기라 초반 정찰에 좋았음. 신형 드론이라서 그런지 카메라 화질이 진짜 선명했고···, 엑소슈트 기동 성능도 많이 개선됐음. 좀 뚠뚠해서 둔할까 싶었는데, 이렇게 착하니까- 바로 반응했음. ···그리고 배터리도 많이 좋아졌음. 늑대 끌고 왔는데도 여분 배터리 쓰지 않고 올 수···.”

오래간만에 김 양의 입이 트였다. 마루는 가끔 추임새를 넣어가며 늑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가죽뿐 아니라 근육도 일본 괴물 고양이보다 더 조밀한 느낌이었다. 가죽과 근육, 지방층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이거 개인화기로 잡기는 힘들어 보였다.

일본 괴물 고양이는 그래도 6.8mm 탄을 쓰면 어떻게든 저지할 수는 있었는데, 이놈은 7.62mm 철갑탄은 써야 저지할 수 있지 않을까?

‘잡으려면 12.7mm 이상은 써야 할 것 같은데?’

“이거 통으로 한 번 썰어봐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 붙여 줄 테니까. 잡은 늑대들 좀 싣고 와라.”

막 신 나게 이야기하던 김 양이 뚝- 조용해졌다.

‘지금 막 돌아왔는데 다시 나가라고?’

마루를 향한 김 양의 눈빛. 무언의 항의.

“늑대 잡은 거 어디 있는지 네가 잘 알잖아. 사람들 호위하는 것도 그렇고 4드론 정찰도 그렇고.”

둘 가운데 한 명은 빌딩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사람들을 데리고 물건 나를 요량이라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김 양이 훨씬 유리했고.

‘밥도 안 먹었는데?’

“차 타고 갔다 오는 거니까 후딱 다녀와서 먹어. 숯불 피워놓고 있을 게.”

김 양의 눈초리에 바로 대응하는 마루였다.

‘숯불? 소고기?’

‘그래.’

지긋이 확인하는 김 양의 시선에 화답하는 마루의 눈빛.

한우는 진작 다 먹었다. 미국 소도 나쁘지는 않기는 한데···.

‘직접 손질?’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같은 소고기라고 해도 백정이 잡은 게 이상하게 맛있기는 했다.

쩝- 입맛을 다신 김 양이 엑소슈트의 배터리를 갈고 총알을 채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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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프트럭 2대와 장갑차 2대가 김 양이 사냥한 곳으로 향했다. 근처 도로에서 대기하면 김 양이 엑소슈트로 사체를 끌고 와 싣기로 했다.

“빨리 끝내고 소고기 회식!”

가자! 김 양의 외침에 덤프트럭과 장갑차가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무임승차자들 정리와 동시에 식자재 관리에 들어간 뒤로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빌딩 밖으로 나가서 사 먹거나 택배로 배달을 시켜 먹으면 됐지만,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밖으로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했고, 인터넷 주문은 15~20%가 불발되는 상황이었다.

인터넷 주문했다가 불발되면 그 짜증이란. 사람들은 유통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1월 2월에는 택배에 큰 문제가 없었는데, 3월 들어서는 조금씩 배송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중이 없었다.

어제까지 배송을 잘 해주던 업체가 다음 날엔 배송 불가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래서 그런지 소고기 회식에 호응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트럭과 장갑차는 여기까지입니다.”

“기다리셈.”

끼융-

엑소슈트가 덤프트럭에서 가뿐히 뛰어내렸다. 김 양은 바로 4드론을 날려 주변을 꼼꼼하게 정찰했다. 정찰 범위는 이쪽부터 저쪽 늑대 잡은 곳까지.

[이쪽 이상 없음.]

[여기도 이상 없습니다.]

김 양의 무전에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서 바로 응답했다. 김 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무전은 통하고 있었다는 말. 근데 우리 채식이는 왜 대답이 없었을까?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는 소리였다.

‘채식이. Oh-채식이.’

거대 쥐라든지 다른 동물들이 늑대 사체를 훼손했을까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아마도 늑대들이 주변에 있는 동물들을 죄 잡아먹었거나, 겁먹은 동물들이 터전을 옮겨서 그런 것 같았다.

끼융끼융

질질질-

한 번에 한 마리씩 늑대를 끌고 온 김 양이 덤프트럭에 사채를 실었다. 신형 엑소슈트는 이게 좋았다. 월등하게 좋아진 출력.

만약 엑소슈트가 없었으면 400~500kg은 족히 나갈 법한 늑대를 어떻게 실었겠는가? 도르래를 어쩐다. 크레인이 필요하니 마니 번거로웠을 것이다.

순식간에 늑대 사체를 회수한 김 양이 외쳤다.

숯불 소고기! 회식!

고기의 추종자들이 화답했다.

후아---

한국식으로 작업한 소를 숯불에 구워 먹는 사람들. 딱히 시즈닝을 뿌린 것도 아니고 갈비처럼 양념한 것도 아니었는데 엄청나게 맛있게 먹는 모습이 생경했다.

김 양은 뿌듯했다. 이제 이 사람들은 백정이 손질한 소고기 맛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소고기 회식을 핑계로 귀찮은 일 생기면 보낼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리. 좋았다.

‘응. 이제 벗어나지 못함.’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그냥 숯불에 구운 건데?’ 사람들은 먹으면서도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즐겁게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피해, 과일을 담고 있는 후드의 모습이 보였다.

고기를 입안 가득 채운 김 양이 움늄늄 씹어 삼키고는 후드를 불러 세웠다.

“Oh-채식이. 거기 스톱.”

“예?”

예? 예에? 지금 되물음? 내 얼굴 보자마자 해야 할 소리 있지 않음? 김 양은 기분 좋게 소고기 먹은 기념으로 한 번 참았다. 그런데 기다려도 반응이 없는 후드.

“채식이. 할 말 없음?”

“네?”

역시 이건 말로 하긴 글렀네. 김 양의 눈에서 슬슬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Oh-채식이 개념 없음?”

후드는 무슨 소린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김 양. 처음부터 좀 껄끄러운 사람이긴 했었는데,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지.

“모름?”

“뭘 말이죠?”

“그럼 맞음.”

“?”

덜컥!

김 양의 어퍼컷이 후드의 턱에 꽂혔다. 휙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만세’ 해버린 후드. 식판에 담긴 과일들이 불꽃놀이처럼 펑-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

와장창-

“모르겠음? 왜 맞는지?”

뒤로 발랑 넘어진 후드는 뇌가 흔들려 몸을 가누지 못했다. 딱 좋은 자세로 비척거리는 후드를 향한 김 양의 군홧발.

퍽!

그대로 배를 걷어찬 김 양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오렌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새우처럼 웅크린 후드의 얼굴 앞에 오렌지를 들이민 김 양이 말했다.

“오렌지 처먹을 정신은 있으면서.”

빠즙-

“왜 처맞는지 모를 정신이면.”

Oh-채식이. 오렌지 주스만 짜지 말고 토마토즙도 좀 짜보자.

김 양이 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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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가각-

거대한 늑대의 목이 잘리는 소리.

휙- 휙- 칼을 공중에 휘두른 마루의 표정은 긴가민가 애매한 얼굴. 가죽을 베는 것까지는 그런데, 근육과 뼈를 깔끔하게 매끄럽게 자르는 게 쉽지 않았다.

가죽이 질기다 보니,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쩝- 그렇게 힘을 주기 시작하다 보면, 결을 타고 베는 게 아니라 우격다짐으로 써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가죽이 좀···.’

칼을 칼집에 꽂은 마루가 총을 꺼내 들었다. 12.7mm 탄을 사용하는 5연발 리볼버. Rsh-12.7이 불꽃을 뿜었다.

퍼억- 파악- 팍-

이질적이었다. 딱히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확실히 느낌이 이상했다. 일본에서 괴물 고양이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 칼질도 그렇지만 총격은 너무 확연하게 다르다고 할까.

“이거 어떻게 생각해?”

마루가 천장에 붙어 있는 CCTV를 보며 말하자, 표시등이 초록빛으로 깜박였다.

[생물 연구실 가동이 필요합니다.]

“그건 당연한 소리고. 일본에서 교전한 영상 있잖아. 거기 나오는 고양이랑 이 늑대랑 비교하면 어떠냐고.”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속에 괴물 고양이에게는 6.8mm 소총과 7.62mm 체인건으로 쐈고, 지금 늑대를 쏜 건 12.7mm 라운드 탄으로 쐈는데 뭘 비교하냐는 소리.

“빡빡하게 구네. 그러지 말고. 이거 좀 이상하거든. 그러니까 칼로 자를 때보다, 총알에 더 강한 느낌이라서 묻는 거야. 네 생각은 어때?”

[···가능합니다. 일정 이상의 충격량이 일순 가해지면, 충격을 받은 조직이 응축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휘두르면 휘적휘적하는데, 빠르게 때리면 빳빳해진 느낌으로 반탄력이 더 커지는 소재도 있다는 말. 제대로 연구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평가였다.

“아- 과장님 접니다.”

마루는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에게 전화했다.

“다름이 아니고 거대 늑대를 몇 마리 잡아서요.”

[거대 늑대요? 옐로우 스톤 공원까지 갔었습니까? 그런 소린 못 들었는데 말입니다.]

오호-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소리.

트리오에게 통신보안을 시작으로 제대로 보안 똑바로 하라고 다그쳤더니 효과가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대로 거르고 있었다.

“지금 막 들어온 거라서 아직 보고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디트로이트 북동부 지역 휴런 호수 인근 공원에서 늑대 목격담 있던 사건 말입니다. 그거 수색했더니 정말 이쪽에 있었더군요.”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과장의 목소리엔 피로가 짙게 깔려있었다.

“어지간한 총알로는 잡기 힘들어 보입니다. 잡은 거 샘플로 보내 드릴 테니까, 싣고 갈 트럭 보내주세요. 무게가 500kg은 넘습니다.”

[천백 파운드가 넘는다고요?]

마루는 남은 몇 마리를, 육군과 해병대, 전략사령부에 각각 한 마리씩 보내기로 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군부와는 사이가 좋았지만, 전략사령부 쪽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계속 좋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괴물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어쩌겠다고 덤비는 게 아니라면, 부드럽게 넘어가면 좋았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경보음에 마루는 전화를 끊었다. 이어,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현재, A1 구역 식당에서 폭력사태 발생. 폭력사태 발생. 무력 진압 허가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현재 A1 구역 식당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무력 사용 허가 바랍니다.]

시리도록 파랗게 빛나는 불빛이 마루를 재촉했다.

“이곳 규칙을 알 텐데 폭력사태라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있었나?

“화면 띄워봐.”

모니터에 CCTV 화면이 떠올랐다.

김 양이 후드를 쥐잡듯이 패고 있었다.

[폭력사태 진압을 위해 무력 사용을 허가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갈 테니까. 그냥 있어.”

시퍼런 불빛이 항의하듯 점멸했지만, 마루는 담담히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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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차고 있던 음성변조기가 부서져 뒹굴고.

끄윽- 끄윽-

고통에 찬 숨소리가 공기를 긁었다.

찢어진 마스크 뒤로 일그러진 화상 자국이 선명한 입술이 달싹였다.

“그- 그만- 왜?”

열기로 손상된 성대가 내는 소리는 소름 돋았지만, 김 양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모르면 알 때까지 맞아야지.”

아니다.

이쯤 맞았는데도 모르면 몇 군데 부러지면 알까?

아니면 바람구멍이라도 시원하게 뚫어줘야 하나?

[폭력을 중지하십시오.]

[경고합니다.]

[즉시 폭력을 중지하고 피해자에게서 떨어지기 바랍니다.]

파란 불빛이 김 양을 비췄다.

“이건 또 왜 이럼?”

“끄-르- 미···친년.”

사냥 나갔다 온 사이에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졌음?

[경고합니다.]

뭐라고 그러든 말든 김 양은 으쌰- 일어났다.

깨진 고글 사이로 화상으로 벗겨진 얼굴이 보였다. 죽음의 공포 속에 숨겨진 억울함 가득한 눈빛.

“이거 참.”

“······.”

고개를 갸웃한 김 양이 기괴한 미소와 함께 총을 뽑았다.

“진짜 모름? 왜 처맞고. 왜 이러는지?”

철컥-

잘 대답해야 할 것이야.

생각 똑바로 하고 대답해야 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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