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34화 (234/280)

러스트 [RUST]-234

외근 나갔다 온 김 양이 또 커다란 늑대를 하나 잡았다며 의기양양했다.

사냥 갔다 온 암사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나? 알아서 협찬 보고서도 쓰고, 전술 카메라에서 영상 뽑고 그러는 걸 보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늑대가 아닌 것 같은데?”

“이게 늑대가 아니면 뭐임?”

대따 큰데? 그럼 늑대지. 김 양의 대따에도 흔들리지 않은 마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코요테 같은데?”

“코요테?”

“서부 영화 같은 데서 주인공이 황야에서 잘 때, 개처럼 생긴 애들이 어슬렁어슬렁 주변 맴도는 장면 같은 데서 나오잖아.”

“?”

갸웃하는 김 양

“근데 코요테는 남부지역에나 보이는 거 아닌가? 영화에서 코요테 하면 주로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그런 동네 나오는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코요테는 알라스카에서 남미지역까지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 동물입니다.]

[근처 캐나다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개체입니다. 조금 외딴곳에서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목격담이 나올 정도로 흔한 동물입니다.]

마루의 말을 디아나가 정정해줬다.

“코요테는 늑대보다 매우 작은 거 아니었어?”

[그렇습니다.]

김 양이 잡아온 코요테는 늑대만큼 컸다. 그것도 처음 잡아왔던 우두머리 늑대만큼이나 커다란 덩치. 코요테가 커졌다. 근데 흔한 동물이란다.

“아- 이거 참.”

흔하다면 앞으로 만날 일이 많다는 소리. 칼을 들고 작업대로 향하는 마루가 헛웃음 지었다. 일단 늑대랑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푸?욱-

가볍게 들어가는 칼날. 늑대를 해체했을 때보다 약간이지만 부드럽게 칼이 들어갔다. 작은 차이지만 칼끝에서 느껴지는 육질의 차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냄새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늑대보다 덜한 느낌.

“이건 먹을 수 있겠는데?”

“고기?”

“제법 괜찮아 보여. 국물 요리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일단 요리해봐야 알겠지만.”

고기가 제법 괜찮을 것 같다는 마루의 말에 김 양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새로운 고기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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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타워, 혹은 블러디 타워라고 불리는 빌딩.

아크 연구소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연구하고 있었다. 월급 없음. 하지만 불만도 없었다. 그들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유부남과 이혼남들은 월급 구경한 지 오래였다. 부인이 가져가거나 전처가 양육비로 가져갔다.

남은 돈? 맛있는 거 먹고, 취미생활 할 정도면 충분했다. 가끔 스포츠 중계 보면서 치킨에 맥주면 됐다.

미혼인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있으면 뭘 하겠나? 연구실에서 갈리느라 쓸 시간이 없었는데.

휴가 넉넉하게 받아서 밀린 신작 게임이나 하고, 최신형 컴퓨터 맞춰서 놀고, 취미로 이것저것 만들기 정도?

좋은 옷? 그걸 입어서 뭐하게. 신소재로 옷감이나 만들어 볼까?

좋은 차? 그냥 자율주행 프로그램이나 만드는 게 더 재밌겠다.

자율주행? 그 흔해 빠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애들 장난이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 새로운 차를 만드는 것이다.

수륙양용은 흔한데. 그러니까 미래는 하늘이다. 이제는 하늘을 나는 차다.

그거 이미 있지 않냐? 웃기지 마! 그럼 대기권 밖으로 나갈래.

여자를 만나라고? 여자를 만드는 게 더 좋겠다.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 오토마톤!

그런 연구원들에게 최상위 인공지능이 장착된 슈퍼컴퓨터가 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제를 잊고, 오늘은 없고, 내일은 삭제될 자들이 연구실과 슈퍼컴퓨터실을 순례했다.

그 순례자들 가운데 한 사람. 비밀연구소에서 바퀴벌레를 연구했던 수석 연구원은 매우 행복한 연구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꿈의 장소였다, 연구를 제한받을 필요도 없고, 누가 채근하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특히 인공지능과 같이 연구한다는 건 너무나 좋았다. 물론 인공지능 하나가 다른 직원들의 연구를 동시에 돕겠지만, 어쨌든 인공지능의 보조를 받는 연구는 행복했다.

그리고 지금 수석 연구원의 연구를 돕는 인공지능은 디아나. 이름도 예뻤다.

“이거 좀 이상하네. 디아나? 이거 결과 이상한데?”

[확인 중- 확인 결과 오류 확률 12.95%입니다.]

“반대로 오류가 아니라면 87.05%가 문제라는 소리잖아.”

[오류 범위 3% 이상은 문제 있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아무래도 이상해서. 여기 내가 정리한 자료들 대표님에게 전해줘.”

[알겠습니다.]

수석 연구원은 보고서를 다시 확인했다. 실험도 했고 자신이 썼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마루는 디아나가 보내온 파일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보고서를 올린 사람이 다른 연구소에서 수석 연구원을 했던 사람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수석 연구원을 할 정도면 실력은 있다고 봐야겠지? 그런 사람이 갑자기 보고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단다. 심각한 일일까?

그렇게 파일을 읽는 마루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내용은 간단했다. 일본에서 가져온 샘플 바퀴벌레를 연구하면서 든 의문. 왜 이렇게 커졌을까?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진짜 그럴까?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자기가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 있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놀랍게도 이상한 질문을 낳았다.

동물들이 단순히 변이 바이러스에 걸려 거대화된다면, 미국에서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거대화는 왜 보고되지 않고 있는가?

‘?’

일본 도쿄 인근에는 거대 고양이와 쥐가 있었다. 원숭이도 그렇고 바퀴벌레까지 소수지만 거대 들개도 있었다.

도쿄 인근에는 그렇게 많던 것들이 북쪽 나가노 지역으로 들어서자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수석 연구원은 뉴스에 보도된 자료와 SNS에 올라온 자료를 바탕으로 변이 동물들이 나왔다는 지역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야생동물들이 출몰한다는 국립공원과 인근 지역에서 월등히 많은 변이 동물들이 나타났다는 결론.

지금까지 발표된 연구결과에 근거한다면 대도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키우던 반려동물이 감염되어 그쪽에서 먼저 변이를 일으켜야 하는데 말이다.

‘동물들의 변이 요인은 단순히 변이 바이러스만 원인이 아닐 수 있다.’

‘요인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가져온 변이 괴수의 샘플을 더욱 정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반려동물을 죽였던 이유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등등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마루는 바로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역 순찰 도중 코요테를 잡았는데 말입니다. 변종 늑대처럼 큰 코요테를 잡았습니다.”

김 양이 잡아온 게 특이 개체면 모를까. 전부 그렇게 커지기 시작했다면 외딴 지역에 있는 마을이나 가정집은 위험했다.

[···좋지 않군요. 코요테라니.]

늑대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서식지를 옮기는 데 반해, 코요테는 도심지에서도 적응하고 사는 놈들이었다.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도심지를 돌아다녀 도시에 있는 반려견들에 전염시킨다면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연구하는 분이 이런 의견을 제시했는데 말입니다. 한 번 보시죠.”

파일을 확인한 과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렇지 않아도 변이 바이러스 확산 때부터 검토, 연구하고 있는 안건입니다.]

진작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근데 반응이 좀 이상했다.

왜 깊은 한숨?

[아직 결과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으니, 관련 내용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현재 확인된 것으로 보면, 인간은 확실히 변이 바이러스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동물들도 걸리는 게 확실하고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지금 보내주신 자료에서 언급했던 내용에 대해, 다른 연구원들도 그런 정황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괴수들이 등장한 지역들이 좀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출몰 지역이요?”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확인을 했지만, 자연적이지 않다는 결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이 변종으로 변하는 거라면, 키우고 있던 개나 고양이부터 커져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않고 생뚱맞게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거대 변종들이 나오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네요.”

[우연한 일치이길 바라고 있습니다만, 몇 개월 전에 외국인 여행객들이 다녀온 지역을 중심으로 변종들이 생기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여행객이요? 그것도 몇 개월 전이면 한겨울인데 말입니까?”

[그렇더군요.]

몇 개월 전이라면···.

“설마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 나라 사람들은 아니겠지요?”

과장은 대답 대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본토가 직접 공격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 이런 의혹이 공론화가 될지 몰랐다. 그리고 공론화가 된다면 상황은 심각하게 변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는 일본에서 소규모로 교전하고 있지만 서로 아닌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산 변이 바이러스를 가져다 살포했다는 의혹이 터진다?

“설마. 전쟁까지 갑니까?”

마루의 질문에 덴 브라운 과장은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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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와 전면전을 하기엔 아직 무립니다.”

경제규제? 사실상 말려 죽이려는 짓 아니던가? 총과 칼로만 전쟁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자본 전쟁, 기술 전쟁. 환경 전쟁. 식량 전쟁. 원자재 전쟁. 사실 모든 것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진작부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처럼 중국도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미국에 대한 복수심을 숨긴 일본과의 공조로 미제의 힘을 조금씩 완벽하게 빼놓을 계획이었는데, 대규모 재난으로 상황이 변했다.

상황이 변했어도 중국은 충분히 선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따개비들이 남중국해에 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러시아가 힘을 쓰면 기회를 틈타 대만을 장악하려고 했다. 그런데 괴물 따개비 때문에 바다가 완전히 막혔다.

대만 인근 해역과 남방 항구 도시들은 완전히 마비됐고, 그나마 아직 돌아가는 항구 도시는 상해를 기준으로 그 위쪽에 있는 곳뿐이었다.

“맞습니다. 아직은 전쟁을 논할 때가 아닙니다.”

“항로가 막히기 전 생필품을 비롯한 핵심 자원을 최대한 많이 들여와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따개비들이 폭발적으로 번질 거라 예측됐다. 그 전에 필요한 물자를 최대한 비축해야 했다.

“식량 상태는 어떻습니까?”

“작황이 좋지 않았지만, 1년 이상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바퀴와 쥐를 사육하는 시설이 완공되어 이제 곧 시범운영에 들어갑니다.”

겨울, 일본에서 가져온 변종 바퀴와 쥐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심지어 사료 걱정도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건조해 공급하면 그만. 바퀴의 살은 새우와 비슷한 맛이었고, 살을 발라 맛살처럼 만들면 훌륭한 식품이 됐다.

바퀴의 질긴 껍질은 갈아서 괴물 쥐의 사료로 쓰고, 쥐는 잡아서 고기와 가죽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저비용 고효율 단백질 생산이 가능해졌다.

“연변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하지요?”

공장에서 키워서 갈아버릴 때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지만, 바퀴벌레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통제되지 않는 바퀴는 위험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미제 놈들이 한 짓이 분명합니다.”

바퀴벌레의 알집을 박아 넣은 것을 보라! 미군이 사용하는 신형 치료제를 이용한 방법! 미국 놈들이 분명했다. 그래 놓고서는 도덕이니, 인권이니 찾는 놈들이라니, 역겹기 그지없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증거가 없으니 괜찮습니다. 놈들이 아무리 의혹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증거가 없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증거를 찾는다고 해도, 일부 과격파의 돌발 행동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손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전쟁은 속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까지는 잘 속이고 있었다.

설령 미국이 전쟁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먼저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전쟁에서 진다고 해도 괜찮았다. 마지막에는 핵이 있으니.

“일단 자라 새끼들부터 치우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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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김 양은 생각보다 죽이 잘 맞았다.

둘 다 집에 콕 박혀 있어도 우울증이라든지 그럴 기미가 전혀 없었다. 마루는 그간 못했던 게임과 칼질 연습에 열중했고, 김 양도 총기 개조에 맛을 들여 건 스미스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도 나?”

“협찬.”

협찬을 기억하라는 말에 홀로 외근을 떠나는 김 양이었다.

주요 외근 업무는 디트로이트 인근 지역 순찰과 처리. 변이된 동물들이 목격되거나 CCTV에 발견되면 수색해서 정리하는 업무였다.

미친 쥐들은 주 방위군이 쓸어 버렸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로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어서 일이 많지 않았다.

김 양을 보내버리고, 신작 RPG 게임을 시작하려는 마루에게 전화가 왔다. 덴 브라운 과장이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을 수색하던 수색대가 실종됐습니다.]

거기 군대가 투입된 거 아니었나?

양산형 기갑병이랑, 파워로더형 엑소슈트도 들어갔고. 그런데 어쩌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전문가를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전문가요?”

변종 괴물 잡는 전문가가 있었나? 그렇게 남 일처럼 생각하는 마루에게 과장이 말했다.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변종을 잡은 전문가에게 하는 의뢰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려는 마루에게 과장이 말했다.

당신 말이야. 당신.

당신한테 의뢰라고.

나? 김 양이 아니고? 마루는 뻔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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