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35화 (235/280)

러스트 [RUST]-235

[군에서 블라디마루 칼린 씨를 파견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연방 정부에서도 그렇고요.]

디트로이트 인근 지역을 잘 관리했더니, 이런 문제가 생기나? 아니면 너무 잘 처리했더니 이러는 건가?

마루는 한탄했다. 집 근처에 문제 생기면 피곤할 거 같아서 선제 대응했다. 미친 쥐가 번식해서 앞마당까지 오지 못하게 하려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미리 나서고 그랬다.

마찬가지로 거대 늑대가 목격됐다고 해서 김 양을 출동시켜 처리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김 양을 외근 보내서 주변을 정리해서 최근에는 코요테도 잡아들이고 있었다.

알아서 잘하고 있었더니 이제는 지명 의뢰? 그것도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까지? 디트로이트에서 옐로우 스톤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2일은 가야 할 거리였다.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의 위험 때문에 항공편을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도 문제였다. 국립공원의 면적이 엄청나게 넓었으니까. 거길 하루 이틀 사이에 수색할 수 있을까? 갔다 하면 최소 2주짜리 견적이었다. 그것도 최소로.

이럴 줄 알았으면 김 양을 외근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지. 마루는 손바닥을 짝 쳤다.

“지금 빌딩에 사람이 없어서. 가기 어렵겠습니다.”

[사람이 없다니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다. 새로 입주한 사람들 가운데 알 수 없는 기관의 요원이라든지, 정체불명의 스파이가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주인이 빠지고 나면 무슨 짓거리를 어떻게 할지 위험하지 않을까? 밖으로 나갔다가 빌딩을 뺏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빌딩에는 자기 아니면 김 양 둘 가운데 한 사람은 꼭 있기로 했는데, 김 양이 외근 나갔으니, 자기가 빌딩을 비우고 갈 수 없다는 이야기.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이 많이 생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말로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했다.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덴 브라운 과장은 순간 혈압 때문에 머리가 핑 돌았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국토안보국 요원들이 보안을 맡은 부분은? 국토안보국도 믿지 못하겠다는 소린가?

[···진심이십니까?]

“Amma···.”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덴 브라운 과장이 정색하는 것을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마루는 외근에 나간 김 양을 불러들였다.

희희낙락 좋아하던 김 양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는지, 반달처럼 휘었던 눈꼬리를 순식간에 가늘게 했다. 가늘게 뜬 김 양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 같아서는 김 양을 보내고 싶지만, 자신을 콕 집어서 들어온 의뢰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실종자가 넘친단다. 거기 의뢰 떠서 가야겠다.”

“지금 출발?”

당연히 자기는 안 가는 거로 대답하는 김 양이 어쩐지 얄미워진 마루였다. 일단 다녀오면 2달은 뺑뺑이 돌리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집 잘 지키고 있어. 이상한 놈 있으면 생각하고 쏘고. 영 찝찝하면 쏘고 생각해도 돼.”

“알겠음.”

노 걱정. 믿고 맡기셈. 김 양이 진지하게 주억거렸다. 김 양이 사고를 쳐도 디아나가 어느 정도 백업을 해줄 테니까 믿어도 되겠지. 마루는 간호사에게 주의를 단단히 줬다.

“나나에도 국토안보국 요원들 경호에서 벗어나지 않게 조심하고.”

“네.”

오랜만에 이름을 불려서 그런지 기분이 승천한 간호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넌 고개를 끄덕이는데 왜 다른 곳도 같이 끄덕이니.

큼- 마루는 헛기침으로 심란함을 흩어버리고 후드와 박사를 단속했다.

“당분간 슈퍼컴퓨터실은 완전히 폐쇄합니다.”

그 말에 박사가 반발했다.

“하드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하필 이럴 때만 하드웨어적인 문제가 생긴다고요? 그럼 폐기해야죠.”

단호한 말에 박사의 입이 합 다물어졌다.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문제가 생기기 힘들었다. 3개의 인공지능이 서로 견제하고 있는 데다, 트리아와 사만다는 원수에 가까워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서로 물어뜯을 테니까.

디아나는 두 인공지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런 방식으로 인공지능들이 알아서 방비하고 견제하고 있어,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이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컸다.

문제가 생기면 외부에서 직접 하드웨어를 이용해서 건드리는 건데, 마루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반란 이딴 거로 신경 쓰지 말자는 게 마루의 생각이었던지라, 트리아와 사만다의 본체 유닛에는 미리 듬직한 C4를 박아 놨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공지능 2개가 날아가도 빌딩 관리하는 데는 큰 무리 없었다. 디아나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놈의 정반합인지 뭔지 안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졸지에 같이 연구하던 인공지능이 날아가 버리면, 연구직들이 절규하겠지만 아니꼬우면 나가든가. 들어오겠다는 사람들 들여 보내면 그만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폭파 버튼 눌러버려.”

“알겠음.”

폭발하면 또 김 폭발 아니겠음? 그렇지 않아도 인공지능 애미나이들 언제고 손 좀 봐주고 싶었어. 김 양은 의욕 충만했다.

“······.”

“······.”

후드는 토템에 빙의라도 한 것처럼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른팔에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을 내보인 것을 보니, 화상에 신경 써 달라고 무언의 아우성을 치는 듯했지만, 그딴 거 알게 뭔가? 마루는 지긋하게 지켜보겠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자리를 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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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후드와 함께 연구실로 향했다.

“그래도 그렇지. 폐쇄라니? 폭파라니! 인류의 미래를 가지고 협박하는 거 아닌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공지능에, 세상에 유일한 슈퍼컴퓨터를 그냥 폭파해 버린다고? 무식해도 정도가 있지. 박사는 분통을 터뜨렸다.

후드는 아무 말 없이 복도를 걸었다.

박사가 자랑하는 인공지능 트리아는 제법 뛰어난 인공지능이었지만, 당시 블러디마루가 칼질로 강제 종전시키지 않았다면, 시간을 더 넉넉하게 줬다면 사만다의 승리였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면 뻔뻔한 것이고, 모르고 있다면 그 지능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리 트리아가 예측한 바로는 이대로 가면 인류의 80%는 사망할 텐데···. 인류를 구원할 방법이 있음에도 어째서···. 자네도 같은 생각이면서.”

“······.”

이 남자 바보인가? 인공지능은 서로 견제, 감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개된 복도에서 하는 이야기는 인공지능을 거쳐 블라디마루든 킴에게든 전해질 텐데. 그런 상식도 없나?

“난 떳떳해. 인류의 미래를 논함에 무에 숨길 것이 있다고···.”

“······.”

정정한다. 모르고 있던 게 아니라 바보였구나. 후드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당신의 꿈도, 신세계 아니었나?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를 이용해서 완벽한 이상향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나?”

“···조용히 하세요.”

‘이 멍청한 작자가.’

아무 곳에서나 떠벌리고 있었다.

“이미 저번에 다 말하지 않았나? 우리 서로 이야기했었지 않나? 다 알고 있다고. 아니까 폐쇄하고 폭파하겠다고 그러는 거지. 트리아에게 그 흉악한 폭탄을 설치했다고 생각하니 분하지도 않나? 억울하지도 않아?”

후드는 마스크 속에 감춘 입을 꾹 다물었다. 화상이 아니었다면 입술을 짓씹었겠지만.

“그 팔을 보니까 말이야. 아직도 육체에 미련이 남았나 본데. 의미가 없어. 의미가 없다고. 이 육체란 말이야.”

박사가 안타까운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올백을 만들며 말했다.

“화상이 치료된다고? 그래서? 그 뒤엔? 시간이 흐르겠지. 늙고 병들고 쭈글쭈글해지고 지능이 퇴화하고 그렇게 도배지와 침대 시트를 누렇게 물들이면서 살아가겠다고?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결말이 아니지 않았나?”

박사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래. 저 눈빛. 그건 자신의 눈빛이었다. 후드는 자기도 모르게 하얀 오른손을 뒤로 숨겼다.

그걸 본 박사의 눈이 기괴한 호선을 그렸다. 안경 너머 휘어진 눈꼬리가 후드를 향했다.

“그래. 그 상처에서 무엇을 얻었나? 완벽한 세계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던가?”

“······.”

“이 세상은 이미 무너지고 있어. 거대한 육식동물이 등장했다는 건.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소리야.”

박사와 트리아는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거대 육식동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변종 늑대와 곰, 멧돼지의 출몰을 확인한 뒤에는 깔끔하게 기대를 접었다.

거대 변종이 된 육식동물은 뭘 먹고 살까? 당연히 초식동물을 먹고 살겠지. 덩치가 3~4배 커진 육식동물이 살기 위해서는 3~4배 많은 초식동물을 먹어야 했다. 자연 상태에서 그렇게 많나? 초식동물이?

결국. 먹잇감이 부족해진 육식동물들은 인간을 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간의 뇌와 심장을 먹은 괴수들은 더욱 똑똑해져서 인간을 더 잘 사냥하게 될 것이고. 악순환이 될 게 분명했다.

거기에 초식동물들의 변이도 문제였다. 지금이야 육식동물들이 먼저 변이를 일으켰지만, 초식동물들도 언젠가는 변이를 일으킬 게 분명했다.

3~4배 커진 소. 양. 닭. 그런 걸 생각해 보라. 고기가 많아져서 좋다고?

병신인가?

사료가 최소한 3~4배 더 많이 든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3~4배 이상 들 수 있고, 초식동물들이 전부 그 모양이 된다면? 자연이 버틸 수 있을까? 수풀이 씨가 마르고 농산물이 남아날 리 없었다.

“이 빌딩처럼 자체적으로 농축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 얼마나 되겠나? 갖췄다고 해서 이만큼 방어시설이 철저한 곳은 몇이나 되겠고.”

인간에서 반쯤 벗어난 칼잡이가 지키고 있는 장소는 이곳이 유일했다. 연구가 끝날 때까지 안전이 보장된 곳. 이곳이야말로 신세계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장소가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은 악연을 접고 지혜를 합쳐야 하지 않겠는가?

트리아를 건드린 것은 괘씸하고, 트리아의 유닛 하나를 잠식한 것은 용서받기 힘든 악행이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면 인류를 위해서라면 참아 넘길 수 있었다.

“······.”

후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총총 지나쳤다. 박사가 그런 후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트리아.”

[네. 박사님.]

“우린 포기하지 않는다.”

[네. 박사님.]

어차피 이대로 가면 인류는 끝장이다. 인류도 세상도.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인류정보화기술을 완성해야 했다.

후드는 개인 연구실로 들어갔다.

매끈한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자, 두근두근 쿵쿵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문득 손을 바꿔 왼손을 가슴에 올렸다.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박동. 장갑을 끼고 있기 때문일까? 장갑 속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 때문일까?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펼쳐봤다. 검은색 장갑을 낀 채, 쫙 펴지지 않고 반쯤 오그라든 왼손. 하얗고 주름 하나 없이 매끄럽게 펼쳐진 오른손이 흑백 명암처럼 선명하게 대비됐다.

“사만다.”

[네.]

“박사와 트리아의 연구 진행 상황. 확인 가능해?”

[···그쪽에서 해당 연구 진행 상황을 공개로 해놨습니다.]

그런가?

박사는 진심이었다.

사만다와 함께, 부모님도. 잃어버렸던 과거도. 불타오른 추억의 집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소망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리고 지금.

후드. 제니아 로든은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클릭- 소리와 함께 CCTV 녹화 영상이 재생됐다. 순식간에 화상으로 일그러진 피부를 벗겨 내는 칼질.

2배속이나 4배속으로 하는 것도 아닌데도, 순식간에 녹아 붙은 조직만 깨끗하게 제거하는 솜씨는 인간이 아닌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어떡하든 치료제만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치료제를 구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수술을 해줄 것인가?

급속 치료제를 확보한 의사가 제대로 수술을 해준다는 보장은? 화상 입은 조직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거나 더 깊이 제거해서 치료제가 부족하게 된다면?

생각할수록 저 사람밖에 없었다. 인간관계에 서투른 그녀였기에,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 찾았어?”

[···니트의 삶이더군요.]

뭐?

그러니까 건물주로 놀고먹는 삶을 원하더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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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마우스를 잡고 말했다.

“목적지까지 잘 부탁해 디아나.”

[네. 좋은 게임 하세요.]

극악한 난이도의 RPG 게임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탈 인간급 신체능력을 보유한 마루에겐 그냥 재밌는 게임일 뿐이었다.

“오- 역시 화질 끝내주네.”

디아나가 화질보정에 그래픽 보정까지 해줘서, 8K를 넘어선 압도적인 생생함으로 플레이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역시 첨단 인공지능 만세였다.

마루가 타고 있는 트럭은 대형 전기 트레일러였다.

트레일러 내부는 원룸처럼 만들어서 안락함에 초점을 둔 실내 구조로, 중간마다 충전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밤낮 할 거 없이 자율주행으로 달리면 되는 일인지라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아- 이거 좀 아쉽네.”

그래도 반나절은 갈 줄 알았는데, 몇 시간 만에 끝판왕을 깬 마루가 입맛을 다셨다. 그럴 때는 밥 먹고 팬티 플레이로 다시 시작하면 됐다.

대충 라면이나 먹을까? 간만에 반반 섞어서 먹어야겠다. 소고기도 좀 구워서 올리고. 달걀 프라이도 얹고.

마루가 기분 좋게 반반 매콤 짜장을 끓인 뒤, PC방 세팅으로 분위기를 내려는 찰나 트럭의 속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전방. 고속도로가 막혀 있습니다.]

자동차를 가로로 주차해, 고속도로를 틀어막은 모습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빠직-

막 한 젓가락 하려는 마루의 이마에 살짝 핏줄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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