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43화 (243/280)

러스트 [RUST]-243

냉큼 은신을 해제한 김 양의 어깨가 으쓱으쓱 했다.

보았는가? 본인의 실력을?

김 양은 벌집이 된 올빼미를 회수하러 이동하며 계속 마루를 힐끔거렸다. 근데 뭐가 문제인지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는 백정의 모습.

[왜 그럼?]

“이거 안 느껴지냐?”

[어떤?]

“아니 됐다.”

뭔가가 소리 없이 주위를 빙빙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살기가 느릿느릿 회전하고 있었다.

“은신 다시 해. 무슨 일 있어도 풀지 말고 가.”

[···알겠음.]

“드론은? 영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드론?]

[어? 드론이···]

“그래.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당황한 김 양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올빼미 잡는다고 집중하는 동안 나머지 드론이 전부 잡힌 것 같았다.

마루의 센서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고 있었다. 김 양의 엑소슈트 센서도 마찬가지. 센서 범위에는 걸리는 게 없다는 의미.

센서 범위 바깥이면 상당히 먼 거리일 텐데, 이런 느낌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살기를 느낄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난 것 같지는 않으니. 이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기분이 정말 더럽네.’

마루도 걸치고 있던 은신 로브를 작동한 뒤, 조금 거리를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하늘은 두꺼운 구름이 깔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캄캄한 숲이 더 깜깜했다.

누구인가? 어떤 것이 내 4드론을 건드린 것이야!

김 양이 새까만 하늘을 노려봤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그렇게 12.7mm에 두들겨 맞고 떨어진 올빼미 사체를 확인한 두 사람은 순간 당황스러웠다.

올빼미는 몸통 크기만도 1m는 넘을 법했고. 날개 길이를 펼치면 거의 5m에 육박했다. 더 큰 문제는 이것들이 동물원에서 탈출한 놈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동물원에서 동물들 관리하기 위해 삽입한 마이크로칩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전 김 양이 잡은 올빼미는 처음부터 자연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던 놈이었다는 말.

마루가 40~50cm쯤 되는 커다란 깃털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흔히 접할 수 있는 깃털에 비해 크기만 컸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했다.

[이거 이상함. 망가진 깃털이 거의 없음.]

“그렇게 두들겨 맞았으면 엉망이어야 할 텐데. 그냥 단순한 깃털이 아니네.”

첨단 소재로 만든 깃털같이 매끄럽고 윤기나는 모양.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에서 잡은 뱀의 비늘처럼 독특했다.

올빼미의 다리도 무시무시했다. 육식성 조류 특유의 날카로운 발톱은 흉기 그 자체. 저런 발톱으로 움켜쥐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냥 나왔다가, 기분만 찝찝해졌다.

“일단 돌아가자.”

[···알겠음.]

4륜구동 오토바이에 올빼미 사체를 둘둘 말아 묶는 순간, 두 사람의 HUD에 고속으로 접근하는 붉은 점이 하나 떠올랐다.

철컥-

김 양은 붉은 점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총구를 겨눴다.

삐-

삐- 삐-

하나였던 점이 2개로 분열됐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붉은 점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HUD 화면 한쪽을 가득 채운 붉은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봤음?]

대따 많은데?

“여차하면 CS탄 깔 테니까. 시동 걸어 놓고 있어.”

마루의 전기 오토바이와는 달리 김 양의 4륜구동 오토바이는 엔진으로 굴러갔다. HUD의 영상. 밀려오던 붉은 파도 가운데 일부가 방향을 바꿔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들 봤음? 지금 빙빙 돌고 있음.]

마개조 엑소슈트 성능 검사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스르르르릉-

“쏴!”

투다다다다-

예광탄이 어둠을 뚫고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놈들을 향해 총알을 때려 붓자, 빙글빙글 원형으로 돌던 것들이 김 양의 배후를 향해 뾰족하게 찔러 들어왔다.

후으읍-

깊게 호흡을 한 마루가 언제든 몸을 날릴 자세를 취했다.

‘와라.’

칼을 앞으로 겨눈 마루의 헬멧에 바글바글 날아드는 새떼가 반사됐다. 새 나오는 공포영화가 떠오르는 모습.

‘아- 이건-’

팅-

푸쉭--- 푸쉬쉬쉬쉬쉬

뒤를 믿고 정면을 향해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던 김 양이 하얗게 퍼지는 연기를 보고 외쳤다.

[여차하면 쓴다며?]

[앞이 안 보임!]

“그냥 방향만 보고 쏴!”

“어차피 공기 반, 새 반이야!”

투다다다다닥-

하얗게 피어오르는 CS탄 연기를 뚫고 예광탄의 빛줄기가 깜깜한 하늘을 꿰뚫었다.

파다다닥-

퍼더더덕-

독한 연기가 피어오르자 새들이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하늘로 떠올랐다.

새들은 도망치지 않고, 소용돌이처럼 빙글빙글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움직이듯 회전하는 새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CS탄이 만든 짙은 연기가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방아쇠를 풀로 당기던 김 양이 하늘을 바라봤다. 날갯짓 소리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새들이 회전하며 만든 난기류에 수풀이 흔들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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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군 + 주 방위군을 동원한 솎아내기 작전은 생각보다 진척이 느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재플린 미사일과 CS탄 공급 문제였다.

“이게 말이 되나? 보급이 부족하다고?”

“재블린이 부족해? 비축했던 물량은 어딨고?”

“비축했던 물량 상당수를 우크라이나와 일본 주둔군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지원으로 재블린 미사일과 지뢰류, 유탄류, 저격총, 특수탄 같은 것들이 왕창 빠졌다. 일본에서 교전하고 있는 병력도 마찬가지 품목이 필요했고.

아무리 보급해야 할 곳이 넘친다지만, 마음만 먹으면 폭격기도 붕어빵 찍듯 찍어내는 나라가 미합중국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뭔가? 전투기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잠수함이나 탄도 미사일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소형 미사일과 화학탄이 부족해서 쩔쩔매다니.

“안타깝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신음을 앓고 있었다. 변종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반도체 생산과 수요 폭증은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재블린 미사일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셋의 가격이 순식간에 5~6배가 뛰었다. 센서도 마찬가지. 총력전 상황이라면 반도체 생산, 수입분을 모조리 무기 제조에 돌려버리고, 연방 정부 주도로 일괄 매입해버리면 될 일이었지만, 현재는 총력전 상황이 아니었다.

CS탄은 더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CS탄 부작용 논란과 위험성 논란으로 생산설비가 대폭 축소된 상태였다. 생산라인 다시 확보해서 찍어내려고 보니, 이번에는 원료가 문제였다.

CS탄을 대량 생산하지 않은 지 오래, 원료가 필요 없어졌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유지됐겠는가? 미국의 화학업체들과 소재 업체들이 CS탄 관련 약품을 다루지 않게 됐다.

더 중요한 건 최근 화학공업에 사용되는 원료들의 값싼 공급처가 중국이었다는 것.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는 끝장난 거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해 CS탄을 대량 생산하려면 화학기업들이 원료를 생산하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재블린은 반도체와 센서 때문에 그렇다고 치지만, CS탄은 비축분도 있었을 텐데. 그 많은 물량을 며칠 만에 전부 소모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3성 장군의 말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사태가 발생하기 전, 재고품을 대량으로 정리한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 깡통 햄도 유통기한이 있듯, 총알도 포탄도 전부 유통기한이 있었다.

그건 CS탄도 마찬가지. CS탄을 돈 주고 폐기하느니, 유통기한 몇 년 남지 않은 것들 돈 받고 치웠더니, 이렇게 됐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전부 다시 가져와.”

3성 장군의 명령에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군부에서 마루 빌딩에 가득 쌓여있는 물자를 노릴 무렵,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은 위장약을 씹어먹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위에 구멍이 뚫릴지 몰랐다. 암에 걸리든.

‘블러디 타워에 있는 물자를 징발하겠다고?’

주로 CS탄이 되겠지만, 12.7mm 작열소이철갑탄 같은 특수탄, 크레모아 같은 지향성 지뢰도 징발 대상에 들어가 있었다.

이제까지 경험한 바로는 그 블라디마루는 결코 자기 것을 뺏기지 않을 사람이었다.

징발하면 그 대가는?

군부에서는 대가를 생각하고 징발하겠다는 건가?

미친 척하고 징발 거부하고 소송전으로 간다면?

소송전이면 다행이지 무력으로 징발하려고 하고 무력으로 대응한다면?

이곳은 미합중국이었다. 사유재산을 국가가 강제로 징발하려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국가.

합법적으로 징발하려면 우선 의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시민들에게 징발이 필요한 이유와 상황을 언론을 통해 공개해야 했다. 이후 연방 정부의 징발 실행 발표와 징발.

그리고 이렇게 공식적으로 징발에 들어간다면, 동의한 의원들은 정치적 생명을 걸어야 했다, 연방 정부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아도 사재기가 시작되고 있는 판국에, 사유재산을 징발해야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공식적으로 까발려라?

그러니 공식적으로 징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징발이면서 합법적인 징발까지 걸리는 시간과 정치적 부담을 피하는 방법으로 가져가려고 하겠지.

‘너 알아서 물건 내놓지 않으면 재미없을 줄 알아?’

근데 그런 압박이 블라디마루에게 통할까? 안 통하면?

‘누명 씌워서 잡자.’ 이러는 놈도 생길 거고, ‘잡아서 세뇌하자!’ 이러는 놈들도 다시 나오겠지? 슬금슬금 조짐이 있었다.

저번에 납치하겠다고 하다가 단체로 뒈진 지 얼마나 됐다고. 잠잠하다 싶더니 또 지랄이었다. 다들 지능이 병신이라도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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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우우웅-

태풍처럼 회전하는 새떼를 향해, 한두 마리씩 합류하는 새들.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모이는 사방이 새로 뒤덮였다.

날갯짓으로 바람을 만들어서 연기를 흩어? 새대가리라고 욕도 못 하겠네. 놈들이 덤비려는 순간마다 CS탄을 까다 보니, 이제 남은 건 3발.

“야. 먼저 가라.”

[미쳤음?]

바로 반응하는 김 양의 말에, 문득 한국을 탈출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의 김 양이라면 얼씨구나 좋다. ‘님 수고요.’ 하고 런했을 텐데 말이다.

“미쳐? 많이 컸다. 너?”

[······.]

마루도 김 양도 은신 장비를 활성화한 상태. 그런데도 새들은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대략이나마 아는 것 같았다.

“엑소슈트 장갑 믿고 있다가 죽는다.”

쥐떼의 이빨이라든지, 바퀴벌레의 갉음을 막았으니 새의 발톱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오른다면? 높이 끌고 올라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면?

대가리가 좋아진 새들이니 그런 방법으로 사냥할지 몰랐다. 잡혀서 끌려 올라가면 그걸로 끝.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은신 기능 개조했다면서, 오토바이까지 은신 장비로 덮을 수 있게.”

그거 이용해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김 양이 은신한 공간이 일렁거렸다.

“가!”

[······.]

일렁일렁 멈칫하던 공간이 낮은 배기음과 함께 멀어졌다.

동그랗게 회전하던 새들이 김 양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일그러져 타원형을 만들었다.

역시··· 새들은 은신을 대략 알아채고 있는 게 맞았다.

마루가 은신 로브를 벗으며 오토바이 라이트를 켜자, 길게 빛으로 된 길이 생겼다. 김 양을 향해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지던 모양이 다시 마루를 향해 원형으로 돌아왔다.

후으읍-

길고 깊은 호흡의 끝.

치익- 미리 박은 중화제가 혈관을 차갑게 식혔다.

떠올리는 것은 분노와 살의.

괴물 쥐떼들을 잡았을 때의 감각. 살의를 뭉쳤을 때의 그 감각.

상단으로 칼날을 치켜든 마루가 터지기 전의 화산처럼. 속으로 속으로 살의를 쌓고 쌓았다.

파다다다닥

우우우우웅

벌떼 소리, 태풍이 불어닥치는 소리와 함께 동그랗게 회전하던 새들이 마루를 덮쳤다.

동시에 뭉클- 치솟은 살기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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