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스트-246화 (246/280)

러스트 [RUST]-246

멍-

여긴 어디?

병원인가? 병실이고.

나는 누군지 알겠는데··· 왜 여깄지?

김 양은 흐리멍텅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기억이. 이상했다.

살금살금 백정에게 다가가서 엑소슈트 소리 조용해진 거 자랑하면서, 슬쩍 분위기 보고 그거 배우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병실이라니.

그거? 그게 뭐였지? 뭘 배우려고 했었더라.

끙-

윙윙 울리는 귓가. 가슴도 뻐근하고 전신에 힘이 없었다.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백정이었다.

“야 괜찮냐?”

“죽겠음. 전신이 쑤심.”

마루는 앓는 김 양을 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러게 멀찍이서 잘 놀다가 살금살금 몰래 다가왔어?”

“살금살금?”

기억났다! 그러니까 새떼 잡은 거. 그거 배우려고 조용조용 몰래몰래 다가갔다가. 갑자기 숨이 컥 막히더니 여기였다.

“모르겠음.”

“몰라?”

마루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거 설마 기억에 문제 생겼나?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를 막았던 자경 대원들 가운데 심장마비, 반신불수 그리고 정신이상이 있다고 했다. 마루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김 양이 다시 눈에 힘을 빡 주고 말했다.

“모르고. 새떼 잡은 거 그거 배우고 싶음.”

“살기?”

끄덕끄덕

맹하니 끄덕이는 김 양을 본 마루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넌 저격수잖아. 저격이 아니더라도 총질 전문 맞지?”

“당연한 소릴 왜 함?”

“저격수가 저 멀리서 네 머리통 겨누는 게 느껴지면 피할까 피하지 않을까?”

‘아니, 왜 계속 당연한 소릴 하는 것임? 알려주기 싫은 것임?’

김 양이 멍멍한 눈빛을 보냈다.

“나야 근접이니까 근거리에서 살기를 쓰면 어떻게든 되지만, 넌 총잡이. 원거리잖아. 원거리면 살기를 죽이는 법을 찾아야지, 살기를 배워서 어쩌겠다는 건데? 이제 총 쏴서 죽일 테니까 알아서 피하라고 광고하고 다니겠다는 거야?”

“······.”

물끄러미 마루를 바라보는 김 양의 눈빛.

‘그러니까 안 알려주겠다는 거?’

“하- 아- 그래 알려줄 게. 그게 뭐라고.”

마루의 흔쾌한 대답에 김 양이 한껏 기대했다.

“그러니까 방법은 간단해. 진짜 최고로 빡칠 때를 상상해 봐. 그리고 그 빡침을 살의로 바꾸는 거야. 죽인다. 죽여버리겠다. 그 살의를 분출하는 거지.”

진짜? 그것만으로 된다고?

김 양은 냉큼 최근 빡친 일을 떠올렸다. 채식이. 채식이. 채식이··· 5채식이에 바운스 받고 바운스 해서 2바운스. 아! 다시 생각해도 진짜 빡 돌았다.

이걸 ‘죽인다!’로 바꾸라는 거지.

드디어- 파이널리- 김 양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후-후- 죽음!”

“······.”

“죽어!”

“······.”

“뒈지셈!”

“······.”

김 양의 처절한 발버둥을 바라보던 마루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해라. 나중에 연습 많이 하고 다시 해봐.”

이게 연습으로 될 게 아닌 거 같은데? 아무 느낌도 없잖아. ‘백정이 속임?’, ‘백정이 장난?’

“이거 진짜 됨?”

김 양의 눈빛이 불신으로 변했다. 피식 피식 웃던 마루가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우고 김 양을 바라봤다.

으스스한 느낌. 순식간에 공기가 차가워지고 무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 오도독 소름이 돋아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 이거? 그냥 이게 된다고? 김 양의 민감한 촉이 맹렬하게 경고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가슴이 심장이 막 답답해지기 시작하고. 숨이··· 숨을···

“어때? 아닌 것 같아?”

마루의 말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공기가 가벼워졌다. 학-학-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김 양이 다시 침대에 늘어졌다.

삑삑삑삑삑--- 바이탈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자, 의료진들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환자 상태는?”

바이탈이 급격하게 요동쳤는지, 의료진들이 병실로 들어와 김 양을 이리저리 살폈다. 기운이 쪽 빠진 김 양이 흐느적거리는 몸을 맡겼다.

“일단 지금은 진정됐나 봅니다.”

“이상 징후 없습니다.”

“혈액검사부터 다시 하자고.”

의료진들이 마루를 병실 밖으로 내쫓았다.

환자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원인 불명의 심장마비였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지켜봐야 하는데 스트레스 주지 말라며 끌고 나갔다.

밖으로 끌려나가는 마루를 보며 파김치가 된 김 양이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저 새낀 사람 새끼가 아님.

응.

그래 백정한테 뭘 알려달라고 했던 게 잘못이지. 다람쥐면 도토리를 먹을 생각해야지, 물고기 잡겠다고 하면 되겠음?

어쩐지 진이 빠져버린 김 양이 끼무룩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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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 아크 타워 공학자들은 오늘도 밤을 지새웠다.

“오늘도 안 들어가나?”

“흥- 그러는 자네는?”

“들어가면 뭐 하게. 하던 거나 마저 손 보는 게 맞지.”

“그렇긴 해. 그럼 이거 손보고 나면 치맥이나 하고 한 게임 할까?”

넘치는 재료로 자유로운 창작연구활동은 기본에,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생활이었지만, 숙소에 가면 부인들의 바가지가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구진들의 부인들은 점차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처음에야 시절이 불안했으니, 아크 타워로 들어가는 걸 찬성했다.

변종 바이러스 확산으로 분노조절에 문제 생긴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고 치고 수용소에 끌려가고, 거리에는 군대와 경찰이 넘치고, 흉흉한 소문이 넘치는 상황이었으니까.

근데 아크 타워에 입주한 지 한 달이 넘도록 세상은 망하지 않고 있었다. 흉흉한 소문이야 바이러스 사태 이후엔 항상 있었던 일이었고, 3차 대전이니 핵전쟁이니 소문만 무성할 뿐.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뉴스를 봐도 그렇고 인터넷 포탈을 봐도 아주 시골이나 국립공원 인근이나 문제 있을까, 도시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도시는 오히려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다. 군과 경찰이 강력하게 치안 활동을 하니, 범죄율이 낮아졌고 잡범들이 나대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 LA는 마약상과 카르텔, 갱단들도 싹 정리돼서 범죄, 마약 청정도시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근데 아크 타워에서의 삶은 뭔가? 명품도 없었고, SNS도 불가능했고, 멋진 레스토랑도 없었다.

따지고 본다면 아크 타워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상당한 수준이었고, 언제든 필요한 물품을 돈으로 구할 수 있었지만, 사람 사는 게 그게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백화점 매장에서 접대받으며 쇼핑하는 즐거움은? 멋진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잡고 싶을 때는? SNS에 자랑도 좀 하고 싶으면? 애들 학업 관련으로 이리저리 레이더 돌리고 또래 엄마들하고 모임도 하고 그러는 게 사는 재미 아니던가?

근데 이놈의 아크 타워엔 그런 게 없었다. 그럴 기미도 보지 않았다. 망한다는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이곳만 종말이 곧 닥칠 것처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부인들은 연구원, 공학자들이 숙소에 들어오면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들어왔냐를 시작으로,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 감옥이다. 전에 있던 연구소에 계속 있었으면 되는 걸, 당신 귀가 얇아서 그만둔 거 아니냐. 세상이 멀쩡한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 나갔다가 일 생기면 들어온다고 하자.

이래저래 작업실과 연구실에서 하던 거 계속하는 게 편한 연구원들과 공학자들이었다.

“이번에 그 아가씨 엑소슈트에 긴급 생명유지 장치 달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게. 엑소슈트에도 기본 인공지능 탑재했으니까 망정이지.”

“변종 코요테랑 늑대 봤지? 그거 계속 실험 중인데 장난이 아니더군.”

“처음에는 털이 꼭 바늘 같았다니까.”

“바늘? 텍사스 멧돼지 잡은 영상에서도 비슷한 거 나오지 않았었나?”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해외쪽 정보가 빠삭한 애가 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상황이 심각한 것 같더라고.”

치킨에 맥주를 뜯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던 사람들 앞에 마루가 뚝 떨어졌다. 갑자기 연구자금 물주님+건물주님+HOLY님의 등장에 사람들이 얼음 상태가 됐다.

“편하게 드세요. 편하게. 감사 인사드리려고 온 겁니다.”

마루는 김 양의 엑소슈트에 긴급 생명유지장치, 자체 인공지능시스템 등 마개조를 한 사람들을 치하했다.

“연구하는 데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

“······.”

“건의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그러시면 말씀해 주세요. 검토해 보겠습니다.”

“저···. 가족들이 너무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며칠 밖에서 지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렵겠습니다. 입주계약서 쓸 때, 말씀드렸지만, 밖에 나가면 다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면 전부 내보내는 거로 했다. 마루를 잡으려고 간호사를 인질 잡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더 그랬다.

연구진들 가족들이 밖에 나돌아다니다가 인질 잡히면? 인질 잡고 내부 자료 넘기라고 한다면? 복잡해지기 마련이니, 애초에 여지를 주지 않는 게 좋았다.

“입주한 지 한 달이 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건축과 공간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공시설, 연구실, 생산시설을 제외하고 거주 부분만 따진다면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종말 대비 벙커나 쉘터의 개념으로 본다면 차고도 넘치는 공간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살아가는 생활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500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인원들 더 받아서 1,000명이 넘어간다고 가정···.”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 건축사의 이야기에 심리학자도 동의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아크 타워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주장.

밖이 지옥이라면 안은 천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근데 밖이 딱히 지옥이지 않으니, 안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라는 말.

고작 한 달하고 보름이 넘었을 뿐이었다. 입주신청서를 쓰고 계약까지 했는데도 이렇다면 아무래도 가족 단위로 받는 건 최소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장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일반 거주구역은 지금보다 대폭 넓어져야 합니다.”

“···인접한 빌딩과 공원 부지까지 확대한다면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강변까지 이어지는 라인을 확보하면 언제든 수로를 이용할 수 있게···.”

김 양의 엑소슈트를 마개조 했다더니, 이 사람들 아크 타워가 아니라, 아크 타운이나 아크 시티를 만들 기세였다.

마루는 고려해 보겠다며, 자세한 내용은 정리해서 올려보내라고 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다들 배가 부른 거 아닌가? 고속도로를 끊고 지나가던 트럭 징발하는 자경대가 있을 정도인데 이게 평화롭다고?

공식적인 보도가 전부가 아니었다. 마루도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이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현재 상황을 알려서 불만을 잠재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혹 떼려다 붙일 게 뻔했으니까. 그렇다면 영 분위기 흐리는 사람들은 빨리 쳐내고, 새로 받는 사람들은 미혼자 위주로 뽑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디아나. 바람 잡는 사람들 있나 확인하고. 물 심하게 흐린다 싶으면 따로 분류해 줘.”

[분류 자료 전송했습니다.]

벌써?

“마이클 뉴먼 PD에게, 새로 뽑는 사람들은 가족관계 아주 단순하거나, 싱글인 사람들 위주로 보라고 전해줘.”

[요구사항 보냈습니다.]

[덴 브라운 과장이 보낸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갑자기 왜 이렇게 빠른 거야. 그만큼 CS탄을 빨리 확보하고 싶다는 건가? 마루는 물건을 받아 훈련장으로 향했다.

길이 1m 조금 넘는 긴 금속상자엔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달려있었다. 덴 브라운 과장이 보낸 12자리 비밀번호를 누르자. 칙- 낮은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드러났다.

‘이게 칼이라고?’

마루는 눈썹을 찌푸렸다. 외계금속이라고 해서 아주 멋지게 빠진 칼을 생각했는데.

“그게 뭐였지? 새까만 돌인데 칼로 쓰고 그랬던 돌.”

[흑요석입니다.]

그냥 흑요석도 아니고 두들겨 맞은 흑요석이라고 해야 할까. 자세히 보니 흑요석도 아니었다. 번들거리는 표면과 울퉁불퉁한 금속성 재질이 뒤섞인 모습.

이게 금속? 강철도 자를 수 있다고? 그냥 깨질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가공한 흔적이라고는 손잡이 붙여 놓은 부분밖에 없었다. 영 미덥지 않지만, 써보면 알겠지. 깨지거나 그러기만 해봐라.

마루가 손을 뻗자 웅-하고 진동하는 칼.

손잡이를 잡으려던 마루가 손을 슬그머니 뒤로 빼자 잠잠해졌다.

“이거 지금 반응하고 있는 거냐?”

[···CCTV 화면에는 이상 반응 없습니다.]

하- 대체 뭘 보낸 거야.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자, 웅- 느껴지는 진동. 마치 앙칼진듯한 떨림이 퍼졌다.

이것 보소?

지금 뭐하는 거지?

확 분질러서 똥통에 박아버릴라.

뭉클- 마루의 살기가 치솟았다.

하다 하다 칼도 지랄? 우주고 외계고 썅-

언제 떨었느냐는 듯 잠잠한 칼 손잡이를 붙잡고 칼을 노려봤다.

번쩍 들어 올린 칼은 무거웠다. 상당히. 강철의 3~4배는 될 법한 무게. 비슷한 크기의 칼이면 1.5~2kg 정도일 텐데. 이놈은 최소 6kg은 넘어 보였다.

훈련장 한쪽에 준비해둔 연습용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향해 냅다 휘둘러 보는 마루

칼날이 상하든지, 깨지든지 말든지, 그냥 칵- 대충 휘두른 칼질에

부우우우우우욱---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길게 찢어졌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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