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47
잘린 단면이 거칠었다. 마치 전기톱으로 자른듯한 절단면.
대충 부러지거나 말거나 막 휘둘렀는데 이렇다고? 대체 뭘 보낸 거야?
[···덴 브라운 과장이 보낸 취급 안내문을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보고드리기도 전에 휘두르셨습니다.]
“일단 보내봐.”
[이미 보내드렸습니다.]
“······.”
마루가 파일을 확인했다. 1940년 알래스카에서 발견 2000년까지 실험. 군 연구기관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구원들이 실험을 거부.
철근 콘크리트를 가볍게 관통하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분쇄하려고 했지만, 실패. 전자현미경, 엑스레이 등으로 분석 불가.
이후 22년 동안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나왔다는 이야기.
주의사항으로는 ‘연구원들 가운데 환청이나 환각으로 정신병원에 간 사람이 소수 있음. 해당 금속과의 연관성은 미확인.’ 이라고 해놓고는 ‘금속이 아닐 수 있다.’는 각주가 있는 파일이었다.
그러니까 금속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철근 콘크리트는 쑹덩쑹덩 자를 수 있지만, 정신병과 연관성 있다는 증거는 없다는 소리?
이거 웃기는 걸세?
마루가 히죽- 손에 쥔 칼을 흔들었다.
피각- 피각- 표면이 고르지 못해서인지, 공기 자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표면이 균일하지 않으니까 채소나 과일 같은 거 썰 때, 칼날에 달라붙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부엌칼로 쓸 게 아니라서 그건 의미 없겠나?
부가가가가가가각-
근데, 썰리긴 진짜 잘 썰리네. 원리가 뭘까?
물어볼 사람은 많았다.
“분자 단위로 진동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진동하니까. 단분자 커터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SF 영화나, 소설 같은 데 등장하는 거 말입니다. 단분자 커터, 초진동 블레이드. 뭐 그런 비슷한 부류가 아닐까요?”
연구원들은 마루가 가져온 신기한 칼을 보곤 한마디씩 했다.
이글이글 씹고, 분해하고, 맛보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는 모습. 하지만 취급 안내문을 읽더니 다들 떫은 표정으로 손사래 쳤다.
“이게 그거군요. 옛날 유명했던 소문의 그거.”
“들어봤습니다. 교수님이 이야기해주셨던 논란의 그건데. 실재하고 있었네요.”
“와 이게 진짜였네. 있다, 없다, 내기까지 했었는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자세히 좀 알려주시죠.”
“이상한 성질을 가진 외계금속이니 우주금속이니 그런 게 군 실험실에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엄청 오래된 괴담 같은 이야기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거의 한 번은 들어봤을 겁니다.”
기기괴괴한 이야기들이 넘쳐났던 시기, 선배 또는 교수들 사이에서 한 번쯤은 거론됐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1급 비밀이었지만, 2급 비밀로. 2급 비밀에서 3급 비밀, 그렇게 마지막에는 기밀해제가 됐고 나중에는 그냥 가끔 안줏거리로 쓰였던 금속이라고 했다.
“초진동 블레이드나 단분자 커터 같은 성능인데, 원리를 분석하기만 하면 대발견 아닙니까? 근데 왜 다들 포기하는 거죠?”
“60년 넘게 대를 이어서 붙잡고 있던 가문도 있었지만,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쩝- 간단합니다. 성분이든 구조든 분석하려면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다거나, 하다못해 비파괴검사라도 먹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근데 저건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검사장비가 먹히지 않아요.”
사실상 원리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 레이저로 자르려고 했더니 레이저를 반사, 산란시켜 사방을 개판으로 만든 전력까지 있다고 했다.
어쩌겠나? 강산에도 담가 보고, 염기에도 넣어보고 별짓을 다 했는데, 그딴 짓을 하던 연구원은 정신병원행.
마루가 새로 확보한 칼은 그런 것이었다.
이래저래 조금 찜찜한 것을 제외하면 마음에 드는 칼이었다.
‘끝내주게 썰리기는 하는데··· 정신병원은 어쩌다 간 거야?’
휘이익- 부이힉-
처음에도 느꼈지만, 파공음이 너무 크다는 것이 단점. 감각이 예민한 놈들이라면 칼질하는 소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장점은 말 그대로 싹둑싹둑 썰 수 있다는 것. 중화제 꽂지 않아도 너끈하게 철근 콘크리트 따위는 썰 수 있었다.
조금 더 힘을 주면?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라 정말 강철도 잘랐다.
부가가가가각----
대표적으로 총신이라든지, 자동차 프레임 같은 것.
폐차장까지 가서 시험 삼아 썰어 본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지간한 자동차 껍데기는 버터나 두부를 먹는 느낌이었다. 프레임 중간중간 단단한 부분만 두꺼운 종이 씹는 감각이었고.
‘이름은 뭐가 좋을까?’
자른다기보다는 검 날에 닿는 부분이 먹히거나 씹히는 느낌.
먹는다.
무언가 먹는 이미지.
폐차들이 이쁘게 토막 난 야적장에서 마루는 문득 하늘을 바라봤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밝게 빛나는 태양.
“이클립스(Eclipse)”
마루가 어깨를 으쓱하곤 폐차 엔진에 이클립스를 박아 넣었다.
쑥 꽂히는 칼날.
기억하고 있었다. 환각이나 환청이 아니었다면, 이놈은 분명 처음에 진동했었다. 그리고 빡쳐서 분질러 똥 통에 처박으려고 했더니 잠잠해졌었다. 그러니까 이걸로 연습할 수 있겠지.
살기 연습.
어딜 칼 따위가 뒈지려고!
뭉클- 피어오른 살기가 폐차 엔진에 비석처럼 꽂힌 이클립스를 향해 쏘아졌다.
[덴 브라운 과장의 연락입니다. 칼은 어떤지 궁금한가 봅니다.]
“나쁘지 않다고 전해줘. 거래하겠다고. 그리고 레이저가 어려우면 옆에 빌딩 반쯤 비었던데 그거랑 근처에 있는 공터를 받는 거로 줘도 된다고 해.”
연구원들과 전공자들이 보낸 계획서를 보면, 면적을 넓힐 필요가 있어 보였다.
몇 개월 정도면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항공모함 승무원이나 핵잠수함 승무원을 생각하면 되니까. 근데 기약 없이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면적이 넓은 게 좋았다.
[공터는 가능하지만, 빌딩은 어렵다고 합니다.]
“레이저는?”
[레이저는 통제할 수 있는 병력이 상주하는 조건이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럼 레이저는 됐다고 하고. 앞에 있는 공터와 제반 공사물자로 받겠다고 해봐.”
[그렇게 하겠답니다. 군에서 CS탄을 빨리 넘겨 달라고 하는데요?]
“소유권 이전하고 바로 가져가라고 해.”
그렇게 군과의 거래가 깔끔하게 끝났다.
건축, 조경 관련 전문가들은 마루가 넓은 공원을 차지했다는 말에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아크 빌딩과 아크 빌딩의 벽을 내성처럼 생각하고, 새로 얻은 공터를 외성 영역으로 해서, 외성을 이루는 벽을 단순한 벽이 아닌, 집으로 만들자는 계획.
“괜찮겠습니까? 오래 걸리면 위험한데 말이죠.”
“공병대가 도와주면 금방입니다.”
“골조만 해결되면, 인테리어는 나중에 조금씩 알아서 꾸며도 되는 거니까요.”
“설계는 인공지능이 있으니까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아크 타워와 주변 공원을 감싸는 공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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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가공업체.
커다란 바퀴들이 고소하게 볶이는 모습.
“120도 이상에서 10분 이상 가열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야 좋죠.”
중국 정부에서 발표한 가공 방법. 120도 이상의 고온에서 10분 이상 가공할 것.
공장장의 대답에 사장의 볼살이 푸들 떨렸다.
“전기요금이 계속 오르고 있어. 안전하게 살균하면서 처리 시간을 줄일 수 있나?”
“사실 바이러스니 세균이니, 어지간한 건 고온에서 몇 분만 처리하면 싹 사멸됩니다. 우유에 있는 잡균들 몇 초만 살균해도 싹 사멸되지 않습니까?”
공장장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우유도 몇 초 살균이지 않던가? 근데 10분이면 너무 오래 하는 것 같았다.
석유와 석탄 수입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중국은 전력난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전기요금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상황. 전기요금도 요금이지만, 물량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10분 처리하던 걸 5분으로 줄이면 물량은 2배 많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럼 1분으로 줄이면? 10배가 되지 않을까?
“1분이면 어떨까?”
“1분이어도 충분하죠.”
그리고 어떤 가공업체에서는 고온으로 바퀴를 죽인 뒤, 건조는 태양광을 이용해 자연 건조하는 곳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바퀴를 죽이는 데 돈을 쓴다고? 미쳤나?”
새우는 물에서 꺼내면 죽는다. 근데 바퀴는? 죽이려면 짧게라도 가열 과정이 필요했다. 가열한다는 건 곧 돈이 들어간다는 소리. 굳이 바퀴를 그렇게 써야 할까?
그래서 한 공장에서는 바퀴벌레를 거대 쥐의 사료로 쓰기 시작했다. 쥐에게 바퀴벌레를 먹이로 준들 뭐가 문제인가?
그렇게 바퀴 가공식품과 쥐 고기가 중국 전역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가공육 공장.
“100도에서 20분간 가열하는 건 너무 오래 가열하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비용이 증가하는데 20분간 가열은 비용상 문제가 있었다. 변종 돼지를 쓰는 이유가 뭔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아니었던가? 그런데 20분간 가열이라니. 심지어 오래 익힌다고 맛있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온도를 높이고 시간을 줄이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바이러스랑 세균만 살균하면 되는 것 아닌가? 온도를 확 높여서 150도로 한 2분만 익히는 건 어떨까? 2분이면 충분하잖아.
그리고 다들 먹을 때 생으로 먹나? 전기 레인지에 돌려서 먹든, 요리할 때 넣어서 먹든, 튀기든 가열해서 먹지.
포장지에 적어두면 된다, 가열섭취식품이라고. 그럼 재가열해서 먹겠지.
“실험해 보죠.”
“150도에서 2분 가열하면 대부분 사멸하고, 추가로 전기 레인지에서 3분 이상 가열하면 사멸하는 거로 나왔습니다.”
“실험해 보니 1분 30초만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그냥 1분으로 하고 전기 레인지에 3분 30초, 프라이팬에 5분 이상 가열하라고 합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식적인 연구결과는 회피하기 마련이었다. 소송에 걸리지만 않으면 됐다. 소송에만. 가열해서 먹으라고 박아뒀는데, 생으로 먹고 문제 생기면 누구 탓이겠나?
사재기로 보존 식품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가격이 20% 이상 저렴한 장기보관용 햄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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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비상대책회의.
“사재기로 식품 가격이 폭등할 조짐이 있다면서요?”
“개량된 가축들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가공육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개량된 가축이라는 소리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가는 분위기였다.
이미 허용하고 있는 GMO 작물도 마찬가지 아닌가? 유전자 조작 식품 다 통과시킨 판국에 변종을 가공, 살균한 식품을 통과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현재 GMO 식품은 안정성 논란이 있음에도 유통하고 있지 않던가? 이에 반해, 거대화된 가축들은 살균처리만 제대로 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로비 받아먹는 걸 포기하고 막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바이러스를 이용해 식물까지 개량하고자 하는 회사들이 나오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 근간에는 길버트 브라운 대령(진급)이 일본에서 확보한 연구결과가 있었다.
“복잡하군요.”
“일본에서는 아직도 임시정부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일본이야 초토화됐다지만, 서일본과 홋카이도는 아직 버티고 있었다. 큐슈와 동일본이 날아가면서 일본의 절반이 절단 났지만, 그래도 나머지 절반이 있음에도 중앙정부를 구성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상했다.
“혹시 책임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중앙정부 구성을 늦추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일본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자면,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최초 진원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바이러스 확산을 통해 장기적으로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만들려고 했다. 거기에 일본이 편승했고.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라 이거 바이러스에 걸리면, 맛이 가는데? 이거 약이랑 비슷하지 않나?’
육체적인 능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고, 고통을 잊는다. 마치 전투자극제처럼. 이후 심각한 후유증이 있지만, 알게 뭔가?
그래서 바이러스를 이용해 원료를 뽑아봤더니 웬걸. 제법 쓸만한 약이 나왔다. 그렇게 나온 약이 버서커 폴. 그걸 본 중국이 마이너 카피해서 만든 약이 크리스탈.
문제는 이 바이러스가 무엇의 영향을 받았는지, 계속 변이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방사능 때문인지, 아니면 누군가 또 장난질을 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일본에서 확보한 자료에 따르자면, 차원 관련 실험을 한 게 분명합니다.”
“소규모 블랙홀 실험도 논란이 있었는데, 차원 관련 실험을 했다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자료를 나눠 드릴 테니, 잠시 읽는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료를 읽던 덴 브라운 과장은 눈이 침침해졌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위에서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품업체, 제약업체의 로비는 계속되고 있었고, 이합집산도 그대로였다. 그러면서도 사방에서 블라디마루 타워와 비슷한 안전구역 공사를 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에 덴 브라운 과장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긴급 속보입니다. 시애틀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 발생.]
[현재 사망자는 빌 맥도널 상원 의원, 마이어 크렌 하원 의원, 베로아 모리스 하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전부 덴 브라운 과장을 쳐다봤다.
국토안보국이었으니까.
웅웅- 덴 브라운 과장의 전화가 붉게 진동했다,
긴급사태.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