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48
시애틀에서는 오랜만에 자선 행사가 있었다.
바이러스 사태로 파티나 모임이 억제됐었던 터라, 한 번 크게 열리면 지역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물 정치인들 경제인들이 모이는 만큼 보안이 철저했지만, 바이러스 사태로 검역이 강화된 만큼, 다른 부분이 약해진 건 사실.
이 사건이 단순 폭발사고가 아니라면, 노리고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붉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고 벌떡 일어선 덴 브라운 과장은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 보안이 된 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자마자 거친 소리가 나왔다.
“설마 테런가? 어디야? 이슬람 테러 단체? 단순 사고가 이렇게 공교로울 수는 없잖아!”
상원의원 한 명에 하원의원은 두 명이 사망했고, 그 외 다수의 지역 유지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외부가 아니라면 불안한 상황을 이용한 내부 공작의 가능성도 있었다.
[이슬람 쪽은 전부 마크하고 있었다. 그쪽은? 설마 아니겠지?]
“이쪽도 위험한 자들은 전부 마크하고 있었어.”
[빌어먹을. 인력이 부족해.]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어디야? 대략적이라도 가닥이 있을 거 아니야?”
[신일본 연합의 수장이 반미성향에 제국주의자라는 정보가 있다. 중국 북부전구는 굉장히 호전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다 아는 소리만 하지 말고···”
덴 브라운 과장이 멈칫했다. 중국? 갑자기 중국에서 성명을 냈었다. 생물병기를 미국이 풀었다면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을 경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했던 말.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에 북부전구 특작부대의 위치가 묘연해졌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이 떠올랐다.
“중국 북부전구와 연관있는 거지?”
[···확실하지 않다.]
이걸 놓칠 버지니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냥 놔줬다는 건가? 예전처럼? 테러 위험성이 있는 걸 그냥 간과했다고?
“북부전구 특작부대를 놓쳤으면 대비를 하고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대비는 그쪽에서 했어야지. 국토안보국이라면서. 국내 안보 책임지겠다더니, 일이 터지니까 책임 회피인가?]
폭발의 규모로 보거나 사망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어디야?”
[아직. 확실하지 않다.]
“말 돌리지 말고 중국이냐고!”
[FUCK! 중국이면? 전면전을 할 건가? 아니면 핵전쟁 하자고 할 건가? 이 상황에서? 확실하지 않다고 몇 번을 말해!]
“지금 우리끼리 알력 싸움할 상황이 아니야. 밥그릇 싸움할 상황이 아니라고.”
[누가 뭐라고 했나? 덤터기 씌울 생각하지 말라고. 정보는 전부 전해줬잖아.]
“전해줬다고? 그게 끝? 국외방첩, 국외사건은 그쪽에서 하기로 했잖아. 막기 힘들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든가.”
[계속 책임소재 따지는 거면 이만 끊지.]
덴 브라운 과장은 심호흡했다.
웅-웅-
“왜?”
[중국 정부에서 폭발 사고에 대한 위로 전문을 발표했습니다.]
“하- 진짜-”
[중국 대사가 시애틀 사고현장을 방문해 위로하고 싶다고 연락 왔습니다.]
이 새끼들이···.
사고 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장난치나?
머리끝까지 피가 솟구쳤던 과장이 겨우 진정했다.
“애들은 뭐라고 해?”
[현장에서 조사 중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게 뭐야?”
[파티가 열린 장소에 폭탄이 터졌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
휴대폰을 집어 던지고 싶은 것을 꾹 참은 덴 브라운 과장이, 옆에 있는 물병을 깠다. 벌컥벌컥 몇 모금 마신 뒤, 남은 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최악을 생각해야 했다.
버지니아에서는 중동을 쪽을 완벽하게 감시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슬람 과격 테러단체가 뚫고 들어온 거라면?
아니, 우크라이나 사태로 열 받은 러시아가 공격한 것이라면?
중국의 특작부대가 들어와서 저지른 일이라면?
신일본 연합이라는 일본제국의 망령이 신체강화자들을 앞세워 터트렸을 가능성은?
누가 됐든, 목적이 무엇이든 이것으로 끝날까? 지금 이 상황에서?
“FUCK!”
어디랑 전쟁하든지, 핵을 쏘든지 말든지 그건 나중 문제였다.
지금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흉수를 잡는 것.
이게 공격이라면 한 번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피해를 누적시키려고 하겠지.
덴 브라운 과장이 긴급대책회의실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눈이 그를 쫓았다.
“당장. 데프콘(방어준비태세. Defense Readiness Condition/DEFCON.)을 발령해야 한다고 봅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미합중국이 공격받았다는 말인가? 증거는 확실하고?”
“당신 정말 미쳤나? 저번에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하더니···.”
“데프콘이라고?”
우크라이나 사태, 대만 방어, 일본에서의 교전, 변종 바이러스 감염자 격리, 변이 괴수 토벌 작전 실행, 갱단과 카르텔을 주축으로 하는 집단범죄 대응, 사재기를 시작으로 한 약탈과 폭동만으로도 버거운데, 데프콘을 발동해야 한다?
긴급대책회의실이 요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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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부전구 중앙 회의실
“설마 아니겠지요?”
북부전구 별들이 떨고 있었다. 흔들리다 말지, 바닥으로 처박힐지 아무도 모르는 일. 그저 지금 미국에서 터진 일과 북부전구 특작부대가 연관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북부전구의 수장인 룽옌은 돼지들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내 자식을 건드리고도 그냥 지나갈 줄 알았나?”
“······.”
“······.”
“그게 누구든, 뭐든. 내 자식을 건드리고 살 생각을 해!”
룽첸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명예롭게 전사한 것도 아니고 바퀴벌레 밥이 되어 죽었다.
치욕스러운 죽음. 그런데 베이징에서는 그저 침묵으로 그쳤다. 참다못한 그가 실력 행사에 나서려고 하자, 그제야 미국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는 그것으로 끝.
지금이 미제가 제일 약할 때였다. 바로 이 순간.
미국 놈들이 가장 약할 때, 미제를 압박한다면 지금이었다.
그런데 변종 바퀴가 퍼졌다는 이야기까지 들고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바퀴벌레랑 쥐랑 키우고 있었다. 양식했더니 쓸모가 많더라.’ 이딴 소리나 하고 있어?
아직은 때가 아니다. 기다려 달라.
그래놓고 한다는 짓은 뒤로 몰래 숙청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똥별들 가운데 뒤통수를 칠 각을 노리는 놈이 있겠지.
룽옌은 그저 쓴웃음이 나왔다. 그가 북부전구를 계승한 지 20년, 룽씨 가문이 북부전구를 장악한 80년의 세월 동안, 이렇게까지 치욕스러운 일은 없었다.
근데 그게 자신의 대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자신을 우습게 봤으면 그러겠는가?
서자들이 있으니, 그 가운데 하나를 호적에 들이면 될 일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감히 내 아들의 피 값을 가지고 주둥아리만 놀리더니, 뒤에서는 숙청을 노려? 장난치다 끝장날지 모르나? 설마 미국을 때리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건가?
룽옌은 겉으로는 후계자를 잃은 아비가 분노에 찬 모습을 연기했지만, 속으로는 냉정했다. 북부는 룽씨 가문의 것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베이징에서 숙청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석과는 친분이 깊지 않습니까.”
쾅! 회의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중무장한 병력이 안으로 들어왔다.
룽옌이 흔들리는 별들을 바라봤다. 이 자리에 있는 별 가운데 절반은 오늘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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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가 된 자선 모금행사장 인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로제 룽은 웃었다. 더러운 미제 놈들. 모조리 죽어라.
항미전쟁이라고 말만 지껄이는 돼지들 때문에 오라버니가 죽었다. 그것도 끔찍하게.
미국의 소행이 틀림없었다. 뱃속에 바퀴벌레 알집을 박아 넣고, 흔적도 없이 붙이는 데 사용된 것은 분명 신형 접합제, 지혈제였으니까. 미군에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증거가 명백한데도 돼지 새끼들은 아직 미국을 자극하면 안 된다면서, 눈치만 살폈다. 그놈의 권력투쟁. 말만 번지르르한 반동분자들.
은신 장비의 일렁거림 속에 로제 룽의 미소가 짙어졌다. 더러운 위선자들아 복수는 이제 시작이다. 너희에게 지옥을 안겨주마.
미국에 들어올 때 이용한 신일본 연합. 놈들과 이번 사건이 연관됐다는 건, 미국의 정보기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딱 그런 흔적을 남겼으니까.
그 흔적을 찾은 미국이, 일본의 정신병자들이 테러한 것으로 판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재난 이후 공식정부가 없어 UN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인데, 미국은 어떻게 할까?
그 잘난 도덕성, 올바름을 들먹이면서, 테러한 범인이 나쁘지 일본인은 나쁘지 않다고 할까? 아니면, 재난 이후 정부를 만들지 못하고 각자도생하고 있는 일본 지방정부를 압박할 건가? 당장 식료품과 에너지 모두 부족해서 헐떡거리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조를 끊을 것인가?
그리고 계속해서 일본인으로 보이는 테러가 계속된다면? 미국은 어떻게 할까?
만약 핍박을 받게 된다면 일본놈들은 어떻게 할까?
만에 하나 사건의 주범이 중국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미국은 중국과 전쟁을 시작할까? 핵전쟁의 위험을 안고 전면전을 할까?
아니면 신일본 연합의 정신병자들에게 모든 범죄를 뒤집어씌우고 끝낼까?
로제 룽은 확신했다.
지금 상황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다수 보유한 국가와는 전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음껏 복수해도 됐다.
은신 장비를 걸친 채, 폭발의 현장에서 참상을 감상하는 로제 룽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오라비의 복수를 지원해 준 것은 당도 조국도 아닌, 오직 북부전구의 지배자이자 룽씨 가문의 가주인 아버지뿐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를 이용해 당이 숙청을 계획하고 있어.’
‘대만을 장악하려고 준비했던 병력이 변종 따개비로 발이 묶이자, 그걸 이용하려는 것 같다.’
‘증거가 명명백백한데도 네 오라비의 죽음을 무시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반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미제 놈들도 베이징의 돼지들도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뜨려야 한다. 할 수 있겠냐?’
단순한 복수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회춘’을 찾으라는 개 같은 명령 하나만 붙잡고 썩어가는 일본에서 구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니까.
무엇보다 오라비의 복수를 이 손으로 할 수 있다는 건 최고였으니까.
미군에 있었기 때문에 더 쾌감이 컸다.
그 미국. 그 미군이 상대였으니까.
그리고 바로 지금이. 미국이 제일 약할 때였다. 바이러스 창궐과 변이 바이러스 확산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인 상황.
항공운송은 끊겼고, 항만시설은 포화 상태, 항구 인근에는 하역하지 못해 떠돌고 있는 화물선과 컨테이너선들이 넘치고 있었다.
일본에서 온 난민들에 남미에서 배 타고 들어오는 난민들까지, 해양순찰대든 마약단속국이든 일손이 부족해 제대로 된 검역, 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규모 특작부대가 침투, 공작하기에 최적이었다. 연방군 대부분 일본과 우크라이나, 중동과 대만으로 빠진 상황. 남은 연방군과 주 방위군의 주력은 변종 괴수들을 토벌하는 작전에 들어가 미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자신은 복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1소대 EMP 준비는 마쳤나?”
[치직- 준비 완료됐습니다.]
대도시 시애틀은 오늘 밤,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포틀랜드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까지.
미 서부 대도시들은 모두 암흑에 빠질 것이다.
진실의 어둠이 덮치면,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겠지.
“작전 개시.”
잠시 후, 작은 폭음과 함께 화려했던 시애틀의 불빛이 꺼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여기저기 불꽃이 치솟으며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방화와 약탈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 이것이 미국의 민낯.
타오르는 연기와 불꽃이 미국의 본성이었다.
로제 룽의 높은 웃음소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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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들어온 유 이사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병신들이 쪼다들이랑 뭔 짓을 계획하는지 똥내가 짙게 났다. 보나 마나 거하게 똥을 싸지를 생각이 뻔했다.
그렇지 않으면 컨테이너를 여럿 밀어 넣을 리 없을 테니까.
안에 든 게 총화기류가 됐든, 마약이 됐든, 마약 생산설비가 됐든, 밀어 넣은 컨테이너 양을 생각하면 푸지게 싸겠지.
시애틀 도심으로 들어간 유 이사는 곧바로 총포상으로 향했다. 신일본 연합이 준 신분증은 정상적으로 먹혔다. 총과 탄약을 사는 데 문제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중국 새끼들은 특작부대 같은데, 일본 놈들은 왜 같이 들어왔지?’
어쨌든 서로 죽이면 좋은 일이니, 유 이사는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중국에는 든든한 선물을 보냈으니까, 미국에도 화끈한 걸 선물 해줘야지.’
‘회춘’을 좋아하니, 직접 찾아가 ‘회춘’ 찾는 대가리에 싱싱한 총알을 박아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총기를 분해 소지하던 유 이사의 눈동자에 뉴스 속보가 떠올랐다.
[···자선 모금행사장에서 원인 불명의 폭발 사고.]
[상원의원··· 하원의원을 비롯해 사상자 다수 발생···.]
유 이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911 사태를 떠올려 보면 이런 사건이 터진 뒤, 미국은 거의 미쳐 돌아갔었다.
‘쯧- 바로 떠야겠네.’
근처에 똥 싼 놈들이랑 같이 엮이면 피곤했다. 유 이사는 즉시 샌프란시스코행 버스를 타러, 택시를 잡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버스 터미널.”
“관광하러 오셨나 보죠··· 어? 갑자기 이게 왜 이러지?”
택시의 시동이 꺼지더니. 라디오, 요금기 전부 먹통이 됐다.
빵빵-
빠아아앙-
“야- 갑자기 왜 멈춰? 어?”
“이게 무슨 일이지?”
“휴대폰이 왜?”
“거기도 전화기 먹통입니까?”
멈춰버린 자동차에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꺼진 전화기를 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도로를 채우는 모습.
부르르 떨던 유 이사는 크게 웃고야 말았다.
사방에서 녹슨 쇠 냄새가 나는 듯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