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50
타다당-
투다다다닥-
찐득한 바닥을 밟고 전진하는 마루를 향해 쏟아지는 총탄들.
지그재그로 회피하는 마루의 그림자를 뒤쫓던 갱 앞에 순식간에 도달한 칼날이 번뜩였다.
크아!
약으로 한계까지 올라간 운동신경이 칼날을 감지하자마자 세워졌다. 아무리 칼이라고 하더라도 총신을 자를 수는 없다. 그러니까 막고 걷어차서 거리를 벌린 뒤, 쏜다!
‘막았···.’
어슷썰기 하듯 잘려나간 총신 뒤로 약쟁이의 머리 반쪽이 흘러내렸다. 한쪽 눈동자에 가득한 불신, 총이 잘려?
마루는 얼굴이 사선으로 잘린 약쟁이의 시체를 엄폐물 삼아, 중화제를 꽂았다.
치익-
슬슬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던 몸이 다시 서늘하게 식기 시작했다. 자동 포탑으로 최소 절반은 정리했음에도 바글바글한 놈들. 역시 숫자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려면 뭉쳐서 오든가. 씁- 이거 숫자가 너무 많은데.’
대충 지금까지 천 단위가 죽었다고 해도 천 단위가 남았다.
사방에서 멍텅구리 박격포탄과 RPG가 자동 포탑과 빌딩을 두들겨 대고 있었다. 빌딩 옥상과 중간에 설치한 근접방어체계가 느릿하게 날아오는 멍텅구리 폭탄을 요격해서 망정이지, 엉망이 될 뻔했다.
‘항공지원만 됐으면 순식간에 끝장났을 것들이.’
아쉬운 마음에 하늘을 보자, 멀리 새들이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를 맡고 노리는 것 같았다.
넝마가 된 시체를 집어 던지고, 불타오르는 픽업트럭 뒤로 몸을 숨긴 마루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정말 징그럽네.’
제정신이면 20~30mm 기관포가 쏟아지는 순간 도망쳤을 것이다. 기관포가 아니더라도 칼질에 토막 나는 모습을 봤으면 멘탈이 갈려서 끝났겠지.
근데, 약빤 것들은 눈앞에서 조각이 나도 덤벼들어 짜증 났다. 이클립스가 아니었으면 치료제까지 써야 했을지도.
모여있으면 살기로 굳히고 한 방에 정리할 수 있겠는데, 이것들이 삼삼오오 띄엄띄엄 퍼져있어, 살기의 효율이 낮았다.
살심은 즉발적이고 휘발성이 짙은 감정이라, 정신력과 집중력이 소모되는 느낌. 계속 살의를 품고 있다가, 그게 굳어지면 위험하기도 했고.
“디아나. 상황은?”
[적들의 이동속도, 반응속도가 인간의 움직임을 상회. 자동 포탑만으로는 격퇴가 어렵습니다.]
“피해는?”
[자동 포탑 4문 파손. 국토안보국 요원 23명 총상. 방탄장비와 신형 치료제로 덕분에 사망자는 없습니다.]
“어느 쪽이 제일 위험해?”
[남쪽과 서쪽으로 적들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쯧-
200명은 넘게 썬 것 같은데, 계속 이쪽으로 밀어 넣는 이유가 뭘까? 인해전술로 오버 히트를 노리는 걸까?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은 다양했다. 전형적인 갱의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만큼 마약 중독자들, 노숙자로 보이는 행색도 있었다.
LA에서도 그랬지만, 이것들 뒷배가 있는 게 분명했다. 디트로이트에 와서 갱들을 한 번 뒤집었는데도 이런 동원력이라니. 60만 인구의 도시에서 2천이 넘게 동원해? 심지어 개조한 픽업이 150대가 넘었다.
아주 이번 기회에 끝을 봐야 했다.
“놈들의 아지트나 우두머리는 어디 있는지 파악됐나?”
[무선 전파가 집중되는 곳을 확인했습니다.]
휴대전화와 CCTV를 통제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무전기로 연락하는 놈들. 뒷배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족치다 보면 드러나겠지.
“어디야?”
[안내를 시작합니다.]
HUD에 지도와 화살표가 떠올랐다. 일단 몸통과 팔다리는 조금 있다가, 지금은 대가리부터 썰고 보자고. 마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은폐물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총알이 쏟아졌다. 칼이 넓은 이클립스를 옆으로 해, 총알을 막았다.
크릉- 크릉- 크르릉-
탄환이 이클립스의 옆면을 두들기고 떨어졌다. 탄두가 가진 운동에너지를 칼날의 진동에 더한 것처럼 울림소리가 더 커졌다.
크아아아!
으아아아!
괴성과 고함, 비명이 뒤섞인 약쟁이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근거리에서 같은 편이 맞든 말든 그저 마루를 죽이겠다는 살의 하나만 남은 자들의 무모한 공격.
무모하고 무식했기에 피할 사각이 나오지 않는 총격. 총구의 방향이 마루를 향해 모이는 순간, 흔들. 앞으로 내달리던 마루가 옆 구르기를 했다.
한 번, 두 번 구른 뒤, 앞으로 돌격.
구르기-구르기-대쉬-
마루를 따라가는 총구가 오른쪽-오른쪽- 정면을 노리는 순간, 바닥을 쓸 듯 돌격한 마루가 이클립스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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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8개의 다리가 몸통을 잃었다. 다리와 이별한 몸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 마루의 왼 주먹과 다리가 휘둘러졌다.
바바박- 퍽!
이어진 3번의 연타와 1번의 발차기가, 4개의 몸통을 사방으로 날렸다. 몸통 볼링공 4개가 사방으로 흩어져 총구를 가로막았다.
날아간 몸통과 뒤엉키는 적들 사이로 10m를 단번에 스킵한 마루가 2명을 4덩이로 4명을 8덩이로 분리하곤 HUD가 표시하는 화살표 방향으로 돌진했다.
마루가 한쪽을 향해 노골적으로 움직인 것이 효과적이었는지, 빌딩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적들 가운데 일부가. 저지선을 만들었다.
약쟁이들은 명령에 따라 탄막을 형성하기 제일 쉬운 대형. 전열 보병처럼 다닥다닥 붙어 마루의 앞을 가로막았다. 회피하지 못하게 집중사격하겠다는 발상.
‘걸렸구나.’
마루가 이를 드러냈다.
꾹 눌러 참았던, 짜증과 분노가 살기로 변해 터졌다. 군데군데 폭발한 불꽃이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쏴!”
“쏘라고!”
살기에 굳어버린 약쟁이들 뒤에서 대가리가 지랄해댔지만, 순식간에 도달한 죽음은 방아쇠를 당길 틈을 주지 않았다.
둥글게 둥글게 휘두른 이클립스에서 공기를 찢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크르르르르릉------
절단. 토막. 분해. 분쇄.
살기 가득한 발걸음 뒤에 남는 건 붉은 발자국.
“멈춰!”
“받아버려!”
뒤에서 드럼통 박격포를 쏘던 픽업트럭 한 대가 마루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요란한 엔진 소리와 배기음.
그대로 밀어 버릴 요량으로 치달은 픽업을 향해, 마루가 이클립스를 휘둘렀다.
우둘투둘 거친 모양의 이클립스가 픽업트럭에 닿자, 기괴한 소리가 났다.
찌이이익-
종이 찢어지는 가벼운 금속음을 끝으로 동강동강 토막 난 픽업트럭이 바닥에 퍼졌다.
“어? 어!”
“JES···.”
“HLOY-SH···.”
“HOLY? 그러고 보니···.”
그 광고가 진짜였어?
약쟁이들을 통제하는 놈들이라 그런지, 제정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더 생생한 공포심을 만들었다. 제정신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
“오. 오지···”
“빨리 막아! 막으라고!”
저벅-
쩌어벅-
바닥에 깔린 진득한 찌꺼기들을 짓밟고 다가오는 마루의 발걸음.
고기를 태우는 불꽃도, 화염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만 같았다.
“괴. 괴물.”
“살려줘. 살려···.”
도망칠 수 없었다. 뒤돌아 등을 보이는 순간, 썰릴 것만 같았다.
그래. 저건 죽음이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포와 절망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쩐지 심장이 쥐어 짜이는 감각. 숨을 쉴 수 없었다.
크허억-
커어헉-
갱의 간부들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타는 냄새, 짙은 녹슨 냄새, 내장의 냄새에 지린내가 뒤섞이기 시작했다.
‘추워.’
‘숨이 막혀.’
누군가 내뱉은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정신을 놓고 컥컥 킥킥거리는 놈,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권총을 물고 방아쇠를 당기는 놈, 심장마비가 와서 퍼진 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괴로운 얼굴을 한 머리통이 안식을 찾아 하늘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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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콘 발동!
미국의 모든 언론이 데프콘 선포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마치 세계 3차대전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 그렇지 않아도 시애틀 폭파 사고로 긴장하고 있었는데, 대규모 정전사태의 원인이 EMP 공격 같다는 말에서 끓기 시작했고. 데프콘 발령으로 넘쳐버렸다.
방어준비태세를 의미하는 데프콘(DEFCON.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라는 용어는 전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였기에 더욱 그랬다.
[···디트로이트에서는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통신이 끊겼을 뿐만 아니라. CCTV와 같은 감시 장치들도 먹통이 된 것으로 알려져···]
그리고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총격전이 미 전역에 보도되자,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사재기와 약탈, 방화, 폭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연방정부는 선택해야 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다양성과 평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데프콘을 발령했는데도 지금 상황을 보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폭동과 약탈이 일어나는 것을 보란 말입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맞습니다. 놈들이 작정하고 공작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놈들 말입니까? 러시아? 중국? 이슬람? 남미 카르텔? 누가 공작했다는 겁니까?”
“연금 요구하는 재향 군인들 탱크로 밀어버리고, 뉴욕에 폭동이 일어났다고 함포 사격했던 역사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밀어버리자고요? 그럼 천안문 중국이랑 다를 게 뭐란 말입니까?”
“이 멍청한 사람아! 천안문은 비폭력 민주화 운동이고 지금은 약탈, 방화, 폭동이잖아. 그걸 구분 못 해?”
“약탈을 왜 하겠냐? 그건 생각 못 해? 사회에 불만이 있고 가난하니까 약탈하는 거지. 그리고 총기. 총기 규제하자고 했어? 안 했어? 총기규제를 했으면 약탈 못 했을 거 아니야.”
상원이고 하원이고 의회는 시장통이 됐다. 이어진 긴급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들과 기관장들이 핏발을 세웠고,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각을 세웠다.
미합중국의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었다. 항상 적은 있었으니까. 언제나 최고의 자리는 공격받는 자리니까.
근데 그 공격이 물리적인 공격이라면 그건 말이 달랐다. 돌았나? 자살인가?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서라도 지금 번지기 시작한 폭동과 약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부터 정해야 했다.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 과장은 꾸준하게 주장했었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 당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이후에도 말했다. 일본 난민을 통제하고, 일본과 중국계 미국인, 이민자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빨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국토안보국 덴 브라운입니다. 국토안보국에서 파악한 바로는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 서부 대도시에 터진 EMP 여파로, 자동차와 철도, 지하철 등 교통과 통신이 끊겨. 지역 경찰과 주 방위대가 범죄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MP로 전기 철조망이 기능을 잃어,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킨 자들을 수용한 수용소가 무너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풀려나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지금은 적이 누구인가? 누가 공격했나? 이것보다 발생한 사건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국토안보국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자료를 다 읽었는지, 안경을 다시 고쳐 쓴 상원의원 하나가 덴 브라운 과장에게 질문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합니까?”
“···대응이 늦는다면. 미합중국이 몰락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넓은 회의장이 웅성거렸다.
몰락? 무너진다고?
미합중국이 망할 수 있다?
고작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다고?
EMP 몇 개 터진 것 때문에?
저거 밑밥 뿌리는 거 아닌가?
오버인데?
국토안보국이면 누구 라인이야?
아니, 정말 위험할지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벙커 만들고 빌딩 만드는 놈들 있잖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응 방향성을 정하는 투표가 시작됐다.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정보화 시대, 다양성 존중의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인가?
투표결과.
미국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미합중국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졌을 때, 미국은 전통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내놨을까?
역사적, 전통적으로 가장 선호한 방법은 하나였다.
갈.아.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