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 [RUST]-251
발상의 전환.
문제를 갈아버리면 문제가 없어진다.
얼마나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란 말인가?
폭동이 문제다? 갈아버리면 그만이었다.
테러가 문제다? 관련된 곳을 전부 갈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문제가 있었는데, 없어졌다.
이보다 더 간단하고 확실한 해법은 없었다.
심지어 효과도 검증됐다.
인디언도 갈고, 빨갱이도 갈고, 재향 군인도 갈고, 멕시코도 갈고, 스페인도 갈고, 나치와 일본제국도 갈아버린 게 미국이었다.
갈려고 마음먹으면 갈아버린다. 그게 누구든, 무엇이든 갈아버리니까 해결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미합중국의 전통이 부활할 조짐을 보였다.
시애틀에 폭발사고가 나자마자, 10분 컷으로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했다.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가 위로의 전문을 남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애틀,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 대규모 정전이 터지고, 그게 EMP 공격으로 보인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 소식에 세계가 경악했고, 침묵에 빠졌다.
EMP가 무엇인가? 기술집약적이고 정보, 통신으로 굴러가는 현대에선 말 그대로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는 흉악한 무기였다.
금융전산이 날아가고, 전기, 전화, 교통, 인터넷, 상수도 전부 먹통을 만든다, 그러니까 현대 인프라를 끝장내버리는 무기. 간단히 말해 EMP 범위 안을 석기시대로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EMP가 터졌다고?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이 동시에?
이례적으로 이슬람 테러 단체에서 우리가 한 것 아님. 성명 발표를 했다.
어지간한 폭발이 터지면 자기들이 하지 않았어도 ‘우리 형제들이 복수했다. 신은 위대하다.’ 하는 놈들인데. 신에게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이번에 우린 진짜 아님. 정말 우린 아님.’을 선언했다.
그걸 시작으로 폭탄이나 폭발과 관련된 단체나 나라에서는 절대 자기들이 아니라고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간악한 미제의 간덩이가 부었다.’, ‘승냥이 같은 악행에 대한 천벌이자, 당연한 인과응보다.’라며 딜박기가 일상인 어느 나라에서도 ‘정말 위로합니다.’, ‘공화국은 절대 연관 없습니다.’라고 수그렸다.
미군의 움직임이 그냥 눈이 돌아간 움직임이었으니까.
세계가 숨을 죽이고 입 닥쳤다. 다행스럽게도 미합중국의 돌아간 눈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했다.
TV에서는 연일 비상사태 발동을 알렸다.
[서부 시간으로 오늘 오후 10시 정각부터 고속도로를 비롯한 국도의 전면 통제가 시작됩니다.]
[모든 차량은 가까운 휴게소로 이동, 주 방위군의 통제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통제에 따르지 않은 자는 테러리스트나 협력자로 간주하겠다. 무조건 통제에 따라라.
하지만 SNS에 미친 세상답게, 통제하는 연방군과 주 방위군을 핸드폰으로 찍으면서 조회 수 떡상을 노리는 놈들이 나왔다.
“현재 모든 도로는 운행 정지 중입니다. 차에서 내려서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오늘은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연방군? 연방군 소속 맞죠?”
조수석에 앉은 사람까지 합심해서 동영상을 찍어댔다.
“실시간 반응 좋고. 떡 상각이다.”
“휴대폰 치우시고, 통제에 따라주십시오.”
“에이 이거 실시간 스트리밍인데 좀 살살해줘요. 어차피 얼굴 나오지 않으니까 초상권 문제도 없고 괜찮지 않습니까?”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연방군과 주 방위군이 전부 방탄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을 꼬집는 자들이었다.
“내려.”
“손 앞으로.”
“와 지금 이거 무슨 짓입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거 찍고 있지?”
“군인이 협박? 폭력? 여러분 보이십니까 이거?”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이 실시간 올라간다는 협박에도 장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당신은 지금 군사작전을 허락 없이 촬영했습니다. 이는 테러리스트에게 현재 도로 봉쇄 상황을 알린 것이므로···”
“잠깐 뭐라고? 테러리스트? 그게 무슨?”
“당신이 테러리스트에게 군사작전 현황을 의도적으로 알렸다는 소리란 말입니다.”
“아니 난 그저··· 변호사. 변호사를 불러줘!”
“내 몸에 손대지 마! 변호사. 변호사에게 전화해.”
그리고 그건 마법의 단어였다. 몽둥이를 소환하는 마법의 단어. 순식간에 피떡을 반죽한 군인들이 변호사를 찾던 작자를 끌고 나갔다.
“여기 총 있습니다.”
“이 새끼들 약도 가지고 있었네?”
“무슨 약이야?”
작고 투명한 알갱이. 필로폰. 코카인. 그리고 어쩌면 크리스털. 디트로이트에서 총질한 놈들이 먹은 약이 크리스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테러리스트 끄나풀 확정.
“이놈들 테러리스트랑 연관있는 놈이다. 인적상황 파악하고 모조리 잡아들여.”
“실시간으로 댓글 다는 놈들 가운데 테러리스트가 있을지 모르니까 전부 찾아!”
“댓글 단 사람들 말입니까?”
“테러리스트 놈들이 이것들을 이용해서 도로 봉쇄 상황을 확인하려고 했을 테니까.”
“그리고 봉쇄를 풀기 위해 놈들이 댓글 공작을 할 가능성이 있다.”
“뉴투브와 통신사에 실시간 위치 정보 파악해서 일단 잡아.”
영상에 댓글 단 자들을 잡기 위해 경찰이 아닌, 무장한 병력 출동했다.
그리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위성 위치 고정. 30개 도로 현황 분석 시작합니다.”
“서부에서 중부, 동부로 넘어오는 모든 교통편 통제 들어갔습니다.”
EMP를 터트린 놈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200마일에 걸쳐 저지선을 만들고 이동 금지를 때려 버렸다. 실로 무식한 방법.
“기갑부대 시애틀에 진입합니다.”
“폭동 지역으로 진입. 강제 해산 시작하겠다.”
시애틀을 시작으로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에 기갑부대가 진입했다. 전차와 장갑차로 이뤄진 부대가 약탈과 폭동으로 불타오르는 시가지에, 기관포 소리를 다져 넣었다.
블라디 아크 타워에서 뜯어온 물자를 아낌없이 사용한 기계화 보병이 약탈자, 범죄자의 눈물과 핏물을 빼는 동안, 공군도 작전을 개시했다.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기 위해, 공항 인근을 전부 CS탄 연기로 뒤덮은 공군이, 조기경계기와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수없는 비전투 손실이 발생했지만, 공군은 작전을 강행했다.
[90번 고속도로에 차량 진입 확인.]
[차량 종류. 컨테이너 트럭.]
[반복한다. 컨테이너 트럭이 90번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산길로 이동하고 있다.]
“공격해.”
[라져.]
200마일 통제선 안쪽으로 들어온 건 뭐든지 폭격. 차량으로 이동하기 불가능한 절대 말살 지역이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날아오른 전투기, 폭격기들은 정체가 의심스러운 차량뿐만 아니라, 변종들도 때려잡기 시작했다.
작전지역 인근에 변종이 확인됐다 하면 냅다 미사일을 때려 박는 전투기와 공격헬기들.
[자연보호 구역에 거대 늑대무리가 보인다.]
[쓸어버려!]
육군이 그 고생하며 잡은 변종을 공군은 닥치고 폭격으로 날려 버렸다. 자연보호 구역이고 나발이고, 인근 지역까지 통째로.
[변종 멧돼지떼가 숲으로 들어갔다.]
[날려버려!]
융단 폭격으로 전부 잡을 수는 없었지만, 공군이 쓸고 지나간 지역에서 변종 짐승들의 밀도는 확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원인 없는 불안감에 로제 룽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였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EMP가 터진 도시에서는 폭동과 약탈이 일어났고, 이것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이 몸살을 앓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껏 홍콩이니, 위구르 문제로 중화를 모욕한 미제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까? 대화로? 당장 약탈과 폭동이 터졌는데?
시간을 끌수록 피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주 정부와 지역 주민의 불만은 쌓일 것이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수렁에 빠지겠지.
그렇다면 무력으로? 무력으로 때려잡는다면, 미국이 이제껏 부르짖었던 도덕, 인권 이딴 것들은 전부 위선이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지금껏 위선으로 쌓아 올린 미국의 이미지는 이제 끝이었다.
외통수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 상황은 뭐지?
강경 진압한다고 하더라도. 경고라든지, 국제사회의 눈초리를 생각해서 수위를 조절하는 게 정상 아닌가?
당장 중국이 홍콩에 개입한 방법도 그랬다. 수위 조절하느라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그런데 미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처럼 전부 갈아버리기 시작했다.
사상자 집계, 피해 규모 통계 같은 것도 없었다. 마치 도시를 전부 때려 부수고 다시 세울 것 같은 작전. 기갑부대가 EMP로 마비된 도시로 돌격해 버렸다.
‘너무 충격이 커서 미쳤나?’
미리 약을 친, 갱단과 카르텔이 사방에서 분탕질했지만, 결과는 곱게 갈린 패티가 됐다. 약탈과 폭동은 기갑부대가 들어간 뒤, 하루 만에 끝났다.
폭동과 약탈을 한 자들이 잡히면 일반 법정에 올리지 않았다. 군사 법정이 열려, 바로 내란죄와 이적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었다. 결과는 극형.
“그래서 전부 와해 됐다는 소립니까?”
[···디트로이트를 공략한 자들이 무너진 게, 보도되면서 다른 지역의 갱과 카르텔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입니다.]
“엉덩이 깔고 앉은 놈들에게는 약을 줄이세요.”
[그쪽에서 남미 쪽으로 대체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남미에서 올라오는 약의 유통도 우리 손에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EMP를 썼으니, 통신과 인터넷이 끊겨 SNS를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진압한다고?
‘꼬리가 잡혔을까?’
개입이 들켰다면, 선전포고라든지 아니면 외교적 제스처가 있었을 거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그냥 눈먼 코끼리가 어기적거리다가 쥐를 잡은 걸까?
계획대로 공격을 계속해야 했다. 4번으로 부족하면 8번, 8번으로 부족하면 16번 공격해 진창에 밀어 넣으면 그만.
“계속 움직인다.”
[모든 도로가 통제되고 있습니다.]
“120마일이나 떨어졌는데 무슨 소리야.”
[200마일까지 봉쇄하고 있습니다.]
“···200마일이라고?”
[예. 무조건 검문입니다.]
“조를 나눈다. 3소대는 야간이동으로 목적지까지 간다. 2소대는 남하해서 멕시코 국경을 타고 이동. 1소대는 국유림으로 가서 은폐한다.”
[알겠습니다.]
200마일? 사고현장에서 320km 떨어진 곳까지 모든 도로를 통제하겠다고?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로제 룽은 피식 웃었다.
가능할 리 없었다. 이 넓은 땅, 이 많은 도로를 어떻게 관리한단 말인가? 자기들 나라에 감시 위성 깔고, 조기 경보기 수십 대를 띄워?
버드 스트라이크로 몇 번 뜨면 절반은 추락할 텐데? 미국 공략이 성공하리라 예측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버드 스트라이크였다.
분명 그런데···
[3소대 연락이 끊겼습니다.]
“원인은 알 수 없나? 2소대는?”
[2소대, 미사일 공격이라는 신호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미사일 공격?”
미쳤나? 자기들 나라에서 이동하는 컨테이너 트럭에 경고고 뭐고 없이 그냥 미사일을 쏴버렸다고?
“룽 소좌님, 변종 늑대가 주변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또?
숲에 은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변종 늑대무리는 집요했다. 어디서 무장한 군인을 상대하는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24시간 교대로 찔러보는 통에 탄약과 장비를 많이 소모했다.
집요한 입질에 CS탄은 진작 다 썼고 남은 건 비상시에 쓰려고 가져온 고춧가루나 후추 정도였다.
“가루 뿌려.”
“옛!”
변종 늑대는 냄새를 피해 물러났지만, 그 늑대들이 불러올 융단 폭격을 예상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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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통제실.
“타호 국유림 인근에 출몰한 변종 늑대를 폭격하는 과정에 휘말린 것으로 보이는 컨테이너 차량이 발견됐습니다.”
“국유림 인근? 위성과 조기경계기로 근처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 폭격했을 텐데?”
심지어 컨테이너 숫자가 4대나 됐다. 주변을 정밀하게 수색한 결과 나온 흔적들. 융단 폭격에 휘말려 까맣게 탔어도 중무장한 흔적이 역력한 시신들이었다.
이것들 설마 테러범?
“컨테이너 열었습니다! 안에 EMP 폭탄이 있다고 합니다.”
“당장 출처를 확인해!”
EMP 폭탄을 분석한 결과. 중요 부품이 대만과 중국, 일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일제와 중국, 대만 부품으로 장난질을 칠만한 나라는 많고도 많았다.
“시체에서 채취한 DNA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중국인일 가능성 95% 이상. 그것도 중국 남방인이 아닌, 북방인에 주로 보이는 DNA였다.
바로 연방정부에 자료가 올라갔고. 군은 데프콘으로 할 수 있는 대책을 즉시 실행했다.
군에 있는 중국계 미국인, 일본계 미국인에 대해 발령 대기가 떨어졌다. 가족 가운데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혈연관계가 있는 자들은 보직 이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런 소식이 중국 베이징에 전해졌다.